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8화 (18/301)

# 18

스타더스트클랜

산장에 도착한 제황은 본채로 들어갔다.

-손을 뻗어.

궁기의 말대로 방바닥 쪽으로 손을 뻗자 잠시 후 마트에서 사온 물건들이 하나 둘 쑥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꺼내고 보니 제황이 사온 것보다 궁기가 원한 것들의 부피가 훨씬 크다. 물건을 모두 꺼내자 손바닥의 검은 구멍이 작아지더니 작은 점처럼 변했다.

-오... 화려하구나. 정말 특이하다.

-그런데 이건 왜 사라고 한 거냐?

시큰둥한 제황의 물음에 궁기가 대답했다.

-왜긴 먹으려고 샀지.

-음?

궁기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황이 생각하기에 궁기는 제황의 몸에 기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먹겠다니... 그런 것도 가능한가. 설마 자신 대신 먹어달라는 건 아니겠지 하며 물으려는 찰나 그의 눈에서 예의 그 하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늑고 그것이 하나로 뭉치더니 곧이어 작은 사람의 형태로 변한다.

대략 제황의 가슴깨나 올 듯 작은 크기였는데 곧이어 형상이 선명해지며 한 명의 사람으로 변했다. 약 12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아였는데 이전에 봤던 어른 모습의 궁기의 어릴 때라고 하면 딱 어울릴 사이즈였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얼굴이지만 무럭무럭 풍기는 그 오만한 분위기에 제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음... 이정도면 효율이 괜찮군.”

구현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궁기는 제황은 힐끔 쳐다보더니 곧이어 과자나 사탕들이 들어있는 종이박스들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기 시작했다. 겉면에 그려진 그림들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반짝 거린다.

“신기하도다. 이건 진짜 먹는 건가? 특이하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박스를 관찰하다가 자신에게 과자박스를 내미는 모습이 자못 귀엽기는 하지만 그 실체를 알고 있는 제황은 혀를 차며 그녀에게서 박스를 받아 뜯어 주었다.

“오오... 이런 게 들어있군.”

고급 초콜릿 쿠키의 냄새를 맡은 궁기가 그것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와삭하고 깨물더니 곧 이어 눈을 크게 뜨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와삭..와삭

“달아! 아아... 이런 단맛이...”

어디서 저런 애늙은이 같은...그렇지만 귀엽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던 제황은 이내 그녀에게서 관심을 뗐다. 저 몇 천 년 묵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궁기라는 요괴는 알면 알수록 미지의 생명이다. 뭔가 정의를 내리려 하면 골치가 아파오는 것 같아 제황은 무관심이라는 좋은 도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먹고 치워.”

"흥, 알았다."

제황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궁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한다.

그러더니 곧장 눈앞에 있는 군것질 거리에만 온통 집중했다.

"흐음...

본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던 제황의 몸이 스르륵 돌아섰다.

그러고는 문틈 사이로 정신없이 과자를 먹고 있는 궁기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봤다.

“좋아.”

그녀가 자기 마음대로 하고 다니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이번에 보여준 능력을 쓸데가 많으니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이다. 그런 마음으로 별 말 없이 군것질 거리를 사준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거군."

제황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쳤다.

이틀 후 제황은 새벽 이슬을 맞으며 궁기산을 걸어 내려왔다.

한참을 걷던 제황은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자 걸음을 외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폰...”

슈욱

제황의 말과 동시에 그의 오른손 바닥에 광역폰이 쥐어진다.

광역폰을 켜고 지도맵을 연 제황은 손가락으로 현재 위치를 적어나갔다. 딱히 자신에게는 필요 없지만 언젠가 자신 외의 타인에게 이곳의 지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다.

-난 네 짐꾼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궁기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제황은 상큼하게 무시했다.

-집어넣어.

-쳇...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제황의 말에 궁기는 별말 없이 광역폰을 무한고에 받아들였다. 궁기가 이렇게 제황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된 건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궁기는 마트에서 사온 것들은 모두 먹어치웠다.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걸 다 먹었는지는 둘째 치고 그녀는 그것들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아니... 단맛에 중독되어 버렸달까.

그녀에게는 신천지와 마찬가지였다.

고소한 단맛, 미칠 듯 한 단맛, 새콤한 단맛, 은은한 단맛... 현대의 다양한 단맛들이 그녀의 뇌를 블링 블링하게 점령해 버렸다. 현대문물의 승리이자 잔인한 입맛점령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제황을 조르기 시작했다. 체면을 차리는지 처음에는 빙빙 돌려가며 말하기는 했지만 제황이 듣는 둥 마는 둥 하자 참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제황에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제황의 답은 간단했다.

“먹고 싶으면 일해.”

“크윽...”

사실 그 동안 제황이 궁기에 대해 잠자코 있었던 것은 그녀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궁기 또한 제황에 대해 주도권 비슷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애초에 그녀는 제황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제황의 몸이 그녀의 보금자리라는 걸 그가 알았기 때문...

알고 보니 궁기는 제황이 가진 마나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가 술법이라는 것을 쓰기 위해서는 조금이지만 제황의 마나가 필요했던 것... 특히 그녀는 제황이 자고 있을 때 제황의 마나를 실컷 가져다 썼다.

용의주도하게 마나회복율까지 본능적으로 계산해서 쓰고 있던 것이다.

제황이 자신의 상태창에 신경 쓰게 되며 그것도 걸렸다.

또한 궁기는 제황에게서 일정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녀가 이쪽 세상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는 것과 그 달달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제황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걸 깨달은 후였다.

완전히 주도권이 넘어왔다는 걸 깨달은 제황은 본격적으로 그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그녀가 가진 무한고라는 건 쓸모가 아주 많았다.

일반적으로 헌터들도 아공간이라는 것을 가진 이들은 흔치 않게 있었다.

공간계 헌터들 중 일부가 제작이 가능했던 것이기에 무척 비싸기는 하지만 돈 좀 있다는 헌터들은 모두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헌터들의 아공간이라는 건 의외로 그 크기가 매우 작았다. 보통의 크기가 가로세로높이 1미터 가량, 상위스킬의 아공간이라 해도 3미터를 넘지 못한다. 그에 비해 궁기가 가진 무한고는 그야말로 무한이었다.

덕분에 제황은 그녀의 무한고에 갖가지 물건들을 넉넉히 밀어 넣어 버렸다. 처음에는 얼마나 들어가나 시험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넣었는데 의외로 많이 들어간다는 것과 원할 때마다 궁기를 통해 검색도 가능하며 바로바로 찾아 손에 쥘 수 있다는 엄청난 강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요즘 쓸데없는 것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녀를 길들이는 중이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말이다.

-사냥용 브로드헤드 카본 화살 세 개...

슈슉...

-이 내가...

-시끄러.

제황은 손에 들린 세 대의 화살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직 불만이 많은 듯싶지만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안 궁기는 군소리 없이 화살을 꺼내 제황의 손에 얌전히 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쿨하게 인정했다. 좋으나 싫으나 제황이 죽기 전까지 함께 해야 했다. 맹약의 내용은 제황이 천수를 누리게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제황은 앞으로 헌터가 될 거라 궁기에게 말했다. 그리고 돈을 버는 주체는 제황이 될 테니 달달한 것을 얻어먹기 위해서는 그녀도 제황의 사냥에 동참해야 한다는 걸 주지시켰다.

눈앞에 있다면 입이 닷 발은 나왔을 상황이지만 제황은 그것을 깔끔히 무시한 채 다시금 궁기리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은 헌터들이 오기로 한 날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제황은 마을회관에 모여 있는 어르신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그 중 가장 살갑게 맞이하는 것은 역시 송노인이었는데 마치 친손자 대하듯 제황에게 아침 먹으라며 이것저것 손수 챙겨 줬다.

점심때가 되어 헌터들을 태운 듯한 무장버스 한 대가 회관 앞에 도착 했다.

일반적인 버스와는 다르게 각부가 장갑으로 보강되어 있는 이 버스는 대당 가격이 몇 억을 호가할 정도로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위이잉

과거의 버스는 유압을 사용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다. 소리 없이 문이 스르륵 열리고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하...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남아 있었구나.”

“구경하지 말고 얼른 내려. 멀미난다.”

궁기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으래 그렇듯 아직 남아있는 몇몇 초가집을 보고는 마치 민속촌에 온 것 마냥 이곳저곳 둘러보기 바쁘다. 그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소감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고...

“지원팀은 빨리빨리 움직여. 스케줄상으로 이틀 안에 끝내야 해!”

“예.”

통솔자로 보이는 이가 큰 소리로 말하자 먼저 내린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버스 옆에서 커다란 짐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각자 할 일을 배분한 통솔자가 이장을 향해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전에 전화 드렸던 스타더스트 클랜 지원팀의 황병창이라고 합니다.”

“궁기리 마을이장을 맡고 있는 김찬수라고 합니다.”

제황은 마을사람들 사이에 끼어 무장버스를 구경했다. 헌터들은 아직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지만 구경할 것은 많았다. 특히 버스 옆에서 나온 삼각형 모양의 정찰용 드론들은 충분히 눈요기가 되었다.

드론들은 주로 중거리의 정찰에 쓰였는데 파티 안에 탐색계 스킬을 지닌 헌터가 있더라도 그들의 탐색 범위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기에 지원팀에서 드론을 통해 그들의 정찰지원을 하는 것이었다.

“보조 배터리 챙겼어?”

“이거 3블레이드 쪽 다시 확인해봐. 틀어진 거 같다.”

지원팀이 달라붙어 있는 거무튀튀한 색의 드론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버스에서 네 명의 남녀가 느릿느릿 내리는 게 보였다.

“아우... 이게 무슨 냄새야.”

가장 먼저 내린 이는 얼굴에 얼굴이 제법 반반한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상당히 스모키한 화장에 볼에는 작은 새 문신이 그려져 있다. 코를 붙잡고 내린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긴 뭐야. 거름냄새지. 하아...고향의 냄새네.  그건 그렇고 산이 생각보다 높고 험해 보이는군.”

뒤따라 내린 이는 4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중년남자였는데 그의 허리에는 분리된 창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온몸에 노련함이 묻어나는 그는 산 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하아... 정말 높네요.”

뒤따라 내리던 상당히 젊은 미남이 중년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고는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린 상당히 껄렁해 보이는 스킨헤드의 남자가 무장버스를 구경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슨 동물원 원숭이야.”

상당히 어려보이는 그는 주위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길을 느낀 마을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띄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빛도 거침없이 다가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중년남자의 박력에 사라져 버렸다.

“방승원이... 너 민간인 건드리면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간다.”

“예. 알겠습니다.”

중년인이 경고하듯 말하자 그는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굽신 거렸다.

"내 스쿼드에 들어온 이상 뭐라고?"

"절대복종입니다. 헤헤..."

"그래. 네가 아무리 유망주라고 해도 클랜에서 봐주는데 한도가 있어. 적당히 해라. 네 보고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게이트에 들어가냐 못들어가냐가 결정되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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