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162
머리를 시작해 몸, 다리, 날개가 짓눌린 듯이 노면에 처박힌 천왕.
나는 녀석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아저씨!”
한우성이 다가왔다.
다가온 한우성은 생각보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손들이 녹아내리고 있군.”
제3의 손들이 타들어 사라지고 있었다.
“과연 그런 건가…….”
과거와 달리 녀석 또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괜찮겠지.
피식- 한우성은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고생했다.”
두 소년에게 그리 말하며 한우성은 움직였다.
“그리고.”
화악-
한우성의 등 뒤에서 열린 3개의 게이트.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의 인물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아직 전부는 못 막았으니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 같은 놈들만 데려왔지. 크롬벨이 고생 좀 했을 거야.”
그 모두의 얼굴을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한설아와 윤시혁, 이한과 이연, 질 로벤.
그 아이들이 나와 의철에게 달려왔으며.
“천운아!”
“여기 있었냐? 김의철.”
“세상에…… 저건 대체…….”
“저것도 괴물이야?”
미국의 영웅 카스퍼와 제니퍼가 괴물을 보며 인상을 꾸겼다.
“히익! 저건 뭐야? 카스퍼!”
“……저 녀석이 마지막일 거다. 뒤에서 지원해라 제니퍼…… 응?”
후우웅-
갑작스럽게 저 하늘 위에서 풍압이 일었다.
그 풍압이 천왕을 향했으며 쿵!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강화두와.
“형님 말대로 정말 괴물이군.”
최아진이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너는 힘들 수도 있겠네.”
그리고 익숙한 생김새.
있을 리가 없는 그것이 보였다.
“……검은 모래? 설마…….”
“와아! 샌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트 너머로 한 소녀가 넘어와 방방 뛰며 달려왔다.
그 뒤에는 미르마 또한 따라와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하…… 계속 오겠다고 떼를 써서.”
한설아가 한숨을 쉬었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전력이 될 거야.”
“응?”
사아아악-
최아진과 함께 온 검은 모래들이 때가 벗겨지듯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력과 모래의 마력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과거에서 보았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샌디!”
[오랜만이다…… 메리헨.]
“정말……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메리헨의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구나.]
모래는 생각했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를 잊고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 세계에 도달했으며 그녀와 만났다.
그러나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게 행복이로군…….]
그저 지금은 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즐길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맞지 않는다.]
“응? 샌디?”
[이 상황을 끝낸 후에 다시 길게 얘기하지.]
흰색의 모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돌연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어느 순간 사람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한 여인이었다.
여인의 현상을 띤 거인이 천왕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설아에게 말했다.
“그치?”
“어…… 응.”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왕의 뒤편 무수한 아베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늙은이들도 슬슬 끝나가나 보네.”
4대 가문의 전투원들
막상 가주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마 전투원의 일부를 이곳에 보낸 듯하다.
“후훗…….”
나는 갑작스럽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였구나.”
나는 고개를 돌려가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런 거였네…….’
내가 바라고 원했던 이야기.
만약 이 세계로 넘어오지 않고 끝까지 소설을 썼다면 이런 장면을 보지 않았을까?
“뭐 해 천운아.”
그 옆에 피식 웃던 의철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있던 모양이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주위에 모두가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네.”
나는 의철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제 끝내야지.”
내 소설의 마지막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 *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꼬맹이.”
한 꼬맹이가 다가오며 내게 말했다.
제니퍼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 수라면 없을 수가 없죠.”
이 정도 수라면 불가능한 게 더 말이 안 되니.
“일단 녀석의 특징을 말해라.”
한우성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왕의 특징을 말했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안 돼요. 그리고 민아 누나처럼 흑염을 사용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녀석의 몸은 불사예요. 무슨 공격이라도 녀석이 반응할 수 있으면 그대로 통과할 거예요.”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들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불사인데 쓰러트릴 방법이 있다고?”
한우성이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손짓했다.
“저기 보이시죠?”
녀석의 날개.
지금은 재생되고 있지만 김의철이 상처 입힌 녀석의 날개였다.
“천왕이 반응했어도 의철의 검을 막지 못했어요.”
“과연…… 알겠다.”
이 한마디에 한우성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한우성은 곧바로 의철을 불렀다.
“김의철.”
“네.”
“아직 움직일 수 있겠나?”
한우성의 말에 의철은 목을 돌린 뒤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네. 아직 충분히 움직일 수 있어요.”
“그래. 알겠다.”
화르륵-
곧이어 천왕의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한우성의 제3의 손을 전부 태워 버린 것이다.
“최아진!”
“네!”
최아진의 염력이 천왕을 향했다.
번뜩- 눈이 커지며 최아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염력까지 태워 버리다니…….”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 염력이었다.
그러나 천왕의 주위에 보호막처럼 형성된 열기가 최아진의 염력까지 태워 버린 것이다.
“정말로 이놈의 검이 저놈에게 닿았다고?”
그 상황을 바라보던 한우성이 내게 물었다.
“네. 닿아요.”
나는 확신이 담긴 표정으로 한우성에게 말했다.
“알겠다. 그럼 우리가 할 건 하나뿐이군.”
그들 모두가 자세를 잡았다.
이 세계 최상급의 영웅들이 한 소년의 지원을 위해 전투를 준비한 것이다.
“머리를 노려.”
나는 의철에게 말했다.
의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무조건 앞으로 달려 모두 너를 지원해 줄 테니까.”
-크르르…….
천왕의 머리 위로 또다시 예의의 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탁!!
동시에 의철이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어느 순간 줄어들었던 장검이 대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게 또한 늘어났는지 의철이 박차는 아스팔트마다 거미줄 모양으로 균열이 생기며 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화르륵-
동시에 천왕의 주위에 도깨비 불같은 것이 여러 개 형성됐다.
의철은 그럼에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흡!”
강화두가 허공에 정권을 내질렀다.
곧이어 풍압이 일었고 천왕 주위에 흑염들 일부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캉! 콰쾅!! 팡!!
가문의 전투원들이 뒤쪽에서 무수한 공격들이 퍼붓기 시작했다.
그 원거리 공격 전부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 퍼부었다.
화르륵-
곧이어 남은 흑염의 일부가 날카롭게 변하여 주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후웅-
흰색의 거인.
그 손이 쇄도하는 흑염을 쳐내기 시작했다.
“샌디!”
후우웅-
일순간 거인이 된 샌디가 천왕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대로 불길이 치솟았고 몸이 통과됐으며 샌디의 모래 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샌디는 곧장 손을 다시 모래 형태로 변환시켰고 카스퍼가 진공참을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런…… 정말 말 그래도 불사로군.”
재생의 불꽃이 있는 이상, 녀석이 모든 공격을 인지하고 있는 이상 전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압!”
한설아의 검 끝에서 불꽃의 소용돌이가 치솟았고 윤시혁은 보이지 않는 검격이 옆 건물을 향했다.
쿠쿵- 쿠쿠쿵!
건물이 천왕이 있는 방향으로 기울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건물 전체에 술식이 그려졌다.
로벤이 그린 술식 ‘강화’였다.
그 모두의 최선이 전부 녀석의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해.
전부가 최선을 다한 공격이 퍼부어졌다.
단 한 명.
천왕을 벨 수 있는 유일한 소년을 위해.
“샌디.”
샌디가 내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마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샌디의 몸.
마력 일부가 내게로 넘어오는 것이다.
쿠쿠쿵!
뇌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찢어지는 듯한 천둥이 들려오는 뇌운이.
사람들의 시선이 저 하늘 검은 구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대하군.”
‘천벌’이라는 마법을 모르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크기가 기막힐 정도로 거대했다.
“저 뇌운을 제어하는 게 가능하냐? 김천운.”
한우성이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가능해요.”
애초에 제어나 조종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가 바라는 대로 뇌운은 목표를 향해 내리칠 것이다.
파지직!!!
첫 번째 낙뢰가 내리쳤다.
순간 천왕이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지만 아직은 아니다.
녀석에게 크게 충격을 주지 못했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형성한 마법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두 번째 낙뢰.
곧 이어 천왕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화르륵-
입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파앙- 터져 나오는 브레스가 하늘의 뇌운을 걷히게 했다.
그러나 천왕의 몸에 전류가 감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충분히 도움이 됐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의철은.
녀석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우웅- 우우웅!!
팔테인이 더욱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밝은 빛을 띠는 팔테인의 거대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의철은 밑에서 위로 검을 휘둘렀다.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자세와 검로가 이어졌다.
밑에서 위로 천왕의 왼쪽 다리를 시작해 어깨에 닿기 시작했다.
후웅-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또다시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여러 차례의 검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후우! 훙! 훙!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의철의 검이 움직였다.
팔테인은 밝은 빛의 섬광을 그리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녀석의 검이 여러 갈래로 선을 그려 나갔다.
“하아! 하아!”
쉬지 않고 휘두르던 팔테인의 검로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느려져 가는 검격.
무아지경으로 휘두르던 검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 너는 나를 현현한 것이 고유 스킬이라 생각했었지.]
‘네…….’
[그런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오히려 내가 원했던 사념이 스킬로 형태화하여 네게 각인된 모양이구나…….]
무아지경에서 벗어난 순간.
의철의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다.
“하아! 하아!”
고개를 숙인 채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털썩- 무릎이 땅에 닿았다.
“스읍! 하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다 길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이 조금 미안하더구나. 네 고유 스킬은 이것인데 말이야.]
의철은 고개를 들었다.
저 거대한 괴조의 몸에 여러 갈래의 수많은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은 선명하게 천왕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의철은 웃음이 나왔다.
“아니에요, 길. 길 덕분에 검술을 배울 수 있었잖아요.”
쿠쿵!!
녀석의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재생하려고 시도해도 수많은 선으로 인해 감당이 안 된 것이다.
“전부 길 덕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