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엘어스
“계속 주시해.”
“예.”
남자에게 지시를 내린 그는 주머니에서 광역폰을 꺼냈다.
잠시 신호가 가더니 상대측에서 군기가 잔뜩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보안! 제 312 특수수색단 관제실 정상구 병장입니다.
“나 수색단 3소대 박효열 대위다.
-예. 박 대위님. 확인 되셨습니다.
”단장님은?
-자리에 계십니다. 연결해 드릴까요?
“그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얼마 후 단장의 목소리가 광역폰에서 들려왔다.
-박 대위, 윔홀은 찾았나?
“충성! 예. 약 5분 전 땅굴 형태의 윔홀을 발견 완료했으며 현재 개미를 투입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1분 정도 전 몬스터로 추정되는 생명체와 조우했습니다.”
-그래? 몬스터 종류는?
“아직 파악 불가지만 추정치로는 3티어 혹은 4티어 정도로 보입니다. 동굴이 워낙 좁아 확실한 파악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음...”
그의 말에 단장이 장고에 들어갔다. 수색대의 본래 임무는 윔홀의 수색 및 파괴에 있다. 발견된 윔홀은 파괴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지만 정보습득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이런 식으로 발견된 윔홀을 통해 타차원의 식생 및 기본적인 몬스터 난이도를 측정해야 하는 것도 그들의 기본 임무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현재 발견된 것이 3티어 혹은 4티어 몬스터다. 여차하면 인명피해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 그대로 조사를 속행시킬지 아니면 파괴시킬지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 그의 결정을 도와주는 말이 그의 광역폰을 통해 들려왔다.
“파악완료! 분석결과 89퍼센트 일치! 테러버드입니다!”
-뭐야?
개미를 컨트롤하고 있는 남자가 외쳤다. 그의 말에 한창 단장과 통화를 나누던 박효열 대위는 깜짝 놀라 남자가 보고 있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하나의 거대한 얼굴이 신기한 듯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안면인식시스템을 통해 분석된 화면 한쪽에는 [테러버드]라는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빌어먹을 5티어 몬스터!”
5티어 몬스터 테러버드... 레이드를 하려면 스쿼드로는 어림도 없는 몬스터가 5티어 몬스터다. 헌터라면 공격대 급이 군대라면 중대급이 상대해야 하는 대형몬스터...그 때 그의 광역폰으로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0421부로 궁기산에서 발견된 윔홀의 파괴를 허가한다. 탐색을 중단하고 투입된 개미는 포기하라.
-차단이 아닌 폭파로 갑니까?
윔홀을 막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방법은 특수콘크리트를 부어서 윔홀이 있는 구멍을 막는 것 두 번째 방법은 그대로 윔홀이 있는 곳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지형 특성상 차단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아. 파괴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박대위는 단장의 말에 즉각 대답했다. 5티어 몬스터가 발견했을 때는 최대 7티어의 몬스터의 출현까지 상정하여 윔홀을 판단한다. 또한 5티어 이상의 몬스터 발견 시 윔홀은 무조건 파괴하는 것이 기본 방침. 물론 지금 이 판단은 발견된 테러버드가 새끼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결정한 것이었지만 어쨌건 상당히 정확한 지시였다.
“전대원! 수색을 멈추고 대피한다. 다시 한 번 알린다. 전 대원 대피하라. 0430까지 파괴 진행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제황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결정이 아닐 수 없는 일이 궁기산 한 쪽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2년 후
투툭...투투툭...
“...봄인가보네. 비라도 왔나.”
고요만이 가득한 어느 깊은 산골짜기 구석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꺼내 줄까?”
영롱하게 울리는 한 여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니,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파팍...
잠시 후 땅을 박차는 거친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검은 구멍으로부터 나타났다.
땅을 몇 번 구른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몸에 두른 가죽들 사이로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젠장... 흙투성이야.”
투덜거리는 그의 곁에 한 여성이 내려앉았다. 남자와는 다르게 한 점의 먼지조차 묻지 않은 그녀는 뽀얀 다리가 드러나는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네가 뚫는 동안 동굴이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던 건 나야.”
“그래. 너도 고생했다.”
궁기의 말에 제황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흙과 낙엽들이 묻었지만 지금 그에게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익숙한 나무, 익숙한 풀잎... 그립던 향기... 조용히 흐르는 눈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너무나 맑았다.
"돌아왔다."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던 제황은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2년 전 동굴 안으로 숨어든 테러버드의 새끼는 총 세 마리였다. 천신만고 끝에 셋을 처치한 후 동굴에 들어갔을 때 그를 반기는 건 엉망으로 무너져 있는 동굴이었다. 작동을 멈춘 탐색로봇을 보고 누구의 짓인지 파악한 제황은 그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일함을 다시 한 번 자책했다.
아가스테론이 발견되었으니 윔홀을 탐지하러 국가에서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을 간과한 것은 자신의 실책...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다. 다행이라고 할 건 차원간의 균열에서 발생하는 윔홀은 폭약 같은 것으로는 파괴되지 않는다는 거지만 불행하게도 폭파로 인해 무너진 지반이 모두 바위였다.
윔홀의 위치는 궁기가 찾아낼 수 있었다. 반정신체이기도 하기에 무너진 바위는 그녀에게 장애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제황이었다. 무너진 동굴의 길이는 약 40미터... 짧다고? 그 사이를 메운 게 온통 화강암반이었다. 그 거리를 뚫고 나오는데 무려 2년이 걸렸다.
물론 그 시간동안 땅만 파고 있던 건 아니었다. 암반을 치우다가 죽을 뻔 한 것이 수번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제황은 생사를 건 레벨업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제황은 너무나 연약한 생명체였으니까.
티어조차 파악불가인 뱀이 있는 곳은 아예 눈도 돌리지 않았다. 다행히 남쪽으로 하루 가량 내려가자 3티어에서 4티어 몬스터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제황은 그곳에서부터 레벨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레이드 또한 만만치 않았다. 본디 레이드는 최소 단위 스쿼드로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단 한 마리를 사냥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는 팀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제황의 곁에는 궁기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한참 전성기 때야 그 명성과 흉성이 자자한 대요괴였지만 무련가에 수백 년간 봉인당한 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힘을 제황의 환골탈태에 빼앗긴 궁기에게 서포터 그 이상을 바라기는 무리였다.
제황은 한 마리를 잡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아니 화살 하나 날리는 것도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실행했다. 충분한 화살을 준비하지 않았으면 그마저도 힘들었을 것이다.
덕분에 제황이 가진 스킬들 중 가장 상승치가 높은 건 [호랑이사냥]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무련궁술... 무려 네 가지를 모두 마스터한 상태다. 비록 두 가지 이상의 스킬을 합하는 건 아직 마나가 버거웠지만 제황은 철저히 단 한발로 몬스터를 레이드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고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 제황과 궁기는 그 모든 고난을 뚫고 다시금 지구로 돌아왔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제황은 곧 몸을 일으켜 산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자연스럽게 [호랑이사냥]이 발동했다. 엘어스에서 하도 호랑이사냥을 활성화하고 살았더니 이제 거의 자동으로 켜지는 수준... 몇 번 발돋움을 하자 몸이 금세 쭉쭉 치고 나갔다.
"다행이네. 잘 지켜주셨구나."
철컥...
산장의 정문에 걸린 커다란 자물쇠를 연 제황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대문을 바라봤다.
돌아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무려 2년... 엘어스에서 성년을 맞아버린 제황이었다.
“티브이 안 나와! 전기 안 들어와! 제황 두꺼비! 두꺼비!”
이미 산장 안으로 들어간 궁기가 티브이가 있는 방에서 제황을 향해 소리친다. 피식 웃은 제황은 가장 먼저 사당으로 들어가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린 뒤 산장 뒤편으로 돌아가 배전판을 열고 두꺼비집의 전원을 올렸다.
“아아...나온다. 오오! 문명의 이기! 너 참 오래간만이로구나.”
궁기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린다. 엘어스 생활에서 궁기의 유일한 낙은 외장하드에 담아갔던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것도 약 7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은신처로 들이닥친 몬스터 떼로 인해 테블릿이 박살나면서 그 낙도 중단되었다.
드라마 금단증상을 일으키는 궁기를 위해 임시로 광역폰을 빌려주기는 했지만 화면이 작다며 투덜거리는 궁기의 불평이 매일 계속되어 인이 박혀버린 제황이었다.
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허물어지거나 망가진 게 없는지 확인한 제황은 지하실까지 모두 확인한 후 산장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건물로 들어갔다. 마루를 지나 안채로 들어가니 장롱에서 퀴퀴한 냄새가 폴폴 나는 이불을 끌어내려 바닥에 깐 궁기가 팔베개를 한 채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다.
“내 남자의 내 남자의 내 남자 시즌 3라니...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본방사수를 하지 못하다니...”
중얼거리는 궁기의 옆에 제황이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야 비로소 집에 돌아온 실감이 들었다.
“궁기...”
“음...말해라.”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궁기가 대답한다.
“나 좀 잘게.”
“응.”
엘어스에서 제황이 잠들어 있을 때는 항상 궁기가 주변을 경계해 줬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도 수십 번... 그렇기에 이렇게 자기 전에 미리 말을 하는 게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다.
정신이 노곤하게 풀려오지만 제황은 마지막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천제황 C급 10/8레벨 127,587/800,000exp
근력:2
민첩력:8
체력:7
감각:10
정신:7
미분배 포인트:2.5
마나:430/430
마나회복율:11
진명
-마궁의 저격수(레어)
효과
민첩력:2
감각:2
???
-무음의 추적자(레어)
효과
체력:2
마나회복율:2
???
보유스킬
유니크스킬
호랑이사냥 -10랭크 58프로
궁기안-4랭크 0프로
무련궁술-5랭크 77프로
비상하는 화살
폭발하는 화살
춤추는 화살
힘의 화살
레어스킬
용혈기-8랭크 12프로
용혈무-5랭크 89프로
스페셜스킬
-
커먼스킬
요리-6랭크 98프로
빠른 재생-9랭크 11프로
2년간의 엘어스 생활에서 얻은 힘이다. 문득 저쪽 세상에서의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숨고 숨고 도망치고 공격하고 또 숨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남았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쉰 제황은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을 애써 무시한 채 눈을 감았다. 드디어 집에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