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아이는아프다
"아야..."
파출소장의 걱정대로 제황은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컴파운드보우를 100파운드로 계속 쏘는 건 아무리 날 때부터 활만 가지고 논 제황이라도 무리가 있었다. 각성자들이야 200파운드도 거뜬히 당긴다지만 제황은 엄연히 일반인이었다. 특히나 악력 문제로 폼을 바꾼 지 1년 밖에 되지 않아 더 힘들었다.
원래 계획은 멧돼지를 넘기고 산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송노인이 극구 붙잡아 어쩔 수 없이 송노인의 별채에 누웠다.
"하아"
근육통으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는데 제황의 귀에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노인이 들어왔다고 생각한 제황은 덮고 있던 이불을 한쪽에 밀어두고 문밖을 나섰다.
“어?”
송노인의 손녀와 낯선 소녀가 문을 열고 나오는 제황을 발견하고는 시선을 고정했다. 제황 또한 이 낯선 상황에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둘을 바라봤다.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을 때 아랫동네 소녀가 제황의 일그러진 반쪽 얼굴을 봤는지 작은 신음과 함께 얼굴을 구겼다.
“으...”
확실이 제황의 오른쪽 얼굴은 좀 흉했다. 화상으로 얼굴 자체가 한쪽으로 일그러졌으니까. 제황은 소녀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 얼굴을 구겼다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모른 채했다. 2년이 지나 이제 그런 시선에는 익숙했으니까. 그렇지만 낯선 소녀는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징그러.”
“얘!”
엄연히 손님인 제황에게 크게 실례되는 말이기에 송노인의 손녀가 그녀를 말렸다.
그녀 또한 자신이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막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 제황의 눈이 꿈틀한다. 자신이 굳이 산장에 틀어박히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상처 입은 얼굴을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싫었던 것...
익숙해질만 하건만 듣고 보니 또 속이 쓰리다.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각성자들의 이능으로 잘린 팔도 척척 가져다 붙이는 세상인데 왜 수술을 하지 않냐고... 아니 성형수술이라도 하면 좋지 않냐고...
그러나 제황이 바보도 아니고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시력이었다. 안면재건 수술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수술 부위 중 미묘한 신경이 지나가는 곳이 있는데 이걸 잘못 건드리면 하나 남은 눈의 시력도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고 의사는 경고를 했다.
그럼 이능을 통한 치료는? 그건 또 엄청나게 비싸다. 게다가 안면재건이라는 건 그냥 ‘회복’ 이니 ‘재생’ 이니 하며 스킬을 남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얼굴이니만큼 세심한 마나의 조율이 필요한데 그런 테크닉을 지닌 각성자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은 아니어도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할 거금이 필요했고 그런 거금은 제황에게 없었다.
아무튼 제황은 기분이 상해 고개를 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실언을 했기에 사과를 하려 했지만 왠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는 소녀의 등 뒤로 카랑카랑한 송노인의 고함이 들려왔다.
“이것들아!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여!”
멧돼지의 처분을 대충 끝낸 송노인은 제황이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려 집에 왔다가 그녀들이 제황에게 한 말을 고스란히 듣고야 말았다. 평소 손녀를 귀여워하는 송노인이지만 그녀가 데려온 아랫마을 소녀가 제황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징그럽다고 외치자 분기가 치솟아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할아버지...”
손녀가 변명하려 했지만 노인은 손녀까지도 못마땅한지 둘을 노려보고는 제황의 머문 방으로 다가갔다.
덜컥...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옷과 장비를 챙긴 제황이 마루를 내려서서 등산화를 구겨 신은 뒤 송노인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할아버지 저 좀 일찍 올라가보겠습니다.”
“제...제황아. 얘들이 철이 없어서 그러니...”
노인은 제황을 말리려 했지만 제황은 연신 고개를 숙인 뒤 쫓기듯 노인의 집을 빠져나왔다.
고향과도 같은 곳에 와서 마음을 조금 놓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처를 받자 울컥하는 마음에 나와 버린 것이다. 사실 그렇게 나올 것 까지는 없었지만 슬픔으로 일그러진 입술을 타인에게 들키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제황아...”
뭐라 잡을 겨를도 없이 제황이 황급히 사라지자 송노인은 작업복 안쪽에 고이 넣어둔 투툼한 봉투를 만지며 입을 달싹였다. 제황이 잡은 멧돼지가 워낙 많아 도축장과 고깃집에 나머지를 팔고 520만원을 챙겼다. 제황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기에 제황에게 전해주려 잡아뒀건만 그것이 오히려 상처를 줘 버렸다.
“후우..”
***
그 후 며칠이 흘렀다.
“훅...훅...”
드드드득...
제황은 연신 땀을 흘리며 시위를 잡아당겼다.
한번 당길 때마다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데 제황은 쉴 새 없이 호흡을 세며 시위를 잡아당겼다.
“하아..하아..”
투퉁...
제황은 당기던 활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지금껏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던 산소를 양껏 들이켰다. 그가 땅에 내려놓은 활은 일반적인 활이 아니었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듯한 활은 시위까지도 와이어로 되어 있었다. 총 무게는 30킬로그램... 아버지가 사용하던 훈련도구를 꺼내 훈련을 시작한 제황은 과도한 혹사에 등근육에서 뜨끈뜨끈한 열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무리인가...휴... 청소나 하자.”
훈련도구들을 제자리에 정리한 제황은 목욕탕에서 빨아온 걸레를 들고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제황은 산장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깨끗이 청소를 마친 제황은 사당에 늦은 문안인사를 드리고 마당에서 용혈기과 용혈무의 수련에 힘썼다. 아침 조깅 후 오금석이 있는 곳에서 용혈기를 하고 싶었지만 멧돼지 사냥이 있은 다음날 발목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을 알고 조깅을 잠시 중단했다. 새벽 산행은 발목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무시하고 뛰었다가 구르기라도 하면 중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홀로 사는 사람은 몸을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된다. 나름 용혈무가 굳어진 몸의 스트레칭과 회복에는 나름 효과가 있는 편이었기에 지금으로서는 이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송노인의 집에서 있었던 일은 그냥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물론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될 리는 없지만 제황은 애써 그렇게 그걸 무시해 버렸다.
몸을 재정비한 제황은 삼일 뒤 다시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 일전에는 부모님의 산소와 마을 쪽을 중심으로 멧돼지들의 잡았다면 이번에는 산반대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야생동물인 멧돼지야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부모님의 묘소가 훼손된 건 제황에게 크나큰 분노를 심어 주었다.
지금 제황은 궁기산에서 성체 멧돼지는 싹 쓸어버릴 작정이다. 물론 내년이 되면 다른 산에서 넘어오든 운 좋게 살아남은 것들이 번식하든 다시금 많아질 테지만 최소한 부모님의 산소 쪽으로의 길을 기억하고 있는 놈들만 잡아내면 된다.
"춥네."
첫날에도 느낀 거지만 궁기산은 유난히 추웠다. 일정시간마다 기계적으로 몸을 풀던 제황은 문득 이 궁기산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떠올렸다. 그 옛날 착호단을 만들었던 선조들은 이곳에서 사흉으로 알려진 대요괴 궁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날개가 달린 호랑이 형상의 궁기는 조선 땅의 호랑이들을 규합하여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었다고 전해 내려왔다.
궁기를 잡던 날 벼락이 비처럼 쏟아지고 천둥이 궁기산을 반으로 쪼갰다고 했던가.
옛날 사람들이야 재미있는 전설로 넘어갈 테지만 요즘같이 별의별 몬스터가 다 나오는 때는 그게 마냥 전설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투툭... 파파팍
어디선가 거칠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옳거니 왔구나.'
멧돼지들의 기척을 느낀 제황은 천천히 전통에서 검은색의 특수 카본 화살을 천천히 빼들어 컴파운드 보우의 시위에 걸었다. 지금 그가 쓰고 있는 이 화살은 과거 제황과 그의 아버지가 머리를 맞대고서 거의 반장난식으로 만들었던 화살 중 일부였다.
물론 그 대상은 멧돼지가 아니라 몬스터였지만 절반정도의 성공으로 몬스터는 힘들지만 멧돼지 머리 정도는 확실히 뚫어내는 그런 물건이었다.
“후우...”
제황은 아주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소리가 커져오는 쪽을 주목했다.
미리 시위를 당겨 힘이 덜 드는 구간인 렛오프(let off)상태로 지속시킬 수도 있지만 그 상태도 60프로 정도의 힘은 필요하기에 적절한 순간에 시위를 당기려 근육을 긴장시킬 뿐이다.
“음?”
그러나 제황은 이내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사냥꾼으로써의 감이라고 할까? 아니면 단순한 불안함일까. 한밤의 산이기에 아직 시야에 나타나지도 않은 멧돼지건만 뭔가 불길한 감정이 몸을 옭죄어왔다. 마치 누군가 피하라 소리치는 느낌... 제황이 이 뜬금없는 불안에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시야로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났다.
‘수컷이구나.’
나타난 것은 거대한 덩치의 수컷 멧돼지였다. 얼마 전 사냥했던 놈보다 더 큰 놈이다. 아마 궁기산 멧돼지들 중 가장 큰 놈일 것... 그러나 제황은 시위를 당기지 않았다.
멧돼지의 상태가 수상했다. 냉정히 따져 이 궁기산에 멧돼지의 천적은 없다시피 하다. 그렇기에 저렇게 거품을 물고 미친 듯이 달릴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제금 제황이 보고 있는 수컷우두머리는 척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