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5화 (5/301)

# 5

다시산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유사지구의 수는 2개... 그 중  하나는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한 것 같은 유사인종들이 몬스터들과 살아가는 세계,  둘째는 수만 종류의 괴기스러운 변종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지구였다. 그렇게 인간들이 지배하는 지구까지 총 3개의 지구가 맞물렸고 그 때부터 인류는 기존의 문명발전과는 또다른 전기를 맞게 되었다.

말 그대로 '대헌터시대'

신인류 각성자의 등장이었다.

초고대인이 이 때를 대비해 만든 통합방어시스템 일명 '세이브' 에 의해 특별한 능력을 개화한 각성자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디멘션게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악의를 띤 생명체들에게서 인류를 구했다.

사람들은 대융합 첫 10년을 생존의 시대라 불렀다. 말 그대로 생존이 최우선 순위였던 때... 수많은 자연각성자들이 나타났지만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는 두 종류의 디멘션게이트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타차원의 생명체로부터 인류를 구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이름은 '어라우저' 생존이 시대를 지탱하는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대융합 10년여가 지난 후 새로운 타입의 각성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명 '로더' 라고 불리우는데 그들의 과거 전설적인 무용을 지닌 이들의 물건을 가지고 그들의 힘을 빌려 싸우는 이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것들을 '아티펙트' 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특징은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도 해당 무기를 다른 이에게 계승 시키기만 하면 다른 이에게 그 아티펙트가 가진 힘을 전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출현으로 타차원의 침략에 어느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년 후에 나온 것은 일명 '비욘더'

한국에서는 강제각성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통합방어시스템도 아티펙트도 아닌 인간 순수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술의 산물이었다. 몬스터를 죽였을 시 나오는 마나석을 이용하는 마도공학을 통해 인간을 강제각성 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을 '세이브' 에 강제 접속 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이를 통해 각성하는 이들은 대부분 낮은급의 헌터가 되었지만 이 때부터 인류는 숫자를 통해 적들을 압도하며 최근 들어서는 외차원으로의 침략이 시도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들을 모두 통칭한 단어 '헌터'이다.

"밥이나 먹고 들어가자."

"그래."

강제각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비욘더로써의 삶이 어떤지 대충은 알고 있는 제황은 동철을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비욘더 로써의 삶이었고 또 그런 친구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제황은 입을 다물었다.

***

챙길 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장 많았던 것은 양궁과 관련된 서적이었는데 책들은 모두 기부재단에 보내버렸다. 어차피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 것... 아쉬움 따위는 양궁과 날려버린 제황은 며칠 후 동철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탔다.

"허무하구나."

마나석으로 움직이는 버스가 소리없이 버스터미널을 빠져 나가자 제황은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많을 줄 알았는데 중요한 것들만 챙기니 딱 배낭 하나와 리커브보우, 전통 그리고 화살 20대와 활을 정비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 든 작은 가방 하나가 전부다.

"엄마... 저 아저씨 얼굴 이상해."

"얘!"

한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제황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말하자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제황의 눈치를 보며 아이의 행동을 제지했다.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흉하게 일그러진 오른쪽 얼굴과 시력을 거의 잃어 탁한 눈을 보이게 된 것이리라.

제황은 머리카락을 내려 얼굴을 가린 뒤 눈을 감았다.

고작 얼굴 따위 망가진 걸 일깨워 우울해지기에는 그의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분노의 격류가 더 거셌기 때문에...

지금 제황이 찾아가는 곳은 경상북도 청송군에 위치한 궁기리라는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궁기 라는 이름을 지닌 거대한 산에 둘러싸인 이 마을은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1시간 가량을 걸어야 들어설 수 있는 약 5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산골 벽촌의오지 마을이었다.

***

제 몸만 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제황이 마을에 들어섰다.

“여긴 변한 게 없네.”

궁기산 밑자락에 자리 잡은 이 궁기리라는 마을은 어릴 적 기억 그대로였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 이곳은 외부와는 다른 시간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다. 마을 중앙에 들어선 유일한 신식 건물인 마을회관이 아니면 70년대의 산골마을이라 오해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조금 들어가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송씨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제황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햇살에 익은 자글자글한 주름을 지닌 노인이 제황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뜨며 반색한다. 손에 들고 있던 올무와 망태를  내려놓은 노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황에게 다가와 손을 덥썩 잡았다.

“아이고... 제황이 아니냐.”

“예. 할아버지 별고 없으셨죠?”

“그래. 뭐 다 그렇지.. 얼마 전에 서울 학교 다시 간다더니... 방학기간이누?”

“아뇨. 뭐...”

얼버무리는 제황의 말에 노인은 잡고 있던 제황의 손을 슬쩍 바라보고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제황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노인이 입을 떼었다.

“부모님 산소에는?”

“아직요. 지금 왔어요.”

제황이 손에 들린 것들을 달랑달랑 흔들자 노인이 말했다.

“에휴... 산대장은 어찌 이 어린 것을 혼자 두고...”

“...”

제황의 아버지는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산대장이라 불렸었다. 워낙 산에 틀어박혀 거의 수도승마냥 사는 까닭에 교류는 적었으나 선조 대대로 내려온 궁기산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약초꾼들과 꾸준한 교류가 있었고 농작물을 해치는 멧돼지나 삵 같은 것들을 사냥하는 날이면 마을의 장정들을 불러 마을 잔치를 하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면사무소에 처음 보는 외지인이 찾아와서 궁기산의 지적도를 떼려했다고 김씨 딸내미가 얘기하더라.”

송씨 할아버지의 말에 제황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대략 누군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아마 부모님의 보험금을 날름 삼키고 잠적한 외삼촌의 소행이리라.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제황의 물음에 송씨가 팔짱을 딱 끼며 근엄하게 이야기했다.

“김씨 딸내미가 주인 오기 전에는 절대 못준다고 딱 버텼다더라. 친척이니 어쩌니 하면서 하도 떼를 쓰길래 파출소 순경을 불러서 아주 혼꾸녕을 내줬다지. 어딜 감히 궁기산을... 험험!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아주 그냥 다리몽둥이를...”

그들 집안에 일어난 참사는 궁기리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고 그들 가족에게 일어난 일에 누구보다 슬퍼해 준 것이 궁기리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마을사람들이 대처를 잘해준 것 같다 생각한 제황이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믿었고 의지했던 많은 어른들에게 배신을 당해 당장은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분들만은 믿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아닌 아버지인 산대장의 지인들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런 일 있으면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무슨... 우리가 산대장에게 받은 게 얼마나 많은데... 에휴... 그런데 요즘 들어서 이놈에 돼지새끼들 때문에 너무 힘들구나. 대장이 있었으면 매일 매일 마을 잔치를 했을 텐데...”

“멧돼지가 기승이 심한가요?”

“휴... 말도 마라. 고구마며 감자며 저 윗동네에 주씨네는 일 년 감자 농사 모조리 망쳐서... 요즘은 무서워서 산 쪽으로 나물도 못 뜯으러 간다. 이놈들이 워낙 거세서...”

“혹시 몬스터는 아니죠?”

궁기리가 외지이기는 하지만 대융합 이후 단 한번 도 디멘션게이트가 열린 적은 없었기에 몬스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황은 노파심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몬스터가 출몰했다면 이대로 산에 올라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 뭐시냐. 몬스터는 아니라고 하더라. 주씨가 봤는데 씨알 굵은 멧돼지 놈들뿐이라는데...“

“예에...”

송씨 아저씨의 말에 제황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산 쪽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안계시니 그세 번식한 멧돼지들이 재 세상을 만난 듯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사냥을 해주고 싶지만 멧돼지들을 활로만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아버지야 원숙한 궁사이기에 애초에 사용하는 활자체가 틀렸고 아버지가 사냥을 나갈 때는 항상 세 마리의 사냥개를 대동하고 나가셨다.

‘점박이는 아니더라도 흑호나 범구만 있었어도...’

산에서 개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에 제황은 아버지가 기르시던 개들을 개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지인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기르시던 개들은 단순한 잡종이 아닌 족보 있는 진돗개와 대형 도사견을 교배시켜 만들어낸 놈들이었다.

체형은 진돗개와 도사견을 적당히 닮았는데 주둥이가 검고 귀가 쳐져 있어 얼핏 잡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원체 씨가 큰 탓에 몸무게 30킬로에 하루가 멀다 하고 산대장과 제황을 쫓아 궁기산을 뛰어다니며 체력을 단련한 덕분에 웬만한 멧돼지는 이 세 마리의 개들이 금세 걸레조각으로 만들 정도로 사나운 놈들이었다. 물론 꼭 녀석들이 없더라도 못 잡을 건 없었지만 그만큼 위험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냥이라는 건 항상 위험을 동반하니까.

“그럼 올라가 볼게요.”

“그래.”

멀어지는 제황을 바라보던 송씨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유난히 송씨노인의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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