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155
게이트를 넘어온 천운이 느낀 감각은 공명이었다.
마경이 아님에도 울려대는 공명은 분명 눈앞의 해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녀석들이 내뿜는 마기일 것이다.
‘두 마리?’
거기에 더해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이 눈에 띄었다.
바다와 하늘을 통틀어 느껴지는 마기에 천운은 현재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재해의 괴물 두 마리가 지금 한국에 있는 것이다.
“위급하긴 하군.”
카스퍼가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검은 무언가들을 보며 말했다.
그 전부가 마수라는 것을 알아차린 카스퍼가 한우성에게 말했다.
“해왕의 해일은 두 번 온다고 들었다만?”
“그 노인네들이 막고 있을 거다.”
“거기도 여기랑 상황은 다르지 않겠군.”
“아마 여기보다는 아니겠지만…….”
깊은 해저 속 거대한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저 수많은 마수의 주인인 녀석이 이곳으로 오고 있던 것이다.
“크롬벨.”
한우성이 크롬벨을 불렀다.
기진맥진한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한우성을 바라봤다.
“천왕은 어디 있지?”
“한민아가…… 유인했어.”
“……한민아가?”
“그녀가 위험해.”
“알겠다.”
한우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안심한 그녀가 털썩 쓰러지며 기절했다.
이 많은 인원을 데려가기 위해 게이트의 입구를 크게 넓힌 대가였다.
“후…… 한민아 혼자서는 천왕을 감당 못 할 거야.”
“그럼 어떻게…… 인원을 분배하나?”
“김천운.”
한우성이 천운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고개를 휙 돌려 천운을 찾기 시작했다.
“……얘는 어디 갔어?”
천운이 보이지 않았다.
어딜 봐도 보이지 않던 그때 이한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저기…….”
“응?”
“천운이 말을 좀 전해 달라고 해서요.”
“무슨 말?”
“먼저 가 보겠다고…….”
“…….”
그 말에 살짝 당황한 한우성이었지만 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생각 없이 행동할 녀석은 아닌 놈이니.
“그리고…….”
이한이 손을 들어 무언가를 보여 줬다.
둥근 형태의 검은 모래.
샌디였다.
* * *
“……시작이야.”
거대한 빌딩 옥상에서 경치를 즐기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붕괴되는 건물과 차오르고 들끓기 시작한 마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제 곧.”
밀리가 말했다.
곧이다.
이제 곧 이 한국을 시작으로 마기라는 그것이 세계로 쭉 뻗어 번져 나갈 것이다.
“곧이야.”
밀리의 환희가 담긴 눈빛이 마기를 퍼트리는 천왕과 해왕에게 향했다.
녀석이 창공을 검게 물들일 것이고 해왕이 그 깊은 수면을 마기로 가득 메울 것이다.
마기의 세계화.
그것이 실현되는 동시에 자신의 원대한 꿈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잊힌 세계의 유물이 몰려올 거야.”
밀리가 밝혀낸 이론이었다.
세계 마기 수치는 연간 높아지는 동시에 던전의 규모와 희귀 유물의 수가 증가했다.
동시에 제작자의 이름이 적힌 유물들.
곧 밀리가 추리한 생각이 절망의 탑 등장으로 인해 정답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뜻밖의 이득이었다.
지금은 존재를 감춘 조직원 한 명의 말로는 과거의 세계.
현재 유물이라 불리는 기적의 산물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며 또는 제작되는 세계로 왔었다고.
“분명…… 그 세계는 존재해.”
어떠한 연유로 사라진 그 세계가 던전을 통해 넘어온다는 가설.
그 가설은 이제 확신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아…….”
그리고 곧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고양감을 방해한 녀석이 나타났으니.
“너는 알 듯싶은데?”
밀리는 그에게 들으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과연 그 절망의 탑에서 보여 주는 잊힌 세계는 어떤 곳인지.”
그렇기에 대신 들어간 녀석에게 조사를 부탁했지만…….
녀석의 소식이 끊겼다.
“녀석이 어떻게 된 건지는 알 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세계에 대해서는 정말로 너무 궁금했거든.”
고개를 돌린 밀리가 나를 바라봤다.
“네가 대신 말해 줄래? 김천운?”
“……밀리.”
나는 그저 말없이 밀리를 노려봤다.
“어머, 알려 주는 거야?”
그녀의 진심으로 호기심이 담긴 물음.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세상 전체를 마기로 가득 메우면 멸망한 세계의 모든 유물이 넘어온다.
“밀리.”
내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매섭게 노려보던 눈동자에 힘이 풀리고 낮게 가라앉는다.
그 이상한 반응에 밀리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나는 밀리에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미래를.
“내가 원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
아래로 내려갔던 고개를 다시 들어 밀리를 바라봤다.
그 확신이 담긴 눈빛이 밀리를 향했다.
밀리의 눈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응? 왤까? ‘내가 막을 거라서’…… 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려는 건 아니지?”
밀리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천운에게 말했다.
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샌디를 통해 밀리의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마기로 가득 찬 세상에 네가 바라는 미래는 없어.”
“……무슨 확신이야?”
“너는 결국 그 미래를 감당 못 할 거야.”
“내가 묻잖아! 무슨 확신이냐고.”
밀리가 바라는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 멸망한 세계와 같은 결말을 이룰 뿐.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샌디가 보여 준 천운의 과거.
그 수많은 회차 중 하나.
그때의 김천운은 언더와 협력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언더의…… 그녀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다.
“너는 너무 오래 살아 있었어. 밀리.”
그녀는 일찍이 죽었어야 할 인물이다.
내 개입으로 바뀐 스토리에서 살아남은 빌런.
“나는 너를 죽일 거야. 밀리.”
“하하, 나를?”
내 발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는 밀리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곧 내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을 형성했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막의 고체화.
지금의 밀리는 그것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막은 단단해지며 날카로운 칼이 되었고, 곧 단두대처럼 천운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천운은 그저 몸을 옆으로 돌려 막을 피해 냈다.
캉!
“응? 신기하네…….”
보이지 않는 막이다.
더구나 마기의 기운은 완벽히 차단했는데.
그런데도 그걸 감지하다니.
“밀리.”
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갔다.
동시에 밀리의 발아래에 마법의 술식이 형상화되며 빛을 뿜어냈다.
“응? 뭐야?! 어떻게?!”
언제 어떻게 이 정도 술식을…….
곧 술식을 피해 옆으로 뛰던 그녀였지만 형성된 마법진의 변화를 본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술식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건물 옥상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그 술식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너에겐 그 정도의 마력은 없을 텐데…….”
밀리의 말대로 내게는 이 정도의 술식을 형성할 마법과 지식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아닌 샌디에게 있을 뿐.
난 샌디의 마력을 빌렸고 샌디가 기억하는 술식을 받았다.
후우웅!
밀리의 바로 옆 게이트가 생겨났다.
밀리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지금은 너랑 놀아 줄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미안.”
게이트에 한 발짝 걸음을 옮기는 밀리.
게이트에 들어간 뒤 얼굴만 쏙 내민 밀리가 말했다.
“다음에 봐~ 네게 궁금한 건 많으니까.”
그렇게 뒤돌아 밀리가 사라지려는 순간.
나는 말했다.
“괜찮아.”
“……?”
“다음은 없으니까.”
“하! 뭐래니.”
그 말이 어이없던지 밀리가 피식 웃으며 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사라락-
천운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뚜벅- 뚜벅-
게이트 너머로 들어간 밀리는 뚜벅- 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위험한 녀석이 됐네…….”
밀리는 지금의 김천운을 생각했다.
과거와 확연히 비교되는 그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진행 중인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천운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 뭐야?”
어느 빌딩의 지하 공동.
밀리와 킬라, 크레인이 그곳에 서 있었다.
밀리는 킬라를 향해 물었다.
“가일은 어디 있어?”
“한우성과 대치했어. 결과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뭐?! 하…… 내가 그렇게 도망가라 말했는데.”
“별수 있나? 한우성을 본 순간 눈이 돌아갔더구먼.”
“뭐…… 그래도 할 일은 하고 죽었네.”
밀리는 그 옆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앉아 있는 크레인을 향해 말했다.
“크레인. 네 할 일이 많아질 거야. 준비해.”
“어이, 밀리.”
크레인이 고개를 들었다.
크레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굳은 눈빛으로 밀리에게 물었다.
“누굴 데려온 거냐?”
“응?”
“어이, 숨지 말고 나와라.”
그 말과 동시에 공간 자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흔들리는 공간은 사람의 형상을 띄었고 마치 색이 번지듯 서서히 그 형체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소년을 본 순간.
밀리의 눈이 희번덕 떠지며 경악하기 시작했다.
“기, 김천운?”
“하…… 내 게이트를 통해 같이 들어왔나 보네.”
천운을 보자 킬라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하하! 신기하네……. 어떻게 밀리의 눈을 피해 같이 들어온 거야?”
천운은 킬라의 말을 무시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희 세 명뿐이야?”
고작 입을 열어 하는 한마디가 저 말이었다.
그 건방진 한마디에 킬라가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천운을 노려봤다.
“하핫, 재밌는 놈이네? 그 말은 뭐야? 우리 세 명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다는 말 아니야?”
하지만 그와 다르게 밀리와 크레인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상해…….’
이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은신 마법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너무 기이하고 이상했다.
자신의 경지로도 파악 못 할 마법이라니…….
“크레인!”
밀리가 곧장 크레인에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상념을 깬 크레인이 곧장 마법을 발동했다.
화르륵-
발동한 마법은 중급 마법 ‘화선’.
빠르게 뻗어 나간 붉은 선이 천운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사락-
천운의 모습을 한 그것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군. 이렇게 눈을 속였나?’
분명 환영 계열에 속하는 마법인 게 분명한데 그 마법의 완성도와 격이 차원이 달랐다.
흠칫 놀란 크레인이 밀리에게 말했다.
“밀리! 막을 발동해!”
둥근 원형의 막이 3명의 주위를 감쌌다.
동시에 크레인은 빠르게 3명의 발밑에 게이트를 열어 그 막을 빠져나왔다.
“지금은 녀석을 죽이는 데 최우선으로 하자!”
“뭐, 뭔 꼬맹이를 상대로 그리 진지해?”
“닥쳐라 킬라! 너는 아직도 저놈이 보통의 꼬맹이로 보이냐!”
돔 안의 지면에서 크레인이 만든 술식이 전개됐다.
크레인은 곧장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사라락-
크레인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쿠쿠쿵!
“뭐야…… 저건.”
이 공동에서 들릴 일이 없는 천둥소리에 킬라는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
크레인은 이 마법을 알고 있었다.
“천벌…….”
파지직!!
순간 천둥이 내리쳤다.
내리친 천둥이 정확히 킬라를 노렸으며.
털썩-
쓰러진 킬라를 보며 크레인은 경악하기 시작했다.
“아니…… 만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