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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72화 (172/176)

제172화

#171

나는 일어서 의철에게 다가갔다.

의철은 그저 말없이 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의철에게 다가간 뒤 말했다.

“잘 지냈어?”

“…….”

그저 대답 없이 의철은 침묵을 유지했다.

마치 고뇌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묻고 싶은 것은 많으나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묻고 싶은 게 많지?”

그렇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가서 앉자. 천천히 얘기해 줄게.”

나는 뒤돌아서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내 발걸음을 멈추려는 듯 의철의 말이 들려왔다.

“넌…….”

나는 발을 멈춘 뒤 고개만 돌려 의철을 바라봤다.

의철의 낮게 가라앉은 말이 이어졌다.

“누구야.”

* * *

의철은 마경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메리헨. 네가 말하는 자아…… 정확히 에고는 뭘 말하는 거니? 영혼?]

-저도 정확히는 정의할 수 없지만…… 천운의 에고는 특이했어요.

[그래. 한 인간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말이니까.]

마경에서 천운이 사라지고 난 뒤의 일이었다.

김천운이 사라지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

미르마는 그 말에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에도 말했다시피 천운의 에고는 두 개예요.

[그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서 특이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이 능력. 에고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연구해서 알 수 있던 사실이 있어요. 에고에도 그 사람의 흔적이란 게 남아 있어요. 하지만 천운의 에고 중 하나, 남은 하나의 에고는 지금의 천운과 본질 자체가 달랐어요.

-저기…… 그게 무슨 말이죠?

의철은 메리헨의 설명에 따라가기 힘들었다.

메리헨은 조금 더 쉽게 설명을 이어 갔다.

-원래라면 절대 있을 수도,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한 사람의 몸에 두 개의 영혼. 그리고 천운 같은 경우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흔적?]

-네. 흔적이요. 너무 진하고 강한 에고라 의식이 존재하는 줄 알았지만, 흔적에 불가했어요.

[……원래 주인이라는 말은…….]

-네……. 그 흔적의 주인이겠죠.

-주인이라니…….

그녀들의 말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의철이었다.

-영혼? 대체 무슨…….

[나도 믿기지는 않는다만……. 대충 짐작해 볼 수는 있지 않니.]

사실 어느 정도 그녀들의 말을 듣고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탑에서 본 천운은…….’

마지막 층.

그곳에서 천운을 본 적 있는 의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재의 천운과 너무나도 다른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 * *

“넌…… 누구야.”

“…….”

천운의 대답은 없었다.

그저 시선이 아래로 향하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감지한 아이들이 이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천운이 말했다.

“다 말해 줄게. 가서 앉자. 애들 기다리잖아.”

그 의연한 말투에 의철의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행동으로 천운은 다시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모두가 걱정스럽게 내게 질문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봤다.

아니, 이제 아이들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성숙한 얼굴이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난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 * *

1년 동안 재앙을 막았다면 이번 2년 동안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이 세계를 통틀어 희미한 단서가 있을 만한 곳은 어디든지 가 봤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헤매며 찾은 단서는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불과 몇 달 전.

이번 연도의 기억이 갱신되었을 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동시에 김천운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김천운의 마지막 순간.

다시 말해 이번 회차의 전 회차.

그 기억을 갱신받은 순간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끝이야.”

나는 아이들에게 내 전부를 말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과 내가 미래를 알고 있던 사실 그리고 내가 김천운이 아니라는 사실.

유일하게 숨긴 사실은 내가 이 세계를 만든 작가라는 사실이었다.

그것만큼은 입 밖으로 내뱉기가 힘든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소, 소설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당황스럽게 대답하는 한설아와 이한.

천운은 그저 침묵을 유지했다.

그 행동이 대답이 되었다는 듯 아이들의 표정이 당황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왜 이제 와서 그걸 말하는 거야…….”

한설아의 말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한설아를 바라봤다.

혼란스럽게 떨리는 시선과 무언가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

그걸로 알 수 있었다.

한설아는 이미 내가 그 비밀을 말한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돌아갈 방법을 찾았어.”

내 말에 한설아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장난치지 마!”

“장난 아니야.”

“거짓말이지…….”

나는 한설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

나는 한설아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너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으니.

슬픈 표정을 짓던 한설아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이 내게 물었다.

“아, 안 가면 안 돼……?”

나는 또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모든 사실을 숨기고 아이들 몰래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나는 이 세계에 너무도 오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말한 것이다.

그냥 떠나기에는 너무도 정든 세계였다.

“……가야 돼.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내 말을 끝으로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한설아는 주먹을 꽉 쥔 채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천운아.”

지금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의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언제 떠날 거야?”

그 표정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굳은 표정이었다.

“내일.”

“……알겠어.”

의철이 일어섰다.

그러고는 손에서 팔테인을 현현했다.

“이정원.”

천운이 아닌 이정원.

내 원래 세계의 이름이다.

의철은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이었다.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뭐?”

그 확신이 담긴 듯한 말에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가지 말라고?”

“솔직하게 생각해. 만약 솔직해지기 싫으면.”

의철의 팔테인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온몸에 마력이 몸을 타고 팔테인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런 의철을 노려봤으며 의철 또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대로 있어. 우리가 억지로 막아 줄 테니까.”

* * *

의철의 말은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 가장 바라고 있던 순간을 의철은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우리’라는 말이 의문이었다.

“그래. 우리.”

그 말을 증명한다는 듯 의철의 뒤에서 3개의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 게이트 너머로 익숙한 얼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친목회와 한우성, 미르마와 메리헨, 한민아와 이신아.

그들이 게이트 너머로 넘어오며 나에게 다가왔다.

“전부…… 듣고 있었군요.”

천운의 가라앉은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중 한우성이 말했다.

“멍청이도 알아볼 정도였어. 김천운.”

“뭐가 말이죠?”

“떠나기 싫다고 티 내는 거 말이야. 그저 조용히 떠났을 수도 있었잖아. 안 그래?”

“그러게요.”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이미 늦은 밤.

하늘에 별이 유난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지지?”

“가야 해요. 원래 이 자리에 제가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재앙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인간이 있다.

지금 이 자리는 그 녀석이 있어야 했다.

“그러냐…… 정 그렇다면.”

한우성의 손에 갈히르가 현현됐다.

나는 눈을 좁히며 한우성을 노려봤다.

“계약을 썼을 텐데요.”

“그래 맞아. 근데…….”

후웅!

어느 순간 천운의 코앞까지 다가온 한우성이 천운에게 갈히르를 내리쳤다.

천운 또한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한우성의 갈히르를 피해 냈다.

천운은 혀를 차며 한우성을 노려봤다.

한우성은 싱긋 웃고 있었다.

“계약이 풀렸네?”

한우성과 천운이 한 계약은 단순했다.

그저 갑을 방해하지 말 것.

사슬의 계약 자체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계약이다.

그렇기에 한우성이 천운에게 갈히르를 내리치려는 순간.

천운은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한우성을 죽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봐봐. 이렇게 정에 약한 놈이 그리 쉽게 떠난다고?”

“하…… 제가 계약을 안 풀었으면 어쩌려고요.”

“아니 넌 무조건 풀었어. 그런 녀석이니까.”

씨익 웃는 한우성의 표정이 얄미웠다.

동시에 살짝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를 데려오신 이유가 뭐죠?”

지금 상황에서 만나기 가장 껄끄러운 사람은 그녀였다.

적어도 3년 동안은 가짜 행세를 해 왔으니.

“내가 오고 싶어서 왔단다.”

이신아가 말했다.

그녀는 한민아와 함께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민아가 말했다.

“꼭 가야겠니?”

“이제 알잖아요. 제가 김천운이 아니라는걸.”

“…….”

슬픈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이신아가 말했다.

“그래도 고맙단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나를 껴안았다.

나는 잠시 멍하게 천운의 어머니인 그녀를 바라봤다.

이 온전한 감사는 김천운이 아닌 나를 향해 있었다.

“천운이를 대신해 줘서 고맙단다.”

“……이제는 아닐 거예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 될 거 같았단다.”

“…….”

나는 잠시 말을 멈췄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천운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나는 말릴 생각이 없단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멈춰 선 그들을 바라봤다.

한우성과 아이들.

내 앞길을 막을 생각이 충분했다.

“정말로 막을 생각인가요?”

“그래.”

“그럼…….”

내 시선이 손목의 샌디를 향했다.

손목에서 눈을 뜬 샌디와 시선이 교차했다.

사아아악-

손목에 검은 모래.

샌디의 모래가 노면으로 흘러내린다.

곧 모래가 주위의 노면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넌 2년을 쉬었어. 혼자서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한설아가 내게 말했다.

2년의 공백.

확실히 그동안 아이들은 내가 무얼 했는지 알 리는 없었다.

“일단 이거…… 너무 억지인 거 알지 다들?”

내 말과 동시에 모두의 손에 무기들이 현현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비장한 얼굴로 다짐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나는 마력을 퍼트렸다.

샌디의 몸에 내포된 마력이 나를 통해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뭐?!”

“이 마력은 뭐야…….”

예상도 못 한 일에 아이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것은 의철과 친목회뿐이었다.

2년 동안 난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들한테서 마력의 특성을 흡수하고 스탯을 올리며 마법의 상식을 배워 왔다.

그리고 이 중 가장 도움이 되던 것은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으로 갱신되던 김천운의 기억들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막아 보세요.”

내 말을 시작으로 노면에 번진 샌디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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