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151
하늘에 새들이 숲을 떠나 날아들고 마경에 사는 마수들이 포효를 지르며 위험을 감지한다.
거대한 마기의 충격파가 숲 전체에 휘몰아칠 것이고.
그 충격파가 일어난 중심, 지왕을 시작으로 둥근 원이 서서히 커지는 듯이 퍼져 나가 주위의 나무들이 휩쓸려 나갈 것이다.
녀석의 한 발짝이 숲이라고 일컫던 이곳을 황무지로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천운은 그 정도 파괴력을 지닌 녀석의 재앙이기에 사실상 지금 작전에 조금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쿠쿵⎯⎯⎯⎯⎯⎯!
팅!
그때였다.
녀석의 앞발이 지면에 닿는 것은.
저 멀리서 확인한 녀석의 동작은 그저 천천히 사뿐히 앞발을 옮기는 것처럼 보이나 그 한 발짝의 중심으로 이곳 숲 전체를 황무지로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닌다.
‘샌디!’
동시에 천운은 샌디에게 신호를 보냈다.
풍선처럼 비대해진 몸을 터트리듯 샌디 몸에 내재된 마력이 터져 나갔다.
미세하지만 충격파가 퍼지기 직전.
그 마기의 일부가 무마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그 충격파 자체가 마기로 이루어진 현상이다.
마기 자체가 해결한다면 그 충격파의 일부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준비해!”
천운이 그 충격파가 다가오기 직전 의철을 향해 말했다.
의철의 팔테인이 빛을 발하는 동시에 그 빛이 방벽을 감싸기 시작했다.
팔테인의 빛이 다가오는 충격파의 빛을 정화하고 반마의 마력이 무마시킨다.
“저건 대체…….”
마기를 정화하고 무마시킨다.
그 현상을 눈으로 보던 카스퍼가 한우성에게 물었다.
“지금 네 눈으로는 마기를 없애는 거로 보이는데…… 저건 대체 뭔가?”
“녀석의 마력 특성일 거다. 다른 녀석은 저 유물의 능력일 테고.”
“허…… 신기하군. 마치 상극이지 않나? 마기와 저렇게 적대적인 특성과 유물이 존재할 줄은…… 응?”
동시에 카스퍼가 검을 뽑아 들었다.
후웅!
그가 휘두른 검격이 방벽을 향했고 방벽을 통과한 검격이 그대로 방벽을 향해 쇄도하는 거대한 나무를 두 동강 내 베었다.
그의 고유 스킬인 ‘공간참’이었다.
“한우성. 지금의 너는 힘을 쓸 수 없군.”
“그래. 마력을 다 썼다.”
“녀석을 도와주느라.”
“도와줘?”
카스퍼는 신기했다.
한우성의 방대한 마력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쓴 적이 없었으니.
또한 한우성은 소년을 돕느라 마력을 전부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곧 그 마력 전부를 소년의 몸에서 받아들였다는 말이었다.
“한데…… 정말 가능할 거 같군.”
카스퍼도 처음에는 소년의 작전에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저 지왕의 충격파를 막고 있으니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소년 둘이서 저 충격파를 막고 있군.”
그 기이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카스퍼.
그리고 곧이어 그 충격파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제니퍼는 경악스럽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정말로 소년의 말대로 그 충격파를 막아 낸 것이다.
“막았어…….”
“이게 정말인가? 정말 난 살아 있는 건가…….”
“사, 살았다! 살았어!”
모든 길드원이 안도의 한숨과 환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 있는 중심을 제외한 어느 곳도 이제 숲이라 부르기 힘든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그런 충격파에서 그들은 살아남았다.
“정말 이게 가능할 줄이야…….”
카스퍼는 그 기이한 광경을 목도한 끝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아직 녀석이 남았어.”
한우성의 시선이 지왕을 향했다.
충격파는 녀석이 영역을 넓히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결국 그 원인인 녀석을 없애야 했으니.
“방법이 있나?”
“후…… 지왕도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천운이 다가와 말했다.
몸에 피로가 가득 찼으나 아직 녀석이 남아 있었으니.
“아마 주위의 마기를 다시 흡수하고 움직이겠죠.”
“지금밖에 없다는 말이군.”
“네.”
“무슨 방법이 있나?”
“…….”
한우성의 물음에 천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황무지로 변한 일대를 둘러봤다.
본래라면 이곳에서 한우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일부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았을 거다.
또한 이다음의 미래를 천운은 알지 못했다.
‘내 소설의 끝…….’
내 소설의 문장의 끝은 여기였다.
그다음의 미래는 나 또한 모르니.
쿠쿠쿠쿵⎯⎯⎯⎯⎯⎯!
그때였다.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에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 뭐?!”
천운 또한 당황하여 지왕을 바라봤다.
녀석이 너무도 빨리 움직이려 했으니.
그러나 천운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왕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이 지진은…….’
사아아아-
돌연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어느 한 중심에서 바닥에 검은 무언가가 모이기 시작했다.
“샌…… 디?”
지왕과 가까운 근거리에서 모여드는 검은 모래들.
[녀…… 녀석이다!]
‘네?’
[그 녀석이라고!]
길이 의철을 향해 소리치며 말했다.
그의 눈에 분노와 원통함이 뒤섞인 듯한 목소리였다.
그것을 바라본 한우성의 눈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건.”
한우성은 직감했다.
과거 마수왕의 재해를 막았음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세계 전체를 집어삼키는 괴물.
“검은…… 거인.”
* * *
밝은 날씨에도 바닷가 근처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한과 이연 한민아와 질 크롬벨이 대기하고 있는 동해안 쪽 해안가.
사람 한 명 없는 적막한 해안가에 그들은 두 번째 재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민아는 고요히 등 뒤의 태양을 드러내며 크롬벨에게 물었다.
“녀석의 위치는요?”
“아직 움직이지 않았어.”
그저 몸짓 자체가 거대한 녀석이다.
바다에 고요히 웅크려 있던 녀석이 활동을 시작해 한 번의 꿈틀거림이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급의 해일이 발생시킨다.
녀석의 움직임은 동해를 비롯한 남해까지 이어져 두 팀으로 나뉘어 해일을 막을 생각이었다.
남해 근처 해안가는 4대 가문의 가주들이 이곳은 이 3명이서 막을 생각이었다.
“음…… 어 제가 도움이 될까요?”
“언니는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들의 보조 및 시민 대피만을 하려던 암 가문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 가문의 가주인 이한이 이곳에 서 있었다.
다름이 아닌 이신아의 말 때문이었다.
무암의 가능성은 너의 예상을 뛰어넘을 거라고.
‘한아. 가문의 피를 옅게 물려받아 의안이 없는 게 아니란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한의 귓가에 울렸다.
‘그림자’.
그녀가 가문의 피를 옅게 물려받아 얻은 고유 스킬이 아니었다.
‘너로 치면 할아버지라 해야 하나? 내게만 알려 준 사실이 있단다.’
언제부터인가 명맥이 끊긴 고유 스킬.
그녀의 ‘그림자’가 그러한 것이라고.
그녀는 그림자와 무암의 가능성을 말했다.
‘한이를 데려가렴 민아야.’
그것이 이한이 이곳을 찾은 이유였다.
“와요.”
이연이 말했다.
의안을 발동한 이연은 저 멀리 느리게 다가오는 해일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언니!”
“응.”
이한은 아직도 이 상황이 긴가민가했다.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떨림과 함께 그저 다가오는 해일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후우웅!!
한민아의 뒤의 8개의 태앙이 그 해일을 향해 쇄도했다.
사아아-
증발되어 떠오르는 수증기가 해일의 앞을 가렸다.
그러나 그 수증기를 뚫고 덮쳐 오는 해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전력을 달한 검은 태양 앞에서도 해일을 멈추지 않았다.
반대로 8개의 태양을 덮어 버렸다.
“큭!”
덮쳐진 태양의 불은 꺼지진 않았으나 사람 한 명의 힘으로 대해 자체를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피해의 최소화를 노리던 한민아였으나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해일이었다.
곧 다가오는 해일이 코앞이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마수왕의 움직임으로 지원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다가오는 해일을 4명이서 막아야만 했다.
“크롬벨 씨!”
“응!”
크롬벨의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다.
한민아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곳에서 도주할지 아니면 저것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주를 포기하고 해일의 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력의 전부를 다 쓸지.
“……아.”
그때였다.
서서히 다가오는 해일을 그저 이한은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의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이 긴장되는 가슴이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그저 다가오는 해일을 향해 한 발짝 가까이 움직였다.
“한아?”
“언니?”
“…….”
한 발 두 발 이한은 뒤로 피하지 않고 그저 해안가를 향해 다가갔고 어느 순간 발을 멈췄다.
고층 빌딩을 넘길 듯한 거대한 해일이 다가왔다.
그저 저것을 막지 못하면 이곳에 모든 사람이 휩쓸려 죽겠지.
어느 순간 현현하지도 않았던 무암이 이한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
해일로 인해 태양이 가려져 거대한 그림자가 이한을 덮쳐 왔다.
‘그런 거였어…….’
이신아가 말한 가능성이란…….
‘‘그림자’를 사용하는 아베타에게는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았단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무암 자체가 ‘그림자’를 위한 유물이란다.’
사아아아아악!
다가오는 해일.
이한은 그저 무암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후우우우웅!!
해일로 인해 생긴 거대한 그림자가 이한을 중심으로 더욱 진한 흑색으로 퍼져 나갔다.
공허한 구덩이.
그 무저갱의 영역을 만든 이한은 그저 무암과 자신의 고유 스킬을 믿고 그곳에 서 있었다.
‘수납.’
그림자 전체가 ‘수납’ 공간으로 변한다.
“언니!!”
이연이 소리쳤다.
그 거대한 해일이 방금 이한을 덮쳤으니.
그러나 반대로 해일이 되레 자신이 만든 그림자에 흡수당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 이한 또한 휩쓸려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림자는 이한 또한 지켜 주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이한이 말했다.
가능성과 깨달음.
그림자가 있는 모든 그것은 무암의 영역이었고 이한의 고유 스킬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지금 이 거대한 해일을 혼자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덮치고 뭉개려던 해일은 그저 허망하게 지면에 닿자마자 사라지고 흡수당한다.
이 무저갱의 끝은 없으며 그저 해일 자체가 사라질 때까지 이한은 기다릴 뿐이었다.
이윽고.
이한이 정신을 차렸을 때.
“어?”
이한의 눈앞에 고요하며 잔잔하게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하…… 여기서는 제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어?”
강화두와 최아진은 지금 허공에 서 있었다.
말 그대로 서 있었다.
최아진이 염력으로 만든 발판 위에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운 좋으면 녀석이 안 움직이는 거고 그렇지.”
“그렇겠죠?”
지왕과 해왕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녀석이 안 움직일 리가 없었다.
“날아다니는 녀석인데 왜 우성 형님은 그런 판단을 내린 걸까요?”
“난 좀 알 거 같은데?”
“예?”
“저걸 봐라.”
최아진이 어느 산을 가리켰다.
일본 어느 고지대의 산.
“대장이 이곳을 찾으라고 했지? 그럼 뻔하잖아.”
천왕의 위치는 정확히 추정되지 않았다.
물론 마기가 강한 지역 근처에 서식하는 녀석이긴 하나 천왕의 모습을 정확히 본 사람은 없이 그 존재만을 알고 있었다.
“가자.”
“예.”
최아진은 강화두를 데리고 저 산 정상 분화구를 향했다.
예상이 맞다면 아마 그 녀석이 저곳에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