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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49화 (149/176)

제149화

#148

흘러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뚜렷했던 마물의 형태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마물이 서서히 사람으로 변해 간다.

나는 대검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넌.”

천운의 동공에 선명히 비치는 소년의 모습.

김의철.

나는 녀석의 이름이 떠올랐다.

“왜 여기에…….”

천운은 의철을 놔두고 나머지 3마리의 마물을 바라봤다.

그제야 그 마물들이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한설아, 윤시혁, 질 로벤.

“하핫.”

헛웃음이 나왔다.

모든 상황을 이해했고 이 상황을 벌인 주범을 알아차렸기에.

“미래의 김의철이라…….”

눈앞의 녀석들은 분명 미래에서 온 녀석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시간대의 녀석들은 이곳에 존재할 리도 이렇게 강하지도 않을 테니.

“절망의 던전인가…….”

이 일의 주범.

과거를 마음대로 누빌 수 있는 녀석은 아마 그 녀석밖에 없을 테니.

그렇다면 지금 이 녀석들은 4층에 도착했다는 말이었다.

“하…… 야.”

천운은 김의철을 불렀다.

그러나 녀석은 대답 없이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그냥 듣기만 해.”

그리 말하자 의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의철은 천운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와 다른…… 조금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던 천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4층. 죽음의 층은 과거의 사람 한 명을 지목해서 보스로 만들어.”

절망의 탑 마지막 층에서는 과거의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시련에 통과한다.

그것이 과거, 자신이 가장 소중했고 그리워했던 누군가라도.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라도.

지목하는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지가 이번에는 나를 지목했나 보네.”

천운은 의철이 들고 있는 팔테인의 검날을 잡았다.

“야.”

그리고 의철을 불렀다.

천운을 바라보는 의철의 눈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하려는 행동을 알았기에.

꽈아악-

의철은 있는 힘을 다해 팔테인의 손잡이를 꽈악 쥐었다.

그대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으나 지금의 천운은 자신보다 힘이 강했다.

“얘, 얘들아!”

의철은 급하게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 또한 달려와 천운을 말리려 했으나 천운을 중심으로 투명한 방어막이 전개되어 아이들의 앞길을 막았다.

“김의철.”

“아, 안 돼! 그만.”

의철은 두 손으로 팔테인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팔테인의 검날은 서서히 천운의 심장으로 향할 뿐이었다.

“아, 안 돼! 제발!”

푸욱-

자신의 검날의 끝이 천운의 가슴에 박혔다.

그대로 깊숙이 천운은 팔테인의 검날을 잡아당겼다.

이제 고통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오랜 세월, 마모되고 휩쓸려 사라졌으니.

“야.”

그 상태에서도 천운은 의철을 불렀다.

왈칵- 입가에 피가 쏟아졌지만, 천운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천운은 의철을 바라봤다.

일그러진 표정.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팔테인을 끝까지 잡아당기는 의철.

“괜찮아. 나 안 죽어.”

그저 또다시 회귀하면 될 뿐이다.

미래에 의철이라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뭐가 그리 슬픈지…….

“후훗.”

천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과 다르게 의철은 그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야. 의철아.”

천운은 의철에게 물었다.

“미래에 나는 어떠냐?”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미래에 나는 지금보다 더한지.

그 녀석은 그 재앙을 막을 방법을 찾았는지.

미래의 천운은 지금의 나보다 행복한지.

“됐다…….”

어차피 그 미래가 나일 텐데.

천운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또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마 그 빌어먹을 침대에서 눈을 뜨겠지.

“나중에 보자.”

그 나중에가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 * *

띵-

천운의 동공에 비추는 창.

천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하.”

그러고는 웃음이 나왔다.

천운은 거대한 눈동자, 이지를 보며 말했다.

“네 의지가 아니었구나?”

떠오른 창의 내용.

그것은 공략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것으로 한 가지 알 수 있던 건.

던전의 이지가 이 탑의 주인이기는 하나, 던전에서 벌어지는 퀘스트나 시련의 모든 권한이 이지에게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를 여기로 불러들인 것도 네 의지가 아니었나 보네.”

그것이 보인 순간.

천운은 간단한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애초에 녀석이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나를 여기로 불러들이는 것도 퀘스트를 주어 보상을 주는 것도 녀석은 그 모든 행동을 내게 하지 않았을 테니.

“누구지?”

{나도…… 모른다. 그저 이건 시스템처럼…… 계산하고 보상을 넘겨준다.}

“아, 그러냐…… 뭐 그래도.”

천운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내기는 내가 이겼나 보네.”

{…….}

이지는 말이 없었다.

내기의 결과는 뚜렷하게 눈으로 보였으니.

주위에 검게 칠해진 공간에 금이 가며 밝은 빛이 그 사이로 비치기 시작했다.

던전의 붕괴를 알리는 따뜻한 빛이었다.

{궁금한…… 게 있…… 다.}

이지의 목소리가 끊기듯 들려왔다.

던전 자체가 공략당했으니 녀석 또한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뭔데?”

{내…… 천…… 명을 어…… 떻게 알았지?}

“지배 말이야?”

{그…… 렇다.}

녀석은 세계 자체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지배하는 것이 문제였지.

“한 번 거짓말을 한 녀석이 두 번 안 할 이유는 없잖아?”

{그…… 런가.}

녀석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 녀석의 인격은 사라지고 절망의 탑 또한 무너질 것이다.

“미르마와 메리헨은 어디 있지?”

{그녀들을 인…… 질로 잡아…… 봤자 소용없겠지. 너는…… 회귀라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럼 이미 밖에 나왔다는 말이야?”

{그…… 렇다.}

녀석은 내가 아직도 수가 틀리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과거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김…… 천운.}

이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의 거대한 눈을 쳐다봤다.

{네놈은…… 또다시 재앙을 막…… 지 못하고 회귀……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 시 이곳을 찾겠지.}

저주처럼 독기가 담긴 그 말.

{네가…… 영원한 이상…… 나 또한 영원하다.}

나는 그 말에 그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이번이 마지막이거든.”

{그…… 게 무슨 말이지?}

“네가 되살아날 일은 이제 없을 거야.”

나는 죽을 생각이 없다.

그 녀석이 넘겨준 회귀의 기운을 쓸 생각이 없다.

이번 회차에서 나는 진짜 김천운을 대신해 재앙을 막을 생각이다.

“너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다.”

{김…… 김…… 천운…….}

희미하게 끊겨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원망과 분노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저 분노나 원망이 내게 닿을 일은 없을 거다.

녀석은 이곳에서 사라질 테니.

쿠쿠쿠쿠쿠쿵⎯⎯⎯!

공간 전체에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탑이 공략된 것이다.

* * *

“이게 대체 무슨…….”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탑 주위를 둘러싼 팔스 길드의 길드원들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경악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지왕의 포효로 터진 마기의 폭풍이 그들을 덮쳤고 동시에 눈앞에 거대한 탑이 지면을 뒤흔드는 진동을 일으키며 균열이 가고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은빛을 내던 탑이 서서히 검은 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탑의 최상층.

구름을 뚫은 탑의 끝을 시작으로 서서히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탑이…… 공략됐어.”

팔스 길드의 길드장 파스퍼가 그 현상을 가까이에서 목도하고 있었다.

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말의 뜻은 누군가.

탑을 공략했다는 의미였다.

치이익- 치직-

-아, 카스퍼!

귀에 이어폰 형태의 작은 단말기에서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스 길드 부길드장 제니퍼였다.

“제니퍼. 탑을 공략한 건가?”

-응? 아니, 무슨 소리야?

“뭐? 그럼 다른 길드 놈들한테 탑의 공략을 넘겨준 거냐?”

-뭔 소리야. 다른 놈들도 포기해서 탑을 나온 건데. 애초에 지금 상태에서는 공략 자체가 불가능하거든. 일단 재정비하고 다시 들어가려고.

“그럼 대체…….”

카스퍼는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탑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공략했다는 말이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 *

천운이 눈을 떴을 때는 처음 탑에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장소.

최아진의 집무실이었다.

“다들 어디 가셨나 보네.”

천운은 곧바로 옆에 소파에 앉아 전언으로 누군가를 찾았다.

‘미르마.’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미르마. 계세요?’

[천운이야?]

‘미르마 지금 어디세요?’

[집이다. 그것보다 천운아. 조금 위험한 상황인 거 같아.]

‘네?’

[일단 집으로 오거라.]

천운은 집무실을 나와 곧바로 누나의 집을 향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언가 상황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위이이잉-

곳곳에서 피난 경고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꽉 막혀 밀린 차들과 모든 사람이 커다란 짐을 메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설마…….’

천운은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천운의 발걸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천운은 집 대문 앞에 도착했고 마당을 넘어 문을 열고 집에 도착했다.

“누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인 여인은 한민아였다.

“잘 다녀왔니?”

“아…… 네.”

말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누나의 표정은 무언가 다급해 보였으니.

“할 얘기가 있단다. 네 친구도 기다리고 있고.”

“친구요?”

“그래. 일단 들어오렴.”

천운은 누나를 따라 거실로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과자를 먹고 있는 성녀 메리헨과 그녀의 옆에 있는 미르마가 보였다.

“아! 천운!”

[무사해서 다행이야.]

“네. 다행이죠…… 그것보다…… 어 누나 설아는요?”

“설아도 탑으로 들어갔는데 왜인지 지금은 미국에 있나 봐. 다행이야.”

“네…….”

나는 누나의 다행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운아.”

한민아가 천운을 부르며 말했다.

“너도 미국으로 가렴.”

“……해왕이죠?”

내 말에 한민아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해왕이 움직였나 보네요.”

바다의 마경에 사는 해왕.

해왕의 꼬리짓 한 번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설정한 해왕의 재앙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지금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 해일을 막을 아베타는 누나만큼 적역이 없었으니.

“누나. 첫 해일은 동해안 두 번째가 남해안에서 시작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니?”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어요. 크롬벨 씨의 도움을 받으면 편할 거예요.”

그것을 길게 설명한 시간은 없었다.

나 또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

나는 탑 공략으로 받은 보상 중 하나를 발동했다.

그것은 스킬이며 던전의 이지가 가지고 있는 권능 중 하나였다.

팔락-

천운의 손에 티켓 한 장이 내려앉았다.

천운은 곧바로 그 티켓을 찢었고 그 순간 거실 중간에 게이트 하나가 열렸다.

탑 공략으로 얻은 보상.

그것은 1, 2, 3층을 통틀어 퀘스트로 얻은 보상의 종류 중 몇 가지를 선택해 스킬처럼 사용할 수 있는 보상이었다.

천운의 경우 3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아마 탑 공략에 어느 정도 공헌을 했으니 받은 보상일 것이다.

“미르마, 메리헨.”

나는 그녀들을 향해 부탁했다.

“도와주실래요?”

[알겠어.]

“으응? 제가 도울 게 있을까요?”

“응, 부탁할게.”

“자, 잠깐 천운아.”

한민아가 다급하게 천운을 불렀다.

애처롭게 부른 그녀의 목소리에 천운은 고개를 돌려 한민아를 바라봤다.

“누나. 조심하세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천운은 그리 말했다.

“천운아…….”

“갈게요. 그리고.”

천운은 이벤토리에서 꺼낸 무언가를 한민아에게 전했다.

그 유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민아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부탁할게요.”

“…….”

그대로 게이트 너머로 나아가는 천운을 한민아는 말리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천운에게 주어진 이 유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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