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152
샌디의 머릿속 기억의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어느 던전의 동굴.
샌디에게는 의식만이 있었다.
나는 누군지 나는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의식만 가진 채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도 유물인가?”
어느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간 아이들이 있긴 했다만 자신에겐 무신경했다.
한데 이 소년은…….
후우웅-
그 순간 몸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감각이 들었다.
‘감각’이란 것이 되살아난 것이다.
푹 늘어진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감겨진 눈이 떠졌다.
눈앞의 소년이 휘둥그런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다.
“어? 어, 어 우와!”
소년의 반응은 두려움에서 서서히 놀라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 유물이다! 내 첫 유물!”
그것이 소년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 * *
소년은……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었다.
“미친.”
눈앞에 무슨 곰만 한 뱀 마수를 봤을 때도.
“어? 여기 왜 함정이 있냐?”
친구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그렇게 주의를 줬음에도 던전의 함정을 밟고.
“미안 무리.”
던전 보스 방에 도착했을 때 귀환석을 써서 혼자서 도망쳤을 때도.
한심함의 극치를 달렸으나.
반대로 샌디는 이것이 신기했다.
[ㅇㄸㄱ ㅅㅇㅇㄴ?]
“뭐라고?”
어떻게 살아 있냐?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생겨 알 수 있는 점은 자신의 주인이 비정상적으로 운이 좋다는 점이었다.
절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환경에서 살아남는 소년을 눈으로 보았다.
[ㅅㄱㅎ!]
“왜 방긋 웃고 그러냐? 귀엽게.”
그것이 신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소년은 죽지 않을 거 같았다.
물론 한심하고 어리석고 멍청함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는 많았으나 그것이 그리 싫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으니.
……천운이 죽어 가고 있었다.
쿵! 쿵!
땅을 울리는 지진.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지왕의 앞발.
갈라진 지면의 땅 위에서 천운은 피를 울컥- 토해 내며 죽어 가고 있었다.
샌디는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샌디야…… 의철이 좀 도와줘라.”
나는 싫다고 대답했다.
천운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운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한다.
“부탁해…….”
“너였구나.”
그때 들려온 한목소리.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시에 거대한 검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고통스러울 거다.”
손에서 뻗은 빛이 번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천운과 그 옆에 소리치고 있던 의철이라는 소년에게까지 번져 나갔다.
샌디가 다시 눈을 떴을 때.
[ㅇㅇ?]
천운과 처음 만났던 던전.
의식은 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 * *
“샌디!”
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샌디 맞지!”
[ㅇㅇ!]
“하…… 다행이다.”
샌디는 천운의 눈가를 보았다.
퀭한 눈.
슬픔에 젖은 듯한 피곤한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것이 걱정되었다.
“혹시 기억나?”
[ㅇㅇ.]
천운이 물었다.
그 말은 곧 자신의 주인 천운도 회귀한 것이다.
“역시…… 과거로 돌아왔어.”
[ㅇㅇ…….]
샌디는 그것보다 천운이 걱정이었다.
퀭한 눈과 허망한 모습이 뭔가 마치 소중한 것을 잃은 느낌이었다.
“괜찮아.”
[…….]
그 시선을 느낀 천운이 말했다.
“정말로…….”
소년은 무언가 다짐을 한 느낌이었다.
* * *
“나도 몰랐는데…… 우리 엄마가 아무래도 대가문의 사람인 모양이더라. 민아 선생님이 말해 줬어.”
[ㅇㅇ…….]
“신기하네…… 옛날에는 전혀 몰랐는데 어쩐지 민아 선생님이 우리 어머니랑 좀 친하더라.”
천운은 사정으로 인해 한민아의 집에서 살 게 됐다.
솔직히 말해 과거에 살던 우리 집보다 넓었다.
마당 딸린 넓은 집이라니…….
더럽게 편안했다.
“음…… 이제 어떡하지. 신기한 게 내가 회귀했다는 걸 이번 연도에 알았거든.”
[ㅇㅇ. ㄴㄷ.]
“너도?”
샌디도 그렇다고 말했다.
자신 또한 어느 순간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으니.
“근데 회귀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 말은 내가 죽었다는 얘기잖아.”
[ㅇㅇ…….]
“근데 그 죽은 순간이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그 말이 이상했다.
자신은 천운의 죽음의 순간이 선명했으니.
“음…… 그래서 방법을 생각했거든.”
[ㅇ?]
천운이 수첩 하나를 꺼내 보여 줬다.
“여기에 기록하려고. 일단 일기를 쓰는 거야.”
[…….]
샌디가 한심하게 쳐다봤다.
만약 기록하다 쳐도 다시 회귀하면 사라지니 말이다.
“……나를 멍청이로 보냐?”
[ㅇㅇ.]
“아니, 네가 흡수하면 되잖아.”
그때 샌디는 그 똥그란 몸으로 마치 고개를 젓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수첩 자체를 흡수, 형태 변환은 가능하나 그 내용까지는 그대로 저장이 안 되니.
“그럼…… 어떡하냐? 이게 유물이면 된다는 거야?”
[ㅇㅇ!]
“음……. 애초에 기록용 유물이 존재하나?”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존재하는 유물.
만약 있다면 가장 쓸모없는 유물일 테고…….
“일단 유일하게 회귀해도 멀쩡한 게 유물이라 무조건 유물이어야 하는데…….”
[ㅇㅇ.]
그것은 샌디로 인해 사실로 증명됐다.
회귀한 천운과 다르게 샌디는 회귀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말 그대로 마력과 지능은 여전했고 흡수된 유물 또한 몸에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너는 왜 그러냐?”
[ㅁㄹ.]
“음…… 뭐 하긴. 그런 일단.”
천운은 수첩에 오늘의 일기를 써 내려갔다.
회귀의 기억이 돌아온 직후의 심정.
그 당황스러운 상황을 글로 끄적였다.
[ㅁㅎ?]
샌디가 물었다.
어차피 회귀되어 사라질 수첩이라고 방금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 하는 행동이 어이없었다.
“일단 기록은 해 놔야지. 나중에 방법이 생기면 이 수첩을 마도구로 바꾸면 되고.”
[ㅇㅎ.]
“것보다 지능도 멀쩡한 녀석이 아직도 초성으로 말하냐?”
[ㅇㄱ ㅈㅇ.]
“이게 좋다고?”
[ㅇㅇ.]
천운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냐…….”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우우웅-
기억이 전환된다.
뒤죽박죽으로 섞인 기억들이 정갈하게 정렬되기 시작한다.
눈앞에 1회 차의 기억.
기억 속 모든 것이 샌디의 머릿속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하…… X발.”
또다시 피혈을 토하며 쓰러져 있는 천운.
천운의 죽음은 그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회차는 과거를 기억하고 있기에 모든 유물을 또다시 찾아가 흡수하고 샌디를 강화시켜 자신의 스탯과 마력 마법적 지식을 올려 성장했다.
그럼에도 지왕에게 죽는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다.
“샌디야. 만약 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
“이번에도 그 아저씨 안 오네.”
그 남자는 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죽은 것일까?
후우우웅-
휘몰아치는 검은 폭풍.
전 회차의 마지막에 보였던 그 검은 태풍이 보였다.
그것이 서서히 형태를 다 잡기 전에.
천운의 눈이 다시 감겨 왔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 던전이었다.
2회 차.
두 번째 회귀였다.
그렇다면 다시 천운이 찾아오겠지.
샌디의 예상대로 천운이 찾아왔다.
슬퍼 보이는 천운의 얼굴.
그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 아저씨가 왔었어…….”
한데 이번의 반응은 이상했다.
“아저씨가…… 우리 가족을…….”
전 회차에서는 분명 마수의 습격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한데 이번에는…… 자신에게 회귀의 능력을 준 그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였다.
그때 천운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지?”
1년에 한 번씩 그해의 기억이 돌아온다.
말 그대로 이번 연도에는 이번 연도에 일어난 기억만이 돌아온다.
하지만 방금 천운이 말한 그 아저씨는 2년 뒤 자신의 죽음.
말 그대로 조금 먼 미래에 일어난 일이었고 기억이었다.
“일단 가자…….”
천운의 힘없는 말투가 흘러나왔다.
이후의 일어날 일을 천운과 샌디는 알고 있었으니.
* * *
수많은 회귀의 시간을 보냈다.
죽고 다시 살아나고 죽고 다시 과거로 돌아온다.
그것은 샌디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천운의 죽음을 보았다.
지왕에게 살아났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천운의 죽음은 운명이었다.
“이 빌어먹을 행운도 다 소용이 없네.”
자신의 죽음은 절대 막지 못하니.
거의 몇백 번의 회귀를 하니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고 마법적 지능이 높아졌다.
“싫어도 기억하게 되네.”
천운이 지식을 쌓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수첩의 마도구화였다.
곧장 마도구로 만든 수첩을 주머니에 가지고 전 회차로 회귀했다.
예상대로 회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수첩은 샌디와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보존됐다.
“왜 유물은 되고 사람은 안 되냐?”
유물은 보존된 상태로 돌아오고 사람은 안 된다.
그게 귀찮고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언뜻 샌디는 알 수 있었다.
천운의 감정이 메말라 가는 것을.
* * *
몇 번째일까?
“샌디야 기억해?”
[ㅁㄹ.]
“그러냐.”
너무 수도 없이 많은 천운의 죽음을 보았다.
샌디는 그것이 적응이 안 됐다.
그렇기에 천운의 죽음을 막으려면 무엇도 할 생각이었다.
“검은 거인. 그놈을 막으려면 이 수밖에 없어.”
어느 순간 천운은 녀석의 정체와 존재를 깨달았다.
그리고 녀석을 없앨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마수왕은 문제가 아니었다.
녀석이 존재하는 한 내 회귀와 죽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해. 샌디야.”
힐리아 신성국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천운이 샌디에게 말했다.
샌디는 곧바로 천운이 원하는 대로 몸을 늘렸다.
늘어진 몸이 서서히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몸과 지능이 가장 높은 격에 달했고 이제 신성국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몸을 늘릴 수 있었다.
“미안해…….”
그 천운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야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정신이 맑게 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샌디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샌디는 현실로 돌아왔다.
샌디의 시야에는…….
크르르르-
거대한 지왕이 서 있었다.
[지왕…….]
순간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샌디의 몸을 감쌌다.
그 분노 그대로 샌디는 온몸의 마력을 발산했다.
녀석이 시작이었고 원인이었다.
천운의 죽음은 녀석으로 인해 시작됐다.
순간 몸이 비대하게 커져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몸에 몰려드는 수많은 모래가 샌디의 몸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래 하나하나에 마력이 깃들었고 처음 녀석의 충격파를 막기 위해 퍼부은 마력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손이 생기고 발이 생겼다.
그대로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