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9화 (19/301)

# 19

스타더스트클랜

그는 마을사람들이 보던 안 보던 스킨헤드를 그 자리에서 깨버렸다.

“알겠습니다.”

상당히 자존심 상할 만하지만 스킨헤드는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에게 깨진 그는 다른 이들의 뒤를 따라 마을회관으로 들어갔다. 헌터들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와, 헌터들은 위계가 철저하다고 하더니 정말인가보네.”

헌터들에 대해 나름 조금 알고 있는 한 마을사람이 말했다.

“당연하재. 저것도 목숨 걸고 하는 짓인디 거 뭐냐. 옛날에 어인마니 말 안 듣는 초댕이는 그냥 산에 버리고 왔다고도 하잖여.”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제황은 한 사람을 주목했다. 가장 먼저 내린 여자의 등에는 활 모양의 배낭이 매여 있었는데 허리에 매인 것은 분명 화살통이었다. 같은 활을 쓰는 입장에서 반가운 것도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온몸에 특이한 것들을 많이 부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군인들이 사용하는 금속질의 외골격 같은 것을 상체에 걸치고 있었는데 방어구 라기 보다 근력의 보정을 위해 착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것의 명칭은 파워슈트라 하는데 마나석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고가의 물건으로 여자가 입고 있는 건 그것의 커스텀버전으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바로 송노인의 손녀와 그녀의 친구였는데 둘은 먼저 들어간 잘생긴 헌터를 창문을 통해 보면서 둘이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변한 게 어지간히 반한 듯싶다.

“제황아.”

그 때 이장이 안에서 제황을 불렀다.

“목격자를 찾는구나.”

“예.”

이장의 말에 제황은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

“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어요.”

“혹시 등에 뿔 비슷한 게 나 있지 않던가?”

“뿔이라기 보다는 수정 같은 게 두 개 솟아나 있었습니다.”

“역시... 그럼 그 수정의 크기는 대략... 어느 정도인지 설명할 수 있나?”

“50센티? 그보다 조금 더 큰 듯 싶네요.”

“으음...”

제황의 이야기가 끝나자 팀장이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아가스테론... 수컷성체군. 지원팀장님... 3티어 중에서 꽤 골치 아픈 녀석인데... 근방에 그쪽이랑 연결된 게이트가 있나요?”

“30킬로 범위 안에는 없지만 70킬로 범위 안에는 두 개가 잡힙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무진군 쪽에 있는 게이트입니다.”

“허.... 그럼 좀 말이 안 되지 않나?”

“예. 어쩌면 정부가 모르는 곳에 웜홀이 뚫렸을 수도 있죠. 최악의 경우는 이 부근에 디멘션게이트가 열렸을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근방은 벌써 쑥대밭이 되었겠죠.”

“그럼 레이드 중 도망친 녀석이 여기로 흘러들어온 걸로 결론 내려야 할까?”

“아뇨. 일단 제 생각에는 모든 가능성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일은 정부에 보고해서 이 근방에 대한 게이트 탐지를 해야할 거 같네요.”

“저희 쪽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예. 그건 그렇고 아가스테론을 재보해 준 자네... 참 대단하군. 그 몬스터는 워낙 은신이 뛰어나서 그 놈에게 죽는 사람은 자기가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죽는데 그렇게 자세히 알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 운만으로는 피하기 힘든 놈이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도 상당히 좋거든. 아마 그 놈이 마나도 사용할 줄 알면 단숨에 4티어 중급까지 올라갔을 거야.”

“그렇군요.”

그의 말에 제황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4티어라는 건 마나를 이용해 공격이나 방어가 가능한 종류를 말하는데 4티어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A급 헌터가 포함된 팀이 레이드에 나서야 했다.

“이야... 50센티면 여기 헛걸음 한 건 아니네. 돈이 얼마야.”

스킨헤드가 경망스럽게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미남이 이야기한다.

“뿔이 50센티면 상당히 묵은 놈인 것 같은데 우리끼리 괜찮을까요? 현주씨 탐지능력이 뛰어나기는 해도 감지범위가 좁잖아요."

“언제나 모든 걸 완비하고 싸울 수는 없는 법이야. 그건 그렇고 이제 나가봐도 되네.”

중년인이 제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제황은 나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궁기산은 산세가 험해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꽤 힘들 겁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길잡이를 해드리죠.”

제황의 말에 회관 안에 있는 이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제황을 바라본다.

“아...민간인은 이제 좀 나가.”

퍽!

“아이고...”

손을 휘휘 젓던 스킨헤드의 머리에 중년인의 손이 작렬했다.

“사과...”

“죄송합니다.”

그 후로 뭐라 궁시렁 거리더니 이네 입을 닫는다.

“도와준다는 건 고맙지만 레이드라는 건 항상 위험한 편이야. 민간인이 섞여 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정부로부터 클랜으로 벌점이 들어오니 그건 허락할 수 없네.”

그의 말은 단호했다. 그러자 제황은 고개를 끄덕인 뒤 뒤로 물러섰다. 따라가고 싶기는 하지만 중년인의 말은 단호했다. 저런 사람은 원칙에서 벗어나는 짓은 하지 않는다.

***

위이이...

불빛 한점 없는 밤하늘로 검은색의 기체 두개가 날아올랐다.

"구동계 이상무, 카메라 이상무, 열 형상추적센서,  기체제어센서 이상무"

"좋아. 1번 잠자리는 임시배정된 작전구역 중 A에서 C까지 훑고 2번 잠자리는 짐작되는 몬스터 이동동선 쪽을 맡는다."

"알겠습니다."

두 대의 드론이 궁기산으로 날아오르자 클랜의 지원팀은 드론이 실시간으로 전해오는 정보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찾기만 하면 절반은 끝난 거야. 모두 힘내."

"예."

"현재 시간 23:34분 레이드 시작!"

사박..사박..

어둠이 짙게 깔린 궁기산 중턱을 네 명의 남녀가 걷고 있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스쿼드리더인 중년인과 미남, 중간은 문신녀 마지막 후위는 스킨헤드가 서 있었다.

"아우 귀신 나오겠다."

"조용히 해."

스킨헤드가 호들갑을 떨자 문신녀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나는 안 느껴져요? 뭔가 으슬으슬하고..."

"그래? 그럼 만나서 한 번 물어볼래? 왜 으슬으슬 한지..."

두두둑...

"에헤이... 무섭게 또 왜 그래."

그녀가 장난스럽게 시위를 당기자 스킨헤드가 미남 의뒤에 슬쩍 숨으며 궁시렁거렸다.

"포메이션 흐트리지 마라. 현주 넌 계속 탐지 하고..."

“네.”

리더의 짧은 경고에 모두의 입이 착 다물어진다.

투툭..툭..

“어엇...”

앞장서는 리더의 뒤를 따르던 미남이 딛고 있던  발이 미끄러졌다.

“이거 아까 그 친구 말대로 꽤 험한데요?”

“음...네 말대로 좀 험하군. 모두 조심해라. 레이드 중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이다.”

“예.”

그 때 지원팀으로부터 헤드셋으로 보고가 올라왔다.

-동북쪽 2킬로미터 부근... 아가스테론으로 추정되는 몬스터 발견했습니다.

-방향은?

-서남쪽으로... 아..상당히 빠릅니다.

-좋아. 지원팀은 몰이 시작!

-알겠습니다. 예상으로 약 5분 후면 조우할 것 같습니다.

-좋아. 우리 근방에 전투를 하기 괜찮은 곳이 있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스쿼드는 곧장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스쿼드리더인 중년인은 허리에 차고 있던 분리된 창을 꺼내더니 순식간에 하나의 긴 장창을 만들어냈고 미남은 양손에 짧은 단검을 들었다. 스킨헤드는 손에 너클을 끼고 문신녀는 입고 있던 파워슈트에 있는 스위치를 조작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약 100미터 가량 떨어진 풀숲에는 제황이 가만히 앉아있다.

-몬스터라는 건 언제 오는 거냐?

-모르지. 그렇지만 하는 걸 보니 찾은 것 같네.

-그래? 기대되는군. 타차원의 괴수들이라니... 몬스터라고 부르던가? 그런데 왜 그 미국이라는 나라의 말을 쓰지?

-첫 디멘션게이트가 미국에서 열렸으니까.

궁기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제황에 이전에 봤던 아가스테론이라는 몬스터를 떠올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당한 습격이라 상당히 당황했었고 덕분에 죽을 뻔 했다.

‘수치야.’

지금은 몬스터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와 몬스터와 조우했을 경우를 대비한 훈련도 했고 장비도 있었다. 물론 그 상정대상이 3티어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날의 일을 아버지가 아신다면 그 날부터 지옥훈련에 들어갔을 것이다.

-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군.

궁기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제황은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제황의 오른쪽 눈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제황의 망막에 몇 개의 선이 그어졌다.

선의 색은 총 세 가지였다. 붉은 색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한 개의 붉은 동그라미로 뻗어 있다. 몇 개의 붉은 동그라미가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가장 큰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두 번째 푸른 선은 자리를 이동하고 있는 헌터들... 마지막으로 하얀 선은 자신을 원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거리가 얼마 정도 되지?

-250장 정도구나.

-미터로는?

-쳇... 보자. 끙... 900미터다.

-적표시는 몬스터만 해줘.

-알겠다. 까다롭군.

-나중에 티라미수 라는 걸 먹여줄게.

-좋아! 약속이다.

갑자기 활기있어진 궁기다. 피식 웃은 제황은 전방에 집중했다.

제황의 말에 다른 붉은점들은 모두 사라지고 가장 큰 붉은점만 남았다.

각성자가 되며 야간시도 몇 배나 늘어난 제황은 그 모든 것을 대낮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위에 궁기가 보조해주는 궁기안이 덧씌워지자 말 그대로 제황의 눈은 마치 전투기계의 센서와 같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공터로 가는 건가... 괜찮기는 하지만 그리 추천하지는 않는데...

제황의 말에 궁기가 물었다.

-왜?

-뒤쪽으로 작은 사암절벽이 있어. 잡초에 덮여 있기는 한데 심하게 밟으면 무너지지.

그 말과 함께 제황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랑이사냥]을 이용한 이동이기에  헌터들마저도 그를 파악해 내지 못했고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헌터들이 포진한 곳에서 60미터 가량 떨어진 곳의 나무 위였다.

-궁기 무장 1 꺼내줘.

-음? 싸우려는 건가?

-아니... 싸우지는 않아. 혹시나 하는 것 뿐이야.

-알겠다.

그와 함께 제황의 오른손바닥으로부터 하나의 커브스 보우가 나타났다. 그것은 상당히 거대한 크기의 커브스 보우였는데 전체가 검은색에 1.3미터 가량 되는 대형활이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행여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 구매해 놨던 건데 오늘 제황이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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