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158
“흠…… 고요하구나…….”
너무나도 적막하고 고요하다.
서해안 해변에 들이닥치려는 마수들의 낌새는 느껴진다.
수는…… 적어도 1천 정도의 숫자.
검성 가문의 당주 윤성훈이 느낀 마기의 반응은 그 정도였다.
“한 씨 자네도 느껴지나?”
“그래. 느껴지는군.”
검은 장발과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중년 사내가 대답했다.
그는 어느 바위 턱에 앉아 한쪽 다리를 반대쪽으로 꼰 자세로 손에 턱을 괸 채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적안 가문의 현 당주 한진안이었다.
“아마 이게 끝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깔끔한 검은 점장과 포마드 스타일의 인상이 날카로운 중년 남자가 말했다.
현 대마법사 중 한 명인 질 리반이었다.
그의 거대한 지팡이 끝에 달린 푸른 수정이 계속해서 빛을 내뿜고 있으나 막상 그의 마법을 발현시킬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 세 명이 이상을 느낀 건 그때였다.
“흐응? 윤씨 할아범도 느꼈나?”
“나도 느꼈네. 리반 질. 자네도 느꼈지?”
“일단…… 수가 늘어났군요……. 두세 배도 아니고 다섯 배가량으로.”
늘어난 마수의 수도 수이긴 하나 그들의 움직임이 이제는 확연히 보였다.
질 리반의 눈이 좁혀졌다.
“아무래도…… 해왕이 죽은 거 같습니다.”
그들 세 명이 뒤돌아섰다.
가주들의 등 뒤로는 무장한 가문의 아베타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진안은 바위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소리쳤다.
“들었지. 다들 준비하거라!”
“““옙!!!”””
윤성훈이 자신의 장검을 뽑으며 저 멀리 범람하는 마수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힘들지도 모르겠군…….”
* * *
“대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캉! 킹!
카스퍼는 검격을 날리며 불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마치 대해의 깊은 바닷속 마수들이 몰려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옆에서 전투를 치르던 한우성이 말했다.
“해왕의 배는 던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던전?”
“그래. 녀석은 움직이는 던전 중 하나지. 1급부터 8급까지의 해양 마수들과 공존하고 있었을 거다.”
무수한 마수들이 해왕의 배에 내포되 있었다.
그것은 해왕의 포식이 아닌 공존이었고 해왕의 의지로 배 속에 있는 모든 마수에게 의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해왕이 죽기 전 마지막 사념의 전달이 예상 갔다.
쿠쿵!!
갑작스럽게 지면을 뒤흔드는 지진이 발생했다.
저 멀리 한우성의 눈에 저 거대한 모습이 비쳤다.
검은 거인.
아마 모든 마수는 녀석을 향해 달려드는 거겠지.
“괴물이군……. 녀석이 모든 마수왕을 쓰러트리겠어…….”
“뒤처리는 우리가 해야지.”
후우웅!!!
동시에 빛을 내뿜는 검격의 파공음이 들렸다.
한우성과 카스퍼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김의철이었다.
특이한 점은 언제나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던 김의철의 검이 뭔가가 조금 작아진 것이다.
김의철은 그런 자신의 검날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한우성을 바라봤다.
그런 의철이 한우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부탁이 있어요.”
“응?”
한우성이 의철을 보며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신기하네…….’
사방이 몰려드는 마수와 전투를 치르는 아베타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 의철의 전투를 보지 못했지만 아마 무언가 그 전투 속에서 변화가 생긴 듯하다.
“가고 싶은 데가 있습니다.”
“왜? 도망가게?”
“아니요.”
의철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의철의 시선이 저 먼 하늘의 무언가를 향했다.
“친구 좀 도와주려고요.”
“…….”
그 말에 한우성은 가만히 의철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녀석의 마력을 느꼈다.
얼마 되지도 않은 마력을 가지고 뭘 하려고…… 녀석의 말을 철회하려는 순간.
‘응?’
“알겠다 가 봐라.”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의철이 곧바로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옆에 카스퍼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우성에게 물었다.
“아니, 뭐…… 이런 위험한 전투에서 애들을 빠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방금 자네는 더 위험한 곳으로 보낸 거 아닌가?”
“제 목은 지가 사리겠지.”
한우성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녀석의 고유 스킬을 느꼈기 때문이다.
캉!
동시에 전투를 치르며 생각하고 있었다.
강 약 약 강이다.
괴물 같은 힘을 가진 마수부터 그저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마수까지.
1급부터 8급까지의 마수들이 몰려드는 공간이다.
‘아직 7급 이상은 안 된다…….’
띵!
머릿속의 울리는 무언가를 알리는 메시지.
이 전투에서 자신의 스탯이 천천히 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더 하면…….’
* * *
“일단 하늘의 녀석을 떨어트려 놔야지.”
천운은 하늘에서 고고하게 불을 뿜으며 주위를 맴도는 천왕을 향해 말했다.
“방법은 있나?”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원래는 불가능하지만…….”
녀석의 내뿜는 불을 잠시 꺼트리면 녀석을 하늘에서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것이 가능하다.
“크레인. 저 녀석 머리 위로 게이트를 여는 건 가능해?”
“……가능하다.”
천운의 바로 옆 게이트가 열렸다.
동시에 크레인이 물었다.
“김천운…… 너는 분명 내 저주를 푸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래. 가능해.”
“녀석의 4번째 불꽃은 뭐지?”
“…….”
나는 녀석의 마지막 불의 특성을 알고 있다.
아마 설정대로의 힘을 지닌 불꽃이라면.
“크레인.”
나는 크레인에게 말했다.
“불사의 저주가 녀석의 불꽃에 닿으면 한순간에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너를 포함해서 전부가.”
“크흐흐, 괜찮군.”
그 말에 크레인은 조소를 흘리며 천운에게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웃음기를 싸악 없앤 크레인이 물었다.
“참으로 신기하군……. 너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지?”
“……굳이 알 필요는 없잖아?”
동시에 거인으로 변했던 샌디가 흩어지며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천운은 크레인에게 건네받은 목걸이를 쥔 채 샌디를 뒤따랐다.
그리고 혼자 남은 크레인은 천운을 보며 생각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지식을 알고 있다라…….”
고작 몇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것이 크레인의 마음에 걸렸다.
다른 스탯은 몰라도 지능이 100을 초월한 크레인만이 할 수 있는 의심이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밀리 또한 모르고 있던 정보였다.
‘설마…….’
그때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기억.
자신이 궁극의 문턱 앞에 막혔을 때 느꼈던 기묘한 공간과 감각.
저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공간.
모든 세상의 상식을 알 수 있을 거 같던 그 문이 생각났다.
“도달한 건가…… 녀석은…….”
* * *
후웅-
녀석의 뜨거운 불길이 느껴졌다.
샌디가 몸을 가려 막아 주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부탁해 샌디.”
샌디의 몸에 닿은 순간 내 몸의 마력과 샌디의 마력이 링크되기 시작한다.
그 특성 또한 따라가면 샌디의 몸에 내포된 모든 마력이 내 반마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서서히 내 반마의 특성이 물들기 시작한다.
‘아주 잠시 동안만…….’
아주 작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녀석을 하늘에서 떨구는 방법은 간단했다.
천왕은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할 거라고 자신하고 있을 거다.
이유야 당연히 녀석의 몸에 장대하게 피어오르는 불길 때문일 것이다.
샌디조차 녀석에게 다가간 순간 몸이 녹아내릴 수 있으니.
하지만.
“됐어 샌디!”
[ㅇㅇ!]
샌디의 몸에 기묘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은색의 빛을 띠는 마력.
샌디의 몸이 흩어져 녀석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
녀석의 포효가 들려왔다.
달라붙기 시작한 샌디의 모래가 녀석에게는 거슬릴 테니.
‘사그라든다.’
한순간.
녀석의 불길이 사그라들고 환하게 불타오르는 것이 반복됐다.
천운은 목걸이를 목에 건 채 비상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타이밍을 노려야 돼.’
그때 한순간.
녀석의 불길이 한순간 꺼졌다.
천운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녀석에게 달려들었고 녀석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샌디의 일부가 검은 대검 한 자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칼이 울리기 시작했다.
크리티컬의 특성을 지닌 기다란 대검이었다.
후웅!!!
녀석의 왼쪽 날개를 향해 휘두른 칼날이 정확히 녀석의 날개의 반을 베어 냈다.
‘됐다!’
-크오오오!!!
녀석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다시 녀석의 불길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불꽃!’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민아 누나의 전투에서 이미 드러낸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녀석이 꺼낼 불꽃은 세 번째 불꽃밖에 없었다.
녀석은 낙하 중에 세 번째 불꽃을 꺼내 들었다.
재생의 불꽃.
어차피 저 치유 자체를 천운에게 막을 힘은 없었다.
그저-
쿠쿵!!!
녀석이 거대한 빌딩 옥상에 떨어졌다.
무너져 내리는 빌딩 사이 흙먼지로 가려졌으나 녀석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 *
흙먼지가 개였을 때 장대한 불길에 가려진 녀석의 형체가 뚜렷하게 보였다.
새의 형태를 띤 검붉은 몸에 뚜렷한 적안과 5개의 꼬리.
나는 소설 속 설정에서 녀석을 모든 불의 주인이라고 만들었다.
-크오오오!!
천왕의 포효와 동시에 천왕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나를 발견한 것이다.
꺼졌던 불이 검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른 찐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불.
저 불꽃을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민아의 꺼지지 않는 불꽃 ‘흑염’이었다.
“샌디 막지 말고 전부 피해!”
나 또한 녀석의 불길을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반마의 특성으로 막을 수 있으나 그 전부를 막기에는 마력 소모가 심할 터다.
후우웅!
녀석은 입에서 토해 내듯 흑염의 브레스 발산했고 나는 곧장 바로 옆 건물을 등지고 브레스를 피해 냈다.
불길은 오래 지속됐다.
아마 이 건물을 전부 태워 버릴 속셈이겠지.
녀석의 불길이 전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온 건물과 나무에 불이 붙은 동시에 어느 순간 녀석의 머리 위에 둥근 원형의 고리가 형성됐다.
‘이런…….’
고리가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짓보다 크게 커지는 고리에서 검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대로 지면으로 내려앉은 고리.
그 고리에서 흑염의 벽이 솟아올랐다.
녀석이 나를 가두기 위해 쓴 기술일 터.
하지만 녀석의 생각은 짧았다.
‘샌디.’
흩어진 샌디의 일부가 피어오르는 흑염의 벽 일부를 덮기 시작했다.
반마의 마력이 녀석의 마기로 된 불길을 막은 것이다.
나는 곧바로 그곳을 향해 달렸고 고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웅!
빠르게 좁혀지는 고리.
고리 안의 모든 건물이 뜨거운 불꽃의 고리에 갈려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쿠쿵!!
무너져 내리는 건물 사이.
천왕의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직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