# 37
수상한응시생
첫 번째 함정은 벽면에서 칼날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바닥에서 전기톱날이 솟구친다.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점프 혹은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앞구르기를 하면 피할 수 있는 함정이다.
시험을 위한 함정에 설치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물건이지만 칼날의 속도는 느리고 전기 톱날은 피복에 걸리면 생채기만 남긴 채 멈출 정도로 출력이 약하다. 응시자들이 조금 긴장하라는 의미에서 배치한 함정이었으나 그것의 출력을 높이자 두 개의 함정은 거의 동시에 튀어나와 고개를 숙이던 응시생의 가슴을 전기 톱날이 가차 없이 훑어 버렸다.
이건 응시생의 실수도 있었는데 체력장의 시험 내용은 상당히 널리 알려져 이미 수십 번의 연습을 끝마친 상태였다. 그냥 눈감고도 통과할 수 있을 지경, 문제는 그가 연습한 것과 지금의 것은 출력 자체가 3배가량 차이가 났다는 게 문제였다.
“으아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리자 감독관들은 안으로 튀어 들어갔고 잠시 후 고함이 들려왔다.
“시험 중지! 중지해! 힐러! 힐러!!!”
전기 톱날이 훑고 지나간 곳의 위치가 너무 안 좋은 건 둘째 치고 상처 범위가 너무 크다. 전기 톱날은 응시생의 가슴 부위를 아예 길게 도려내 버렸다.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나오자 그들은 힐러를 외쳤고 돌발 상황에 대기하고 있던 힐러가 서둘러 달려왔다.
달려온 힐러는 엉망이 된 응시생의 가슴을 바라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톱날은 거의 가슴을 저민 수준이었다.
“회복!”
힐러가 두 손을 부상자의 가슴에 얹고 회복스킬을 사용하자 뿜어져 나오던 피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피로 범벅이 되었던 감독관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뒤로 물러섰다. 출혈이 워낙 심각해 조금만 늦었으면 더욱 위험해졌을 것이다.
“119불렀지?”
“아. 부를께.”
워낙 경향이 없었기에 119를 부를 정신도 없었다.
“함정 구조물 관리 직원! 어디 있어!”
감독관이 소리쳤다. 그러자 2층에서 연신 씨발씨발 거리며 컨트롤패널을 조작하던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 내려갔다. 이전 단계에서 전부 1등으로 클리어한 이라길래 강도를 높였는데 엉뚱한 이가 들어가 참변이 난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기기...기기 오류 같습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준비했던 변명을 그대로 말하는 직원이었다.
“씨발... 그걸 말이라고!”
그의 말에 감독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응시자가 죽을 뻔 했다. 평범한 응시자도 아니다. 능력을 개화한 예비헌터들인 것이다. 고발이라도 들어오면 한두 명의 모가지로는 어림도 없다. 아니 만약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최악의 경우 감독관직을 그만둬야 했다. 감독관이라는 건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충분한 양의 레이드 숫자와 클랜의 추천이 없으면 가지기 힘든 자리다.
“너 관리감독소홀로 내가 쳐 넣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꺼져!”
“저...그 ... 그게...”
직원은 졸지에 직장을 잃게 생겼다. 안절부절못하며 그가 감독관에게 뭐라 변명하려 했지만 잠시 후 그에게는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컥! 크워억!”
힐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바닥에 누워있던 응시자가 갑자기 입에서 대량의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뭐...뭐야!”
“내출혈! 안에서 다시 터졌어요.”
“힐링은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힐러의 대답에 감독관이 물었다.
“찢어진 곳은 모두 붙였어요. 문제는 전기톱에 너무 더럽게 찢겼다는 거예요. 그게 치유 스킬로 얼키설키 붙었는데 압을 못 이기고 다시 터진 것 같아요.”
“이런 빌어먹을...”
힐러의 말에 감독관이 욕을 내뱉으며 피를 토하고 있는 이의 상세를 살폈다. 터진 호스에서 물이 뿜어지듯 피가 계속 뿜어져 나온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때 응시자 중 한명이 나섰다.
“비켜요.”
“뭐야!”
힐러는 갑자기 자신을 치고 들어오는 응시생에게 소리쳤다.
“저도 힐러 스킬이 있습니다.”
응시생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뻗을 때 힐러가 그의 손을 막았다.
“평범한 힐링 스킬로는 안 돼! 치유된 내부가 다시 터져 생긴 내출혈이야. 전문의와 함께 치료해야 한다고...”
그의 말이 맞았다. 전문의가 잘못 접합된 부분을 찾아 제거하고 그 부분에 힐링 스킬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힐러들 중에는 외과적인 소양을 쌓은 이들도 많았는데 불행이도 이 힐러는 그런 지식이 없었다.
“당신 이름이?”
감독관이 물었다.
“천제황입니다.”
그의 대답에 감독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시생 서류를 보던 중 하이브리드 라이센스를 지망한 두 인물의 서류를 본 적이 있다. 워낙 정신이 없어 얼굴을 확인하니 모든 종목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응시생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아무도 손을 못 댈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좋아.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금 손을 가져갔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 제황의 손은 기절한 이의 아물어진 상처 속으로 푹 하고 찔러 들어간다.
“뭐! 뭐야!”
간신이 접합해 놓은 상처를 생살을 찢어내 다시 벌리자 감독관은 화들짝 놀라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힐러에 의해 제지되었다.
“가만 있으세요!”
“아니 저 사람이!!”
“제 생각이 맞다면 저게 제대로 된 치료법입니다.”
“뭐요?”
“자세히 보세요!”
사람의 생살을 찢는 게 제대로 된 치료법이냐고 외치려던 그는 힐러의 말에 시선을 옮겼다.
“어?”
가슴을 찢겼는데 방금 전까지 토혈을 하던 환자의 표정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입가를 타고 흘러나오던 피가 천천히 멎었다. 잠시 후 제황이 상처 부위에서 천천히 손을 꺼내자 찢어졌던 가슴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아무는 모습도 특이하다.
힐러가 스킬을 사용했을 때는 찢겨나간 게 그대로 흉터가 되어 울퉁불퉁한 면을 남겼는데 제황이 찢어놓은 상처는 본래의 모습 그대로 아물더니 어느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변해 있었다.
“치유의 상위 스킬인 재생이군요.”
그걸 본 힐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왜 제황이라는 응시생이 앞으로 나섰는지도 이해가 갔다. 잘못 붙은 부분을 처치한 뒤 다시금 그 부위를 재생시켜 버린 것이다. 게다가 제황이라는 이는 인체해부학적인 지식도 상당해 보였다. 단지 손의 감각만으로 잘못된 부분을 찾아 해결했으니까.
물론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안쪽에 피가 많이 고였네.
-그건 어쩔 수 없어.
궁기가 궁기안 으로 그를 보조해 줬다.
“치료는 끝났지만 안쪽에 피가 많이 고였을 겁니다. 나중에 따로 제거 시술을 해야 할 거에요.”
“후... 감사합니다.”
감독관은 상대가 응시생이라는 것도 잊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독관 경력을 떠나서 한 명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뒤늦게 119가 와서 응급처치를 한 뒤 구급차에 실고 사라졌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싶지만 구급차가 떠나기까지 단 20분이라는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음... 구급차는 갔나?”
사고 때는 보이지도 않던 감색양복의 수석감독관이 슬렁슬렁 나타나 감독관에게 물었다.
“아, 수석감독관님. 지금 막 갔습니다.”
감독관은 사고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가 일이 다 수습되니 슬그머니 나타난 수석감독관이 배알이 꼴리기는 했지만 일단 최고상급자이기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헌터라이센스 시험에 투입되는 감독관의 수는 총 10명이었는데 그 중 5명은 일반인들 중에서 선출된다. 헌터 시험이 헌터능력위주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제도였는데 배불뚝이의 감색양복은 일반인으로서 감독관 생활을 가장 오래한 인물 중 하나였다. 처세가 능하고 인맥이 넓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였기에 감독관 중 그의 입김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군. 시험을 속행하지. 기기 오류를 일으킨 직원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렇게 알고...”
지시를 내린 후 돌아서려는 그에게 감독관이 말했다.
“수석감독관님.”
“음. 뭐 더 할 말 있나?”
그의 물음에 감독관이 말했다.
“이번에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친 11번 응시생의 실기는 합격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출중한 능력을 보였으니 합격으로 처리해도 하등 문제가 없다 판단한 감독관이었다. 본래 서포터 계열 스킬의 각성자는 이런 식으로 시험을 봤다. 본래라면 실기에서 발생하는 부상자들의 치료를 맡기면서 그 능력을 평가하니 말이다. 그리고 수석감독관도 자신과 별다른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석감독관의 생각은 좀 틀린 듯 보인다.
“내 생각에는 힐러가 미리 다 치료해 놓은 것에 숟가락 좀 얹은 걸로 합격을 시키는 건 좀 유고해봐야 할 것 같네.”
“예?”
감독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얼굴을 일그리며 말했다.
“내 말 못 들었나?”
“아...알겠습니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감독관은 일단 고개를 끄덕인 후 물러났다.
지금은 수석감독관과 언쟁을 벌이기에 적당한 자리가 아니었다. 수석의 지위가 더 높은 것을 떠나서 시험의 조속한 속행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후우...그런데 그 친구 마나소모는 괜찮을까.”
상위스킬이면 마나의 소모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상위 스킬이라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효과가 뛰어나고 정교할수록 소모되는 마나가 큰 것이다. 특히나 그런 큰 상처를 치유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마나가 바닥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염려대로 제황은 벤치에 앉아 용혈기를 통해 바닥난 마나를 채우는 중이었다. 비록 그의 레벨이 타인보다 높아 보유한 마나가 훨씬 많다지만 커먼스킬의 상위스킬이기에 반대급부로 마나의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아마 같은 스킬을 지녔더라도 제황이 아니었으면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응시생들은 모두 마지막 실시 시험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독관의 외침이 들려온다.
-50가량 회복되었네.
상태창을 확인한 제황이 혀를 찼다. 회복된 마나의 총량은 100정도 가량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수치는 타인보다 높았지만 보유한 스킬들 자체의 격이 높아 소모하는 마나량도 높은 제황이었기에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특히 제황은 하이브리드 계열의 지망이기에 육체계열과 마법계열 두 가지에 시험을 봐야 했다.
-배은망덕한 놈들이다! 도움을 줬으면 응당 배려가 필요한 게 아닌가!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궁기가 투덜거렸다.
-그만...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제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자리를 잡고 용혈기를 운용해 조금 더 마나를 채워야 한다. 자연적으로도 회복되지만 용혈기를 운용할 때 더 빠른 회복이 된다.
-억울하지 않나?
-별로...
말은 그리 했지만 사실 제황도 조금 섭섭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기분은 털어버렸다. 언제 그런 걸 바란 적 있던가. 그런 거에 일일이 상처받으면 못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