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173
“후…….”
나는 더운 한숨을 내뱉으며 지하를 향했다.
한우성과의 전투로 어느 정도 힘이 빠진 것이다.
그러나 발을 멈출 수는 없었다.
“빨리 가자.”
[ㅇㅇ…….]
아마 한우성의 갈히르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한우성이 정신을 차리겠지.
그사이에 빠르게 지하로 내려가야 된다.
계단을 내려오니 일자 통로가 보였다.
아마 이곳이 다음 지하층이겠지.
나는 그 통로를 걸으며 갑작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샌디야. 너도 내 얘기 들었지?”
[ㅇㅇ…….]
“근데 어째서 도와주는 거야?”
그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
그러나 샌디는 말이 없었다.
그 행동으로 대충 샌디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김천운이 아니라서 그런 거구나.”
그 말에 샌디는 고개를 저었다.
그 행동에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샌디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곧 김천운을 보게 해 줄게.”
[…….]
그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샌디는 슬픈 듯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도착했네.”
다음 층에 도착한 천운이었다.
그 입구 앞에는 윤시혁이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왔나?”
“이번엔 너야?”
나는 잠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작은 통로 같은 공간이었다.
원래라면 긴 장검을 쓰는 윤시혁이 싸우기에는 불리한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윤시혁이 쓰는 유물을 알고 있었다.
후웅! 사악-
윤시혁의 손에 쥐어진 보이지 않는 장검이 휘둘러진다.
그저 시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유물 자체가 투명화 성질을 띠며 물체의 통과가 가능하다.
베고 싶은 것과 베면 안 될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검.
내가 설정한 윤시혁의 최종 형태였다.
후웅!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검로.
과거 녀석은 정해진 자세로만 검을 휘둘렀다면 지금은 그저 그 검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알려 준 거다.”
타탁!
윤시혁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크리티컬 단검으로 변한 샌디였다.
후웅!
나 또한 윤시혁의 검을 막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윤시혁의 장검이 단검을 통과하며 내 배를 노리기 시작했다.
아주 순간의 찰나.
의안이 그 찰나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 준다.
나는 곧바로 몸을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윤시혁의 장검을 피해 냈다.
“대단하네.”
나는 윤시혁의 검을 본 순간.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검로와 미세한 특성의 컨트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방금 말했을 텐데. 네 덕분이라고.”
“그런가…….”
내 표정이 미소를 지으며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과거에 너무 빨리 깨닫게 한 영향이 지금 와서 나를 위협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금에 너는 내가 아는 윤시혁보다 강하네?”
“……무슨 말이냐?”
내 존재가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나는 다시 단검을 쥔 채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강해진 윤시혁이라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샌디.”
나는 샌디를 불렀다.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샌디의 몸에 여러 개의 무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검을 시작으로 창과 도끼, 망치, 레이피어.
온갖 무기들이 줄지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막을 수밖에 없는 공격은 다르겠지?”
검 자체에 투명화 특성을 띠고 있기는 하나 윤시혁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은 검으로 쳐내거나 피할 수밖에 없겠지.
“확인해 봐라.”
그러나 그 무수한 무기들을 코앞에 둔 윤시혁은 그저 오만하게 웃을 뿐이었다.
녀석의 말이 시작이라는 듯 샌디의 몸에 늘려진 수많은 무기가 윤시혁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흥!”
윤시혁은 그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휘둘러진 검로가 무수한 선을 이루며 샌디의 무기를 막아 내기 시작했다.
속도는 멈추지 않고 더욱 가속하기 시작했다.
“굉장하다고 생각해.”
그런 와중에 나는 고요히 말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여유로운 인간이었으니.
나는 그런 윤시혁에게 다가갔다.
“아마 나 혼자였으면 시간이 좀 걸렸을 거야.”
“흥. 졌을 수도 있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군.”
캉!!
윤시혁이 마지막으로 휘두른 검.
그 검을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눈치챈 샌디의 연격이 끝났다.
나는 윤시혁의 코앞에 다가간 뒤 말을 이었다.
“아마 여기서 조금 더 노력하면 의철과 비슷해지겠지.”
“……그런가…….”
내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윤시혁은 온몸에 힘을 푼 채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알고 있나? 지금 그 녀석은 괴물이다.”
“2년 전에 마수왕을 죽인 녀석이니까.”
스르륵-
샌디의 모래들이 내 손목으로 돌아온다.
이미 승부는 정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달리 윤시혁의 마력은 이미 전부 고갈돼 있었다.
“괴물 자식.”
그 말을 내뱉으며 윤시혁은 벽에 기댄 채 주저앉는다.
나는 윤시혁을 지나쳐 다음 층을 향해 나아갔다.
* * *
내 눈앞에는 한설아와 로벤이 서 있었다.
“하……. 저기 말이야.”
참으로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렇게 막아서다니.
“한 번이라도 지면 돌아가겠다고 약속해.”
“아니, 못하지…….”
“너무 갑작스럽잖아!”
“너희가 이러는 것도 갑작스러운데…….”
“너보다 나아.”
한설아가 자신의 유물을 현현하기 시작했다.
“그 검 오랜만이네.”
하르바의 이빨이었다.
한설아에게 가장 어울리는 검.
그리고 그 형태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저건 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야?’
위이이이잉!
하르바의 이빨의 밝은 청록색의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검에서 나온 밝은 빛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늑대의 형태.
어우우우!
늑대의 하울링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저건…….”
나는 멍하니 그 늑대를 바라봤다.
어딜 봐도 8등급 이상의 마수였다.
그러나 그 형태와 느껴지는 마력은 마치…….
“정령?”
“물어뜯어!”
한설아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늑대가 하울링을 내뱉으며 내가 달려들었다.
“샌디!”
스르륵-
지면에 흘러내린 샌디의 몸체가 거대해진다.
샌디의 몸에서 두 개의 손이 나와 늑대의 몸을 막아 냈다.
쿵!
그러나 경악스럽게도 샌디의 몸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인가?!”
늑대의 몸 전체에 흘러나오는 바람.
그것이 추진력 역할을 하며 샌디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후웅!
“그럼…….”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한설아에게 달려들었다.
늑대의 주인을 기절시키면 아마 연결이 끊어져 사라지겠지.
팅!
“윽!”
몸이 멈춰 섰다.
무언가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곧바로 그 능력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염력?”
후웅!
허공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5개의 화구가 정확히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죽일 생각이야……?”
나는 그리 말하며 온몸의 마력을 마투법으로 전환했다.
끼긱! 끼이익!
몸을 비틀어 내 몸을 고정시킨 염력을 풀어내는 동시에 나는 뒤로 크게 점프해 화구를 피해 냈다.
콰쾅!!
잠시 지면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그사이에 3명의 그림자를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심이네요……. 회장님.”
“예. 대화하려고 해도 도망가기 일쑤잖아요. 더구나 아마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겠죠.”
“……예.”
그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대화를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의견 자체가 다르니 합의 같은 것은 소용없는 행위다.
아니, 내가 조금도 물러설 수 없는 느낌이었다.
“후…….”
나는 지금까지 얻은 내 몸의 모든 스킬을 발동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동시에 마력이 빠르게 온몸 전체를 감돌기 시작했다.
몸에 근육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다 본래의 몸 형태를 유지하기 시작한다.
쿵!
천운이 땅을 박차자 박차진 지면의 쩌저적- 갈라진다.
천운의 몸이 대포처럼 날아들어 최아진의 코앞에 도달했다.
후웅!
휘둘러진 주먹이 최아진의 배를 향했다.
곧바로 염력으로 배리어를 만든 최아진이지만 쩌저적- 천운의 주먹과 맞닿은 배리어가 허황 없이 깨져 나간다.
쾅!
“큭!”
최아진의 신형이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래도 아마 온몸에 염력을 두르고 있으니 크게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을 거다.
후웅!
천운의 신형이 또다시 사라진다.
이번에는 질 로벤의 뒤를 잡은 천운이었다.
“윽!”
내 주먹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로벤의 손에서 10겹의 배리어가 한순간에 생성됐다.
그러나 지금의 힘이라면 손쉽게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쩌저적-
첫 번째 배리어가 깨지고 두 번째가 덩달아 갈라진다.
그러나 내 정권의 속도는 멈추지 않았다.
캉! 쩌적! 캉!!
어느 순간 마지막 배리어까지 뚫은 내 정권이었다.
그러나 휘두를 생각은 없었다.
턱!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잡은 천운은 그녀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빨아드린 마력을 다시 반마로 소멸시킨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감겨 온다.
후웅!
천운의 뒤에서 날카로운 칼날의 파공음이 들려왔다.
곧바로 팔에 샌디가 둘러싸는 동시에 나는 팔로 한설아의 칼날을 막아 냈다.
캉!
“후윽! 절대 못 지나가!”
눈물을 뚝- 뚝- 흘리며 울분을 토하듯 내뱉는 한설아였다.
나는 그런 한설아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야 돼.”
“못 간다고!”
“미안.”
후웅!
천운의 몸이 가속한다.
한 번의 눈 깜빡임으로 천운을 놓친 한설아였다.
어느 순간 천운이 한설아의 뒤에 서 있었다.
“미안…….”
툭-
한설아의 목덜미를 치며 나는 그녀를 기절시켰다.
쓰러져 가는 도중 한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가지 마…….”
흐느끼는 듯한 그 목소리에 내 발걸음이 멈춰 섰다.
나는 뒤돌아 한설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기절해 있었다.
“집에 가기 참 힘드네…….”
[그럼 가지 말거라.]
후웅! 콰쾅!!
반짝이는 선의 빛이 천운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나는 이 마법의 주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운아…….]
“미르마.”
지금 미르마의 모습은 실제화를 한 모습이었다.
아마 메리헨의 신성력을 빌려 실체화한 것이겠지.
[나는 너를 무조건 막을 생각이야.]
“왜죠? 미르마는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마음을 가장 잘 알잖아요.”
내 말에 미르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과거에 내가 하려던 짓을 반복하려고 하니까.]
쿠쿵! 쿵!
뇌운이 다가온다.
물론 천운의 뇌운은 아니었다.
[이 마법의 원조가 누구일 거 같아?]
파지직-
낙뢰가 내리쳤다.
곧바로 몸을 늘린 샌디가 낙뢰를 막아 냈고 동시에 내가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손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몸 전체 마력이 흐르는 것을 보니 마투법을 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옛날 생각나지 않아?]
턱- 후웅! 탁!
내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하고 잡으며 반격하는 미르마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녀의 주먹을 피하고 다시 반격으로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현자가 아니라 무투가 아니에요?”
[아마 아닐걸.]
후우웅!!
천운의 뒤에서 술식이 생성되며 얼음창이 날아들었다.
그녀가 전투와 동시에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나는 옆으로 크게 뛰어 얼음창을 피해 냈다.
[포기하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확실히 차근차근 지하로 내려가고 있긴 하다만 그 내려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미르마…….”
쿠쿵! 쿵! 쩌저적-
뇌운이 다가온다.
이 공간 전체를 뒤덮을 거대한 뇌운이.
어느 순간 미르마의 뇌운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 메리헨에게 빌린 신성력이겠죠.”
본래의 마력을 찾는다면 지금의 나라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는 아니다.
쿠쿵!
파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