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외삼촌면담중
그의 외삼촌... 이름은 김대성... 나이는 42살 직업은 전직 헌터지망생, 도박꾼 마지막으로 날건달이었다. 양궁 유망주인 누나를 둔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관심이 온통 누나에게 쏠린 것을 시기했었고 마치 그것이 관심받지 못하고 자란 자신의 불행인양 삐뚤어졌다.
그리고 그의 누나가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무렵 그의 불만은 한계에 다달았고 각성시술을 받는다며 집에서 3억을 뜯어갔다.
나름 각성자질이 높았던 그는 3성급까지 성장 가능한 각성자라는 판정과 그럭저럭 쓸만한 스킬을 얻었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헌터 생활에 두려움을 느껴 그대로 도망쳐왔다. 그 후로는 더 고가의 각성시술을 받는다며 외가에서 무려 5억을 뜯어가며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았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도박으로 날려버렸다.
사실 이정도에서 외가와 그 친척들은 이미 그를 원수보듯이 하는 수준이었다. 그를 유일하게 안타까워했던 건 제황의 외할머니 뿐... 그후로 몇년간 날건달짓을 하며 조용히 사는가 싶더니 제황의 가족들이 참변을 당하자 거기에 수저를 담근 것이다.
"개만도 못한 새끼..."
병원으로 찾아온 보험사 직원의 말에 얼마나 황당했던가. 적법한 보험수령인이 뻔히 병원에 누워 있는데 보험금을 모두 타갔으니 이제 병원에서 나가라는 말이...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보험사에 직접 찾아갔을 때 제황은 말 그대로 인간혐오에 빠질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
보험사에서 보여준 것은 자신이 정신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외삼촌이 몰래 찍어간 지장이 덕지덕지 찍힌 서류들이었다.
사실 과거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본래는 미성년 보험수령자에 대한 국가적 안전장치와 법규가 있어야 했으나 대충돌 이후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고 사회가 제구실을 못할 정도로 망가지자 보험관련 법규들이 보험사의 편의성 위주로 변한게 문제였다.
물론 정부에서는 보험 법규의 헛점을 알고 법개정을 하려 했지만 다른 좀 더 중요한 사안에 밀려 정책이 지지부진 하다가 그 법적인 맹점에 제황이 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제황에게는 일상생활도 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적 충격이었다.
그 후 삼촌과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려 했었다. 변호사를 통해 들은바로는 명백히 보험사의 실책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대기업과의 소송은 무척이나 오래 걸린다는 것과 당장 그 정도 버틸 돈이 수중에 없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보험사의 협박에 속은 외가친척들이 제황을 못살게 굴기 시작한게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소송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외할머니가 제황의 앞에 무릎을 꿇고 빈 것 때문이었다. 자신의 못난 아들을 용서해 달라고...돈은 어떻게든 갚겠다고...
그리고 그 이후로 외가와는 완전히 연을 끊었다. 시간이 지나자 외가쪽 사람들은 돈을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제황을 피하기 급급했고 제황은 그들에 대한 남은 정을 깔끔히 포기했다. 물론 외삼촌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잠적한 외삼촌을 찾아다니며 삶을 허비하기 보다는 몸을 추슬러 다시금 학교로 돌아가려던 마음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하나 다짐한 것은 있었다. 절대 일부러 찾지는 않는다. 이건 외할머니와 약속한 것... 그러나 어떻게든 마주치면 절대 곱게 보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늘 그 빌어먹을 외삼촌을 만났다. 제황은 그를 따라 은밀하게 움직였다. 이미 초인의 반열에 절반 정도 발을 걸친 제황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허름한 지하다방으로 들어가는 외삼촌을 따라 계단을 내려간 제황은 잠시 후 삼촌과 멀찌감치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다방레지에게 커피를 시키고는 폰을 보는 척 하며 외삼촌을 감시하니 잠시 후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이 외삼촌을 발견하고는 고개인사를 하며 테이블에 동석했다.
"어떻게 됐냐?"
"면목없습니다. 형님... 모두 못하겠답니다."
"씨발... 그 돈으로 룸에서 같이 X 칠 때는 좋다고 난리치더니..."
제황의 외삼촌인 대성은 검은양복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커피를 들이켰다.
"그런데 애새끼 하나 족치는 건데 뭘 그리 사람을 모으시려 하십니까?"
양복의 말에 외삼촌은 들고있던 커피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새끼들아. 니네가 그 집안 종자를 몰라서 그래. 내가 헌터도 아닌 매형새끼한테 두들겨 맞은 것만 생각하면 ... 어휴... 하.."
"에이..설마 어떻게 형님 같은 각성자를...일반인이..."
대성이 고작 F급의 3레벨이기는 하지만 일반인과 각성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확마! 그럼 내가 씨발 거짓말이라도 치겠냐."
"아...아닙니다."
검은 양복이 고개를 넙쭉 숙이자 외삼촌은 담배 하나를 꼬라물며 말했다.
"산만 먹으면 딱 좋은데..."
"그러지 마시고 그냥 애들 머릿수 채워서 쳐들어가죠. 스무살도 안된 애송이 새끼 두들겨 패서 도장 찍게 하는 게 뭐 힘들다고...
"병신아! 땅 뺐는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그리고 그때는 그 조카새끼가 혼수상태라서 지장이라도 가져왔지. 에잇... 젠장... 다 튼 건가..."
부들부들...
제황은 분을 참기 위해 움켜진 주먹이 아파옴을 느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던 것... 제황은 지금이라도 무한고에서 활과 화살을 꺼내 저 연놈의 머리를 박살내 버리고 싶은 걸 참는 중이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오마."
외삼촌이 화장실로 사라지자 제황은 그의 뒤를 따라 가려 했다. 그 때 외삼촌의 똘마니로 보이는 둘의 대화가 제황의 발길을 붙잡았다.
"하...저 개새끼... 진짜 이 짓도 못해먹지. 씨발 나도 호로새끼 소리 많이 듣지만 저 새끼처럼 개새끼는 처음이다. 어떻게 병원에 누운 조카 등을 쳐 먹은 것도 모자라 사돈네 땅을 노리냐."
"야, 저 새끼 그 돈 도박으로 죄다 날리고 사채하는 최사장 돈까지 수 억 꼬라 박았다더라. 최사장이 돈 갚으라고 애들 보내니까 이리로 도망쳐 온거지."
"그럼 산 뺐는 건 핑계야?"
"아니 그건 아니고...최사장이 공기 좋은 곳에 별장 지을 생각이라는 말에 눈이 돌아가서 온 거잖아. 빚 도리 쳐서 깎으려고..."
그의 말에 반대편에 앉은 검은양복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후...저 개새끼... 나도 강제각성만 하면...저런 새끼는..."
"됐어 임마. 3억이 애 이름이냐. 그리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 누나가족 덤프트럭으로 밀어버린 것도 보험금 노린 저 새끼 작품이라고 하더라. 독한 새끼야. 조심해."
"쉿... 온다."
그들의 대화를 모두 엿들은 제황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가족에게 일어난 그 비극에 외삼촌이 연관되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제황은 순간 머릿속에서 한가닥 끈이 뚝 하고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정해라.
제황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하자 궁기의 목소리가 제황을 말렸다.
-고마워.
-네 몸은 아직 불안정하다.
-알았어. 조절할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는 제황이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당장에 요절을 내버리고 싶지만 왠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그리고 묵은 빚을 청산하고 그 일에 대해 관련된 이들을 물어보기에 지금은 시간과 장소가 적절치 않다.
이후 제황은 외삼촌이 둘과 헤어지고 현재 묵고 있는 모텔까지 알아낸 뒤 곧장 근처 마트에서 여성용스타킹 두 개를 철물점에서 덕트 테이프 4개 한 묶음 2뭉치를 샀다.
밤이 되었다. 제황은 통신판매로 산 고드공방제 범용방어구를 몸에 착용했다. 다크어스의 디멘션게이트에서 나오는 2티어 몬스터들 중 베루스라는 몬스터가 있다. 마치 작은 코뿔소처럼 생긴 이 몬스터는 상당한 방어력을 자랑했는데 방어력에 비해 공격이 단순해 상당히 손쉽게 사냥 가능한 몬스터였다.
그 가죽을 가공해 만든 이 범용방어구는 초보헌터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가성비를 자랑하는 물건이었다. 장비를 꼼꼼히 체크한 제황은 목과 입을 보호하는 검은색의 마스크를 착용했다.
위이이...
호랑이사냥을 사용한 제황은 모텔 안으로 들어섰다. 귀에 이어폰을 낀 채 게임을 하고 있는 알바를 무시한 채 카운터에서 간단히 마스터키를 챙긴 제황은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미행할 때 모텔 창밖으로 확인한 외삼촌이 묵고 있는 방은 확인한 상태다.
-사람 죽여본 적 있니?
-아니...
궁기의 물음에 제황은 솔직히 대답했다.
-흐으음...
궁기는 제황이 불안했다. 그녀가 보기에 제황은 이론에 충실한 모범생 타입... 발군의 재능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제 고작 18살의 애송이다. 능력이 좋기는 하지만 자기감정 추스르기도 힘든 나이이기에 흥분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사냥은 잘하지만 사냥을 잘한다는 것과 사람을 공격하는 건 전혀 틀린 이야기다.
-어떻게 할 거지?
-일단 제압할 생각이야.
-죽이게 될 수도 있어.
-...
대답 없는 제황을 보며 궁기는 여차하면 자신이 도와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빚하나 만들어 놓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복도에 들어선 제황은 서두르지 않았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CCTV였는데 전원이 빠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고장난 것을 고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한 듯 싶다. 심호흡을 한 제황은 마스터키를 단말기에 꽂았다.
틱...띠리릭
"어?"
반쯤 벌거벗은 채 맥주를 마시며 티브이에서 하는 성인방송을 보며 키득거리던 김대성은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모텔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데 느닷없이 현관문이 열려버린 것이다. 침대에서 문이 그대로 보이는 위치였기에 문밖을 확인해 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여 씨벌...”
당황한 그는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그때 뭔가가 그의 목을 치고 들어왔다.
"컥..."
숨이 막혔지만 나름 그도 헌터생활 맛은 봤기에 순순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우아악! 경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그는 그가 가장 자신하는 경화라는 스킬을 온몸에 두르며 팔을 마구 휘둘렀다.
퍼퍽...
둔탁한 소음이 들리며 한 인영이 나타났다. 갑옷과 마스크를 쓴 이가 나타나자 그는 곧장 그것을 향해 몸을 덮쳐갔다. 그러나 마스크 쓴 인물도 호락호락한 이는 아닌지 그의 주먹질을 가볍게 피하며 품으로 파고 들어왔다.
"너... 누...컥!"
뾰족하게 날을 세운 수도가 다시금 그의 울대를 쳤다. 몸을 강화시키는 경화를 사용했지만 고통이 뼛속까지 스며들자 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침대 쪽으로 몸을 날렸다. 벗어놓은 옷가지에 칼이 있기 때문... 그러나 상대는 그보다 더 빨랐다.
어느 틈에 침대를 뛰어넘어 그의 옆구리에 붙은 마스크는 휘둘러오는 대성의 팔을 잡고 찍어 누르듯 교묘히 꺾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우지직...
"우...우우웁!"
어깨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리자 대성은 비명을 지르려했지만 그 시도는 입을 막아오는 거친 손길에 막혔다. 도리질을 치며 다친 팔을 감싸 안으려 했지만 마스크는 그 팔을 다시 반대로 감아 꺾어버렸다.
“우웁...”
눈물을 질질 흘리며 위를 쳐다본 대성은 묵직한 크리스탈 재떨이를 든 채 자신을 노려보는 시퍼런 섬광과 곧이어 이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에 정신을 놓았다.
파창!!
“후우...”
재떨이가 박살나면서 사방으로 뿌려지고 정신을 잃은 대성이 의식의 끊을 놓자 그제야 제황은 그제야 대성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잘하잖아?
-응? 뭐?
-이런 건 배웠니?
-무슨 헛소리야.
궁기의 물음에 제황은 열려있는 현관문을 잠그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침대로 돌아온 제황은 정신을 잃은 외삼촌을 의자에 앉히고 온 몸을 덕트 테이프로 감기 시작했다. 사온 것들을 거의 다 사용해 애벌레마냥 두툼하게 발라버린 그는 두 개의 스타킹을 뜯어 하나를 뭉쳐 다른 하나에 집어넣은 후 입에 재갈을 물렸다. 마지막으로 무한고에서 40센티 가량의 쿠크리를 꺼내 발바닥을 그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