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149
습한 공기가 휘몰아친다.
게이트를 넘어 도착한 곳은 마경.
천운은 저 멀리 고고하게 선 움직이는 산을 바라봤다.
‘역시…….’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나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
항상 글로만 보았던 장면이 현실로 나타났다.
내 소설의 끝.
완결 짓지 못한 김천운의 마지막이 이곳에서 일어난다.
‘애들은?’
탑이 붕괴 될 당시 나와 다르게 최상층에서 공략을 성공한 아이들은 탑 근처에 이동됐을 터.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인파가 모인 곳을 발견했다.
“미르마.”
[응?]
“일단 메리헨을 데리고 애들을 찾아 주세요.”
[그 녀석들을 말이야?]
“네. 그리고 전언으로 연락해 주세요.”
[너는 어쩌려고?]
천운은 고개를 돌려 저 거대한 산, 지왕을 바라봤다.
“다음에 할 행동은 연락받은 후에 말씀드릴게요.”
천운은 지왕이 있는 마경의 숲을 향해 달렸다.
녀석이 너무 이른 시기에 움직인 것도 무슨 이유가 있었을 터.
애초에 탑이 없어졌음에도 거대한 마기가 현세를 넘어 일직선으로 곱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 마기를 원흉을 따라가면 그 원인 또한 찾을 수 있을 거다.
“부탁드릴게요.”
* * *
천운이 건넨 유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민아는 알 수 있었다.
한민아가 향한 곳은 암 가문의 저택.
현재 이한이 가주로 있는 이 암 가문에서 한민아는 안심하고 그녀를 부탁할 수 있었다.
“저기…… 여기는 어쩐 일로…….”
그러나 그녀의 방문이 궁금했던 이한이었다.
현재 해왕의 움직임으로 4대 가문을 포함한 한국 전체가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한민아 또한 해왕의 해일을 막기 위해 준비 중일 것이라고 생각한 이한이었다.
“언니를 보려고 왔단다.”
“이모요?”
“너도 따라오렴.”
이한은 한민아를 따라 그녀가 편히 쉬고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어…… 저기 이모도 곧 대피해야 해서요.”
“한아. 고맙단다.”
한민아는 그리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이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한.
곧 한민아는 침대에 곤히 누워 있는 이신아에게 향했다.
“언니…….”
그녀의 주머니에서 꺼낸 신수의 눈물.
천운에게 받은 이 유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민아는 알 수 있었다.
조심스레 그녀의 입가에 향하는 신수의 눈물.
신수의 눈물이 그녀의 입가를 타고 넘어갔다.
“그건…….”
이한 또한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그 순간.
환한 빛이 이신아의 몸을 감쌌다.
창백한 피부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고 말랐던 몸이 서서히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쓰러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
한민아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니…….”
한민아의 가슴에 무언가 울컥 쏟아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한민아는 그녀를 보았다.
이신아의 눈이 서서히 떠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아 언니…….”
한민아는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민아야.”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니?”
“……너무 오래 걸렸어요. 언니…….”
“응?”
이신아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만큼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잠시 말없이 한민아를 기다려 주었다.
* * *
“저기 여기는…….”
“암 가문의 저택이에요 이모.”
이신아의 시선이 이한을 향했다.
그러자 왠지 모를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이한에게 말했다.
“많이 컸구나 한아.”
“오랜만이에요 이모.”
“그것보다 여기가 암 가문이라면 그 녀석은?”
“전 가주는 이제 없어요.”
“……그러니.”
전 가주라는 말에 왠지 모를 이한의 시선이 싸늘했다.
전 가주라는 말과 높여 부르지 않는 말투로 이신아는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네가 가주인 모양이구나.”
“네. 하지만 이모가 일어나셨으니 권한을 넘겨 드릴 의향은 있어요.”
“후훗, 괜찮단다. 그것보다 무암은 가지고 있니?”
“네? 아, 네.”
이한은 그림자 속에 넣어 둔 무암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무암을 지그시 바라보던 이신아는 그 무암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아! 무리하시면 안 돼요!”
“괜찮단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넘쳐서.”
그녀의 마력이 무암으로 넘어왔다.
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한은 알 수 있었다.
“이모…….”
“우리 천운이도 네게 마력을 넘겨줬구나.”
“네? 그걸 어떻게…….”
“후훗, 다 알고 있단다.”
무암에 마력을 넘겨주는 동시에 이신아는 천운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기했다.
익숙한 마력이기는 너무나도 다른 질과 기운.
동시에 이신아는 무암에 천운의 마력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전부 알게 됐구나…….’
“혹시 천운이는?”
“그게…… 지금 미국에 있어요. 언니.”
“응? 그러니?”
한민아가 대답했다 동시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지어지는 이신아였다.
이한이 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모도 얼른 미국으로 대피하셔야 해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어, 그게, 마경에 해왕이 움직여서.”
“……그렇구나. 천운이는 먼저 대피한 거고?”
“…….”
그 말에 한민아는 잠시 입을 앙다물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이신아의 입가에서 미소가 나왔다.
“거짓말 못 하는 건 여전하구나. 민아야.”
“으응, 그게.”
“괜찮단다.”
무암으로 천운의 마력을 확인했다.
왠지 안심될 정도로 강한 마력.
“한아.”
이신아는 이한을 불렀다.
“네?”
“너도 암 가문의 가주로서 아마 이곳에 남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이한이었다.
“미력하지만 다른 가문에 보조를 맡을 생각이에요.”
그 말에 이신아는 고개를 저었다.
“무암과 네 능력을 사용하려면 크게 도움이 될 거란다.”
* * *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한우성의 눈앞에 있는 남자.
목숨을 불사리는 듯이 온몸의 마기를 방출하는 남자는 한우성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내 손으로 너를 죽이지 못한 게 아쉽다…… 한우성.”
“왜 이렇게까지 했지?”
녀석은 탑을 대신해 현세까지 이어지는 마기를 방출했다.
그 몸에 가해진 부하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은 패배했고 눈앞에 죽어 가고 있던 것이다.
“마기를 가진 마인 중에 너처럼 방대한 마기를 가진 마인은 없지.”
“…….”
“너는 그 힘을 전부 쏟아부어서까지 통로를 열었다. 분명 그런 미친 짓은 네 생각이 아니겠지.”
녀석이 쏟아 낸 마기가 현세로 이어졌다.
인간 하나가 가능할 짓은 아니나 녀석은 그저 통로를 만들었을 뿐.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이 마경 일대의 마기일 것이다.
“너는 밀리에게 이용당한 거다.”
“……그렇다 해도.”
갈리가 말했다.
“내가 원하는 마지막이 이루어질 거다.”
한때 녀석이 말한 저주 같은 그 말.
“나와 김천운의 죽음인가?”
녀석이 생각해 낸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
“그게 이딴 거라니…….”
쿠오오오오⎯⎯⎯⎯⎯⎯!
지왕의 포효가 일대를 울렸다.
녀석의 왼쪽 앞발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고 녀석이 지면을 울리는 첫 번째 재앙이 시작을 알렸다.
“저걸 막는 방법은 없을 거다.”
마지막 갈리의 말이 한우성의 귓가에 스며들었으나 한우성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녀석의 앞발을 향했다.
다른 두 번째 세 번째 걸음보다 녀석의 첫 번째 앞발을 막아야 한다.
그 첫 번째 한 걸음에서 터트리는 마기가 마경 전역의 지면을 반파시킨다.
“응? 저건.”
그때 한우성의 눈에 비친 무언가.
녀석이 내리찍을 지면 아래에 거대한 검은 풍선 같은 것이 언뜻 보였다.
* * *
천운이 향한 곳은 지왕의 앞발이었다.
녀석의 첫걸음으로 인해 마경에 가둬진 마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터져 나갈 것이다.
열려진 통로는 고작 녀석을 깨우기 위한 시발점에 불과하다.
‘막을 수 있을까?’
저 거대한 녀석을 죽일 방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건 자신의 역할이 아니다.
천운은 녀석의 첫 번째 발걸음으로 인해 벌어질 상황을 알고 있었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발걸음으로 이어지는 첫 희생자가 김천운이었으니.
“샌디.”
샌디는 아직도 대답이 없었다.
마치 고요히 잠이 든 듯 말없이 그저 천운의 명령에 무의식적으로 따를 뿐이었다.
“최대한 몸을 늘려 줘.”
나는 샌디의 몸에 담겨진 거대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내 마력과 비교도 안 되는 농호한 양의 마력이다.
이 마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쿠쿠쿵!
녀석의 앞발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고 천운은 녀석의 앞발이 내리꽂힐 지면에 도달했다.
후우웅!
동시에 샌디가 몸을 늘렸다.
점점 비대해지는 몸은 샌디의 내부에 모든 마력을 사용하여 몸을 최대한 크게 늘리고 있었다.
‘좋아!’
그럼에도 녀석의 거대한 앞발의 크기에는 못 미치지만 천운은 녀석의 앞발을 막을 오만한 생각이 아니었다.
피해의 최소화.
당연하지만 녀석의 그 전부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마경 전역은 아니어도 일대 정도의 피해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천운은 곧바로 만다라를 발동했다.
올라간 스탯은 마력.
천운은 스킬로 더해진 마력을 포함한 모든 마력을 샌디에게 쏟아부었다.
동시에 특성을 발동했다.
모든 마력이나 마기를 무마시키는 특성.
그런데도 천운은 그 마력에 부족함을 느꼈다.
‘이 정도는 안 돼.’
그저 녀석의 지근거리에 있을 뿐인데도 자신의 마력이 공명으로 집어삼켜질 정도였다.
이 정도 마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천운은 알 수 있었다.
“김천운!”
그때 허공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천운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한우성이었다.
“미친 거냐 김천운!”
한우성이 다가왔다.
그는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천운에게 말했다.
“이곳 전역이 녀석의 발걸음으로 반파된다.”
“알고 있어요.”
“그걸 아는 녀석이 이따위 짓거리를 해!”
천운은 곧바로 인벤토리에 티켓 하나를 꺼냈다.
티켓을 찢은 동시에 천운의 옆에 게이트가 생겼고 한우성은 멍하니 게이트를 바라봤다.
“이건…….”
“그것보다 도와주세요.”
“……뭘 도우면 되냐?”
한우성은 상황을 이해했다.
이유는 모르나 녀석이 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졌고 탈출 방법을 생각해 놨다는걸.
“제게 마력을 빌려주세요.”
“마력을?”
“네.”
한우성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가능하겠지.”
한우성이 천운의 손에 얹었고 곧바로 마력을 주입했다.
“윽!”
자신의 마력과는 다른 농후한 기운이 몸에 스며든다.
과거의 첫 만남에서 느낀 마력과는 다른 친숙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전부를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한우성은 끝없이 마력을 주입하는 동시에 천운은 그 마력을 샌디에게 넘겨주었다.
후우웅!
샌디의 몸이 더욱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샌디는 몸을 더욱 불리는 것을 멈추고 천운이 넘겨주는 마력을 몸 내부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천운이 말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출…….’
녀석의 앞발이 내리 찍히는 동시에 샌디는 이 마력을 폭발하듯 사방에 방출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