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166
삐리리릭-
옛날부터 그랬지만 일단 감이 좋은 편이었다.
소설을 읽고 느낀 기시감이 왜인지 모르게 그 녀석을 나타내는 느낌이었다.
정말 가끔 한 번씩은 받을 때가 있지만 안 받는 전화가 많았다.
그리고 천운 쪽에서 연락하는 일은 일절 없었고.
조금 섭섭하기는 하나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얘도 바쁘다는 증거겠지.
그래도 이 기시감은 한번 알아보고 싶었다.
“음…… 역시 안 받네.”
폰에서는 전화음만이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아마 또 바쁜 거겠지.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이 흘러 전화를 꺼 버렸다.
의철은 태평하게 누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운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때는 그저 걱정부터 앞섰지만,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학교에 떠도는 소문 중 하나가 있었다.
대재앙을 막은 생도는 6명이 아닌 7명이라고.
7명 중 나머지 한 명.
그 혼자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수왕을 상대로 버텨 낸 생도라고.
그리고 그 한 명은 대재앙을 막은 후 길영트를 그만둔 것이라고.
뭐 복귀 불가한 중상을 입어 그렇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긴 하다만 우리들 또한 정정하기에는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소설 쓰겠다고 그만뒀다고 설명하기에는 전자가 더 나았으니까.
그리고 1, 2학년은 모르겠지만 3학년 중 일부는 그 한 명이 누군지 대충 짐작하는 느낌이었다.
그 당시 자퇴한 생도가 그 녀석 한 명뿐이었으니까.
“후…….”
의철은 궁금했다.
그 명예까지 버리면서 천운이 가장 바라고 있던 게 뭔지.
천운은 아직도 무언가를 숨기는 느낌이 확-하고 들었다.
옛날부터 감 하나는 좋았고 그건 길이 칭찬한 장점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찾아가면 되지 않겠냐?]
“음…… 그렇긴 한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냐?]
“얘가 정확히 어디 사는지 몰라서…….”
[……너희 정말 친구가 맞느냐?]
저렇게 말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한민아 교관님의 집을 나온 이후 어머니와 같이 살다 독립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게 몇 달 전이다.
그 이후로는 연락도 없고 내가 연락도 안 했으니 천운이 정확히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놈이 어디 사는지 알 거 같은 놈이 한 명 있잖아?]
“어? 누구요?”
[한민아. 그 여자의 연락처는 모르나?]
“아!”
정확히 천운이 자퇴한 시기 한민아 교관 또한 길영트를 그만뒀다.
내가 알기로는 천운의 어머니와 어디 여행을 떠난다 했나?
여튼 일단 1학년 담임이다 보니 전화번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의철은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삑-
-여보세요.
통화 너머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민아 교관님이었다.
“아…… 저기…….”
-어머, 의철이구나?
“안녕하세요. 잘 계셨어요?”
-그럼. 그래서 무슨 일이니?
의철은 천운이가 사는 집 주소를 물어봤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알아낸 주소였다.
딱히 숨길 것도 아니긴 하다만.
“하…… 알아낸 김에 애들이랑 가 볼까요?”
[그러는 게 좋겠구나.]
어차피 휴일이고 밤을 새워서 조금 피곤하긴 하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몸이었다.
잠은 다음 날에 푹 잘 생각으로 의철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 * *
“천운이 집에 가 보자고?”
“집 주소를 알아냈거든.”
“음…….”
의철은 제일 먼저 한설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뜻밖의 말을 하는 한설아였다.
“소용없을걸. 나도 가 봤거든.”
“응?”
“나도 천운이 집에 한 번 가 봤다고.”
[……집 주소를 아는 놈이 제일 가까이에 있었구나. 의철아.]
의철은 살짝 벙찐 표정으로 한설아를 바라봤다.
한설아는 약간 화난 표정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가끔 찾아갔는데 항상 집에 없더라고. 너무한 거 아니야?”
“그, 그래?”
“하……. 전화는 몇 번 받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자기가 먼저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
이때쯤 되니…….
의철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감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 * *
결국 집에 찾아가 보는 건 포기했다.
한설아의 말대로 집에 찾아가 봤자 못 만날 확률이 클 거 같았기에.
의철은 길영트 숙소를 나와 자신의 집으로 가 하루를 편히 쉬기로 했다.
그 녀석에 대해 생각해도 머릿속만 뒤숭숭할 뿐이었다.
“어! 오빠!”
문을 열자 의지가 달려들며 거하게 반겨 주었다.
번쩍- 의지를 안아 든 의철은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
“응!”
“뭐 하고 지냈어?”
“어…… 학교 가서 공부하고 또…… 운동하고…….”
“잘 지냈네.”
의철은 싱긋 웃으며 의지를 데리고 거실로 향했다.
그러는 와중 의지가 한 말에 귀가 쫑긋한 의철이었다.
“아! 맞다. 저 오늘 천운 오빠 봤어요!”
“응?”
의철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그런 눈으로 의지를 바라보니 의지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의지가 말하길 분명 친구와의 하굣길이었다.
위이이잉!!
“응? 뭐지?”
시내 한복판을 지나 귀가 중에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뒤돌아선 의지였다.
3대의 경찰차를 포함한 5명의 영웅이 무언가를 쫓고 있던 것이 의지의 눈에 보였다.
검은 망토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한 괴인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 괴인을 쫓던 도중.
그들을 포함한 의지의 눈에 한순간 그 괴인이 사라졌다.
“어!?”
말 그대로의 뜻이었다.
괴인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며 사라진 것이다.
그 괴인을 눈앞에서 놓쳐 버린 영웅 중 한 명이 성을 내며 말했다.
“이런 젠장! 또 사라졌군! 귀신이야 뭐야!”
“아직 근처에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막내야.”
“예!”
영웅 중 한 명이 무언가 술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순간 술식이 완성되며 술식을 중심으로 둥근 원의 불길이 주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불길을 끝없이 퍼지기 시작했으며 어느 순간 멈췄을 때.
“끅! 끄윽! 오래는 못 버텨요!”
“조금만 버텨라. 아마 근처에…… 저기다!”
퍼진 나가는 불길 속 빈틈이 보였다.
영웅 중 한 명이 고유 스킬을 발동해 작은 단검 여러 개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단검은 살아 있는 듯이 날아들어 그 일렁이는 무언가를 쫓기 시작했다.
팅! 팅!
그러나 그 투명화한 괴인은 손에 쥔 무언가로 그 단검을 모두 쳐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 어!!”
튕겨 나간 단검 하나가 의지를 향해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던 그때.
팅!!
눈앞에 일렁이는 무언가.
어느 순간 의지의 앞에 선 괴인이 그 단검을 튕겨냈다.
“어…….”
의지는 멍하게 괴인을 올려다봤다.
동시에 기시감이 들었다.
괴인에게 느껴지는 마력.
과거에 딱 한 번 느껴 본 마력이었다.
그 마력이 너무나도 익숙하여 의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천운…… 오빠?”
움찔-
순간 당황하듯 일렁이는 괴인.
동시에 그 괴인의 존재감이 옅어지는 느낌이었다.
의지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까…….”
“네. 천운 오빠인 거 같아요.”
의지의 마력 친화력과 감응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의철이었다.
만약 정말로 의지가 느낀 마력이 천운의 마력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의지야. 미안한데 나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천운 오빠 보러 가나요?”
“……응.”
의지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어.”
의철은 싱긋 웃으며 의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약 의지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천운을 안 찾아가 볼 수가 없었다.
* * *
똑- 똑-
의지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곧바로 천운이 사는 아파트로 찾아온 의철이였다.
생각보다 평범한 원룸 아파트에 사는 천운이었다.
“음…… 아무도 없어요?”
문 앞에서 노크를 하고 기다렸지만 조용한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
끼이익-
한데 막상 열린 문은 옆집 문이었다.
그곳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그쪽에 사는 학생하고 아는 사이니?”
“아, 네…….”
“나도 몇 번은 문을 두드려 봤는데 대답이 없더라고. 그래서 좀 걱정이 되는구나.”
“…….”
“일단 연락이라도 되면 나한테도 좀 알려 줄 수 있겠니?”
“아, 네. 알겠습니다.”
아주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의철의 표정이 당황스럽게 변해 갔다.
의철은 혹시 몰라 힘으로라도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핑-
문을 힘껏 잡아당기자 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의철은 급하게 문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보인 광경에 경악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벽 전체를 빼곡히 뒤덮은 종이들.
지도를 포함한 사진들이 천운의 방 전체에 뒤덮어져 있었다.
[뭔가를 조사하고 있었구나.]
“네.”
유물을 포함한 던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그 유물의 행방을 포함한 영웅들의 사진.
대충 내용을 살펴보니 그런 내용이 빼곡히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누구세요?”
문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흠칫!
의철은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천운이 서 있었다.
* * *
“……그게.”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만난 천운이었다.
천운은 커피 하나를 타 주며 입을 열었다.
“걱정돼서 왔냐?”
“어, 그게 응…….”
“하긴…… 안 그런 놈이 문까지 멋대로 따고 들어오겠다만.”
후릅-
한입 여유롭게 커피를 훌쩍이던 천운이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본 의철은 천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건 뭐야?”
“아…… 이거.”
방을 둘러보며 싱긋 웃은 천운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내 소설 소재.”
“……소재…… 라고?”
“소설이 생각보다 잘 돼서. 너도 한 번은 들어 봤을 건데.”
천운은 근처 책상에 올려진 책 한 권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의철 또한 잘 아는 책이었다.
낙제 영웅의 꿈.
요즘 생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책이었다.
자신 또한 그 책을 읽었고.
“그거 네가 쓴 책이었어?”
“어때? 괜찮지?”
“어, 음…… 그게 학교에서도 유행하거든.”
“뭐…… 그쪽 나이대 취향을 맞춰서 쓴 거니까.”
“하…… 그러냐.”
의철은 왠지 모를 한숨이 흘러나왔다.
긴장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가 오해로 풀려서 그런가.
아무튼 몇 년 만에 본 천운은 생각보다 잘 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오랜만에 만나 봤으니 이것 하나는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만둔 거야?”
“……뭘?”
“학교.”
길영트를 그만둔 이유가 고작 소설 때문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설명하기 힘든 감이었다.
그리고 그 감은 너무나도 기이하게 잘 맞는 경우가 맞았다.
“정말 소설 때문이야?”
“…….”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 갑작스럽게 피식 웃은 천운이 자신이 쓴 책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정말 소설 때문이야. 잘 팔리잖아. 너도 한 번 읽어 봤어?”
“응? 응…….”
“재밌지?”
“어. 재밌긴 하던데…….”
“그리 큰 이유는 아니야.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이유지.”
“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의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에 만나긴 했지만, 막상 길게 얘기할 주제가 없었다.
“나 간다. 그리고 좀 연락하고.”
“그래.”
의철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 부순 문은 미안.”
“괜찮아.”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왠지 모를 불안함이 치솟았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라고 치부했다.
“나중에 보자.”
그리고 후에.
의철은 후회했다.
그때 천운을 잡았어야 했다고.
저 마지막 말을 믿었으면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