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외삼촌면담중
“크...으으으...”
기절해 있던 김대성은 양발바닥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고 정신이 명료해짐을 느꼈다.
“으...으읍...으으읍...”
터진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을 따갑게 만들었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온몸을 결박하고 있는 테이프에 깜짝 놀라 버둥거렸다. 그러던 중 양발에는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계속 발버둥 치면 과다출혈로 죽는다. 대성아.”
“으읍읍!!!”
외삼촌이 입에 물린 재갈로 눈을 돌리며 간절하게 바라보자 제황은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을 살짝 빼주었다.
“사람! 살! 우웁!”
비명을 지르려던 그는 입에 다시금 커다란 재갈이 밀려들어오자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좀 맞아야지?”
퍽! 퍽! 퍽! 퍼퍽! 퍽!
제황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에 무자비한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제황은 아버지에게 무련가의 궁술을 전수받으며 자연스럽게 인간의 해부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큰 고통을 주는 급소만을 골라 두들겼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자 대성은 눈물콧물을 쥐어짜며 제황에게 눈빛으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다시 소리 지르면 한 마디 당 손가락 하나다.”
제황이 쿠크리를 손가락 사이에 꽂자 대성은 겁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마구 가로 저었다.
“푸하...”
입에서 스타킹을 꺼내자 대성은 긴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제황을 올려다봤다.
“누...누구세요.”
“...”
“혹시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것 아닌가요?”
“후...”
대성의 물음에 제황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성으 자신을 결박하고 있는 이사 한숨을 내쉬자 행여 다시금 두들겨 맞을까 호흡을 멈췄지만 제황이 지금 한숨을 내쉰 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제황은 조금 두려웠다. 외삼촌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까봐. 그래서 마음이 약해질까 봐. 아무리 나쁜 새끼라지만 그래도 친척 아닌가.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래도 외삼촌 외삼촌 거리며 따라다닌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모질게 먹은 마음이 흩어지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그의 외삼촌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하긴.. 거의 내왕이 없었던 그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병원에서 몇 번 본 게 전부다. 돈을 노리고 접근한 버러지...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입에 다시금 재갈을 쑤셔 넣은 제황이 손가락 부위에 쿠크리를 올리자 대성이 눈물을 질질 흘렸다. 사기나 잘 치지 악도 깡도 없는 인물이다. 다시금 입에서 재갈을 꺼낸 제황이 말했다.
“내가 왜 찾아왔을까?”
제황의 물음에 대성은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리더니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저는...정말...아무것도...헉...설마... 최사장이?”
“빙고...그런데 말투가 마음에 안드네.”
“네?”
"사장님"
뭔가 변명을 내뱉으려던 그는 이내 자신의 입으로 다시금 제갈이 들어오는 느낌에 정신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와드득..
"끄으읍!"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손등에 닿자 김대성은 흰자위를 드러내며 눈에서 눈물을 질질 흘렸다.
"예. 예. 최사장님... 흑"
"그래. 이제 좀 마음에 드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
"아니... 제가 전에... 우웁! 아닙니다! 예. 꼬박꼬박 연락한다고 했는데 어겼습니다."
"또?"
"또...또요?"
반문을 하려하는 순간 제황의 손은 가차 없이 대성의 입을 막았다.
"손가락 발가락 포함 19개 남았다. 너 스무고개가 왜 스무고개인 줄 알아? 지금 가르쳐 줄까? 앞으로 19고개 남았네. 미리 말해두는데 10개 전부 꺾은 다음부터는 하나씩 잘라버릴거야. 나 이런 거 좋아해. 계속해봐."
으스스한 제황의 말에 그는 오줌을 질질 싸며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보자. 그러니까.... 흐흑..."
대성은 이미 반 정도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제황이 말을 길게 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 사실 제황이 눈만을 드러낸 마스크를 써서 목소리가 어눌하게 나오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대성은 이미 온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런 것을 판별할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3일에 한 번 전화 드린다 했는데 어겨서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그 동안 밀린 원금 때문이라면 꼭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번 달 내로 산을 넘겨드린다고 호언장담 하고서...흑흑... 조카새끼가 학교 잘리고 산에 들어가는 바람에... 제가 그 놈을 묻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 꼭..."
대성은 머리속에서 생각나는 모든 것을 입 밖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길어질 때마다 제황의 눈에서는 한기가 머금어진다. 그것을 삶의 의지에서 나오는 눈치로 파악한 대성은 얼굴에서 진땀을 흘리며 계속 입을 나불거렸다.
-와...
궁기는 제황에게서 발견한 새로운 면모에 질려버렸다. 친척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제황이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을 꺾어버리자 도와주겠다. 마음먹었던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너 그런 건 어디서 배웠니?
-뭐?
-협박하는 거 말이다.
-농담이라면 장난이 심하다고 해주고 싶다. 후우...
궁기가 물으려 했지만 제황은 그것을 무시한 채 대성을 노려봤다. 대성은 아직까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좀 더 혼을 빼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꾸득...
입술을 짓이기자 핏물이 스며 올랐다. 이제부터는 조금 각오가 필요한 짓이다.
"잘 아네. 사장님이 원금 좀 받아오란다."
얼음장 같은 말과 함께 제황은 무한고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내들었다.
"그..그걸 왜...우웁..."
입에 다시 재갈이 물려진 대성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이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뀌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으웁! 웁!웁!"
"안 죽어. 한쪽에 깔끔하게 5천 붙여줄게. 좋지?"
제황의 예리한 쿠크리가 그의 하복부를 쓸고 지나갔다. 옅은 핏물이 주욱 하고 올라왔지만 제황의 손에서 피어오른 빛에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져 갔다.
"잽싸게 떼어내고 깔끔히 붙여줄게."
푹...
"우웁!"
바둥바둥...
빠그작...빠그작...
대성이 온힘을 다해 발버둥치자 덕테이프로 완전히 애벌레를 만들어놓다시피 고정한 강화프라스틱의자가 부서질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잘못 움직여서 견적 크게 나오면 나도 손 못쓴다. 가만히 있어. 신장 하나야."
"으웁웁! 으...으아압!"
대성이 혼절 직전에 가서야 제황은 칼을 멈췄다.
“재미있지?”
제황의 물음에 대성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재미있기는커녕 저승사자를 앞에 둔 기분이다. 아니 저승사자보다 무섭다. 자신도 악질이기는 하지만 멀쩡한 인간의 배를 천연덕스럽게 가르는 짓은 못한다.
"내가 너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
***
"후우...후우..."
-괜찮아?
-그래.
피범벅이 된 두툼한 뱃살 앞에 주저앉은 제황에게 궁기가 걱정스레 물었다. 제황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대성의 배 위에 올렸다. 그러자 제황의 손이 올라간 곳으로부터 벌어졌던 살들이 조금씩 아물어 들어갔다.
굳이 산 사람의 신장을 떼는 짓은 하지 않았다. 듣고자 하는 걸 모두 듣기 위해 한 짓일 뿐...
“차라리 다행이다.”
반 실성으로 만든 외삼촌을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혹 그 사고에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외삼촌은 아니었다. 배를 갈라 눈앞에 신장을 꺼내 주물러 주기 까지 했는데도 아니라고 했다. 만약 이 정도 했음에도 거짓을 말했다면 그건 제황이 그의 삼촌을 완전히 잘못 본 것이리라.
그리고 ... 제황은 지금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 일을 외삼촌이 꾸민 것이었다면 제황은 난생 처음으로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친족을 말이다.
제황은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배를 갈랐지만 의외로 피는 적게 튀었다. 너저분하게 떨어진 수건으로 외삼촌의 배를 덮은 제황은 침대로 다가가 낡은 메트리스를 들어올렸다. 하판을 분리해내니 그곳에는 5만원권 100장 묶음이 20개가 있다. 딱 1억... 외삼촌이 도피용으로 숨겨놨던 비상금이다. 제황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무한고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메모지를 뜯어 신경질 적으로 하나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었다.
‘010-3002-XXXX 알스 화제 전략기획부 김은영 부장
-그건 어쩔 꺼지?
-이건... 아직 아니야. 나중에... 지금보다 좀 더 강해지면...
이 사람은 외삼촌이 제황의 보험금을 작업할 때 내부에서 더러운 일을 해준 보험사 임원의 전화번호였다. 대성과 같이 간단히 작업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대성에게 들은 바 알스 그룹 방계에서 내려오는 금수저라 했다. 복수 하려 마음먹는다면 방법이야 없겠냐만은, 지금은 굳이 무리할 생각이 없었다. 사냥꾼은 사냥감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움직이는 것이다.
제황은 혼절해 있는 김대성의 머리를 두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지금 제황이 하려는 짓을 알고 있는 궁기가 말했다.
-대신 해줄까?
그러나 제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작은 내가 했으니 마무리도 내가 지어야지.
대성의 머리를 붙잡은 제황의 손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용혈기]
츠츠츳...
제황의 두 손으로 하얀 기운이 뭉치는가 싶더니 이내 대성의 머리로 파고들어갔다.
고통스러운지 기절한 와중에도 식은땀을 흘리는 김대성... 이내 손을 떼낸 제황은 옆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아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 모아 대성의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화살]을 만드는 파괴적인 마나를 쏟아 부었다.
"커어..."
발작하듯 몸을 세차게 떤 대성의 몸이 축 늘어졌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잘해야 정신이상, 재수 없으면 식물인간이다.
마지막으로 외삼촌의 호흡이 죽지 않은 걸 확인한 제황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
외삼촌과의 일이 있고 며칠이 더 흘렀다.
슥슥...슥
제황은 손글씨로 적은 종이에 하나씩 줄을 그어갔다.
"좋아. 끝났네."
제황은 마지막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린 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종이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준비완료
-너 정말 꼼꼼하구나.
요 며칠간 제황이 윔홀의 들어갈 준비를 지켜본 궁기는 질려버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무한고이라는 저장 공간이 생기자 제황은 정말 챙길 수 있는 건 모조리 챙겨 무한고에 집어넣었다. 범죄를 저지른 상태이기에 내놓고 1억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가용할 현금이 많아지자 조금 더 꼼꼼히 준비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그래. 덕분에 난 따분해 죽겠다.
-가서 티브이나 봐.
-그럼 유료방송을 신청해줘! [첫사랑 장인어른]이랑 [내남자의 내남자의 내남자] 재방송도 지겹다고...
-후...
탐험을 준비하는 건 오롯이 제황의 몫이었다. 덕분에 할 일 없어진 궁기는 쓸데없는 말들로 제황의 골치를 아프게 했고 그런 이유로 창고에 처박혀 있던 위성안테나를 다시 달아야 했다. 그리고 궁기는 인류 역사 최고이자 최악의 발명품 티브이와 조신한 상견례 후 곧 그것의 마력에 빠져 들어갔다.
처음에는 가리는 방송 없이 하루 종일 티브이에 매달렸다. 몇 백년만에 깨어난 그녀에게는 모든 게 신세계였으니까. 덕분에 궁기는 현대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그리고 곧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당연하달까. 조금씩 티브이에 대한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곧 그것은 막장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눈을 떴다.
제황은 덕분에 예정에 없던 테블릿 하나와 휴대용 자가충전기... 그리고 10테라짜리 외장하드 2개를 사야 했다.
테블릿의 용도는 당연히 궁기의 드라마 시청용이다. 궁기의 요청에 따라 하드 하나에는 시리즈별 막장드라마가 한가득 넣어줬는데 나름 무한고 사용료 정도로 넘어간 제황이었다.
나머지 하드 하나에는 엘어스와 관련된 각종 영상자료들을 집어넣었다. 물론 그것이 대한민국과 연결된 엘어스의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식생이나 지형 따위에 대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구해서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