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167
후우우우웅-
눈보라가 치미는 설산이었다.
사박- 사박-
그곳에 한 소녀가 그 앞이 보이지 않는 설산을 등산하고 있었다.
별수 없는 게 설산 중간 지점에 있는 오두막이 자신의 집이니 말이다.
“하…… 여긴 익숙해지지 않아요 미르마.”
[별수 없잖아.]
“미르마는 치사해요. 죽어서 안 추워도 되잖아요!”
[그거…… 고인 모독 아니니?]
사박- 사박- 눈을 밟을 때마다 더욱 깊게 파일 때쯤.
“와! 도착!”
눈에 뒤덮인 오두막이 보였다.
한데 정말로 오두막 전체가 눈으로 뒤덮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메리헨은 익숙한 듯 손을 휘저어 술식을 그려냈다.
사아아아-
거짓말처럼 오두막을 뒤덮은 눈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응? 미르마?”
[그래. 나도 느꼈다. 한데…… 이건.]
“침입자예요 미르마!! 제가 금방 제거하고 올게요! 흥!”
[아니, 제거라니……. 언제 그런 말을 배웠니…….]
사박- 사박- 눈을 힘차게 밟으며 메리헨은 당당하게 오두막을 향해 나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본 미르마는 왜인지 그 오두막의 침입자가 누군지 알 거 같았다.
[에휴…… 언제부터 저리 말을 잘 기울이지 않았을까…….]
미르마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차피 알아서 에엑- 하고 놀라며 고개를 휙- 돌릴 테니.
“에엑!!”
메리헨이 미르마를 향해 휙 고개를 돌리며 당황하고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린 사이.
한 소년이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미르마.”
흐뭇하게 웃음 미르마가 천운을 보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 * *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니?]
“수소문 끝에 찾았죠. 정말 찾기 힘들었어요.”
[후훗, 메리헨과 같이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어…… 저기.”
메리헨은 코코아 두 잔을 탄 뒤 슬그머니 의자에 앉았다.
한 잔을 천운에게 내밀며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아까는 죄송해요.”
“아니야. 나도 추워서 허락 없이 들어간 거니까.”
“아! 미르마 이건 용서받은 거 맞죠?”
[그래. 근데 남 앞에서 그렇게 용서받은 걸 좋아한다는 듯 티 내면 안 된단다.]
“어? 왜요?”
[얕보이거든.]
“아하! 저 얕보지 말아 주세요! 저 이제 강하거든요!”
“그래?”
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웃었다.
1년이 지났지만 메리헨은 달라진 점이 별로 없었다.
마법을 빼면 말이다.
“미르마. 메리헨의 마법이 지금 어느 정도인가요?”
[보이는 대로야. 과거에 나는 너를 마법을 배우기 좋은 몸이라 했지?]
“네. 그랬죠?”
[근데 메리헨은 둘 다야. 머리도 좋거든.]
“머리도요?”
나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메리헨을 지그시 바라봤다.
막상 메리헨은 우쭐해하는 표정으로 콧대가 높아진 기분이었다.
[저렇게 보여도 사실이란다. 원래 상식이라는 지식이 별로 없는 아이니 어린 아기들처럼 습득하는 속도가 빠른 거일 수도…… 있을 거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 하여튼 무슨 일이야?]
이유 없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미르마에게 수첩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이게 뭔지 기억나세요. 미르마?”
[그건…….]
천운은 그 작은 수첩을 탁자 위에 두었다.
차르르륵-
탁자에 둔 수첩에 펼쳐지며 차르륵- 여러 장이 펄럭이며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페이지에서 멈춰 섰다.
[이건…… 한데 내 눈에 페이지가 보이는구나.]
암호화된 수첩이었다.
미르마는 지그시 그 수첩을 바라봤다.
술식의 추가.
과거에 술식과 다른 마법 술식 하나가 추가돼 있었다.
지그시 바라본 미르마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천운에게 물었다.
[이건 대체 뭐지?]
“술식이잖아요.”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니.]
페이지에 적힌…… 정확히 그려진 것은 어느 술식이었다.
여러 겹의 술식이 크고 작게 겹쳐진 9중의 술식.
그러나 미르마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게 왜 이 수첩에 있는 거야?]
술식 자체는 자신이 만든 게 아니다만 그 형성 방법이 온전히 미르마의 것이었다.
[애초에 9중 술식은 나 말고는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인간이 없을 텐데.]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갑작스럽게 든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과거에 풀지 못한 의문 중 하나였다.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지. 그때는 몰랐으니까.]
평범한 수첩에 초소형의 작은 고위 술식들이 새겨진 유물이다.
한데 이 점이 문제였다.
본래 처음부터 유물을 만들 생각으로 제작한 것이면 모르겠으나 평범한 물건을 유물로 바꾸는 과정 자체에 고도의 기술과 마법적 술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거의 멸망한 세상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그걸 할 수 있는 자는 유일했다.
[전부 내 술식과 지식, 기술이구나.]
“맞아요.”
천운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점에 미르마는 허탈한 한숨을 내뱉고 미소를 지었다.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거 같았기에.
미르마 또한 천운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첩은 널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이 수첩의 주인은 너라는 거지. 그때는 기억에 없었구나?]
“네. 근데 좀 빨리 알 수 있었어요. 샌디가 가르쳐 줬거든요.”
[그런가…… 그리고 이 하루마다 갱신되는 수첩에 오늘 날짜로 이 술식이 갱신된 거고?]
“무슨 술식인지 아시겠죠?”
[그래.]
고개를 끄덕인 미르마가 말을 이었다.
[샌디들을 구할 방법이네.]
“정말요!”
화들짝 놀란 메리헨이 벌떡 일어나며 술식을 바라봤다.
그러나 천운의 다음 한마디에 곧바로 풀이 죽었다.
“정확히는 완성된 술식이 아니죠.”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를 찾아왔구나?]
“이런 건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그리고 제 샌디도 부탁드리려고요.”
미르마는 다시 한번 수첩에 적힌 술식을 지그시 바라봤다.
천운은 그 페이지 한 장을 찢어 미르마에게 건넸다.
“부탁드릴게요.”
천운은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바로 가는 거니?]
“할 일이 많아서요.”
“어? 정말 가시게요?”
“응. 이 술식 잘 부탁해.”
“아…… 네!”
천운은 자리에 일어서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천운이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한국에 몸을 투명화시키는 고유 스킬을 가진 빌런이 나타났다는데…… 혹시 짐작 가는 게 있니?]
천운은 뒤돌지 않고 잠시 멈칫 기다렸다.
그대로 문을 열며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휘오오오오-
휘몰아치는 눈바람이 문 사이로 흘러들어온다.
천운은 문을 열고 나갔으며 눈보라가 천운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천운을 미르마는 그저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뭘 원하는 거니.]
* * *
시간은 또다시 빠르게 흘러갔다.
정말 한순간에 흘러갔다.
길영트 3학년은 그런 시기였다.
의철 또한 바빴으며 아이들 또한 각자의 길을 나서기 위해 바쁜 시기를 보냈으니.
톡- 톡-
그런 와중에 의철은 복잡한 표정으로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음…….”
이제는 졸업식을 앞둔 상황.
후에 길영트를 졸업하고 뭘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2, 3학년 시기에 의지랑 평생 먹고 살 돈을 모아 놨기에 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제는 내 미래를 걱정할 차례였다.
영웅, 길드, 트레져 헌터.
현재 가장 현실적인 것은 영웅이었다.
‘친목회로 들어와라.’
친목회의 한우성이 은퇴 전 의철에게 찾아왔다.
그는 길영트를 졸업 후 친목회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굳이 마다할 일이 아니긴 했다만 왠지 모르게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뭐…… 들어오라고 했다만 앞으로의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지는 않네…….’
‘네?’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우성의 말이었다.
마치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의철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일단 네 선택에 맡기지. 아직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
이제 그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
졸업 후에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일단 어딜 가도 대우받을 수 있는 아베타 등급을 받았다.
선택지가 더더욱 많아졌기에 고민이 많은 시간이었다.
그 고민은 다음 날 길영트에서도 이어졌다.
다음 날 곧바로 아이들에게로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내가 만들 길드에 들어올래?”
“응?”
“길드 만들 생각이거든.”
한설아는 그리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긴 생도 회장을 맡았던 경험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재능 있는 애들한테도 권유하고 있거든.”
“음…… 그래?”
“나중에 생각 있으면 연락해.”
그것이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수련을 계속할 거다.”
후웅!
훈련장에서 검을 휘두르던 윤시혁은 그리 말했다.
어찌 보면 가장 목표가 뚜렷한 녀석이 윤시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한, 이연은 가문을 이을 테고 질 로벤은 마탑에 들어간다고 했지?’
역시.
나는 그냥 영웅이 가장 어울리려나…….
“하…….”
의철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한우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음이 이어지고 곧이어 한우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했냐?
“네.”
-그래. 나중에 찾아가마.
삑-
“…….”
여전히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는 한우성이었다.
뭐, 자기가 찾아온다고 하니 기다리면 되겠지.
* * *
“그래. 들어올 생각이 생겼고?”
“네.”
설마 찾아온다고는 들었다만 당일 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전화하고 몇 시간 뒤.
한우성은 의철의 집으로 곧장 찾아왔다.
“뭐…… 네 능력으로는 일단 S급 영웅으로도 잘 활약하겠네. 친목회에 들어온다는 의미가 뭔지 알지?”
“진짜 S급이 된다는 거 아니에요?”
“그 기준은 우리를 말하는 거지 신입인 널 말하는 건 아니야. 협회가 그 이후로 기준을 싸악 바꿨거든. 그러니 이번 시대에 선정된 S급은 굳이 친목회에 들어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인정할 거다.”
“아…… 그럼…….”
“친목회가 왜 친목회인지 아냐?”
“아니요.”
의철은 고개를 저었다.
피식 웃은 한우성이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너만 알아 둬. 진짜 별거 아니야. 그냥 끼리끼리 논다 해서 친목회지.”
“어…… 예?”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한 S급들을 모아 만든 곳이 친목회지.”
“아…… 네.”
잠시 말없이 멍하게 바라보니 한우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친목회에 들어온다는 의미는…… 사실 별 큰 의미는 없어.”
“없다고요?”
“그냥…… 내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네가 제일 괜찮을 거 같네.”
한우성의 말에 의철은 멍한 얼굴로 벙쪄 있었다.
말 그대로 빈자리 채우기 식이었다.
하나, 그 말 자체가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들어갈게요.”
어차피 길게 생각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찾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피식 웃은 한우성이 말을 이었다.
“나중에 최아진에게 연락하마. 일단 친목회가 됐다고 여러 일이 생기는 건 아니야. 이제는 말이지…….”
“아…… 네…… 아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과거의 기자 회견이 뉴스로 방영될 때.
의철 또한 그 기자 회견을 티브이로 봤었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군가요?”
그 한 명.
숨겨진 단원이 궁금했다.
그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한우성이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묻냐?”
“어…… 음…….”
“허 참…… 가서 확인해.”
한우성이 돌아섰고 나는 조용히 귀가하는 한우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연락이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였으나 그 주인을 왜인지 알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