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143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천운은 삐걱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움직였다.
신체의 한계 그 이상의 힘이 마투법으로 상승했으니 천운 또한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었으니.
“허…… 신기하군.”
길은 감탄스럽게 천운을 바라봤다.
“더 할 수 있겠나?”
길은 물었다.
천운은 대답하지 않고 검을 쥐었다.
그것이 대답이 됐는지 길은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다.
* * *
길은 다시 검을 쥔 채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패도적인 마력이 유리 돔 전체에 퍼졌으며 길을 중심으로 지면에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샌디야.’
형태가 바뀌는 것을 보면 일어나 있는 게 분명한데 샌디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천운의 생각대로 샌디는 몸의 형태를 변형해 주기 시작했다.
‘망치.’
후웅!!
휘두르는 동시에 전달된 전언.
천운의 단검이 순식간에 그 크기를 넓히며 거대한 망치로 전환됐다.
길은 그 과정을 경이롭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기하구나.”
탕!
길의 검 끝이 망치를 향했다.
거대한 무게와 속도를 더한 망치가 길의 검 끝에 막힌 것이다.
천운은 잠시 뒤로 물러나 상황을 살폈다.
길 또한 들어 올린 검을 내린 뒤 말을 이었다.
“기술은 없는데 그것을 보강할 힘과 속도 그리고 동체 시력 또한 대단하구나…….”
기술을 따위라고 치부할 정도의 힘과 속도.
동시에 자신의 검을 따라잡을 동체 시력.
길은 그것이 경이로웠고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너 같은 아이가 정말 미르마의 제자인가? 마투법은 그렇다 쳐도 마법에 재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구나.”
놈은 마법보다는 검에 어울렸으니.
‘마음 같아서는…….’
길은 자신의 검을…… 힘을 소년에게 내지르고 그 결과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교황의 말 때문인지 눈앞에 유리 돔이 거슬려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바르부스. 그냥 이 유리 돔을 부수면 안 되나?”
“헛소리하지 마라 길! 이 유리 돔이 부서지면 전부 끝이라고! 끝!”
“하…… 귀찮군.”
팔테인만 아니었으면 자신 또한 미르마처럼 대륙을 방황하며 자유롭게 살 터인데.
[걱정하지 마라.]
그때 미르마가 길에게 말했다.
[이미 술식의 전개는 끝났으니.]
“뭐, 뭐?!!”
그녀의 말에 바르부스의 눈이 부릅떠지고 길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길! 저런 애송이보다 미르마를 막아라! 빨리!”
“……늦은 거 같구나.”
파아아아앙!!
거대한 술식의 중심.
유리 돔을 감싸는 환한 빛이 주위에 번져 나갔으며 술식의 전체가 성녀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눈앞에 존재했던 거대한 술식은 사라지고 환한 빛이 사그라드는 순간.
성녀의 눈은 천천히 반개했다.
파창!!
동시에 유리 돔 전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미 효력을 잃은 유리 돔은 형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니.
결국 평범한 유리에 지나지 않은 그것은 그 마법의 파동에 견디지 못하고 조각이 나며 사방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르륵-
동시에 흰색의 샌디는 메리헨을, 천운의 샌디는 천운을 감싸 떨어지는 유리 파편들을 막아 줬다.
후두둑 떨어지는 작고 큰 유리의 파편들.
그 광경을 메리헨은 멍하니 바라보고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
“미르마…….”
메리헨은 고개를 돌려 미르마를 바라봤다.
[그래.]
미르마는 다정한 미소로 대답했다.
곧이어 그녀는 천운을 보며 말했다.
“천운아.”
불안에 잠긴 표정.
그녀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고 천운에게 물었다.
천운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대화를 좋아하며 활기가 넘치는 소녀.
그런 그녀가 유리 돔이 없어진 이곳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천운은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누구도 아닌 미르마를 믿고 있었기에.
텁-
그녀에게 다가간 천운은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눈을 꼬옥 감기 시작했다.
눈앞의 소년이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손을 댄 사람들의 말로처럼 될 것이 두려워.
“괜찮네.”
그런 천운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천운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에게 말해 줬다.
“안심해도 돼.”
천운의 말에 그녀의 눈이 서서히 반개했다.
눈앞에 천운이 서 있었고 천운은 자신에게 말을 걸고 몸에 닿고 있었다.
메리헨은 입을 열다 닫기를 반복했다.
유리 돔이 없어진 이곳에서 정말 천운에게 말을 걸어도 될까.
그리고 그녀는 용기를 냈다.
“정말…… 괜찮아요?”
“어. 괜찮아.”
천운은 그녀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정말…… 정말 괜찮죠?”
메리헨은 확신을 바라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고 천운은 씨익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어. 문제없어.”
“미르마…… 천운.”
그녀의 촉촉해진 눈가.
그러나 메리헨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내게 ‘자유’라는 선물을 준 두 사람이 너무 고마웠기에.
“미르마!!”
그러나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길과 교황.
그 둘은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있었으니.
교황은 사라진 유리 돔에 허망한 표정을 짓다가 그대로 미르마를 노려보며 호통쳤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한지는 알고 있나!!”
[그래. 알고 있다.]
그녀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녀의 자유는 곧 미래의 재앙에게 자유를 준 것이니.
애초에 위험하다고 판단된 성녀의 힘이었다.
성녀 또한 그것을 인지하고 자진해서 유리 돔에 들어간 것이니.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굳이 그녀가 신성력을 제공할 이유도 없으며 모래를 이곳에 잡아 둘 방법 또한 사라진 것이다.
“크으윽!! 쓸데없는 짓거리를!”
교황 또한 이 방법까지는 쓰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은 힘으로라도 성녀를 이곳에 잡아 두는 것이다.
“길! 성녀를 붙잡아라!”
“……흠. 바르부스, 교황인 자네가 성녀라고 불리는 그녀를 가두고 억압할 생각인가?”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흠…….”
길은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갔다.
이미 신경 써야 할 유리 돔이 사라진 공간.
“귀찮지만 이것도 일이니…….”
길은 검을 쥔 채 천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메리헨의 술식 인식은 끝났다.
하지만 이제는 길의 눈을 피해 이곳을 탈출하는 것만이 남았었다.
사실상 현재로선 불가능하지만.
“크윽…….”
천운의 다리를 포함한 온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마력의 일부를 사용한 마투법이니 반동이 고스란히 몸 전체에 퍼진 것이다.
미르마 또한 방금 그 거대한 술식을 전개하고 마법을 발동했으니 이미 기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만 포기해라. 너와 싸우고 싶지는 않으니.”
결국 눈앞까지 다가온 길이 천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운은 다시 온 힘을 쥐어짜 내 단검을 쥔 순간.
후우웅…….
익숙한 소리.
천운은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눈앞에는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게이트가 생겨났다.
“미르마!”
동시에 천운은 어느 한 가능성을 생각했다.
천운은 곧바로 미르마에게 소리쳤으며 곧바로 마지막 마력을 쥐어짜 내 흑암 마법을 발동했다.
사아악-
공간 자체를 가려 주는 흑암 마법.
길 또한 미지의 마법에 당황해 잠시 뒤로 크게 뛰어 흑암 마법을 피했으나 곧 그 어둠이 시선을 가리는 용이란 걸 알아차렸다.
“어딜!”
훙!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진 검.
그 일격 자체가 공간을 갈랐으며 순식간에 천운이 전개한 흑암 마법이 반으로 갈라졌다.
탁!
땅을 박차고 천운에게 달려드는 길.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았으며 어느 순간 천운의 뒤를 잡은 길이 그대로 검을 상단 베기로 휘둘렀다.
의안을 발동한 천운은 그것을 눈으로 계속 지켜보는 동시에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해 냈다.
파직-
그러나 검을 피했음에도 검에서 쏟아진 검압에 천운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크윽!”
그저 평범하게 휘두른 상단 베기 자체가 규격 외의 힘을 자랑했다.
그렇기에 확실할 수 있었다.
길은 움직임을 막지 않은 이상 게이트가 있다 해도 저곳을 통과할 수 없다고.
‘미르마. 메리헨을 먼저 보내세요.’
[그래.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 볼게.]
게이트가 생겼다는 말은 천운 또한 저주가 풀리고 3층의 시련을 통과했다는 말이었다.
동시에 그 3층의 보상 또한 챙길 수 있었으니.
천운은 메리헨을 보상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천운아 지금까지 말은 안 했지만 이제 확신할 수 있겠구나.]
그런 미르마가 천운에게 말했다.
[그녀는 진짜다. 던전이 만들어 낸 환상 따위가 아니야.]
그녀의 신성력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마력과 마기로 이루어진 던전 따위가 그 신성력까지 재현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그리고 천운 또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네. 그러니까 시도해 보죠.’
천운은 다시 단검을 쥐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길을 막을 생각이었으니.
“허…….”
그리고 길은 한탄스러웠다.
“이제야 내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됐는데.”
길은 각각 천운과 미르마를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네놈들이 한계를 다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귀찮아진 길은.
“그냥 끝내지.”
후우웅!
길의 손에 모여드는 빛의 입자.
그것은 거대한 대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여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소용없겠지.”
팔테인.
유구한 힐리아교의 빛의 검.
그것이 형태를 드러낸 순간 길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요동친 마력이 그대로 팔테인에 흡수됐으며 팔테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그 대검의 면적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의 너라면 승산이 없는 걸 알고 있겠지. 그만 포기해라.”
길은 눈앞의 소년에게 말했다.
아직도 가능성을 생각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은 소년.
그 소년은 눈앞의 팔테인을 보고도 마력의 기세를 보고도 기죽지 않았다.
‘한 번만 막으면 돼…….’
다시 만다라를 발동한 천운이었다.
다시 자신의 운을 믿기로 하며.
띵-
올라간 스탯은…… 행운이었다.
또다시 급격하게 성장하는 행운.
미세하지만 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건…….”
그 행동은 아주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의 행동이었으니 그러나 그것 자체가 길의 방심으로 이어진다.
의안을 발동한 천운은 그 미세한 움직임을 먼저 예측할 수 있었다.
길의 눈썹이 아주 살짝 미세하게 움직이기 직전 천운은 미르마에게 소리쳤다.
“가세요!”
미르마는 곧바로 메리헨을 이끌고 게이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단검으로 변한 샌디가 길게 뻗어 나가며 길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길은 가볍게 고개를 돌려 샌디의 기다란 송곳을 피해 냈고 동시에 비대해진 팔테인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지면을 가르며 미르마에게 다가오는 검압.
천운 또한 동시에 달려들었고 그대로 미르마 앞을 막아선 천운이 그대로 샌디를 대검의 형태로 바꾸어 그 검압을 막아 냈다.
카캉!!
천운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운은 미세하게 남아 있는 마력을 대검에 두르고 반마의 특성을 발동했다.
마력 자체를 없애는 기이한 특성.
마지막 그 특성을 믿고 검압을 막아 냈으나 역부족이었다.
[천운아!]
미르마가 소리쳤다.
그녀는 메리헨을 데리고 이미 게이트 앞에 서 있던 참이었다.
‘그렇다면…….’
검압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천운은 곧바로 대검을 비켜 세우며 검압을 옆으로 흘렸고 게이트를 향해 땅을 박차 달려 나갔다.
후우우웅!!
그러나 그것 또한 오산이었다.
그의 두 번째를 생각하지 못한 천운이었다.
아까보다도 거대한 검압이 이번에는 천운이 아닌 게이트에 선 메리헨을 향해 쇄도한 것이다.
“큭…….”
천운은 최선을 다해 달렸으나 검압이 메리헨에게 도착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그것을 직감한 천운은 닿지 않은 손이라도 그녀를 향해 뻗었으며.
그때였다.
그 목소리가 천운의 머릿속에 울린 것은.
{그런가…… 이게 미르마가 말한 감정이라는 거군.}
메리헨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백색의 모래.
그것은 달려오는 천운을 낚아챈 동시에 게이트를 향해 집어 던졌다.
천운과 메리헨, 미르마가 게이트 안으로 넘어가는 순간.
마지막 천운의 시야에 보인 장면은 백색의 모래가 게이트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검압을 막기 위해 몸을 거대하게 늘린 것이었다.
“안 돼…….”
서서히 닫혀 가는 게이트.
천운은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