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168
후우우웅-
눈보라가 내리치는 설산.
메리헨은 천운이 다녀온 직후, 설산의 오두막에서 천운이 남겨 준 술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술식.
그러나 이것을 바라보며 연구하는 메리헨은 들뜬 기분이었다.
“희망이 생겼어요 미르마! 90퍼 정도가 완성된 술식이에요!”
[음…… 그러게…….]
“응? 왜 그러세요?”
그러나 막상 미르마는 오두막 창문을 바라보며 근심 어린 듯 한숨을 쉬며 골똘히 생각할 뿐이었다.
‘왜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천운이 찢어 준 저 술식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미르마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향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안의 술식을 들여다봤다.
‘고도의 초소형 술식.’
그 술식 자체가 정교하며 다양하고 복잡하기에 경이롭다.
동시에 작다.
교묘하게 너무나도 작은 술식을 이 수첩의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운 것이다.
그것이 나와 메리헨이 암호화 마법이 걸린 수첩을 읽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무언가…… 미르마는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흠…….]
“미르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기에 의심했다.
그것은 감 따위가 아닌 확신적인 의심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현자인 자신의 생각이었으니.
그렇다면 확실히 자신이 아직 미처 생각지 못한 비밀이 이 수첩에 숨겨 있다는 말이었다.
김천운은 무언가를 하나 숨기고 있다.
‘고도의 술식과 시간…… 그리고 천운이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 의심스러운 행동…….’
미르마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마다 일기가 갱신되는 수첩.
천운의 기억.
회귀의 기운 때문에 천운의 기억 또한 1년이 지날 때마다 갱신된다.
그 모든 생각을 조합해 본 결과.
[그렇군…….]
정답이 나왔다.
너무나도 간단한 답이었다.
[아무래도…… 천운이가 우리를 속인 거 같구나.]
“네?”
갑작스럽게 찾아와 술식이 적힌 종이만 남겨 두고 떠난 천운이었다.
그 자체가 미르마는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난 거 치고는 너무나 차가운 반응.
마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빠르게 떠나는 듯한 그 행동.
[천운이를 만나야겠어.]
“네, 네?”
미르마는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생각한 의심이 맞다면…….
* * *
의철이 친목회에 들어온 직후.
의철은 한우성과 함께 최아진의 집무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왜 친목회의 소집 장소가 회장님의 집무실인가요?”
“거기가 가장 넓고 편하거든.”
후웅-
제3의 손을 이용한 고속 비행.
말 그대로 의철은 한우성의 제3의 손에 잡혀 날아가고 있었다.
“정확히 그 사건이 일어난 뒤 2년인가?”
“……그러게요.”
“그런데 그 2년 사이에 네 성장이 너무 빠르구먼.”
2년 전에도 이 녀석 성장은 빨랐다.
그러나 한우성이 기이하게 생각한 것은 그 성장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녀석을 막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으려나…….”
“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한우성이 흘리듯 남긴 말은 의철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는 순간 최아진의 회사 아산 그룹의 건물로 들어선 한우성이었다.
의철은 한우성의 뒤를 따라 가장 높은 층.
집무실이 위치한 층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띵-
경쾌한 음이 들리는 소리가 문이 열린다.
“와…….”
그의 앞에는 한국의 가장 높은 경지.
S급 아베타가 모여 있었다.
“놀랄 게 뭐 있냐? 너도 S급이잖아.”
“그래도 이렇게 모여 있는 건 처음 봐서요.”
“네가 김의철이구나.”
의철이 온 것을 확인한 뒤 한 남자가 일어서 의철에게 다가갔다.
의철도 알고 있는 남자였다.
이 건물의 주인 최아진 회장이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친목회에 온 걸 환영한다.”
“아…… 네.”
꾸벅- 고개를 숙인 의철이 악수를 받았다.
최아진의 시선은 의철에서 한우성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대장?”
“대장이라 부르지 마라. 일 그만뒀으니까. 얘 좀 데려다주려고.”
“마침 잘 됐네요. 할 얘기가 있었거든요.”
최아진은 뒤돌아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집무실 소파에 앉아 있던 크롬벨과 강화두가 복잡한 얼굴로 한우성을 바라봤다.
“하…….”
최아진은 한숨을 푹 늘어지게 쉬며 말했다.
“그 아이가 사고 쳤어요.”
“…….”
“그것도 대형사고요.”
그 말의 의철은 의문스럽게 물었다.
그 아이라 한순간.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저기 그 아이라면…….”
“응? 의철 군도 잘 아는 소년이죠.”
“네?”
그 말을 들은 직후.
의철은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 친목회의 숨겨진 단원이 누군지.
“김천운. 그를 말하는 겁니다.”
* * *
조용한 적막이 감돌았다.
모두가 침묵했고 한우성 또한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정적이 계속되는 순간.
먼저 입을 연 것은 최아진이었다.
“대장. 우리는 지금 녀석을 쫓고 있어요.”
“그래. 그래서?”
“도와주세요.”
최아진이 말했다.
최아진 또한 대장이 은퇴했고 아베타와 관련된 일절 활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과거 대장이 찾아 데려온 인재이니…….
“싫어.”
“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일은 일절 나서지 않겠다.”
적막이 이어졌다.
한우성의 그 무책임한 발언이 단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의철이 입 또한 경악스럽게 벌어져 있었다.
“아니, 왜요?”
“그래도 형님이 아끼시던 후배 아닙니까?”
최아진과 강화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고 크롬벨 또한 그 둘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붕붕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 말에도 한우성은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조용히 한우성을 바라보던 최아진이 물었다.
“그 녀석이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있군요?”
“아니, 모른다.”
“그럼 왜…….”
“계약을 했다.”
“계약이요? 김천운과 계약을 했다는 말인가요?”
“과거에 내가 가볍게 한 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들어주게 됐네.”
그리 말하며 피식 웃은 한우성이었다.
녀석이 사고를 치기 직전.
그 녀석이 내가 찾아왔었다.
‘저번에 말했죠? 무슨 일이 있으면 한 번은 도와준다고.’
‘그래. 뭐? 던전이냐?’
‘아니요. 계약 하나만 해 주세요.’
“하…….”
그 계약이 이렇게 작용하고 말았다.
한우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는 도중 옆에 있던 의철이 물었다.
“저기…….”
“왜?”
“천운이가 무슨 사고를 친 거죠?”
의철의 물음에 한우성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너도 들으면 어이가 없을 거다.”
“네?”
“과거 4대 가문의 초대 가주와 함께한 영웅. 최초의 아베타의 한중후의 마력이다.”
“마, 마력이요?”
“뭐…… 그래. 정확히는 마력석이지. 녀석은 국가의 비보 중 하나를 훔치고 달아났다.”
그냥 사고가 아닌 대형 범죄였다.
국가의 비보를 훔치고 달아난 중죄.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닌 세계를 구한 영웅 중 한 명인 최초의 아베타의 마력석을 훔친 것이라면 국내뿐만이 아닌 국제적으로 영웅들이 녀석을 잡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다행히 아직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녀석을 인비저블맨이라고 부른다만…… 아마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현재로선 우리뿐일 거다.”
“하…… 그것만 훔치면 다행인데. 녀석이 가끔 얼굴을 가리고 모습을 드러내더군. 아직 더 훔칠 게 남은 건지 원…….”
“그, 그럼 얼른 천운이를 찾아야죠!”
의철이 다급하게 말했다.
최아진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턱을 괴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려고 이렇게 모인 거란다.”
“아…….”
“대장. 정말 돕지 않으실 겁니까?”
한우성은 계속해서 묵묵부답으로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한숨을 푹 쉰 한우성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나 최아진이 원하는 답변은 아니었다.
“아마 불가능할 거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두의 시선이 한우성을 향했다.
의문스러운…… 마치 빨리 다음 말을 해 달라는 표정으로 한우성을 바라봤다.
생각을 끝낸 한우성은 눈을 뜬 채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은 너희도 알고 있을 거다. 과거에 말했으니.”
“네…… 뭐 알고 있죠.”
“예.”
그 말을 한 뒤 한우성은 자신의 손을 한번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리쉬며 말했다.
“이제는 아니야.”
“예?”
“이번 연도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회귀의 기운이 없어졌다. 이제 나는 회귀자가 아니다.”
“어…… 그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대장?”
“하…….”
한우성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다.
회귀자로서의 마지막 회차.
바로 전 회차의 기억이었다.
나는 분명 친목회의 새로운 단원인 그 녀석에게 이 기운을 넘겼다.
이번 연도의 기억이 갱신돼서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언더의 수장이었던 연시훈.
그리고 그것이 틀린 행동이라는 것을 이번 회차에서 똑똑히 느꼈었다.
‘하…… 내가 틀렸었군.’
그리고 녀석이…….
결국 녀석이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은 나와 같은 행동이었다.
이 기운을 다른 녀석에게 넘기는 것.
“녀석은 예언자가 아니었어. 회귀자다.”
“네?”
“어…… 그게 무슨.”
그 회귀의 기운이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김천운.
녀석은 회귀자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없는 점은 한 가지.
녀석이 이 세계를 몇 번을 회귀했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100번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수백 번 어쩌면 그것을 넘는 1,000번을 도달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천운을 회귀자라는 관점에서 말해 주마.”
“회귀자라니…… 형님의 그 능력 말입니까?”
“그래. 내 강함의 증거이기도 하지. 그리고…… 녀석이 그 사건 이후로 2년이 흘렀다.”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애초에 내가 나선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수도 있었다.
“김천운이 몇 번을 회귀했는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대략 1,000으로 추정한다고 말하자면…… 연도마다 전 회차들의 기억이 갱신되는 것이 회귀자들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2년이 흘렀지.”
“처, 천 정도 말입니까? 연도마다 전 회차들의 기억이 갱신되는 겁니까? 그럼…….”
“저번 연도에 한 번, 그리고 이번 연도에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총 두 번.”
“어차피 기억들이지 않습니까?”
강화두가 물었다.
한우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총 1,000회의 기억이 한 번에 들어온다. 그 기억 속에 여러 정보가 들어 있지. 세계 곳곳에 숨겨진 던전과 유물의 정보, 동시에 경험 또한 들어온다.”
“…….”
“녀석은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괴물이 됐을지도 모르겠군. 다행인 점은 고작 2년이다. 마력은 그리 높지 않을 거야. 단.”
“단?”
“그 녀석이 있는 순간 말은 달라지지.”
의철은 곧 그 녀석이 누구를 뜻하는지 알 거 같았다.
천운의 유물 ‘검은 모래 샌디’.
천운을 대신해 아득한 마력을 내포한 살아 움직이는 유물이다.
“어디를 갔을지는 조금은 예상할 수 있다.”
“……예. 알거 같아요.”
그 검은 모래가 있는 마경.
천운은 그곳을 향했을 거라고 의철은 확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