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화 (1/301)

# 1

프롤로그

한 무리의 남녀가 어두운 산길을 걷고 있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밤이지만 그들은 그런 어둠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능숙하게 나뭇가지들을 거둬내며 걷고 있다. 목소리를 낮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찾았어요. 1시 방향 500미터.. 대략 3티어급... 움직임 없습니다."

"좋아."

여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워낙 어두워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손에 두툼해 보이는 긴 뭔가를 든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른 치우고 이동하자. 오늘 일당이라도 챙기려면 서둘러야 해."

"젠장 이번에는 허탕 아니겠죠?"

"충환아 조용!"

"예이...예이..."

서로 티격태격 했으나 점차 여자가 말한 곳으로 다가갈수록 모두 말이 없어졌다. 그들은 안다. 몬스터라는 것은 등급을 떠나서 언제나 위험했고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숙련된 사냥꾼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하네. 왜 또 안움직여."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으나 그 목소리는 근엄한 남자의 말에 쑥 들어가 버렸다.

"시끄러. 재수 없는 소리를... 게이트를 넘자마자 도망쳤으니 몬스터라도 지쳤을 테지. 단숨에 끝낸다. 철호... 미영, 포메이션 D다. 빠르게 정리한다."

"예."

바닥에 깔린 낙엽을 밟음에도 소리 한 점 없다.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자 그들의 눈에 작은 바위 골짜기 안에 웅크린 뭔가가 보였다. 그것은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닌 듯한 빛나는 비늘갑옷으로 무장한 거대한 생명체였다.

"충환!"

"예!"

오더에 맞춰 튼실한 갑주를 입은 충환이라는 남자가 그것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두 남녀가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오더를 내린 듯한 이는 조금 늦은 걸음으로 다가가며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하아아아!!! 어라..."

하지만, 비늘갑옷을 향해 대검을 뽑아들고 내리치려던 충환은 마지막 순간에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검을 내렸다.

때문에 그의 뒤를 따라 뛰던 이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가장 후위에 뛰어오던 남자가 수인을 맺던 손을 풀며 외쳤다.

"또에요!"

"또?!"

충환의 말에 그는 인상을 쓰며 비늘에 덮힌 생명체를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아르마딜로와 같이 생겼는데 아르마딜로와 틀린 것이라면 다리가 여덟 개라는 것과 머리 부분에 거대한 촉수 세 개가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세 개 중 하나는 촉수가 아니다.

그것은 삐죽 솟은 한 대의 화살이었던 것...

약 한 뼘 정도 튀어 나와 있는 화살을 발견한 대장은 욕지거리를 하며 활에 손을 댔다.

"어! 대장! 그거 손대면...!"

충환이 제지하려 했지만 대장의 손이 더 빨랐다. 대장은 몬스터의 머리에 박힌 화살을 있는 힘껏 쑤욱 뽑아 들었다.

일반적인 화살보다 심하게 짧은 검은색의 화살...

그리고 이 화살을 본 대장은 화살대를 바라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 새끼 꺼 맞네."

화살촉은 보드킨 화살촉. 우리나라 말로 유엽전 형태인 평범한 송곳 형태인데, 몸체는 카본 재질인 듯 무광의 블랙이다.

화살대에는 화이트로 쓴 듯한 글씨가 삐뚤삐뚤 써져 있었다.

"손대지 마시오. 빌어먹을... 잡았으면 빨리 가져가던가. 이게 대체 몇 마리째야."

화살의 주인이 손대지 말라는 친절한 경고문을 적어놨지만 이미 대장이 손을 댔으니 나머지들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몬스터의 주변을 둘러쌌다.

"역시나... 한 방이네. 안쪽은 완전히 걸레..."

철호라 불린 남자는 화살이 나온 구멍을 날카로운 나이프로 긁어서 헤집으며 중얼거렸다. 미영이라는 여자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미영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알게 뭐야! 제길...오늘만 세 마리째 스틸 당하다니..."

"스틸은 아니에요."

화살이 뽑혀 나온 곳을 맨손으로 만지던 남자가 말했다.

"식은 지 꽤 되었어요. 한 2시간은 된 거 같은데..."

"썅! 그러면 빨리빨리 가져가던가."

"수거하는 애들 밤에는 안움직이잖아요."

"제길... 알게 뭐야. 야. 오늘 텄다."

그 말과 함께 대장은 화살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애꿎은 화풀이를 화살에 한 셈... 그러나 그 행동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빼애애액!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하얀 무언가가 대장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악!"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대장은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큰 피해는 막았지만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장난이 아니었다.

대장이 공격당하자 황급히 경계태세를 취하던 그들은 몬스터의 머리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한 생명체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한 마리의 매였다. 특이한 건 몸 전체가 붉은빛이라는 것과 그 몸집이 일반적인 매의 거의 10배는 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몬스터라 착각할 수도 있지만 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멋들어진 갑주와 목에 걸린 작은 팻말이 그들의 시선을 잡았다.

'2차 경고: 건드리면  책임 못짐. 주인백.'

"비...빌어먹을..."

자신이 왜 공격당했는지 깨달은 대장은 욕을 내뱉다가 매의 서슬퍼런 눈빛을 보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성질 같아서는 매에게 화풀이를 해버리고 싶지만 소문으로 들은 바로는 이 매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는 것과, 어떤 팀이 이 매를 홧김에 공격했다가 여럿이 숟가락을 내려놨다고 했다.

물론 소문이라는 게 와전되기 마련이지만 이 매를 건드리는 순간 매주인과도 드잡이질을 해야 할 텐데 그는 매주인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3티어급 괴수를 단 한발의 화살로 침묵하게 만들어버리는 활솜씨의 소유자... 원한을 지게 된다면 맘 편한 레이드는 물 건너가는 것과 같다.

"가자."

"예."

대장의 말에 사람들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허탕을 친 게 분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들은 바 화살의 주인은 자신의 것에 손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표적이 된 사람치고 몸 성한 이 또한 전무하다는 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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