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시공옥으로...
제황은 윔홀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여 경험치를 얻고 레벨업 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전혀 허무맹랑한 방법은 아니었다. 대충돌 초기에 각성한 디바우저들은 지금 그의 사정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은 점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속에서 몬스터를 잡아 자신을 성장시켰다.
자신은? 그들보다 훨씬 조건이 좋다.
-이곳에 들어간다면 빨리 강해지는 건가?
-그래.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를 얻고 그게 일정 수준 차면 강해질 수 있어.
제황 혼자만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일부 헌터들 중에는 강한 클랜들이 독차지 하고 있는 디멘션 게이트의 이용요금과 국가세금을 피하기 위해 이런 윔홀을 찾는 이도 많았다. 물론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얻는 것이 많았다.
-위험하지 않아?
궁기가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 제황은 아직 알도 깨지 못한 상태였다.
-아니... 아가스테론은 엘어스의 몬스터니까. 다크어스인 것보다 낫지.
-엘어스? 다크어스? 그게 뭐지?
궁기의 물음에 제황은 볼을 긁적였다. 현시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끝났다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은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기에 일으킨 착각이었다.
-대충돌을 통해 세 개의 다른 차원에 있는 지구들이 부딪혔다는 건 알고 있지?
-그래.
-세 개의 차원 중 하나는 지금 이 지구... 그리고 온통 몬스터들이 지배하는 땅은 다크어스 몬스터와 유사인종들이 살아가는 곳은 엘어스라고 불러. 아가스테론은 엘어스에 나오는 몬스터라고 알려져 있으니 이 윔홀은 십중팔구 엘어스로 이어진 거겠지.
-오... 그렇군. 그런데 엘어스라서 낫다는 건 다크어스는 안 좋다는 건가?
-그래. 우리나라는 다행히 다크어스로 뚫린 디멘션게이트가 단 두 개뿐이라 다행이지. 엘어스보다 다크어스로 뚫린 디멘션게이트가 많이 나타났던 국가는 일주 일만에 멸망했어. 그 대표적인 나라가 호주라는 나라인데 그 나라는 지금도 몬스터 천국이지.
-그렇군.
-좀 더 설명해 주자면 세 개의 지구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 공통적인 게 있어.
-뭐지?
-일단 세 개의 지구는 모두 비슷한 지형을 지니고 있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대륙의 모양은 거의 같다는 것, 그리고 세 대륙 모두 마나가 존재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이브라는 시스템은 세 개의 차원 모두에 간섭한다는 거지.
-그 신과 같은 전지적인 힘을 지닌 시스템을 말하는 거구나.
-그래. 그리고 그 세이브는 우리 지구에 사는 인간들에게 이능이라는 것을 부여 했어. 나머지 두 대륙의 생명체들과 싸우기에 인간은 너무나 약했으니까.
제황의 말에 궁기는 살짝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마치 세 개의 대륙을 거대한 차원의 투기장에 몰아넣은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세이브라는 건 무척이나 악취미로구나.
-뭐... 후...
궁기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판단이 맞았다. 세이브를 신으로 모시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기도 하는 현실이지만 의식있는 학자들은 모두 궁기와 같이 판단했다. 그렇지만 이곳은 세이브라는 시스템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일단 그건 철학자들에게나 물을 물음이야. 일단 지금 난 강해지는 게 중요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레벨업이 중요하지.
헌터들에게 레벨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레벨이 오를 수록 신체 능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지면 그런 신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스킬들을 배울 수 있다.
스킬이라는 건 처음 각성했을 때 얻는 것만 가지는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배우거나 로더들이 사용하는 아티팩트 등을 통해서도 스킬을 계승받고 혹은 훔칠 수도 있었다. 물론 모든 스킬이 가능한 건 아니다. 마법이나 회복계 스킬의 경우는 배우는 게 거의 불가하다.
제황은 아까 전 아가스테론을 잡으며 자신의 상태창에 생긴 변화를 떠올렸다.
265/10000exp
다른 이들과 함께 잡아서인지 경험치가 소급 적용되기는 했지만 분명 숫자가 증가했다.
몬스터헌팅을 통한 경험치 수급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럼 들어가자. 난 준비가 되어 있다.
궁기가 호기롭게 말했지만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제황은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째서?
-너무 위험해. 최소한... 내가 가진 스킬들에 대해 모두 파악이 끝나고 몸에 익으면 시도해 볼만한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무리야.
많이 고민했지만 제황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강해질 수 있지만 또 반대로 완전히 최악의 경우가 될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복불복...너무나 리스크가 큰 일이기에 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자격은 그가 가진 것들을 온전히 안 후였다. 숙련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보유한 스킬들이 너무 격이 높아 정보가 부족했다. 최소한 가진 무기가 어떤 효능을 지녔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 미지에 도전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넌 정말 신중한 편이군.
-계획성 있게 움직일 뿐이야. 무계획으로 붙는 건 개죽음이라고 배웠고... 돌아가자.
제황은 구멍에서 나와 주변에 있는 죽은 나무들을 가져온 후 그곳을 자연스럽게 막았다. 차후에 이곳이 들키더라도 누군가 인위적으로 가려놓은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손을 털고 일어날 때 머릿속으로 궁기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진 바 스킬들을 모두 안다는 건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
-그래.
제황의 대답에 궁기가 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을 예상하느냐.
-짧으면 두 달? 길면 일년이 될지 이년이 될지 모르지.
-음. 꽤 지루한 시간이군. 그럼 그 후에는 이 윔홀에 들어가서 그 레벨업이라는 것을 한 후 도시로 갈 것이냐?
-그때까지 윔홀이 남아있다면...
제황의 말에 궁기는 뭔가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다.
피식...
제황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궁기가 제황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과 같이 제황 또한 궁기에게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감정은 호기심과 권태, 마지막으로 탐욕이었다.
'많이 지겨운가 보군.'
근래 궁기는 달라진 세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황과 함께 사니 어쩔 수 없이 군침만 삼키고 있을 뿐 근래는 제황의 광역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산장에는 없지만 아마 티브이 하나랑 리모컨 하나 던져주면 천년만년 티브이만 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흠흠, 이 내가 넓은 아량으로 네 수련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여주마. 내 위대함에 경의를 표해라. 무련가의 애...
-쓸데없는 말은 닥치고...수련시간 단축? 그런 방법이 있어?
제황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자 제황의 막말에 잠시 뚱해있던 궁기가 입을 열었다.
-있다. 시공옥이라는 술법인데 모든 시간을 100배로 늘려주는 위대한 법술이지.
그녀의 말에 제황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몬스터와 살아가고 온갖 기괴한 스킬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지만 그런 류의 이능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니 비슷한 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을 1.2배 혹은 2배까지 가속한다던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을 만드는 이능들을 들을 기억이 있었다.
-준비물이 많이 필요한가?
제황은 그런 대단한 술법이라면 간단히 발동시킬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물었다.
그러나 궁기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니, 필요한 건 별로 없어. 음... 몸을 편안하게 눕힐 공간과 옆에서 비상시에 대비해 줄 보호자가 필요하지.
궁기의 대답에 제황은 시공옥이라는 게 뭔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명칭에 ‘옥’ 이라는 글씨가 들어있는 것에 주목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그래. 일단 산장으로 가자.
얼마의 시간 후 제황은 깨끗이 정리된 사당 안에 정좌로 앉았다. 이 산장에서 가장 마음이 편한 장소는 사당이었다. 이건 참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제황은 어릴 때부터 이 사당을 좋아했다. 이곳은 친구 없던 그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혼자만의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거부감을 가지겠지만 제황은 항상 이곳이 친숙했다.
-본래 만들어진 의도는 악귀나 악령들을 계도하기 위해 고안된 술법이다. 술법자가 몸 안으로 받아들인 악귀나 악령들을 자신의 안으로 봉인한 뒤 영겁의 시간 안에서 고통 받게 만드는 술법이야. 술법자의 의도에 따라 수백 수천 년을 봉인한 것에게 느끼게 해 줄수도 있지.
궁기의 말에 제황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되물었다.
-내가 악귀나 악령은 아니잖아.
-맞아. 그렇지만 너와 나의 동의를 통해 경계를 허무는 것은 가능하지. 과거 그런 식으로 술법자의 몸을 차지한 악귀나 악령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었나?
-별로... 그럼 내가 네 안에 갇힌다는 건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네 안에 시공옥을 만들고 그 안에 널 넣는 거지.
궁기의 말에 제황은 살짝 불안감이 들었다.
-시공옥은 어떤 곳이지?
-위아래좌우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 떠 있는 것이다. 단지 시간만이 무한히 늘어나기 때문에 먹고 자고 싸는 모든 것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의사항은?
-비범한 인간이라도 현실시간으로 8시간 이상부터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4시간 이상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장담하는데 12시간 이상 지나면 그 어떤 초인도 깔끔히 정신을 놓게 되는 공간이야.
궁기의 말이 끝나자 제황은 대략 그 곳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왜 4시간 이상 사용 시 미칠 수 있다고 말했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 헌터들에 대한 어떤 실험이 있었다 한다.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에 헌터들이 얼마나 머물 수 있느냐는 실험이었는데 그 결과는 피험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참혹했다. 참가했던 이들 중 가장 오래 버틴 인물이 2주였는데 실험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그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다고 했다. 후에 오랜 기간 정신 치료를 받아야 했다나 뭐라나...
그 말에 제황이 미심쩍다는 듯이 궁기에게 물었다.
-4시간이면 고작 400시간인데 그 시간을 얻기 위해 그런 모험을 하라고?
대략 16일의 시간... 물론 적은 시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혹독하게 밀어붙일 이유가 있을까? 그런 공간이라면 일반인이라면 단 한시간 만으로도 미쳐 버릴 수 있었다. 그러자 궁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단순히 검은 공간에 너를 밀어 넣는 건 아냐. 또 이전에 수도자들 중 몇몇이 그런 식으로 수련을 했어. 가두는 것이 아닌 수련의 일환이기 때문에 최대한 정신에 충격이 덜 가도록 조절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이 산장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던가 날씨라던가 등등을 조절할 수 있어. 마지막으로 그 안에서는 기... 그러니까 마나라던가 도구의 제약을 받지 않고 수련할 수 있다. 물론 정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 몸에 체득하는 건 아니지만 몇 배의 효율을 가질 수는 있지.
-괜찮네.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기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괜찮은 수련 장소다.
그러나 아직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뭐 궁기가 자신을 시공옥에 밀어넣고 자신의 몸을 탈취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맹약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궁기가 자신의 선조들과 맺은 맹약이 어떤 건지들을 수 있었다.
‘천명을 이루고 죽는 다는 것’
뭔가 뜬 구름 잡는 듯한 소리지만 친절한 강사 궁기가 설명해 준건 그냥 한마디였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루는 삶
한마디로 소원풀이만 하고 잘 죽으면 궁기는 미션 클리어 그다음부터는 자유란다. 굳이 헛짓을 꾸밀 정도로 매리트가 없다는 점. 그리고 궁기는 의외로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 식으로 속일 심성은 아니라는 게 제황의 판단이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께. 어째서 내가 빠르게 강해지게 만들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