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66화 (166/176)

제166화

#165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대재앙으로부터 고작 1달이 흐른 뒤.

1월 초.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모아 이 사실을 미리 알렸다.

“뭐?”

의철은 막상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무슨 일이 있어? 천운아?”

한설아는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미친 거냐?”

여전히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듯한 말투로 말하는 윤시혁이 있었고.

“갑자기 왜…….”

“혹시 무슨 일 있어?”

암 가문의 업무로 바쁜 이한과 이연 또한 시간을 내어 와 주었다.

다른 애들과 별반 반응이 다르진 않았다.

“에엑!!”

이게 가장 의외였다.

질 로벤이 경악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내 할 일을 찾으려고 적성에 맞는 일을 말이야.”

그 말에 의철은 인상을 구기며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아이들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생도들을 기만하는 거니?”

“그러게. 대재앙을 막은 아이들이라고 소문이 파다한데.”

“으응? 음……. 아니, 그냥 뭐……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아이들도 알아서는 안 된다.

솔직히 알려 줘도 난감할 따름이다.

‘돌아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라니…….’

이제 슬슬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원인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난 그게 김천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뭐…… 애초에 들어온 몸도 김천운이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김의철이 진지하게 물었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무슨 일이라…….’

언더가 사라지고 절망의 탑을 공략했다.

마수왕을 막았으니 이제 이 세계를 위협하는 재앙은 사라졌다.

아마 이후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평화로운 세계가 될 것이다.

아이들 또한 고생 없이 2학년 3학년 학교 라이프를 즐길 거고.

단언컨대 어느 순간보다 완벽한 세계라고 나는 자신할 수 있었다.

“없어.”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에게 대답했다.

“그냥 하고 싶은 게 생겨서.”

“하고 싶은 거?”

“응.”

영웅 활동이 일절 없겠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야 아이들이 의심이 없을 테니.

“소설가나 해 보려고.”

“…….”

“…….”

“소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

뭐 그렇게 봐도 원래 내 직업이 소설가였다.

아마 아베타와 전혀 관련 없는 뜻밖의 일이 튀어나와서 놀란 모양이다.

“네가 소설을?”

“글을…… 쓸 줄 알았어?”

솔직히 아이들 표정만 봐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쓸 줄 알아.”

“그, 그래? 그래도 생도로 다니며 해도…….”

“아니, 시간이 없을걸.”

2학년부터 실습이 현저히 많아지는 길영트다.

굳이 소설로 핑계를 댄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니야.”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이 일은 아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민아 언니한테는 말해 놨어?”

“응. 허락해 주시더라고.”

“뭐, 뭐?! 어떻게!?”

“그냥 솔직히 말했지. 그리고…… 아마 이제 어머니하고 같이 살 거 같아.”

“아…… 그…… 잘됐네.”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한설아였다.

“뭐…… 그러게. 그럼 나중에 보자.”

천운은 뒤돌아섰고 아이들은 그런 천운의 등을 바라봤다.

의철은 왠지 모르게 천운의 등이 쓸쓸해 보였다.

* * *

서서히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저기…… 천운아?]

“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단다.]

미르마가 뭔가 말하기 힘들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나는 그녀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 거 같았다.

“메리헨이죠?”

[으, 응? 응…….]

그 말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렇게 반응해 주는 거 자체가 나를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이라고?]

“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흰색의 샌디가 메리헨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는 것을 미르마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내 생각도 그래. 의미 없는 말을 할 녀석은 아니니까.]

“네. 그러니까 메리헨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세요.”

[메리헨의 그 기운과 관련 있는 거 같구나.]

마력 대신 신성력이라는 기운을 가진 그녀였다.

아마 흰색의 샌디는 그녀의 신성력에 어떠한 희망을 품은 것이 분명하다.

“제 샌디도 아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할게.]

“부탁드릴게요.”

나는 미르마와의 연결을 끊었다.

반대로 미르마는 메리헨과의 연결을 다시 이었겠지.

“그것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메리헨과 여행이라도 떠날 생각이란다.]

“여행이요?”

[세상을 알고 싶다는 아이니까. 나는 그녀 옆에 붙어서 도와줄 생각이야.]

“그래요……. 그럼 나중에 연락하세요.”

[그래. 지금까지 고마웠어.]

그 전부가 각자의 길을 떠날 때.

나 또한 그 길을 찾아 헤맬 시간이었다.

* * *

[길영트의 미래, 6명의 생도가 재앙을 막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베타 협회의 협회장은 재앙을 막은 현 생도 6명을 S급 아베타로 선정.]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아이들의 성장이 포털 사이트에 흔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긴 1학년에 그 정도 피지컬이면 어딜 가든 주목받는 게 당연할 거다.

일단 재앙을 막은 아이들이니 당연한 거지만.

나는 흐뭇하게 마우스 휠을 내리며 아이들의 기사 내용을 읽고 있었다.

유언비어의 내용도 적혀 있긴 했지만 다 인기 있으니 생기는 소문이다.

아이들이 알아서 잘 감당하겠지.

“후…….”

다음은…….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을 할 차례였다.

나는 책상 서랍 안에 한 공책을 꺼냈다.

일전에는 이게 뭔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거 같았다.

고위 술식이 새겨진 정체불명의 수첩.

하루마다 기록이 떠올라 천운의 행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나는 그 행적을 따라 녀석이 마지막에 도달한 위치를 찾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샌디가 없는 지금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그곳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게 분명했다.

‘특성과 마력, 스탯을 길러야 해.’

참고로 요즘 어머니는 민아 누나와 세계 각국에 여행을 떠나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요즘은 집에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았다.

외롭다기보다는 할 일이 많아서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슬슬 움직일까.”

간간히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던전을 찾으며 유물을 얻고 스탯을 쌓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 그곳을 혼자 공략하려면 내 성장이 필수였다.

적어도 운만으로는 공략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니까.

내 생활은 규칙적으로 반복됐다.

아침에는 소설을 쓰고 점심과 저녁은 스탯을 쌓는 훈련과 던전의 공략이 계속됐다.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서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으며 여름이 시작되고 다시 가을이 된다.

어느 순간 1년이 지나고 아이들은 3학년이 됐을 쯤.

나는 하나의 단서를 찾아냈다.

김천운.

녀석에 관한 단서였다.

* * *

“요즘 걔는 뭐 하고 있을까?”

“그러게…….”

길영트의 수업이 끝난 오후.

김의철과 한설아는 길영트 근처 정원을 걸으며 가벼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와…… 한설아 선배님이다.”

“김의철 선배님도 있어.”

“실물이라니…….”

3학년 개학식을 마친 뒤.

드문드문 보이는 1학년 생도들이 보였다.

그들은 김의철이나 한설아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설아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주었다.

고개를 꾸벅- 숙인 1학년 생도들은 꺄악거리며 어딘가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김의철이나 한설아나 이런 반응도 익숙했다.

“걔가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의철이 말했다.

솔직히 1년 전 천운의 선택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말이다.

“그러게…….”

“소설은 잘 쓰고 있데?”

“응? 나도 잘…… 연락이 뜸하더라고. 너는?”

“나도 연락을 못 받았네…….”

돌연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나는 한설아였다.

“흥! 연락도 안 하고 잘 먹고 잘사나 보네.”

“정말로 그런 걸까나…….”

“자기가 보고 싶으면 먼저 연락을 했겠지!”

터벅- 터벅-

약간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걷는 도중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질 로벤이었다.

“로벤 씨.”

“아…… 안녕하세요.”

로벤은 흐뭇하게 싱긋 웃으며 무릎 위에 올려서 읽던 책 한 권을 급하게 등 뒤로 숨겼다.

행동은 의심스러웠으나 표정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산책하고 있었어요.”

의철이 대답했고 로벤은 고개를 끄덕인 채 미소 지으며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 그 책은…….”

그때 한설아가 그녀가 등 뒤로 숨겼던 책을 보며 눈을 똥그랗게 뜨기 시작했다.

“로벤도 그 책을 읽어요?”

“네, 네? 무슨 책이요?”

“낙제 영웅의 꿈이요!”

책의 표지를 분 순간 한설아가 흥분하듯이 외치며 말했다.

“저도 이거 정말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마치 배경이 이 길영트인 거 같아서요. 요즘 다른 애들도 이 책을 보던데 로벤도 보는군요!”

“아…… 네.”

로벤은 부끄러운 듯이 볼을 붉히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표정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의외로 생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책이라고 하니 그리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뭔데?”

“뭐?! 이걸 모른다고?”

“아니, 책은 자주 안 읽어서.”

“그, 그럼 이참에 한번 읽어 보실래요?”

로벤이 조용히 등 뒤에 숨겼던 책을 보여 주며 말했다.

막상 저렇게 반응하니 거절하기도 힘든 의철이었다.

“로벤 씨는요?”

“저는 다 읽었어요.”

“아…… 그럼 감사합니다.”

의철은 책을 받아 들고 그 뒤로 한설아와 질 로벤과 헤어졌다.

그 둘은 따로 할 얘기가 있는지 벤치에 앉아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의철은 조용히 숙소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사그락- 사그락-

한 페이지씩 책을 넘기며 뭔가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책이 눈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중독성이라 해야 하나?

내일 읽어야지…… 아니다 30분만 더 읽고 자자라고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헉!”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오늘은 휴일이었다.

의철은 휙- 책의 뒷면을 보며 저자를 찾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첫 페이지에 저자가 적힌 게 정상이다만…….

‘음…… 가명이네.’

책을 쓴 저자는 찾기 힘들었다.

“재밌네…….”

멀뚱멀뚱 놀란 눈동자로 책을 살피던 의철은 왜인지 모를 이 기시감이라 해야 하나 익숙함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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