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64화 (164/176)

제164화

#163

천왕의 몸에 다수의 실선이 새겨진다.

화르륵-

재생의 불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생이 되지 않는다.

툭- 쿵!

지면에 떨어진 무언가.

소리가 들린 천왕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자신의 날개.

이제는 감각조차 희미해져 가며 몸이 산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아아-

떨어진 왼쪽 날개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간다.

날개뿐만이 아니다.

후두둑 떨어지는 몸의 일부가 노면에 닿는 동시에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나는 뒤에서 천왕이 사라져가는 그 순간순간을 계속 지켜보았다.

적어도 내 소설의 마지막 최종 보스인 녀석이었으니.

사아악-

거대했던 몸짓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 순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천왕의 마기로 인해 어둡고 칙칙했던 하늘 사이.

그 선으로 선명하게 나누어진 하늘이 보였다.

그 단면을 통해 내리쬐는 빛이 의철을 비추었다.

의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년이 일어선 순간.

마지막 내 소설의 재앙이 사라졌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멍하니 의철을 바라보니 새삼 알아 버렸다.

나, 아니 김천운은 죽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을

“천운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의철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던 생각이 일제히 멈췄다.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살아남았네.”

내 입에서 새삼스럽게 흘러나온 혼잣말.

언더를 시작으로 절망의 탑과 마수왕으로부터 나는 살아남았다.

“정말 끝이네…….”

몸이 뒤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한계를 넘어 무리한 반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끝내지 못했던 소설을 내 손으로 끝낸 것이다.

“정말이지…….”

텁-

누군가 내 몸을 지탱하듯이 어깨를 잡아 바로 세워 주었다.

어느 순간 내 뒤로 다가온 한우성이었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한우성…….

그 황당한 표정 속에 옅은 웃음기가 보였다.

나는 아마도 지금 한우성의 심정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한우성이 느끼는 희열과 감동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빠르잖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거쳐 회귀를 해 왔다.

“정말…….”

자신이 인생을 바쳐 회귀해 온 세월과 비교해 너무 빠르게 종말을 막아 냈다.

고작 1년.

그사이에 자신이 지금까지 바라오던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언더가 사라졌고 마수왕이 사라졌다.

검은 모래는 더 이상 세상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도록 원했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

마음속에 공허했던 무언가가 파르륵-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뚝-

정신을 차렸을 때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한우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고생했다. 김의철, 김천운. 그리고…… 고맙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한우성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 * *

“……흐리네.”

어두운 하늘.

모든 것은 하늘을 헤집고 다닌 천왕이 남긴 마기였다.

나는 병원 침상에 누워 창문을 통해 그 하늘과 무너진 건물들을 바라봤다.

고작 하루라는 시간 안에 벌어진 참상들이었다.

“그래도 끝났으니 됐잖아.”

내 옆에 나란히 침상에 누워 있는 의철이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 참상 중 몇 개는 네가 만들었잖아.”

“너도 똑같잖아.”

내 바로 앞 침상에서 사과를 어설프게 깎던 한설아가 내게 말했다.

다행히 한설아는 가벼운 경상으로 입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긴 한데…….”

“생각이 많군.”

한설아의 옆에 있던 윤시혁이 대답했다.

윤시혁은 한설아의 과도를 휙 뺏은 뒤 대신 사과를 깎아 줬다.

한설아가 사과를 깎는 방법이 영 이상하긴 했다.

한설아는 뽀로통한 눈으로 윤시혁을 노려봤다.

“저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반대편에 있던 이한이 대답했다.

얘들은 부담스럽게 내 주변에만 모여 있었다.

바로 옆에 김의철이 있긴 하다만…….

어느 순간 윤시혁이 일어나 접시에 담은 사과를 김의철에게 넘겼다.

“오! 고마워.”

“김천운.”

그러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저것까지 어떻게 할 생각이라면 오만하다.”

“음…… 근데 내 사과는…….”

“이 정도 결과면 만족해라.”

“…….”

나는 윤시혁이 말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 한 곳에 어느 정도 걱정이 돋아나고 있었다.

언더가 사라지고 마수왕이 죽었다지만 아직 마경이 존재하고 마수와 던전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마기량은 아마 연간 올라가는 마기량을 단번에 기하급수적으로 올릴 것이 분명했다.

마기가 있는 곳이 곧 마수의 보금자리이다.

나는 저 무수한 마기들에 의해 미칠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 정도의 마기라면 아마 제 4의 마경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국 중심에 말이다.

[그건 걱정 마라.]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여왔다.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병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다가왔다.

그녀의 옆에 있던 미르마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미르마…… 그리고 메리헨하고 모래?”

메리헨이 천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손에는 흰색 슬라임 같은 것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샌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데요!”

휙!

손에 든 흰색 모래를 내미는 그녀였다.

또 다른 샌디.

흰색의 모래가 내게 말을 걸었다.

[김천운. 나는 이 세계에 오고 난 뒤 마기로 인해 끼치는 영향을 수없이 많이 봐 왔다. 그중 하나가 너희가 흔히 말하는 마수왕이다.]

“마수왕은 너희 세계에서 넘어온 거잖아.”

[두 녀석은 맞지만 한 녀석은 틀렸다.]

곧이어 흰색의 샌디가 마기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와 천에 마기를 퍼트린 마수 ‘지왕’. 녀석은 이곳에서 생겨난 마수왕이다.]

“……지왕이?”

[그렇다. 그리고…… 아마 이 나라는 곧 마경으로 변할 거다.]

샌디의 말에 나는 잠시 눈을 껌뻑거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샌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 마기로는 부족해.”

[아니, 가능하다. 이 정도 농도라면 마수왕이 다시 생길 가능성이 존재한다. 너는 모르나 보군.]

“모른다고?”

[마경이 마수왕을 만든 것이 아니다. 마수왕이 마경을 만든 것이지. 그리고 지금의 마기로도 충분히 또 다른 마수왕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럼…….”

[그래.]

모래가 마지막 말을 이었다.

[저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마수왕이 다시 나타나겠지.]

나는 천연한 표정으로 저 하늘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안이 있다.]

그때 흰색의 모래가 내게 입을 열었다.

[막을 방법은 존재하고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방법이 존재한다고?”

[그래. 그리고 이걸 네게 알려 주는 이유는…… 그저…….]

힐끔 메리헨을 본 모래가 말을 이었다.

[너와 그 모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흰색의 모래가 내 손목의 모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첫 번째로 네게 말하마 김천운. 메리헨을 부탁한다.]

모래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는 검은 모래. 네 협력이 필요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 무언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이 녀석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깨닫고 말았다.

“반대야.”

나는 흰색의 모래가 말을 끝까지 잇기 전에 말을 잘랐다.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절대 허가 못해.”

[이 땅이 마경이 된다고 해도 말이냐?]

“메리헨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거야.”

메리헨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스럽게 천운을 쳐다봤다.

병실의 모두가 비슷한 반응이었다.

샌디와 가장 오래 있었던 나다.

그렇기에 샌디의 능력과 특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흰색의 모래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다.

나는 흰색의 모래를 노려보며 말했다.

“차라리 여길 버리고 떠나는 게 나아.”

[정말로…… 그 정도냐?]

모래의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 방법밖에 없는지 말이다.

[해왕과 천왕이 활개 치던 곳이다. 그다음은 어떤 마수왕이 탄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생각이 고뇌로 바뀌었다.

내가 쓴 소설이니 분명 다른 방법을 조금 더 고민하고 강구하면…….

툭-

내 손등에 닿은 검은 모래.

검은 손목 밴드에서 뻗어 나온 검은 모래가 다정히 내 손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선택했나 보군.]

[ㅇㅇ.]

[이제 내 차례다.]

“……메리헨은?”

[그녀의 설득은 이미 끝났다.]

나는 시선이 메리헨을 향했다.

그녀는 조금 씁쓸한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하네요. 저와 강하게 연결돼 있으니까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 저는 괜찮아요.]

“…….”

나는 대답 없이 내 손목의 검은 밴드를 바라봤다.

“정말 괜찮아?”

샌디에게 물었다.

샌디의 표정이 보였다.

무언가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 * *

[준비는 됐나?]

병원 옥상에 선 나와 메리헨의 두 손에는 슬라임 형태의 모래들이 있었다.

각각 흰색과 검은색.

그 모래들은 저 멀리 태양을 가린 검은 구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 전부가 마기다.]

모래가 말을 이었다.

[방법은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나와 샌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저 먼 하늘을 바라본 뒤 샌디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또한 그녀의 모래처럼 샌디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샌디가 어디에 있는지 무사한지는 굳이 눈앞을 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샌디.”

샌디의 시선이 천운을 향했다.

“정말로 할 거야?”

[ㅇㅇ.]

“…….”

고작 1년의 시간.

그 짧지만 긴 시간에 정이 붙은 녀석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샌디의 마력과 내 특성을 합치고도 저 마기들을 전부 없앨 수 없으니 말이다.

[이미 방법은 알겠지만 간단하다.]

후우웅-

바람이 불어왔다.

곧 샌디들의 모래 알갱이들이 바람을 타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기를 전부 흡수하여 우리가 마수왕이 되는 거다.]

흰색의 샌디가 생각한 방법은 간단했다.

마수왕이 생기기 전에 그들이 마기를 흡수하여 마수왕이 되는 것.

그러나 마수왕이 된 모래들이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본래 있던 이 세계의 마경 중 한 곳에 거주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혼자는 불가능하지만, 저 녀석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하다.]

후우웅-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온다.

점점 사라지는 샌디의 몸.

여전히 샌디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천운아.]

그때 샌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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