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모범사냥꾼
하루가 지나 제황과 궁기가 마주앉았다.
왜 하루가 지났냐고 한다면 그동안 제황은 현실과 시공옥 사이의 괴리감을 이겨내기 위해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물론 그 이유를 아는 궁기는 조용히 제황을 기다려 줬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먹고 자고 싸는 짓을 시공옥 안에서 했다지만 그 차이는 엄청났을 것이다. 오히려 하루 만에 털고 일어난 게 더 신기한 궁기였다.
“성과는 있었나?”
“음... 가지고 있는 스킬에 대해서는 거의 다 파악했어.”
그 말과 함께 제황은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달라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제황이 스킬 호랑이사냥을 활성화 시키는 순간 그의 상태창이 변했다.
[스킬 호랑이사냥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스킬 호랑이사냥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
[호랑이사냥 –4랭크 12프로]
[스킬 호랑이사냥의 랭크가 4단계에 도달함에 따라 보유 진명 ‘무음의 추격자의 옵션이 상승합니다.- 마나 회복율 0.5 상승]
스킬의 랭크가 단숨에 몇 단계 상승했다. 만약 다른 헌터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놀라 자빠졌으리라. 원래 각성을 하게 되면 보통 코스가 육체계열은 헌터훈련소 마법 계열은 아카데미에 입소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물론 모든 능력이라는 게 육체와 마법 둘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가진 스킬들에 대해 기존의 비슷한 스킬을 가진 선배들이 남긴 자료와 개인수련을 통해 스킬을 점진적으로 알아가며 숙련도를 쌓게 된다.
숙련도라는 게 단순히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적당한 경험이 함께 쌓이며 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그런 상식을 정면으로 박살 내는 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길 없는 제황은 달라진 상태창을 한 번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이번에는 용혈기를 활성화 시켰다.
[스킬 용혈기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스킬 용혈기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용혈기-3랭크 87프로]
마나회복율이 2상승했습니다.
마나 총량이 20 상승했습니다.
용혈기의 랭크도 상승했다. 마나회복율이 급격한 상승을 이룸과 동시에 마나량은 70으로 상승했고 소모되었던 마나가 전보다 더욱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강해졌구나.“
제황과 시야를 공유하는 궁기가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용혈기를 해제한 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응.“
제황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살짝 머리가 노곤하다. 피곤함은 없었지만 아직은 몸에 불균형이 느껴지는 제황이다.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선 제황은 무한고에서 문신녀에게 받은 붉은색의 커브스 보우를 꺼내 손에 쥐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제황은 밖으로 나섰다. 문밖은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곧 첫눈이 오려는지 하얀 입김이 서렸다.
"사실 난 이게 가벼운 호신기인 줄 알았어.거추장스러운 동작들이 많았거든."
제황은 활을 든 채 발을 어지러이 놀리기 시작했다. 전후좌우로 사방 두 걸음으로부터 어지러운 발의 잔상이 사방으로 꿈틀거리는 한 마리용을 보는 것과 같다.
[용혈무]
[스킬 용혈무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
[용혈기 3랭크 56프로]
제황의 몸에서 펼쳐진 용혈무의 진짜 모습은 활을 든 채 싸우는 보법이자 전투술이었다.
”핵심은 용혈기였지. 경지에 오른 용혈기가 뒷받침 되면 제 모습을 보이는 거였어.“
슈슛...슛
뒤로 물러서는가 싶던 제황의 다리가 뒤에서부터 기습적으로 차고 올라간다. 짧은 단타의 움직임이지만 마치 상대를 밀어 차는 듯싶더니 공중을 유영하듯 몸이 가볍게 떠오르다가 멈추고 다시금 바닥을 쓸듯 발을 내뻗었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듯한 움직임...
파팡!
마치 한대의 활을 쏜 듯 손을 놓았던 제황이 몸을 돌려 활대로 허공을 가르자 공기로부터 파공음이 울려왔다. 허공을 후려친 제황은 손을 뒤로 돌린 채 말했다.
“화살 하나...”
슈슛...
제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대의 화살의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비상하는 화살]
제황은 단전을 중심으로 한줄기 마나가 뿜어져 나와 그의 두 손에 맺히는 걸 느꼈다. 그와 함께 궁기 안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목표는 무려 500미터 밖의 아름드리 거목이다.
”흐으읍“
숨을 들이켠 제황은 화살머리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단순히 비상하는 화살이 제공하는 비약적인 사거리가 아닌 공중을 향해 날려 곡사로 맞추는 길을 택했다. 본래 화살이라는 건 공중에 오래 떠 있을수록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제황이 지금 겨누고 있는 붉은 선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무를 가리키고 있었다.
파아아앙!
시원하게 만궁했던 커브스보우에서 화살을 쏘아내는 순간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가 이내 까마득한 점으로 변해 버렸다. 붉은선에서 단 한치 오차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
화살이 명중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제황의 눈에는 나무에 박힌 화살의 끄트머리가 정확히 보였다.
[무련궁술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무련궁술은 독특하게도 총 네 개의 스킬로 나뉘어 있어. 화살 하나...”
슈슉...
다시금 손에 화살을 쥔 제황은 그것을 시위에 걸었다.
[폭발하는 화살]
화살의 끝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파팡!
조금 더 큰 울림이 공기를 진동하고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은 땅에 틀어박혔다.
콰콰쾅!
화살이 땅에 닿는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먼지가 걷히고 남은 것은 직경 1미터 가량의 작은 구덩이다.
[무련궁술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왜 이게 나눠져 있을까 고민했지. 그리고 결론은...”
슈슛...
다시금 그의 손에 한 대의 화살이 나타났다.
그것을 천천히 활에 끼운 제황은 시위를 당겼다.
[비상하며 폭발하는 화살]
츠츠츳...펑!
이전의 폭발하는 화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음이 울림과 동시에 화살이 발사되었다.
콰콰쾅!!! 쩌적...
쏘아올린 화살은 이전에 [비상하는 화살]이 꽂힌 나무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일은 전혀 틀리다.
콰콰쾅!! 쾅!
거대한 고목의 중간부분이 폭발과 함께 박살나 버리고 나무는 반 동강이 나버렸다.
[무련궁술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무련궁술 3랭크 5프로]
“중첩이 가능하기에 하나의 스킬이더라구. 뭐 아직은 폭발하는 화살까지만 가능한 것 같지만... 으윽...”
궁기를 향해 말하던 제황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인상을 찌푸렸다. 내려다보니 오른손바닥의 아귀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다.
“쳇...다 좋은데 마나를 너무 잡아먹어. 아직 내 몸이 버티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혀를 찬 제황은 상처의 크기를 살폈다.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맨손으로 스킬을 이용한 화살을 쐈으니 할말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활쏘기에 단련되어 굳은살이 촘촘히 박힌 그의 손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빠른 재생]
제황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며 커먼스킬 중 빠른 재생을 시전했다.
지이이...
그러자 하얀 빛무리가 일어나 오른손을 감싸고 잠시 후 찢어진 아귀는 언제 상처가 생겼냐는 듯 멀쩡해 졌다.
“좋아.”
제황은 멀쩡해진 오른손을 앞뒤로 돌려본 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공옥 안에서 유일하게 수련하지 못한 스킬이 두 개 있었다. 바로 요리와 급속재생이다. 요리야 이미 송노인을 대접하며 효과를 알았기에 상관없지만 정신만으로 수련하는 시공옥 안에서는 회복계열인 급속재생을 시험할 수 없었다.
그걸 바라보는 궁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복의 술이구나. 뒤쫓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무련가가 회복의 술이라...”
“상당히 좋은 스킬이야.”
“그런가? 회복의 술은 나도 걸어줄 수 있는데?”
궁기의 말에 제황은 궁기를 살짝 노려보다가 이내 김샜다는 듯 손을 털었다.
중간에 궁기가 기분을 망치기는 했지만 회복의 술은 제황을 말대로 정말 좋은 스킬이었다. 일반등급의 스킬이기는 하지만 그 대우는 스페셜스킬 못지않았다.
그 이유는 이것이 회복 중에서도 상급의 옵션을 지닌 스킬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일반등급이기에 마나 대비 효율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급속히 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헌터들 뿐만 아니라 스킬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힐러 계열 헌터들도 이 스킬 하나로 일 년에 수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다.
특히나 제황이 가진 스킬의 장점은 다른 힐러스킬들이 '회복' 인 것에 반해 제황의 스킬은 재생이었다. 말 그대로 회복으로 고친 상처는 흉터가 그대로 남거나 복합적인 상처인 경우 부작용이 남을 수도 있는데 재생을 통해 치유한 상처는 말 그대로 외상이 없던 상태로 재생시켜 버리기 때문에 한 끗발 높은 스킬로 인정해 주는 편이었다.
더군다가 거기에 빠른 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으니 커먼스킬이긴 하지만 대박이 터진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슬슬 웜홀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어.”
“그래. 그거 참 반가운 소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