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146
나는 어느 한 가지를 추리했다.
모든 유물은 멸망한 세계에서 넘어온 기물이다.
또한 이것은 천운의 예상 밖이었지만 녀석은 몇 만을 넘는 사람들을 멸망한 과거의 세계로 보낼 정도의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이지가 그 세계를 멸망시킨 주범의 마지막 위치를 모른다면
{……그 녀석의 위치?}
만약 이지가 그 모래의 위치를 모른다면.
아니, 녀석이 멸망한 세계와 사라졌다는 게 아닌 모른다고 답한다면…….
{그건 들어줄 수 없다. 내 영역 외의 질문이니.}
“…….”
이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그 한마디로 어느 정도 추리했던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지는 분명 자신의 영역 외의 질문이라고 말했다.
사라졌다거나 소멸했다가 아닌 ‘영역 외의 질문’이다.
그 영역 외의 장소는 한 곳밖에 없었다.
‘현세.’
모래는…… 백색의 샌디는 바깥 세계 어딘가에 잠들어 있거나 숨어 있을 것이다.
{다른 원하는 것은 없나?}
이지는 내게 또 다른 소원을 물었다.
“다른 소원이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녀석이 내게 소원을 원하는 이유야 당연히 계약 때문이었다.
내 회귀라는 저주를 없애는 계약.
내가 회귀하는 이상 녀석은 본래의 기억을 가진 채 회귀한다.
녀석 또한 그것을 저주라 말했고.
당연하지만 이지는 ‘영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묻겠는데.”
{뭐지?}
나는 던전의 이지가 계약을 맺으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모든 던전의 이지에게는 천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천명은 곧 이지의 신념이었으며 마지막 목적이었고 어느 순간 본능으로 변한다.
“너 ‘천명’이 뭐야?”
{……내 천명 말인가?}
“그래. 그게 내 소원이야.”
나는 이지의 천명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질문에 녀석이 답할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내 천명은…… ‘세계’를 만드는 거다.}
“…….”
그 말을 들은 뒤 천운은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입가에 어처구니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녀석은 내게 또다시 거짓말을 했으니.
“하…….”
{……뭐지? 그 반응은?}
천운은 고개를 들었다.
원래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녀석이 내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이상 그 계약에 응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직도 눈앞에 떠 있는 계약서에 반마의 마력을 흘렸다.
그것이 마기이든 마력이든 그것으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 반마의 마력으로 무마시킬 수 있다.
나는 녀석의 계약서를 없앴고 그 행동에 녀석이 의문스럽게 물어봤다.
{뭐 하는 거지?}
“이게 내 대답이야.”
{…….}
녀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녀석의 정적이 5초 정도 지났을까.
그때가 돼서야 녀석은 말문을 열었다.
{그 말은 곧 계약의 거절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미묘하지만, 녀석의 어조가 살짝 높아진 것이 느껴졌다.
녀석은 분노한 것이다.
그러나 천운은 개의치 않고 녀석에게 말했다.
“그래.”
{너는 약속을 어겼다.}
“먼저 약속을 어긴 건 너잖아.”
{……네놈은 알고 있었군.}
고요하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녀석이 말했다.
{과거의 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 우스꽝스러웠다. 확실히 녀석은 미래를 알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라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어딘가에서 나를 바라볼 녀석의 존재를 찾았다.
이 던전 자체가 이지의 몸이지만 몸이 있다면 눈 또한 존재할 테니.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녀석은 동시에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억을 잃은 네놈은 정말 모든 걸 알고 있는 거 같군.}
곧이어 천운의 눈앞에 거대한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지의 눈.
녀석은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 ‘천명’을 알고 있나?}
“알고 있어.”
{그럼 애초에 답은 정해졌다는 말이었군.}
나는 처음부터 녀석과 계약할 생각이 없었다.
이지는 ‘영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지 내 회귀의 기운 때문에 그 ‘천명’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뿐.
{지금 네놈을 죽여 봤자 또다시 회귀하겠지.}
곧이어 이지가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네놈은 과거의 힘을 잃었군.}
“힘이라고?”
{지금의 네놈은 약하다. 기억을 잃기 전 네놈과 비교하면.}
하긴 몇백 회차를 넘게 회귀한 김천운이다.
그런 녀석과 비교하면 확실히 난 약하겠지.
{동시에 모든 걸 알고 있는 네놈이라도 4층의 시련도 공략 방법도 모르겠지.}
녀석은 자신하는 듯 그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틀렸다.
나는 이미 4층의 시련도 그 공략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녀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네놈을 4층으로 올려 보낼 생각이 없다.}
녀석은 단언했다.
확실히 이 기이한 공간을 나 혼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이곳에서 지켜봐라. 내 천명을 이루는 그 순간까지. 네놈은 이곳에서 무엇도 할 수 없다.}
천운은 녀석의 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녀석이 물었다.
{뭐가 웃기지?}
“아니, 그냥 뭐…….”
이지는 잘못된 판단을 선택했다.
물론 나는 4층의 시련과 공략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몰랐어도 상관없었다.
굳이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4층을 공략할 사람은 내가 아니니.
{그 녀석들이 4층을 공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그래. 맞아.”
{어리석다. 나 또한 그놈들에게 몇 번을 공략당했다고 생각하나?}
녀석이 말했다.
확실히 다르게 생각하면 녀석 또한 회귀하여 의철에게 몇 번 공략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소년은 절대 4층을 공략할 수 없다.}
“그럴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확실히 경험이 존재하는 이지이니 4층의 시련을 변형하여 바꿨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의철이 4층을 공략할 수 있을 거란걸.
김의철 또한 과거의 김의철과 다르니.
“어휴, 편하다.”
나는 녀석이 보란 듯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뒤 발을 쭉 펴 편하게 앉았다.
“이지. 내기 하나 할까?”
{내기라고?}
“간단한 내기야.”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위를 가리켰다.
“네 말처럼 김의철이 4층을 공략 못 할지 아니면 4층을 공략하고 네가 소멸당할지.”
* * *
“여기는?”
“던전. 천운이가 나랑 만났을 때 처음으로 발견한 던전이야.”
김의철이 물었고 한설아가 대답했다.
아이들은 과거 김천운이 발견한 던전 ‘무형의 동굴’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이 문으로 김천운이 들어갔다고?”
“맞아.”
그들은 빠르게 지하 1층을 넘어 마지막 층에 도달했다.
애초에 이곳에 무엇도 자신들이 만질 수는 없으니.
그렇기에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들은 바로 코앞에 있는 마지막 층으로 가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무슨 방법이 없나?”
“소용없다. 이곳에 무엇도 우리는 만질 수 없었다.”
“음…… 그런가?”
의철은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의철의 손에 문손잡이가 잡혔다.
의철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어?”
“뭐예요?”
“……어떻게 한 거냐?”
아이들 또한 시선이 의철을 향했고 의철은 그대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문틈 사이로 환한 빛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쏟아진 빛에 눈을 가렸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맑은 하늘 아래에 바람이 살랑거리는 넓은 들판에 서 있었다.
“여긴…… 어?”
의철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곧이어 익숙한 소년이 눈앞에 보였다.
김천운.
천운은 뒤돌아선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왔냐?”
그런 천운이 뒤돌아 의철에게 말했다.
“그럼 시작할까?”
그리고 천운은 자신의 주무기인 단검을 꺼냈다.
크리티컬 단검.
흑색의 단조로운 단검은 어마한 파괴력을 지닌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의철이었고 동시에 의철은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뭐 하는 거야 천운아?”
의철은 되물었다.
동시에 날아드는 천운의 단검.
천운은 그 한순간의 자신의 코앞에서 단검을 휘두른 것이다.
‘빨라?!’
의철이 피하려는 동시에 누군가 의철의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다.
후웅!!
천운의 단검은 그저 허공에 휘둘러졌고 그 작은 단검의 파공음에 주위 잔디가 흔들렸다.
의철의 이마에서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나왔고 자신을 잡아당겨 구해 준 윤시혁을 바라봤다.
“정신 차려라. 녀석은 천운이 아니다.”
“아니, 그, 그래. 고마워.”
의철은 다시 일어섰다.
그렇다.
윤시혁의 말대로 눈앞의 소년이 천운이라면 우리들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4마리라…….”
천운은 그리 중얼거리며 우리를 바라봤다.
천운의 입가에서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빨리 끝내게 들어와라. 시간 없으니까.”
* * *
캉! 캉!
천운과의 사투가 이어진 지 30분이 지났다.
아이들이 기진맥진해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천운은 그저 한심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에휴…… 쯧.”
지금의 천운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경이로운 반사 신경과 힘.
동시에 믿어지지 않는 마력의 질과 양.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알 수 없는 마법의 지식.
모든 것이 지금의 천운을 능가하고 있었다.
확실히 녀석은 김천운이 아니었다.
“벌써 끝이야?”
천운이 말했다.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 채 실망한 듯 말했다.
그것이 윤시혁의 자존심을 건들었다.
“거만하다. 김천운.”
윤시혁은 3층에서 가져온 유물은 현현했다.
보이지 않는 검 ‘리테온’.
성기사 부단장이 쓴 루벨론이 쓰던 검을 그대로 가져온 윤시혁이었다.
윤시혁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리테온의 특성은 그저 보이지 않는 것만이 아니었으니.
사아악-
보이지 않는 검격이 날아가 들판의 잔디들이 갈려 나갔다.
그 검격이 향한 것은 천운이었고 천운은 보이지 않는 검격을 지그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난감을 발견한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 검격을 받아 냈다.
캉!!
천운의 입이 해맑게 벌어졌다.
“이제야 좀 할 만하네.”
사아악-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
윤시혁은 잠시 눈을 감았고 다시 떴을 때 천운이 코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고작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윤시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후욱!
천운은 단검 대신 발을 들어 올려 윤시혁의 머리를 후려쳤다.
윤시혁은 팔을 들고 천운의 발차기를 막았으나 그 힘이나 위력에 날아가 잔디밭을 굴렀다.
“하압!”
곧바로 질 로벤이 속박 마법을 발동했다.
천운의 발밑에서 술식이 발광하며 술식에서 여러 개의 쇠사슬이 천운의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음…… 속박 마법이네. 근데…….”
천운은 옭아맨 쇠사슬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질 로벤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킹! 캉!!
천운을 속박하던 쇠사슬이 허망하게 끊어졌다.
질 로벤은 곧바로 거대한 빙벽을 만들어 천운에게 날렸다.
그것을 눈으로 주시한 천운이 그대로 단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고 거대한 빙벽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천운은 유유히 질 로벤의 코앞에 도착했다.
“두 명째.”
천운은 그리 말하며 질 로벤의 목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캉!!
동시에 의철과 한설아가 움직여 천운의 단검을 막았다.
천운은 신기하다는 듯이 그 상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기하네…… 이놈들도 협력이란 걸 아나?”
그 한마디에 의철은 설마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너는…….’
다짜고짜 공격하는 천운.
자신들을 못 알아보는 김천운.
그리고 천운의 마지막 말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유물 넘기고 빨리 끝내자. 마물들이 뭐 이리 끈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