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무결점의 양궁머신
“후...”
감독실을 나선 제황은 문에 등을 기대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련이 없다면 거짓이었다. 활은 그의 인생이자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현실적으로 말해 자신이 할 줄 아는 건 활쏘기 밖에 없었다. 활에 미친 놈... 활 쏘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반푼이...
“그래서... 떠난 거니. 한수지...”
재활은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가 당연하듯 가지고 있던 것들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가끔씩 얼굴을 비추던 외삼촌은 부모님의 보험금도 모자라 제황과 부모님의 집까지 팔아치운 뒤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 제황을 너무나도 크게 흔들어 버렸다.
주위에서 그를 바라보는 선망과 동경의 시선은 사라져 있었다. 그를 따르던 찬사도... 칭찬도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연인까지도 말이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찰청장배 초등양궁대회에서 처음 만난 게 인연이었다. 숫기 없고 부끄럼 가득한... 하루 종일 제황을 훔쳐보다가 눈이라도 마주칠라하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제 엄마의 등 뒤에 숨던 아름다운 소녀였다.
둘이 재회하게 된 건 양궁으로 유명한 중학교에 함께 입학하면서부터였다.
머릿속에 온통 활만이 가득했던 당시의 제황도 이 수줍음 가득한 아름다운 소녀의 적극적인 고백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 둘은 중학 3년간 중등 양궁계의 왕자와 공주로 군림하며 모든 상을 그야말로 휩쓸다시피 했었다.
그런 그녀는 제황이 재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후였다. 제활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는 했었다. 재활을 했던 곳의 특성상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었기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통화가 되는 곳에 갈 때면 받지도 않는 전화를 꼬박꼬박 걸곤 했다.
수신제한 된 전화... 하염없이 불안한 제황
그렇게 재활을 하는 일 년 내내 제황이 그녀에게 받은 연락은 단 하나의 문자였다.
‘내 인생에서 꺼져.’
너무나도 차가운 한 마디...그 문자를 제황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그녀는 절대 자신에게 이런 문자 하나로 이별을 통보할 애가 아니었다.
그동안 자신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해왔던 것일까. 제황은 끊임없이 자문해봤다. 겉으로는 그렇게 좋아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벌레 보듯 했던 것일까? 제황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조금 전 감독에게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삼전산업인가요?’
‘그래.’
'저를 경기에 내보내지 말라고 압박하던가요.'
'미안하구나.'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모든 장비 일체를 공급하는 업체이자 매년 무시 못 할 후원금을 쾌척하는 기업... 삼전산업은 한수지의 부모님이 경영하는 회사였다. 감은 잡고 있었다. 한수지가 말없이 타 학교로 갔을 때부터... 그가 요청한 재활장비라던가 소모품등에서 자신이 소외될 때부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체 왜 자신에게 이러는지 제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탁...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제황보다 반 뼘은 더 커 보이는 덩치가 제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무슨 일 있냐?”
“어...동철아...”
키 186센티미터에 108킬로그램에 얼핏 보면 보디빌더가 연상될 정도의 건장한 몸집의 동철은 사교성이 부족한 제황의 몇 안되는 친구였다. 누군가에게 베프라 부르라면 마치 ‘넌 오늘부터 내 1호 빵셔틀’ 이라고 낙인찍혀 당장에라도 전학가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의 험상궂은 얼굴의 동철이지만 그 얼굴에는 제황을 걱정하는 빛으로 가득했다.
“감독님이랑 무슨 말을 했기에 얼굴이 그리 썩었어.”
“나중에 말할게. 지금 좀 머리가 복잡하다.”
제황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자 동철의 얼굴이 굳는다.
선천적으로 다혈질에 말보다 편한 대화수단인 주먹을 즐겨 사용하던 과거가 있는 동철은 그 동안 제황이 재활에서 돌아와 학교에서 받아온 노골적인 대접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말 좀 똑바로 해봐! 지금 이상한 얘기가 돈다고!”
동철의 목소리가 커지자 제황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대에 기본적으로 기차화통이 내장된 이 친구는 그냥 놔두면 부실이 떠나가라 계속 소리칠 것이다. 그것도 사절...잠시 뜸을 들이던 제황이 입을 열었다.
“국가대표상배군 준비 1년만 쉬란다.”
“뭐 그런 씨발 좃 같은 말이 다 있어!”
역시나 동철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괜히 말했나 하는 후회감에 제황은 혀를 찼다. 솔직히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잠이나 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동철은 제황의 그런 마음은 생각지 않는지 재차 물었다.
“니가 왜! 뭐가 문젠데!”
“동철아 조용히 나가자.”
“야이! 새끼야. 내가 지금 화 안내게 생겼어? 너 그렇게 개 고생한 걸 내가 아는데! 대체 뭐가!”
“삼전”
제황이 짧게 한마디 내뱉자 동철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삼전에서... 감독한테 압력 넣었냐? 그래서 1년 쉰다고?”
동철의 물음에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니... 이제 학교랑 양궁은 그만두려고...그러고보니 동철아 미안하다. 너랑 같이 졸업은 못하겠다.”
제황의 말에 동철의 솥뚜껑 같은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터질 듯한 근육 위로 지렁이 같은 힘줄이 솟아올랐다.
“삼전산업... 수지... 그... 썅년이냐?”
“동철아...”
“그 썅년은 중학교 내내 너한테 양궁은 다 배워놓고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으아! 씨발!”
“동철아!! 아직 모르는 거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
동철이 두고 볼 수 없을 만치 흥분하자 제황은 고개를 들어 흥분한 동철의 눈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그러자 그 눈빛을 직시한 동철은 마치 얼음동굴 속에 빠져든 듯한 기분에 끓어올랐던 혈기가 쑥 사라지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보는 제황의 진짜 눈빛이다. 마치 포식자에게 포착된 초식동물의 기분이 이럴까?
시력을 상실한 한쪽은 여전히 탁한 빛을 띄었지만 반대쪽 하나만큼은 차가운 청광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씨발 또 눈 살벌하게 뜨네. 알았어. 쯧”
"고맙다."
동철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제황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제황과 처음 만났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당시 동철은 2학년 일진뿐만 아니라 3학년 일진과 그 패거리들까지 모조리 휘어잡은 명실공이 중학교 통합 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흑역사지만 당시 99퍼센트의 중학생들이 그보다 작다는 것... 동철 자신이 싸움을 기막히게 잘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가 고아라는 사실에서 오는 삐뚤어진 폭력성이 친구들을 괴롭히게 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어깨에 힘이 잔뜩 넣고 살던 어느 날 하교하던 제황과 어깨를 부딪혔고 그걸 빌미로 시비를 걸었다가 구석진 골목에서 제황에게 부풀어 있던 어깨를 강제교정 당해 버렸다.
그 후로 제황을 무작정 쫓아다니며 친구를 먹었고 기어코 양궁부에 들어 제황을 따라 고등학교까지 따라왔다.
"제기랄... 선배새끼들이 수근거리더니..."
꼴통이기는 하지만 제황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한 동철이기에 동철은 제황이 화를 내는 시점에서 혈기를 가라앉혔다.
“가자.”
“그래. 씨발 엿 같은 거... 술이나 한잔 하자.”
“그건 아니고 임마...”
동철이 진정되자 제황은 동철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더 이상 이 숨 막히는 곳에 있기 싫었기 때문... 그러나 그런 제황의 바램은 다른 이의 고성에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야! 이! 어디서 2학년 새끼들이 복도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