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65화 (165/176)

제165화

#164

샌디가 나를 부른 순간.

나는 샌디를 바라봤다.

샌디 또한 나와 시선을 마주 보고 있었다.

후우웅-

어두운 흑막 같은 것이 내 주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빛이 일절 통하지 않는 이 어두운 공간을 둘러봤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어느 순간 내 옆에 있던 메리헨까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공간을 만들어 낸 주범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샌디…….”

나는 낮게 읊조리듯 샌디를 불렀다.

그러나 공간 자체는 고요하여 적막이 계속됐다.

그리고 그때였다.

공간 여러 곳에 작지만 밝은 빛의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은 서서히 커졌고 어느 순간 직사각형의 모니터 같은 것이 흑막의 표면에 에워싸기 시작했다.

픽-

티브이에 화면이 켜진 듯 여러 곳에서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주 선명하게 나오는 영상.

이제 보니 그것은 내가 모르는 영상이 아니었다.

내 기억이었다.

그것도 이번 1년간 샌디와 함께 보낸 기억들.

그 전부가 샌디와의 추억들이었다.

“정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천천히 샌디가 보여 주는 기억을 둘러봤다.

힘들었던 순간을 제외한 행복했던 순간만을 보여 준 기억들이었다.

어디까지 샌디의 기준으로 주관적인 기억이기에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별거 아닌 순간이 샌디에게는 행복했던 모양이다.

“샌디.”

나는 샌디를 불렀다.

내가 이 방법을 싫어했던 이유가 샌디와의 이별 때문이 아니었다.

저 마기를 전부 흡수하여 마수왕이 되는 순간.

샌디는 마경으로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 시간은 영원할 수도 있다.

녀석이 마경에서 벗어난 순간 녀석의 행동 자체가 재앙이 될 테니.

나와 샌디가 연결되었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지금 샌디의 감정은 행복해 보였다.

“정말로 괜찮아?”

말 그대로 감정을 가진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혼자서 고독하게 마경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ㅇㅇ.]

그러나 나는 스스로 자처하여 재앙이 되겠다고 하는 샌디를 말릴 수가 없었다.

아니, 막을 방법이 없었다.

나 또한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그러나 지금뿐이다.

나는 샌디가 가장 원하던 순간을 알고 있었다.

“샌디.”

[ㅇ?]

“사실 난…… 네가 알고 있는 천운이 아니야.”

아무리 김천운의 몸으로 김천운의 목소리와 행동을 흉내 내도 난 김천운이 될 수 없었다.

샌디와 김천운과의 인연을 내가 절대 대신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는 꼭…….”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마수왕이 죽은 순간부터 끝났다.

그러나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 녀석을 데리고 올게.”

[…….]

내 말이 끝나자 잠시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화면처럼 나오던 기억의 영상들이 전부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옅은 웃음으로 샌디에게 말했다.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샌디의 감정에서는 어떠한 동요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사실을 전부 들은 샌디는…… 마치 새삼스럽다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반응에.

“그래도 꼭 찾아올게. 그러니까 기다려.”

내 다짐이 담긴 말이었다.

사아악-

어두운 흑막이 개이기 시작했다.

주위를 가리던 흑막이 전부 사라진 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마기로 뒤덮였던 잿빛의 하늘은 사라지고 푸른 하늘과 태양 빛이 내리 찌기 시작했다.

“…….”

나는 멍하니 내 손을 바라봤다.

사아아-

내 손에 조금 남은 샌디의 일부가 바람을 타고 휘날린다.

손에 남았던 샌디의 감촉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샌디가…… 마법을 배우라고 했어요.”

저 하늘을 바라보던 메리헨이 말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샌디가 이유 없이 이런 방법을 선택한 건 아닐 거예요. 분명 저를 믿고 맡긴 거예요. 왜, 왜냐하면 샌디는 똑똑하니까.”

“……응.”

잿빛이 사라진 하늘.

환하게 빛이 내리쬐던 그날.

나는 하나의 결심이 섰다.

지금까지 목표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였다면, 이번에는 아직 내 소설에 쓰이지 않은 마지막 문장.

내가 원하는 엔딩을 만들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 * *

후우웅-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의철은 여동생 의지와 함께 어느 묘지 앞에 서 있었다.

“너무 늦게 찾았네요.”

의철 또한 그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발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먼저 찾아온 곳은 이곳이었다.

“인사드려 의지야.”

“아, 안녕하세요.”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는 의지였다.

의철은 미소 지으며 흐뭇하게 바라본 뒤 말했다.

“혹시 기억나니?”

“……응.”

자신을 구해 준 영웅이 누구인지 의지는 알고 있었다.

길을 잃어 미아가 된 자신을 구해 준 영웅.

그 영웅의 묘지 앞에 선 의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김천훈 아저씨…… 감사합니다.”

마지막 그의 얼굴을 기억하며 의지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또 올게요. 편히 쉬세요.”

“안녕히 계세요.”

매년 찾아오는 이곳에 무언가 씁쓸한 마음을 짊어진 채 의철은 다짐했다.

“의지야.”

“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아주머니한테도 가 보자.”

“네…….”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 의지였다.

자신 때문에 죽음 아버지 때문에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의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나중에라는 말을 붙였다.

우선 자신이 먼저 그녀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터벅터벅 발길을 돌리려던 도중.

“응?”

“네가 왜 여기 있냐?”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너무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

천운의 어머니와 김천운.

그 모자(母子)의 시선이 나를 한 번 그리고 시선을 돌려 의지를 한 번 보았다.

“아하, 너구나.”

그러고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의철은 울컥- 가슴 안에 무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지? 많이 컸네.”

“네, 네…….”

“잘 지냈니?”

“네…….”

다정다감하게 머리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을 의지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의지의 몸은 이미 얼어 있었다.

그리고 의지의 시선이 그 옆 천운을 향했다.

의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운은 그저 멀뚱멀뚱 의철과 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운이 의철에게 입을 열었다.

“동생인가 보네?”

“어? 아, 응.”

“그것보다 아는 사이였어요?”

다시 시선을 돌려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이신아는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구해 준 아이인데.”

“구해 준 아이요?”

천운은 다시 지그시 그 작은 땅딸막한 아이를 바라봤다.

계속 보다 보니 뭔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

그리고 기억이 났다.

모를 수가 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구해 준 아이인데.

“너였구나.”

흠칫-

그 한마디가 의지의 몸을 떨게 했다.

표정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이름이 의지야?”

“네.”

그 웃는 얼굴에 의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건가?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뜻밖의 말을 전했다.

“네 오빠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야.”

그 다정한 표정에 의지는 멍하니 천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뜬금없이 오빠를 칭찬했으니 말이다.

“의철이는 내 은인이거든.”

“아…….”

웬 탄식이 흘러나왔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갑작스러운 죄책감이 들어서일까.

갑자기 고개가 푹 숙여졌다.

끅끅거리며 눈물이 나왔다.

“죄송해요.”

“응?”

오히려 천운은 그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저 때문에 아저씨가…….”

어린아이의 죄스러움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정히 말했다.

“아버지가 원해서 한 일이야.”

“하지만 아주머니도…….”

“괜찮단다.”

이신아가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이 미소 짓고 있었다.

“여길 자주 찾아와 줬니?”

“네…….”

“고마워.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천훈 씨도 쓸쓸하지는 않았겠구나.”

그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다정하여 기쁘고 죄스러운 복잡한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미안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단다.”

이신아가 말했다.

“우리가 선택한 거고 후회는 없으니까. 그이도 그렇게 생각할 거란다.”

“끅…… 네…… 그리고 나중에 꼭 아저씨 같은 영웅이 될게요.”

“후훗, 천운 씨도 좋아하겠구나. 그래도…….”

이신아는 이 아이의 영웅이 된 그이의 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이를 너무 닮지는 말렴. 목숨은 중요하니까.”

“흑…… 네…….”

천운의 시선 또한 그의 묘지를 향했다.

‘제 아버지는 아니지만…….’

감정이 전해져 왔다.

천운의 몸이라서 그런지 이 아이의 다짐이 흐뭇하고 기분 좋게 느껴졌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때의 나는 아마 내가 아니겠지만.

터벅- 터벅-

천운과 헤어진 뒤.

의철은 의지를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좋은 분들이지?”

“응…….”

“그것보다 영웅이 꿈이었어?”

“네…… 아베타가 되고 싶어요.”

“그래?”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의철은 말했다.

“아주머니 말이 맞아. 너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본받지는 말고 존경만 해 줘. 더 많은 생명을 구하려면 그래야지.”

“네…….”

“그리고 만약 본받으려면…….”

힐끔-

의철은 등 뒤에 천운을 바라봤다.

“저 녀석을 본받아.”

“천운 오빠요?”

“그래. 내가 본 아베타들 중에 가장 강한 녀석이거든.”

“한우성 아저씨보다요.”

“응. 만약 영웅 중 가장 사람을 많이 구한 영웅이 있다면 저 녀석일걸.”

멍하니 뒤돌아선 의지는 천운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너그러운 마음 때문인지 그 등이 넓어 보였다.

* * *

내가 곧바로 해야 할 행동은 간단했다.

“뭐?! 뭐라고 했냐? 천운아?”

눈앞의 한우성.

그에게 먼저 말한 이유는 그 후폭풍을 도와 달라는 의미에서 였다.

“길영트를…… 자퇴하겠다고?”

동시에 친목회도 그만두겠다는 말도 전할 겸.

“친목회도? 아니, 나도 슬슬 은퇴 준비를 하려고 했다만…… 아니 나보다 은퇴를 먼저 하면 어떡하냐?”

“할 일이 있어서요.”

“꿈이 영웅이 아니었냐?”

“이제는 아닌데요.”

“……세상에.”

한우성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얹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김천운이 길게 말을 안 해도 간단하게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수단이었군.’

자신의 죽음이라는 미래를 알고 있는 녀석이다.

녀석에게 강해지는 것은 수단이었고 그래서 길영트에 입학했다.

그리고 친목회에 들어오는 것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한 이용한 것뿐.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에 대해 감탄하는 동시에 통쾌했다.

“하하하! 그런 거였군. 친목회가 한 꼬맹이의 수단이 될 줄이야.”

“네?”

“인정하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어차피 네 덕분에 나도 편해질 수 있었으니까.”

정확히 32살에 회귀하는 영원은 이제 끝났다.

아마 2년 뒤, 일어났어야 할 재앙이 이번 연도에 몰아서 시작됐다.

불행이라면 불행이지만 막상 해결을 하고 나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은퇴 시기도 빨리 잡아야 할 거 같고.

“거, 그 뭐냐. 원래라면 너를 새로운 리더로 만들고 싶지만 더 적합한 놈이 있네.”

“의철이죠?”

“그래. 그니까 우리 손잡고 은퇴하자고.”

“하하, 은퇴하는 건 아니에요.”

“뭐?!”

한우성의 눈썹 한쪽이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럼 뭔데?”

한우성은 의문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천운은 이 대답만 할 뿐이었다.

“이제부터 할 일이 많아서요.”

그 말이 한우성에게 의문스럽게 다가왔지만 한우성은 입을 열지 못했다.

아직 소년이 운명처럼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하…… 내가 은퇴하고 딱 한 번은 도와주마.”

“고마워요.”

“뭐…… 내가 더 고맙지.”

기나긴 시간.

원대하며 불가능한 목표.

그것을 끝내준 게 눈앞의 소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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