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159
저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크레인은 천운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게 녀석이 말한 그 화염인가 보네.”
확실히 녀석 주위로 몰려드는 마기가 범상치 않았다.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기운 녀석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곧 천왕의 몸 내부에 변화가 생긴 것을 크레인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크레인의 시선은 다시 천운에게로 옮겨갔다.
‘흠…….’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거래에 불과하다.
그 일부를 조금 돕기 위해 유물을 건네긴 했다만…….
녀석이 천왕을 쓰러트리는 데에 관심사를 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 문에 다다랐나?’
자신의 예상이다.
이 세계에 힘으로 그 문에 도달한 인물이 있다면 한우성이.
그리고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오랜 세월 살아 높아진 지능 스탯으로 인해 그 일부를 본 자신이.
이 세계에 그곳에 도달한 인물은 한우성과 자신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헛다리일 수도 있겠군…….’
그저 확실치 않지만, 자신은 그 문을 진리의 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 모든 지식이 그 문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크레인은 궁금했다.
저 소년이 어떻게 천왕의 4번째 불꽃을 알고 있는지.
자신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곧이어 흥미가 감돌기 시작했다.
‘나서지 않으려 했지만…….’
* * *
시작은 지왕이 그 과정은 해왕이 그리고, 마지막 종말의 끝은 천왕이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을 천왕은 가지고 있다.
‘이제 슬슬 나오겠네.’
멸마의 불.
생명, 흑염, 재생 세 가지 기원의 불이 하나의 불을 탄생시킨다.
그렇기에 재생의 불이 가진 특성 또한 사라져 녀석은 불사가 아니게 되지만 아직 멸마의 불을 막을 방법은 생각해 놓은 게 없었다.
‘만약…….’
나는 생각해 봤다.
만약 내가 다시 글을 쓴다면…….
이후의 스토리를 쓴다면 내가 어떻게 이 글을 쓸지.
녀석을 쓰러트리는 방법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녀석의 불사가 사라진 건 확실해.’
무너져 내리는 건물 사이로.
녀석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천왕의 붉은 적안이 더욱 진하게 물들며 몸의 불길이 더욱 거세게 작열하기 시작한다.
몸의 내포된 모든 불이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런 거였나 김천운?”
그때 천운의 귓가에 어느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가 근처에 열린 작은 게이트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크레인?”
“확실히 저 정도면 날 죽이는 게 가능하겠네.”
크레인이 연 게이트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크레인은 지팡이를 든 채 천운에게 말했다.
“내 마지막은 분사라……. 뭐 상관없나?”
크레인이 터벅터벅 천왕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그냥 죽기도 뭐 하고…….”
쿵!
크레인이 지팡이로 내리찍은 바닥이 쩌저적 갈라지며 천왕을 향했다.
갈라진 지면 사이로 검은 게이트가 여러 개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아래.”
쿠쿵!!!
게이트를 통해 솟아오른 날카로운 빙벽이 천왕을 향했다.
그러나 천왕은 요지부동이었다.
움직일 필요도 없이 그의 근처에 닿기도 전에 빙벽이 녹아 버린 것이다.
“엄청난 열기군.”
녀석 주위로 뜨거운 열기가 보호막처럼 형성된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이 김천운.”
천운이 크레인을 불렀다.
나는 녀석의 뜻을 곧장 간파하고 술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려진 마법의 술식은 천벌.
‘전류는 통하겠지.’
활짝-
동시에 녀석이 날개를 펼쳤다.
재생의 불이 끝난 녀석이 굳이 지상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을 테니.
천운은 녀석이 하늘로 비상하게 둘 생각이 없었다.
4번째 불을 발현한 녀석을 절대 하늘로 날게 할 생각은 없었으니.
멸마의 불은 녀석 자체가 태양이 되는 것이다.
쿠쿵!!
곧 천왕과 나를 가리는 뇌운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크레인이 술식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네놈의 그 이상한 힘을 쓰면 저 열기를 뚫을 수 있을 거다.”
“알고 있어.”
특성을 발현시켰다.
크레인의 말대로 반마의 특성이라면 잠시 녀석의 열기를 뚫을 수 있을 테니.
“큰 게 올 거다.”
쿠쿵- 파지직-
크레인의 마력이 더해져 더 없이 커지는 뇌운이 보였다.
녀석 또한 낌새를 눈치채고 열기를 더욱 강하게 발현시켰다.
닿는 것은 무엇도 녹여 버린 그 열기로 인해 주변의 건물들은 이미 불에 타기 시작하며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저것조차 녀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천운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녀석조차 감당 안 되기에 하늘로 비상해 멸마로 이루어진 태양을 지상으로 낙하시킬 생각이니.
쿠쿵…… 파지직!!
뇌성이 강하게 울린다.
이 정도면 됐겠지.
-크오오오오!!
녀석이 날갯짓을 하며 뇌운에 벗어나려고 할 때.
파지직…… 콰쾅!!!
벼락이 내리쳤다.
그 한순간의 일격은 정확히 녀석을 향해 내리쳤다.
전류로 인한 뜨거운 열기 따위가 녀석에게 충격을 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회가 생겼다.
녀석이 전류로 인해 잠시 거동이 마비된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크레인!”
“알고 있다.”
크레인이 내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게이트를 열어 줬다.
천운은 망설임 없이 그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게이트 너머는 녀석의 바로 위.
사아아아아-
샌디의 검은 모래알들이 천운의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망치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 모래.
천운은 마투법을 발동해 몸을 강화시킨 뒤 그대로 녀석의 등을 망치로 내리치려 했다.
후우웅-
그때였다.
녀석의 불길이 다시 되살아난 것은.
‘위험하다……!’
곧장 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 또한 낙하하는 상태에서 저것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샌디!”
망치로 변했던 샌디의 모래가 흩어져 천운을 옆으로 쳐냈고 곧바로 녀석의 바로 옆에 떨어진 천운은 샌디를 이용해 벽을 만들었다.
샌디의 벽 앞에는 4개의 방벽 마법을 발동하는 동시에 반마의 특성을 부여했다.
큰 것이 온다는 것을 인지했기에 할 수 있던 판단이었다.
후우웅!!
파앙!!
녀석의 불길이 거세지는 순간.
뜨거운 열기의 충격파가 일대에 번지기 시작했다.
멸마의 불 일부를 녀석이 방출한 것이다.
파직- 팡!
첫 번째 방벽이 부서지고 동시에 두 번째 세 번째가 연이어 깨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방벽조차 금이 가며 얼마 안 돼 부서지고 마지막 남은 벽은 샌디뿐이었다.
나보다 더욱 많은 마력을 지닌 샌디다.
나는 그 일부를 그저 반마의 특성을 발현시켜 뒤덮을 뿐이었다.
후우웅…….
천운의 뒤쪽에 무너지는 건물들과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녀석의 붉은 눈은 여전히 천운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먼지가 개이고 천운이 서 있던 자리를 제외한 곳곳에 불길이 솟아오르고 지면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말 그대로 불바다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하하! 사실이었군.”
크레인이 말했다.
그는 방금의 충격파로 인해 팔 하나를 잃은 듯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내게 말했다.
“재생되지 않는다! 김천운. 네 말이 사실이었어.”
녀석의 불길은 내 목숨에 닿는다.
재생되지 않는 이 팔이 그 증거다.
“녀석의 불은 태우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는군. 내 저주까지 태울 줄이야…….”
“그래.”
크레인은 드디어 확신이 섰다.
아마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죽일 녀석은 저 괴물이라는 것을.
“한데…… 나 또한 도와주고 싶긴 한데…….”
힐끗 천운을 바라본 크레인.
천운 또한 방금의 공격으로 한계에 치달았다.
“나는 상관없다만 너는 죽고 싶지 않을 거 아니냐?”
“그러게…….”
상상 이상의 강대한 힘이다.
샌디의 물리력에 맡기기에는 녀석의 불꽃이 너무 거슬렸다.
‘버틸 수 있을까…….’
만약 샌디의 모든 마력에 반마의 특성을 부여하면 버틸 수 있을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가 그저 샌디의 모래들이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니.
“이봐 김천운.”
그때 크레인이 말했다.
“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녀석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곧바로 손을 통해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크레인의 마력이었다.
“나는 마기로도 충분하다.”
크레인이 말했다.
애초에 마인은 마력 또한 사용이 가능하니 마기를 마력으로 대신 쓸 수 있었다.
“하…… 나는 포기하련다. 어차피 네놈을 돕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거래지 않냐. 죽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는 됐다.”
크레인이 고개를 들었다.
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일단 이 정도면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마. 어디 부족하냐?”
“포기한 거야?”
“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해라. 난 할 만큼 해 줬다.”
크레인이 천왕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르르- 울음소리를 내며 천왕이 다가오는 크레인을 주시했다.
“크흐흑. 이런 짐승 새끼가 더럽게 세네.”
크레인은 얼굴을 구기며 조소했다.
동시에 천운의 귓가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어라. 김천운.
천운의 시선이 크레인을 향했다.
크레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기회를 주마.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해라.
크레인의 손에 뜨거운 화염이 솟아오른다.
한데 그 화염의 색이 푸르게 타오르고 있었다.
타오른 화염이 크레인의 지팡이 끝 수정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하……X발. 나도 오래 살았나 보군.”
자결이라니…… 그것도 돕는 셈 치고 호구처럼 죽는 거라니.
뭐 어차피 죽는 방법은 이것이 유일하니.
크레인은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온몸에 화마가 번지기 시작한다.
몸이 타오르고 있었으나 이미 고통에는 익숙하다.
-궁금한 게 있다. 김천운.
타오르는 불길 속 크레인은 마지막 사념이 천운에게 전달됐다.
-왜 나를 도와준 거냐? 나를 이용하려고 알려 준 정보냐?
‘뭔…… 반은 그렇긴 한데.’
녀석의 마지막 순간이다.
천운은 솔직하게 생각했던 것을 녀석에게 말했다.
‘미안해서…….’
-미안……? 미안하다고? 허참…… 어이가 없네. 이 세계에서 나보다 지능이 높은 인간은 없을 텐데…… 네 말이 이해가 안 된다 말이지.
피식- 왠지 모르게 크레인이 웃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뭐……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녀석이 그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던 이유.
왠지 모르게 조금은 알 거 같았다.
‘도달했었을 수도 있겠네…….’
녀석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스탯 행운으로 말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제 상관없었다.
-고생해라.
그렇게 크레인은 마지막 말을 남긴 뒤 녀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저 지금은 발을 멈추지 않고 녀석을 향해 걸었다.
손에 쥔 지팡이가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이 치솟는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한데 천왕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죽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상한 인간.
그 인간이 남겨 둔 지팡이의 수정이 타올라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위이이잉!!
동시에 수정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크게 섬광을 내뿜던 수정은.
콰쾅!!!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천왕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