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157
불과 30분 전.
“저 녀석이었나…….”
쿠쿵! 쾅! 청벙!
거센 파도가 몰려왔으며 해변 전체를 뒤흔드는 작은 울림이 이어졌다.
깊은 바닷가에서 퍼지는 진동이 해변을 울린 것이다.
“정말 괴물이군…….”
한우성은 녀석의 전투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물속은 해왕의 영역이 분명할 터.
그러나 녀석과 상대하는 그 모래는 한우성의 눈으로 봐도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깊은 바닷속 그저 한우성의 눈에 보이는 장면 중 하나는.
6개의 눈이 달린 고래 형태의 해왕이 보였다.
녀석의 벌어진 아가리에서 수만 마리의 마수가 쇄도했으며 검은 모래…… 아니 검은 거인은 혼자서 그 해왕을 상대하고 있었다.
콰직- 부글부글- 첨벙!!
어느 순간 거인의 손이 해왕의 아가리를 향했다.
동시에 반으로 갈라져 두 마리가 된 검은 거인이 서로 반대편으로 잡아당기며 해왕의 아가리를 찢기 시작했다.
한우성은 녀석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을 죽일 있는 방법은 없었군.’
그것 자체는 확신할 수 있었다.
거인을 죽일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어.’
말이 통하지 않는 괴물이라 생각했다만…….
그때였다.
크오오오오!!
괴수의 단말마가 연이어 퍼졌다.
결국 반이 갈라진 해왕의 시체가 수면 위로 두둥실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대체 저건 뭔지…….”
“해, 해왕이잖아…….”
바다의 마수왕, 해왕의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길드를 포함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아베타들이 그곳을 바라봤다.
무수한 마수들이 바닷속을 헤엄쳐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채.
“정신 똑바로 차려! 해왕이 죽은 걸로 끝나지 않는다!”
한우성이 소리쳤다.
누구보다 녀석을 많이 죽여 본 한우성이기에 다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해왕은 죽은 후에가 더욱 귀찮았다.
배 속에 가둬 둔 수많은 마수들이 몰려올 테니.
스륵- 스르륵-
해변가를 기어 나온 샌디는 곧장 천운의 위치를 찾았다.
천운 또한 샌디에게 해왕을 맡기고 어딘가로 향했던 것이니.
아마 남은 마수들은 그들끼리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ㅇㅇ?]
천운의 위치를 감지한 샌디였다.
샌디의 몸 위에서부터의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저건 뭐야 대체…….”
밀리의 내면에 공포심이 돋아났다.
이 빌딩 전체를 감쌀 정도의 거대한 거인의 손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
밀리의 시선이 천운을 향했다.
“너야……?”
의문이 돋아난 순간.
쿵!
그 거대한 손이 밀리의 앞을 내리찍으려 하자 밀리는 곧바로 막을 발동했다.
콰콰쾅!!
10겹을 쌓은 막이 허황하게 부서지고 멈추지 않던 손은 밀리를 향해 다가갔다.
텁-
“윽!”
손에 잡힌 밀리가 신음을 흘리며 마기를 터트렸다.
동시에 밀리의 몸에서 검은 벌레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천운은 둥근 돔 형태로 방벽 마법을 발동했다.
캉! 카캉!
벌침이 달린 벌레들이 방벽에 막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나는 더욱 가까이 밀리에게 다가갔다.
샌디의 손에 잡힌 밀리가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 네 유물인가 보지?”
“그래.”
“하하하! 정말이지…….”
밀리의 시선이 그 거대한 손을 따라 거인의 몸으로 향했다.
“이런 게 있었구나…….”
미지의 영역이 눈앞에 있었다.
마수왕을 뛰어넘은 강대한 힘을 가진 주제에 지금껏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 아 안타까워…….”
밀리는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만약 네가 너보다 빨리 만났다면…… 더욱 잘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럴 일은 없어.”
꽈아악-
샌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밀리는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며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없다고?”
그와 중에도 밀리는 피식거리며 천운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너도 어디서 한 번쯤은 이런 모래를 본 적 있을 거야.”
“모, 모래? 그게 무슨.”
“밀리. 유물을 좋아하지?”
천운의 말에 밀리는 그저 대답 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밀리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서, 설마…….”
“맞아. 그 모래야.”
던전에 들어가 유물을 얻을 때 항상 유물 밑에 깔려 있던 검은 모래.
“그게…… 이 모래였다고? 하핫, 하하하!”
밀리는 실성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눈앞에 이 거대한 힘을 지닌 유물이 있었으니.
“하아…… 빨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밀리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마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아래로 떨군 느낌이 체념한 듯 보였으나 천운은 밀리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건 알아?”
마지막의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천왕이 누굴 따라다니는 걸까?”
천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고개를 휙 돌려 창공을 맴도는 천왕을 볼 수 있었다.
밀리의 말대로 누군가를 뒤쫓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서 가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하하!”
밀리는 실성한 듯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동시에 샌디의 모래들이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천운은 뒤돌아섰고 밀리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 웃음소리는 천운이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됐다.
천운은 질끈- 주먹을 쥐며 급하게 천왕이 떠도는 그 근처로 향했다.
* * *
“하아, 하아!”
한민아는 숨을 몰아쉬며 저 먼 하늘을 날고 있는 천왕을 노려봤다.
화륵- 사아아!!
8개의 둥근 불더미가 운석처럼 그녀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큭!”
옆으로 뛰어들 듯 점프한 한민아는 간신히 그 불더미를 피할 수 있었다.
녀석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펄럭이던 날개에서 건물 표면을 녹일 정도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건물 뒤편으로 숨은 한민아가 간신히 녀석의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한민아는 그대로 벽에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서서히 눈이 감겨 왔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으니.
이미 마력을 전부 다 쓴 그녀로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크오오오오!!
저 멀리서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해변에서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천왕이 있는 동시에 그 많은 마수를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적어도 지원이 올 동안은 시간을 벌인 셈이었다.
“설아는 잘 있으려나…… 천운이는.”
뭔가 쓸쓸한 생각과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쇄도하는 저 화염구를 피할 수 없다고 확신해서 그런 걸까?
이게 자신의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
막상 떠오르는 것이 설아였고 천운이었다.
“그래도…… 언니가 깨어났으니까.”
그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시겠지.
한민아는 그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이제는 보지 못할 그리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후우웅-
감긴 눈으로도 밝힐 정도의 빛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 화염구가 코앞까지 다가온 모양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응?’
한순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주위의 모든 불이 꺼진 듯한 그곳에 한민아는 눈을 떴다.
“죽은…… 건가.”
“아니요.”
후우웅!
그 공간의 작은 구멍 사이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위를 가리던 검은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소년의 손목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천운아…….”
“누나. 괜찮으시죠.”
천운은 저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붉게 타올라 검게 묽든 천왕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 있으세요. 누나. 금방 다녀올게요.”
쿠쿠쿵!!
천운의 손목에 있던 샌디가 몸을 부풀렸다.
무수한 모래들이 사방에 흩어졌고 어느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거대한 거인 하나가 어느 순간 나타났으며 저 하늘을 고고하게 날아다니는 천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인의 어깨 위를 탄 천운 또한 녀석을 노려봤다.
그리고 일어난 상황을 지켜보던 한민아의 눈은 크게 떠져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던 한민아는.
“후훗.”
입가에서 자그마한 미소가 흘러나왔으며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언니의 말대로였다.
지금의 천운이라면 맡겨도 되겠지.
* * *
‘자 그럼…….’
녀석을 어떻게 상대하냐인데…….
허공을 맴도는 녀석을 상대로 지금의 샌디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일단 녀석을 저 하늘에서 떨어트리는 것부터 생각해야 할 때였다.
녀석을 상대할 적합한 인물이야 두 명 정도 있었지만.
우성 아저씨는 지금 마력이 거의 없어 아마 힘들 것이고 최아진 회장님 또한 아마 이곳에 오고 있으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애초에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녀석의 몸 전체 뿜어져 나오는 검은 불길.
나는 민아 누나에 특성의 기원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누나의 검은 화염이 녀석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3마리의 마수왕 중에 가장 뚜렷한 특성을 지닌 존재가 저 천왕이었다.
그렇기에 샌디의 힘만으로는 녀석에게 상대가 안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윽!”
저 떨어진 거리에서 녀석의 불길이 느껴졌다.
총 4개의 불을 가진 천왕의 화염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 또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후웅-
그때였다.
천운의 바로 옆에 게이트가 생겨난 것은.
‘……크롬벨?’
그러나 게이트에서 나온 인물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크레인?”
크레인의 등장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싸우러 온 건가?”
“아니.”
그러나 크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거래를 하러 왔다.”
“거래?”
“그래.”
그 말과 동시에 크레인은 내게 푸른색 십자가 형태의 목걸이를 건네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겠지.”
나는 건네받은 목걸이를 살폈고 곧 그 목걸이가 무엇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날개의 마법사 카텔론의 유물이다. 아마 이 목걸이를 찬 상태라면 부유가 가능할 거다.”
“거래라고 했지?”
“그래.”
고개를 끄덕인 크레인이 말을 이었다.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줘라.”
“……저주를 푸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나는 너무 오래 살았어…….”
“……알겠어. 그래도 할 말이 있어.”
“뭐지.”
천운은 저 하늘의 천왕을 올려다봤다.
“너보다 오래 살았어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
“나보다…… 오래 살았다고?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려 줄게.”
천운의 말에 크레인의 눈이 희번덕 떠졌다.
“그…… 방법이 존재한다고?”
“그래. 천왕이 4번째 불꽃을 꺼내면 가능해.”
“불꽃이라니 무슨 말이지?”
나머지 3개의 불꽃이 합쳐진 멸마의 불꽃.
멸망의 시작이 지왕이었다면 그 끝은 천왕이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