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53
“녀석이 왔다.”
한우성이 말했다.
검은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고 행태를 갖춘 녀석의 두 손이 지왕의 아가리를 찢는다.
그것이 끝이 아닌 시작으로 몸 전체를 퍼트려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한우성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오류 속 기억.
“김천운.”
“네…….”
“저게 내가 친목회를 모은 이유다.”
“…….”
천운은 그저 멍하니 거대한 거인을 바라봤다.
“저게…… 그 거인이라고요?”
“그래.”
멍하니 바라보던 천운은 당혹스럽게 한우성에게 물었다.
“샌디에요 천운.”
메리헨이 급하게 다가와 천운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샌디가 아니에요.”
“그게 대체 무슨…….”
휘이이잉-
휘몰아치는 바람이 순간 멎었다.
메리헨의 시선이 저 거대한 거인을 향했다.
그 거인은…… 소년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메리헨이 말했다.
“당신의 샌디에요. 천운.”
* * *
“정말 이곳이 맞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산의 정상 분화구의 허공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화두가 물었다.
최아진 또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가 정말 녀석이 나타나는 곳이라…….”
과거 천왕이 움직였을 때의 이상 기후와 재해를 알고 있었다.
그 기록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 보면…… 너무 평화롭다.
태평하고 조용하여 최아진 또한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기 농도는 확실히 증가했다.’
미국의 지왕이 퍼트린 마기가 확실히 바다와 하늘로 퍼져 나가 마기 농도를 높인 건 확실하다.
하늘에 자신의 영역이 만들어졌으니 천왕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분화구 지하에 움츠려 있던 녀석이 드디어 자신의 영역이 생겼으니 말이다.
“뭔가 상황이 잘못됐어.”
“예?”
“들어가 보자.”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위험하긴 하겠다만.”
최아진의 시선이 분화구로 향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어, 어? 아진 형님!”
최아진이 염동으로 몸을 움직여 분화구로 향했다.
“역시…….”
고요한 적막.
고열로 인해 뜨거워야 할 분화구는 고요했으며 반대로 무슨 검은 빛의 반짝임이 보였다.
“저건 대체…….”
“거 가시기 전에 말이라도 해 주시지.”
“쉿.”
순간 그 무언가의 움직임을 보았다.
‘천왕……? 아니야.’
녀석의 생김새를 본 적은 없으나 특징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녀석의 특징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였다.
“저게 대체 뭡니까 형님?”
“모르겠다. 일단 자극하지 마.”
최아진과 강화두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녀석의 동태를 관찰했다.
스르륵-
바닥에 쓸리는 듯한 움직임.
‘뭐지? 슬라임?’
다리가 없는 무언가.
둥근 형태의 검은 그것.
그러나 확실히 마기를 내뿜고 있었다.
동시에.
“이게 가능한가?”
“예? 뭐가 말입니까?”
마력이 없고 느끼지 못하는 강화두는 최아진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됐다.
최아진은 눈앞에 그것을 기이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력과 마기가 공존하고 있어.”
“예?”
“녀석의 몸에서 마기와 마력이 느껴져.”
“그게…… 가능합니까?”
“몰라…… 일단은 빠져나간다. 지금 녀석에 대한…….”
[누구냐?]
한우성의 말을 끊고 들려온 말소리.
흠칫- 몸을 떤 최아진이 분화구의 밑 그것을 바라봤다.
[혹시 대화가 통하나?]
녀석이 물었고 최아진은 대답했다.
“너는…… 뭐지?”
[내 자아에 대해서는 나 또한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뭐?”
[하지만 이름은 존재한다.]
“이름이라고?”
최아진이 물었고 녀석이 대답했다.
[어느 소녀가 내 이름을 지어 줬다. 샌디라고.]
“샌디……?”
“익숙한 이름이네요. 형님.”
“샌디…… 그래. 김천운의 유물이잖아.”
“확실히 그런 이름이었죠.”
[김…… 천운?]
녀석이 물었다.
동시에 반응을 보이는 녀석에게 최아진이 물었다.
“김천운을 아나?”
[알고 있다. 부탁이 있다.]
“……뭐지?”
[김천운은 어디에 있지?]
* * *
“내 샌디라고?”
“네.”
“아니, 하지만 그럴 리가.”
“저보다 천운이 더 잘 알 거예요.”
확실히 녀석과의 연결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천운의 짐작은 그녀의 샌디였다.
메리헨의 죽음으로 힐리아와 과거 그 세계를 멸망시킨 녀석이 이곳을 넘어온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눈앞에 녀석이 존재한다.
“제 샌디는 아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예요. 알 수 있어요. 저와 샌디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메리헨이 저 멀리 검은 거인을 바라본다.
그 시선이 사뭇 슬퍼 보였다.
“저와 제 샌디를 구원해 준 건 천운 당신이에요. 하지만 천운의 샌디는 무슨 이유인지 구원받지 못하고 있어요. 제가 참견할 일도 아니고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며 울렸다.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나 또한 알고 있다.
녀석과 강하게 연결된 나이니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무언가에 고통받고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지금의 감정만큼은 고스란히 나와 연결돼 전해진다.
“샌디…….”
“김천운.”
한우성이 물었다.
“너를 친목회에 들인 건 저놈 때문이었다.”
그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 가기 시작했다.
“네 행운은 상황에 맞게 변한다.”
한우성의 시선이 검은 거인…… 샌디를 향했다.
“저걸 죽이려면 네 도움이 필요하다.”
“안 돼요. 천운. 저 아이는 그저 상처받았을 뿐이에요.”
“……얘는 누구야?”
한우성이 메리헨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리헨은 치뜬 눈으로 한우성을 바라봤다.
“죽인다니 절대 안 돼요!”
“……뭘 알고 하는 말이냐?”
“천운. 확실하게 말하세요.”
“……아저씨.”
나는…… 한우성에게 말했다.
“확실히 말할게요. 저 녀석은 아저씨가 알고 있는 검은 거인이 아닐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검은 거인은 이제 없어요. 하지만…….”
눈앞에 검은 거인이 존재한다.
그 존재를 대신해 샌디가 검은 거인이 된 것이다.
“아저씨.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너…… 뭘 어쩌려고…… 야! 김천운!”
나는 그 말을 남긴 검은 거인을 향해 다가갔다.
“아저씨.”
“김천운…….”
천운이 돌아서 한우성을 바라봤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그 말만 남긴 채 다시 거인을 향해 천운은 걸었다.
그 한마디를 들은 한우성은 천운을 말릴 수 없었다.
“……알겠다.”
그저 과거의 행적, 지금까지의 천운을 알고 있기에 한우성은 천운을 믿었다.
“믿으마.”
* * *
거인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폭풍이 거세진다.
검은 알갱이들이 천운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미르마.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게요.”
[괜찮겠어?]
“네.”
[……조심해.]
“메리헨을 부탁해요.”
미르마가 사라졌다.
메리헨의 곁으로 떠난 순간.
이제는 정말 천운 혼자였다.
크오오오-
지왕의 고통의 포효가 들려왔다.
거인의 팔이 녀석의 아가리를 잡고 찢은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간 순간.
나는 소년의 형상을 띤 샌디를 바라봤다.
“샌디…….”
샌디가 의태한 소년.
그것이 김천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샌디…….’
나는 그저 텔레파시로 샌디를 불렀다.
녀석이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계속.
‘샌디. 들려?’
‘들리면 대답해!’
샌디의 팔이 지왕의 아가리를 찢은 순간 녀석의 모래가 지왕의 몸 전체를 감쌌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난 그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잠잠해진 검은 모래 폭풍이 다시 쇄도하기 시작했다.
‘샌디…….’
나는 내 말이 들릴 수 있게 점점 가까이 그 폭풍을 향해 나아갔다.
휘몰아치는 모래들 속에 나는 내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만다라를 발동했다.
후우웅-
올라간 스탯은…… 행운이었다.
내 발은 멈추지 않고 그 폭풍 속으로 나아갔다.
아마 잠시 동안 행운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 * *
“사라졌어…… 정말 괜찮은 건가? 저 아이?”
“으…… 제가 보기에는 죽은 거 같은데…….”
카스퍼와 제니퍼가 한마디씩 한우성에게 말했다.
한우성은 대답했다.
“친목회는 초월자만 받거든.”
“저 나이에 초월한 스탯이 있다고? 혹시 돌연변이인가?”
“그래. 한 스탯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녀석이지.”
그 말에 호기심이 든 제니퍼가 물었다.
“대체 무슨 스탯인데요.”
“행운.”
“……행운이요?”
“행운이라고?”
카스퍼와 제니퍼가 경악스럽게 한우성을 바라봤다.
한우성은 그저 검은 거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행운 덕분에 무슨 수를 쓰든 죽지 않아.”
“행운의 초월자라니…… 확실히 행운이 100을 넘으면 가능하겠군.”
“그래…… 녀석의 행운으로 인해 인과율과 운명이 녀석의 편을 든다.”
“……그게 가능하다니.”
“근데 반대로.”
피식 웃은 한우성이 말을 이었다.
“녀석 외에 주위 사람이 불행해지더군.”
“……불행해진다고?”
한우성은 천운의 행운에 대해 생각했다.
천운의 불운한 과거.
지금까지 천운에게 일어난 현상.
결코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비극적인 상황에서 천운은 죽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쓰든 죽지 않는다라…….”
마치 자신과 비슷한 녀석이다.
녀석의 행운은 주인 이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천운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상황에 맞게 행운이 발휘된다.
소년이 죽고 싶어도 죽게 놔두지 않는다.
그것이 행운의 정체였다.
‘믿으마.’
그렇기에 천운은 그 행운을 믿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녀석은 다시 살아날 테니.
* * *
천운이 눈을 떴을 때는.
온 공간이 어두웠다.
그렇기에 샌디의 내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용하네.”
고요한 폭풍의 눈.
그 내부는 그저 머리를 흔들 정도의 가벼운 바람만이 불러왔다.
그리고 천운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샌디…… 계속 들렸지?”
천운이 말했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천운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샌디의 의식은 일어나 있다는걸.
“샌디.”
이유는 간단했다.
그 폭풍 속을 들어온 천운이다.
아무리 행운을 발동했다 해도 이렇게 멀쩡히 중심까지 올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
“들려?”
[ㅊㅇ…….]
샌디가 말했다.
ㅊㅇ…… 그 말이 처음 나를 만난 순간 첫 마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는 알고 있던 거야?”
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이곳을 찾을 거라는 사실을.
그러나 천운의 예상과 다르게 샌디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저 이름만을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고 이름만이 말이다.
“그 모래가 원인이었구나.”
이유는 모르겠으나 과거의 기억이 담긴 모래와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는 모래가 나누어졌다.
그 기억과 마력이 담긴 모래를 질 로벤이 찾아 준 것이고.
“샌디. 이제 그만해도 돼.”
그 이상은 천운이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샌디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샌디는 안 된다고 답했다.
“그만 돌아가자.”
[…….]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아.”
[ㅊㅇ…….]
샌디가 나를 불렀다.
동시에 주위의 모래 폭풍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어두워진 공간 속.
샌디는 무언가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