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화 (2/301)

# 2

무결점의 양궁머신

“제황아.”

“예. 감독님.”

“손은... 좀 어떠냐.”

감독의 물음에 제황은 감독이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검지에서 시작된 커다란 흉터가 손등을 지나 손목까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주먹을 두어 번 쥔 제황이 감독의 물음에 대답했다.

“꾸준히 재활치료 중입니다. 의사 선생님도 조금씩이지만 근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얘기 했고요.”

“음... 그래. 다행이네.”

제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감독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눈앞에 서 있는 제황을 바라봤다. 181센티의 훤칠한 키에 날씬한 몸매, 긴 팔다리... 거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아니...잘생겼던 얼굴이지.

‘양궁계의귀공자 라고 불리던 녀석이... 휴우...’

초등학교부터 양궁신동으로 불리던 놈이었다. 물론 양궁세계최강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국가대표를 달고 있는 이들이라면 어릴 적 양궁신동 소리 안 들어본 이가 없겠지만 제황은 특별했다.

[무결점의 양궁머신]

초등학교 때 별명은 ‘양궁머신’

제 나이또래에 참가할 수 있는 모든 양궁대회에 참가해 신기록을 작성하는 것도 모자라 타고난 신체 조건으로 중학생의 나이 때 이미 성인 경기에 참가해 무수히 많은 메달을 거머쥐었다.

말 그대로 온전히 성장했다면 그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에서 절대무적이라 불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양궁신동도 단 한 번의 교통사고에 운명이 달라져 버렸다. 온 가족이 함께 타고 가던 승합차가 음주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 달려든 덤프트럭에 그의 두 부모님을 비롯한 그의 두 손가락과 수려한 얼굴 마지막으로 한쪽 눈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 날 세기의 양궁천재를 가르친다는 자부심에 살던 감독은 눈과 손을 크게 다쳤다는 의사의 말에 응급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물론 0.1의 시력으로도 금메달을 딴 궁사들도 여럿 있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손의 부상이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거의 걸레가 되었고 그걸 봉제인형 꿰매듯 해야겠다.

사고가 워낙 외진 곳에서 나는 바람에 제황의 몸은 회복이나 재생이 불가능하도록 망가졌고 사고가 터진지 12시간만에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살아있는 게 기적이었다.

불행은 겹겹이 날아오는 것일까? 제황이 충격에 허덕이고 있을 때 외가 쪽의 친척이 제황가족의 보험금을 들고 나르는 사건이 터졌고 그 충격으로 제황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었고 그 후로 외가 쪽과도 아예 연을 끊었다.

“곧 아버지 어머니 기일이지?”

“예.”

제황의 부모는 감독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 쪽은 아니지만 그의 어머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사람이었다. 무려 10년간 양궁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의 아버지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국궁의 명인으로서 수년 간 국내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피를 타고난 제황에게 활이라는 건 너무나 친숙한 물건이었다.

돌잡이 때는 화살을  갓난아기 때는 아버지가 만든 장난감 활을 쥐며 옹알이를 시작했고 첫걸음을 뗄 때도 손에 잡고 있던 건 활이었다. 3살 때부터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장난감 활의 시위를 당겼고 6살이 되었을 때 50미터 거리의 과녁을 명중시켰다. 무려 중학생용 활을 잡고서 말이다.

“이번... 국가대표상비군선발 경기... 나갈 생각이냐?”

“예. 다음 대회에서 메달권에만 들면 랭킹은 충분해요.”

제황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것은 감독도 아는 사실...

“그렇구나.”

한 손과 한쪽 눈을 잃었기에 영영 활을 손에서 놨을 거라 생각했던 제황은 그 후 1년 뒤 홀연히 다시 학교에 나타났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실력으로 다시금 떨어진 국내 랭킹을 올리기 시작했고 얼마 전 국가대표 상비군에 도전할 수 있는 랭킹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하나의 인간 승리였다. 제황은 부상을 이기기 위해 사격의 축이 되는 손과 스텐스 자체를 바꾸고 오른손가락의 모자란 근력을 보충하기 위해 나머지 손가락을 극단적으로 단련시켰다.

“제황아.”

“예.”

“이번 국가대표상비군선발 경기... 쉬는 게 어떻겠냐.”

“?”

예상치 못한 감독의 말에 제황의 입이 꾹 다물려졌다. 설마 하니 감독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그도 몰랐다. 제황의 국가대표상비군은 감독 또한 염원하던 것이었으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저번 대회에서도 2등했고...컨디션으로 인해 기량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감독의 말에 제황의 눈가가 꿈틀했다. 확실히 사고 전보다 기량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360점 만점이었습니다. 1등한테 거리에서 밀렸지."

"그 전 대회에서도 2등했잖아."

"대회 신기록이었습니다. 1등한 녀석이 1점 더 높았죠."

감독은 말을 이을수록 자꾸 할 말이 없어짐을 느꼈다.

제황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기량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거야 사고 전의 제황이 너무 잘 쐈기에 애초에 비교대상이 잘못된 것이었다.

게다가 제황은 지금 장애로 인해 재활 중이었다.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칭찬을 해주는 게 마땅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감독은 그럴 수 없다. 지금 이것은 그의 감독직이 걸려 있었으니까.

"후우... 제황아."

"예."

"1년만 쉬면서 좀 더 재활하자."

"재활은 이미 끝났습니다. 아니... 앞으로 90프로까지 기량을 끌어올리겠습니다."

감독의 말에도 제황은 확고했다.

"임마! 그 뭐냐. 너 주변정리도 해야 하잖아. 그 개같은 외삼촌 문제도 있고 그리고  어차피 군대도 안 가는데 1년 쉬는 게 어때서!"

감독의 고함이 터지고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감독님..."

"왜..."

감독의 대답에 제황은 아무 말 없이 책상 맞은편의 감독을 바라봤다.

무섭도록 차갑게 불타오르는 제황의 눈...그런 제황의 눈빛에 감독은 저도 모르게 고개가 떨궈졌다.

"감독님..."

"그래."

"사랑하는 감독님."

"..."

제황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게 감독이었다.

또 제황이 혼수상태일 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던 게 감독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은 어른들 중 가장 믿었던 이가... 바로 감독이었다.

"하나만 말씀해 주시면 감독님의 말씀 따르겠습니다."

"뭐냐."

감독이 서글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제황의 입술이 달싹 하며 작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감독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감독실에 적막감이 감돈다.

"후...씨발"

제황의 입에서 낮은 한숨과 함께 욕설이 튀어 나왔다. 감히 감독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

그러나 감독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은 욕을 먹어 싸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누군가가 나서서 속시원이 욕해줬으면 하는 게 감독이었다.

"그냥...학교랑...양궁 전부 그만 두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감독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의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이...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양궁은... 어머니 소원이었습니다. 소원 풀어드릴 어머니도 없는데... 더 해봤자 부질 없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야...야! 이 미친! 네가 네가! 양궁을 왜 그만둬! 1년! 1년이야!"

꾸벅 고개를 숙이는 제황에게 감독은 금세라도 책상을 넘어 그를 잡을 것처럼 소리쳤다.

"그냥... 지금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제...제황아. 떨어지는 랭킹이야. 어차피 너라면 금세 다시 올릴 수 있잖아. 응? 제발 그만 둔다는 소리는 말아라."

제황에게 1년을 쉬라던 감독은 이제 제황을 필사적으로 말리려 했다. 제황을 모르는 누군가 봤다면 어린 놈이 홧김에 내뱉은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감독은 알고 있었다.

제황은 절대 허언을 내뱉는 성격이 아니었다.

제황이 이렇게 말한다면 평생 다시는 양궁 근처에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안 돼.’

세기의 천재를 그의 손에서 망가뜨리게 생겼다는 죄책감이 엄습했다. 만약 자신이 죽어 저승에 간다면 선배 양궁인들에게 천만년을 과녁판으로 쓰려 할 것이다. 아니... 지금 당장... 밀려오는 죄의식에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어깨를 눌러오는 손이 있었다. 어느새 제황이 그의 곁에 다가와 감독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감독님...”

“그래. 제황아.”

감독을 내려다보는 제황의 눈빛은 분노도 증오도 아니었다. 그것은 끝없는 실망감... 혐오감... 그리고 슬픔이었다.

“감독님도 먹고 사셔야죠.”

“하...”

제황의 말에 감독은 마치 얼음이라도 되어 버린 것처럼... 의자에 엉덩이가 뿌리내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눈에 초점이 사라진다.

“내가... 내가... ”

넋두리처럼 읊조리는 감독에게 꾸벅 인사를 한 제황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철컥...

“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