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4화 (4/301)

# 4

무결점의 양궁머신

평소 제황이 잘 나갈때는 손바닥을 비비며 한 수 배우려고 알랑방귀 뀌다가 제활을 마치고 온 때부터 제황을 괴롭히는데 앞장서던 3학년 선배 하나가 다른 애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방금 사격을 끝내고 왔는지 장비를 해체하지 않은 채 걸어오고 있다. 원래 사격이 끝나고 이렇게 활을 든 채 복도를 걷는 건 감독이 금지했던 것이었는데 이것만 봐도 양궁부가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제황은 어차피 학교도 그만두기로 했던 거 더 이상 볼 일 없는 이와 말다툼하기 싫어 대충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선배는 이런 기회를 기다렸는지 둘을 놔주지 않았다.

“아, 씨발 야. 누가 너한테 고개 숙이래? 야! 마동철 너 이리 안와? 2학년 새끼가 빠져가지고!”

“허...”

제황을 따라 얌전히 밖으로 나서려던 동철은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선배가 자신을 불러 세우려 하자 기가 차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이 새끼가 감히 선배가 말하는데 허?!”

퍽!

선배는 오늘 날이라도 잡았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동철의 뺨을 날렸다. 그가 이렇게 대차게 나갈 수 있는 건 행여 친구인 제황이 욕을 먹을까봐 동철이 고등학교 내내 얌전한 곰처럼 굴었던 것... 그들은 동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뺨을 맞은 동철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제황을 돌아봤다. 마치 지금 자신이 참아야 하냐고 물어보는 듯 말이다.

처음에는 제황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지만 제황의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활만 쏘아 친구 만들기에 서툴던 아들이 친구를 데려오자 동철이 고아던 말던 그를 아들처럼 아껴 주셨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양궁에 매진하여 제황을 따라 양궁부에 온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친구인 제황이 양궁을 그만둔다니 동철도 양궁에 정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버렸는데 그 와중에 별 시답잖은 선배에게 손찌검을 당한 것이다.

절레절레

제황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제황은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부모님의 묘소와 아버지 가문에 남은 것들을 추스르는 일... 비록 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은 외삼촌의 흉계로 모두 빼앗겼지만 나머지 것이라도 건사해야 했다. 그러나 동철은 자신과 같이 학교를 포기하기에는 그의 앞날이 너무 암울했다.

그러나 제황이 동철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선배는 동철의 얇디 얇은 인내심의 트리거를 단숨에 끊어버렸다.

“이런 개새끼가 선배가 말하는데! 어억! 컥!”

다시 한 번 동철의 뺨을 후리려던 선배는 휘두르던 팔을 붙잡힘과 동시에 그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에 고통스럽게 비벼지는 걸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슈팅 글러브의 가죽 부분으로 얼굴이 뭉개지니 그 고통에 비명이 절로 튀어 나온다.

“아악! 놔놔!”

“아주 개새끼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억...!”

"어...저 새끼가!"

동철은 선배의 뒷머리를 움켜쥔 채 잡고 있던 손목을 돌려 선배의 입에 박아버렸다.

그러자 그것을 광경을  실실 웃으며 구경하고 있던 선배들이 동철의 이 엽기적인 행동에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자칫 큰 싸움이 일어날 상황..

그러나 그들보다 더욱 빠른 건 제황이었다. 제황은 동철에게 잡혀 있는 선배의 활을 순식간에 빼앗은 뒤 선배의 활통에서 두 대의 화살을 꺼내 손에 쥐었다. 눈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 제황의 손에는 이미 그의 손에 맞게 제작된 특수 슈팅글러브가 끼워져 있었다.

슈슉!!!

두 대의 화살을 1.5초 만에 쐈고 제황이 쏜 화살 두 대는 그대로 복도를 가로질러 날아가 복도 벽에 걸려 있던 ‘정신정기’ 라 한자로 멋들어지게 써진 액자의 정중앙을 1센티 간격으로 나란히 꿰뚫어 버렸다.

“히이이익!”

복도를 뛰어오던 선배들이 모두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는 화살이 꽂힌 곳을 한 번 바라보더니 질려버린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봤다. 그들이 잠시 망각했는지 모르지만 활에 있어서 제황은 괴물 그 자체였다.

그러나 더 놀란 것은 제황이 부실 복도에서 화살을 쐈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장비를 들고 다니는 것도 욕먹을  일이지만 화살을 쐈다는 건 정학을 맞아도 할 말 없는 것이었고 이것이 말하는 바는 여러모로 컸다.

“동철아.”

“왜...”

“후회 없냐?”

“개새끼... 빨리도 묻는다.”

“가자.”

퉁투-퉁

활을 바닥에 던진 제황이 앞서 걷자 동철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입에서 손을 꺼내지 못한 채 동철에게 눈빛으로 호소하는 선배를 던져버리고는 제황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

둘은 말없이 걸었다. 학교를 뚜벅뚜벅 걸어나옴에도 둘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을씨년 스러운 바람만이 둘의 친구마냥 곁은 스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씨발...날씨 졸라 춥네.”

한참을 걷던 중 동철이 온몸을 쭉 펴며 말하자 그 꼴을 바라보던 제황은 피식 웃었다가 이내 표정을 지우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학교 때려 칠 거냐.”

“뭐, 별로 미련 없다. 눈치 보여서 더 있기도 힘들었고... 흐흐...”

“...”

동철의 말에 제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동철이 고등학교 양궁부에 있었던 것은 제황 부모님의 덕이 컸다. 양궁이라는 종목은 한두 푼 들어가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 전까지는 제황 부모님의 지원 덕에 무리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게 힘들어진 것이다. 이미 지원이 끊긴지는 상당히 되었었는데 동철은  제황이 돌아올 때까지 억지로 꾸역꾸역 버텼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제황은 동철이 선배를 족칠 때 동철의 뜻을 알고 동참해 준 것이었다. 자퇴던 퇴학이던... 그에게는 이제 무의미하다.

“뭐 하고 살려고...”

“넌?”

“난... 산으로 가려고... 나밖에 안남았는데 내가 추슬러야지.”

제황의 말에 동철이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지옥?”

동철의 말에 제황은 피식 웃었다. 동철의 입장에서는 지옥이라고 부를 만도 했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하고 다혈질인 동철에게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뿐이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지옥 같은 체력훈련과 명상.. 그리고 활쏘기 밖에 없으니까.

“부모님 묘소도 같이 있으니까. 가서 돌보려고...”

“그래.”

제황의 말에 동철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말 없는 동철을 바라보며 제황은 혀를 찼다. 지금 동철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했다. 자신을 따라오고 싶어하는 것. 그렇지만 동철은 건사해야 할 고아원 동생들이 있는 몸이었다. 아마 그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리라.

“넌 어차피 못 와.”

“왜?”

“네 밥값 책임 못 져.”

제황의 말에 동철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하긴 동철이 많이 먹긴 많이 먹는다.

“그래. 쩝... 그럼 안 되겠다.”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가 친구에게 큰 부담이라는 걸 깨달은 동철은 미련 없이 그 고민을 떨쳤다. 분명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지만 제황이 이렇게 말한다면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

“그런데 진짜 너 뭐 할 거냐?”

제황의 물음에 동철은 뺨을 긁적인다. 그러다가 멀리 커다란 빌딩에 걸린 거대한 멀티비젼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거나 하려고...”

“음...”

시선을 돌린 제황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대현 공격대가 디멘션 게이트에서 지금 막 나왔습니다. 과거 2018년 첫 디멘션 게이트 당시에는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는데요. 첫 대융합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대구 디멘션 게이트 7차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습니다.

멀티비젼에는 마치 거대한 야구 경기장에 야간경기를 치루듯 불이 환하게 밝혀진 어느 곳을 비추고 있었다. 높이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투명한 거울이 요동치는 곳에는 수십 개의 서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십 여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이번 원정으로 2개의 주둔지를 더 건설하고 사방 20킬로미터에 이르는 곳을 우리 대한민국의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원주민들과는...

“자원입대해서 군각성자육성프로그램에 지원하려고.... 각성시술비를 국가에서 대납해 주는 조건으로 5년간 일하는 조건이라더라.”

“동철아.”

제황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동철을 바라봤다.

각성자, 헌터...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다. 물론 그들은 현 세대 최대어로 꼽히는 직업 중 하나였지만 그것은 타고난 각성재능과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각성재능검사는 물론 무료다. 언제나 헌터가 부족한 국가 입장에서는 한명이라도 재능 있는 자를 찾는 게 우선이니까.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다.

국가에서 무료로 각성시술을 시켜주는 재능등급은 딱 1급 재능부터다. 그 이하로는 각성을 시켜도 높은 등급의 각성자가 되기는 힘들기 때문...

참고로 동철의 재능등급은 3급, 제황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가장 끝자리 5급이었다.

“각성시술하고 각성자 성장한계치 3성급만 나와도 3년간 일하는 조건으로 변경된다고 하니까 나쁜 조건은 아니지.”

"4성급 헌터들도 떼죽음 당하는 곳이야."

"나 밖에 없다. 동생들 입에 고기 한근이라도 넣어주려면 내가..."

제황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동철을 바라봤다.

지금은 저렇게 국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있지만 저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각성자들이 죽어나가는지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특히나 2성급 이하의 헌터들은 그야말로 헌터계의 바닥이라 할 수 있었는데 평균 년사망률이 30퍼센트라고 어느 고발 프로그램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2성급이라도 5년만 버티면 1억이랑 E급 라이센스 준다더라. 완전 꿀이지.”

“쩝...후...”

동철의 강함을 알고 있는 제황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급이라도 신체 능력과 전투지능에 따라 실제 전투력은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아마 동철이라면 같은 급에서는 수위권의 전투력을 가질 것, 그렇지만 제황이 진짜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원장 수녀님한테는 뭐라고 설명하려고...”

“아...어...”

제황의 말에 동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동철이 마음 잡고 고등학교에 꼬박꼬박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원장 수녀님이었는데 다니던 고등학교를 때려치고 그 위험하다는 군각성자다 된다고 하면 참 좋아라하시겠다.

“제길... 어차피 양궁 따위 한물 간 거잖아."

"그렇지."

모든 것은 60년 전 대융합 이후로 달라졌다.

대융합... 혹자들은 차원 대충돌이라고도 부르는 그것...

그것은 누군가 말하는 외계의 침략도 멸망의 징조도 아닌 엄연한 자연 현상이었다. 마치 지나가던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그 자연현상 말이다. 단지 그 규모가 차원의 충돌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세 개의 지구들이 차원의 벽을 두고 붙어버렸다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

"또 아냐. 내가 딱 4성급 딱지 달고 흐흐흐..."

"휴우..."

동철의 말에 제황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제각성을 통해 측정되는 성장한계치가 4성급으로 판정이 나는 건 당장 내일 신문에 날 정도로 희귀한 경우였다. 각성재능 3급으로는 잘해야 가장 바닥층을 이루는 1성급이나 운 좋아야 2성급이다.

"차라리 6성급이 되고 싶다고 해라."

"푸하하..."

제황의 말에 동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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