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142
기이한 공간이었다.
[ㅇㅇ.]
샌디의 정신 속 세계.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기억의 파편.
그것들 하나하나가 일부가 잘린 듯한 단편적인 기억들이 무수히 떠돌고 있었다.
[ㅊㅇ…….]
그 기억 속에서는 천운과 항상 함께였다.
[ㅇ……?]
그리고 그 파편 가운데 익숙한 장면의 기억이 눈에 보인 샌디였다.
샌디는 그 기억에 다가갔다.
화아아악-
일변하는 세계와 펼쳐지는 기억.
그 기억은 탑 3층의 기억.
힐리아 신성국의 성 꼭대기.
천운은 그곳에서 나라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샌디야…….
사뭇 무거운 말투로 천운은 말했다.
-미안해…….
서글프나 무언가를 다짐한 듯한 천운의 말투.
천운은 손을 뻗었고.
-전부 내 탓이니까…… 부탁할게.
나는…… 천운의 말에 응했다.
사아아아악-
손을 뻗은 천운의 손목을 시작으로 흘러내리는 검은 모래.
흘러나온 모래는 서서히 성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고 그것이 계속해서 뻗어 나가 이어진 곳은 성의 아랫마을.
그곳 전체를 뒤덮을 무수한 모래가 끝없이 뻗어 나갔다.
-꺄아아아악!
-살려 줘!!
곧이어 이어지는 고통의 절교.
천운은 그 광경을 묵묵히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ㅇ?!!]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지금의 천운이 할 수도 할 거라고도 생각되지 않은 끔찍한 기억.
샌디는 방금 일어난 기억을 부정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 흡수된 모래.
그 모래 또한 자신이라는 것을.
* * *
{궁금한 것이 있다.}
[뭐든 물어봐.]
백색의 샌디와 미르마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샌디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미르마가 말해 주는 질의응답식이었지만.
{저건…… 뭐지?}
[응?]
백색의 샌디는 이상하게도 천운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르마는 천운을 지그시 바라보다 이내 아! 하며 모래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녀석을 말하나 보네?]
{그래. 녀석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서로가 전혀 다른 형태의 존재지만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런가…… 이 녀석에 관해서는 나보다 저 녀석이 더 잘 알겠지.]
미르마는 천운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유물인 줄 알았지만…….’
잘 만들어진 생체 유물.
살아 있는 생명체 호문쿨루스인 줄 알았으나 눈앞의 모래와 천운의 모래는 그런 것과 본질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미르마는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하네. 너는 뭐지?]
{네가 궁금해하는 요점을 모르겠다.}
[음…… 정확히는 네 정체가 말이야.]
{정체…… 흠…….}
미르마의 질문에 모래는 처음으로 고민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흥미로웠다.
이 유리 돔을 만든 남자도 내게 그럼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이상하게 두려워하였고 성녀…… 이제는 메리헨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은 없었다.
{인상적이었다 미르마. 네 덕분에 처음으로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으니.}
[천만에.]
모래는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이고 누군인지.
그러나…… 미르마에 질문에 답할 지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딱 하나 존재했었다.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뭐지?]
{내게 ‘이지’라는 것이 생겨난 순간. 내 눈앞에 보인 존재가 있었다.}
[음…… 아무래도 그 녀석이 너를 만들었나 보네?]
{짐작하자면 그렇겠지. 녀석의 생김새를 묘사하자면…… 빛나고 있었다.}
[빛난다고?]
{그렇다. 녀석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녀석의 뒤에 문 또한 존재했으며 녀석은 그저 굳건하게 문을 지키듯 서 있을 뿐이었다.}
[그건 설마!]
저벅- 저벅-
그때였다.
두 명의 익숙한 인물이 기사들과 사제들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미르마와 모래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을 때.
이 유리 돔을 만든 장본인과 이 나라 제일의 검사가 서 있었다.
“미르마…… 네놈 뭐 하는 거냐?”
바르부스 교황.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며 미르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르마는 그저 별거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 마라. 이게 내 해결 방법이니까.]
“해결 방법이라고……? 설마 네놈? 이 유리 돔의 술식을!”
[그래. 그 술식을 그녀에게 적용하고자 한다.]
저 위 천장에 펼쳐진 거대한 술식.
그 바로 아래에 2중, 3중, 4중의 술식이 메리헨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펼쳐진 술식은 마력을 집어삼키고 크게 발하기 시작했다.
“대체…… 저건…….”
“저건 누굽니까?”
이곳에 처음 찾아온 성기사들은 경악스럽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에 숨겨진 장소와 감히 자신들 따위가 감당할 수 없는 마력과 술식.
그들은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교황에게 물었다.
대답한 것은 길이었다.
“미르마다.”
“설마! 그 대마법사?”
기사와 사제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이를 악으로 문 교황이 소리쳤다.
“그것보다 녀석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신성국의 존망이 걸렸으니!”
성녀의 신성력은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된다.
어떠한 술식에 적용하지 않았음에도 고유의 특성 때문에 모든 것이 해주 되고 치료가 되는 만물의 엘릭서와도 같은 비약.
“모래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 아니었나? 미르마?”
[동시에 해결해 줄 생각이었다 바르부스.]
“크으윽! 잡아!”
교황이 미르마를 손짓했고 무장한 기사들이 일제히 미르마에게 달려들었다.
[바르부스!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신성력 따위를 믿지 마라!]
“따위? 그 힘은 네년이 따위로 치부할 힘이 아니다!”
[또한 네가 감당해 낼 힘이 아니지.]
“헛소리! 교황이 아니라면 누가 그 힘을 감당하겠나?”
[교황 바르부스.]
미르마의 서늘한 음색이 바르부스를 향했다.
미르마를 향해 달려들던 성기사들이 주춤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가기 시작했다.
[내 경고하지. 후회할 짓은 하지 마라.]
미르마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력.
그러나 그 전부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벌어야 해.’
미르마는 그 거대한 술식을 그녀의 몸에 인식시키는 정교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동시에 녀석들을 막는 술식을 전개하는 것은 가능하나 눈앞의 신성국의 영웅.
길이 서 있었다.
“미르마. 현세에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 않았나?”
길이 물었다.
과거 그녀는 그 영역에 도달할 때까지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했으니.
“아니면…… 그 영역에 도달한 건가?”
길이 물었다.
미르마는 싱긋 웃고 그것은 길의 질문에 대답으로 충분했다.
동시에 길 또한 만면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크하하, 정말인가 보군.”
지금의 녀석은 모르겠지만 과거의 길은 호전적이라 불릴 정도의 전투광이었으니.
“하지만…….”
길은 미르마의 전체를 훑어봤다.
육신이 사라진 영혼의 몸.
길의 표정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왜 그 영역에 도달한 것 치고는 약화된 거 같지?”
길의 물음에 미르마는 입을 꼭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확실히 마법의 영역은 지고의 수준에 도달한 거 같다만…….”
길은 실망한 듯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도달한 그 끝은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길은 검을 뽑았다.
다행인 점은 그 검이 팔테인이 아닌 평범한 검이라는 점이지만 검성의 영역에 가장 가까웠을 시기의 길이다.
현재 상황에서 그가 나서면 상황은 빠르게 종결되겠지.
“길! 이 유리 돔을 부수면 안 된다!”
“뭐…… 알겠다.”
길은 찡그린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고 미르마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길을 따라 성기사들이 원으로 미르마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뭐, 그냥 포기해라 미르마. 지금의 너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다만.”
[…….]
미르마는 조용히 또 다른 술식을 발동했다.
동시에 길의 검이 보이지 않은 속도로 휘둘러졌다.
훙! 캉!
잘려져 나간 술식.
길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 이건 뭐 나를 도발하는 행위냐 미르마? 내게 이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건 네놈이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길. 너는 재앙을 막을 자신이 있나?]
“하하! 시간 벌기냐? 뭐……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다만 나 또한 그 영역에 도달하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씨익 웃는 길.
그러나 미르마는 그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아니. 넌 실패할 거다.]
“음?”
길은 미간을 좁히며 미르마를 바라봤다.
‘도발?’
자신을 화내게 만들려는 도발인가?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리고 그 영역에 도달한 나 또한 못 막겠지.]
“……왜 그걸 확신하지?”
[……그건 네 미래니까.]
의미 불명하며 알 수도 없는 그 말.
왜인지 모르게 그 말이 길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르마……. 상당히 불쾌하게 만드는구나.”
훙!!
휘둘러진 칼날에서 나오는 살기를 띤 검압.
미르마는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을 소비해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카캉!!
묵직한 울림이 공간을 흔들렸고 길은 씨익 웃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 거대한 대마법을 발동하는 동시에 내 일격을 막았다라…….”
길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 현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이 상황이 매우 안타까웠다.
“다음을 기약하지 미르마.”
그녀가 두 번째를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후웅!
또다시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러진 검.
첫 일격보다 거대한 검압이 미르마를 덮치려 쇄도한다.
[크윽!]
길의 말대로 미르마는 현재 그 검압을 막을 잔여의 마력이 없었기에.
후아아아아앙!!
거대한 검압이 미르마의 눈앞에 다가온 순간.
카아앙!!!
거대한 철 울림.
빗겨나간 검압이 그대로 애꿎은 유리 돔을 향했다.
길의 눈이 경악스럽게 커졌고 자신의 검압을 막은 소년을 바라봤다.
“너는…….”
길은 소년을 바라봤다.
한 손에 흑색의 단도를 쥐고 있으며 왜소한 몸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마력.
‘이건…….’
천운의 눈이 천천히 반개했다.
잠에서 일어난 원인 모를 각성.
충만한 마력.
현재 천운의 몸에서 마력이 끝없이 요동치고 맴돌고 있었다.
사용되어 소비되어도 공급되는 무한의 마력.
천운은 그 공급되는 마력의 원천을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샌디…….’
페트리샤와의 꿈 간섭을 강제적으로 끊을 정도의 강대한 마력이 천운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샌디는 자신의 몸에 담긴 마력의 일부를 내게 넘기고 있었다.
천운은 주위를 살폈고 상황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건.
“너는…… 분명?”
길은 그런 천운을 한쪽 눈썹을 비틀며 바라보고 있었다.
“미르마의 제자라고 했나? 어떻게 내 검압을 막은 거지?”
길은 그것이 궁금했다.
녀석의 끝없이 샘솟는 마력과 달리 겉으로만 볼 수 있는 그 기량은 약했으니.
“미르마. 어느 정도 걸릴 거 같아요?”
[곧이야 조금만 버티면 돼.]
“네.”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 방대한 마력을 후회 없이 소비할 수 있게 그 반을 마투법에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