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139
“그 흰색 모래를 죽일 방법은 없었다.”
교황이 말했다.
녀석의 몸은 애초에 모래로 돼 있었으니.
“그 모래알 자체를 소멸할 방법을 찾아봤으나…… 소용이 없더군. 대마법으로도 통하지 않는 녀석을 어떻게 죽이나? 이봐 미르마? 네놈은 가능하겠나?”
교황이 미르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미르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확실히 성녀의 능력은 대단하다. 그것 하나로 이 힐리아 성국을 넘어 카릴 제국과 자이럼 왕국도 구하는 게 가능하겠지.”
[……네놈!]
“미르마. 내 한 가지만 묻겠다.”
교황은 미르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아직도 그 아이가 사람으로 보이나?”
[뭐?]
“성녀가 그 유리 돔 안에 얌전히 있어서 그렇지. 녀석이 밖으로 나와 여러 사람과 길게 대화라도 나누면 어떻게 될 거 같나?”
미르마는 성녀와 오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말로를 알고 있었다.
차원이 비틀어지고 그곳에 빨려 들어가는 자들을.
그 비틀어진 차원의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말로는 좋지 않을 것이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거나, 아니면 그 차원의 통로에서 영원히 방황하고 있을 게다. 다시 한번 묻겠다 미르마. 너는 아직도 그 아이가 사람으로 보이나?”
[…….]
“……너는 대답하지 못했다.”
미르마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곧 긍정…….”
“그만.”
천운은 교황의 말을 끊었다.
미르마는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미르마.”
천운이 미르마에게 물었다.
“재앙의 생김새를 알고 있어요?”
[그래. 길에게 들었다.]
“뭐, 뭣?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재앙에 맞서고 죽은 이 세계의 유일한 검성.
오래전 미르마는 이미 재앙에 대해 길에게 들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말한 생김새는 지금의 모래와 달라.]
“어떻게 생겼나요?”
[그래……. 비교하자면…….]
미르마의 시선이 천운의 손목을 향했다.
[저 녀석과 비슷하겠구나.]
* * *
과거 길과 미르마가 재회했을 당시.
길은 그 재앙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길은 아직도 과거에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겨 준 그 재앙은 악몽처럼 가슴팍에 파고들고 트라우마를 남겼다.
[형태가 존재하지 않아?]
미르마가 물었다.
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내 손에 쥐어진 검이라면 무엇이라도 벨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팔테인으로도 벨 수 없었다고?]
[그래…….]
팔테인.
신성국의 숨겨진 비보이며 마기를 몰아내는 검.
만약 그 검으로 벨 수 없었다는 말은…….
[녀석은 마수나 마물 같은 존재가 아닌 건가?]
[아니, 그저…….]
길은 녀석에 대해 생각했다.
마력과 마기가 뒤섞인 괴이한 인외의 존재.
녀석에게 마기가 없어서 효과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단지…… 그 대해 같은 마기는 팔테인 하나로는 감당이 안 됐을 뿐.
[과거 난 의철과 함께 던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팔테인의 새로운 주인 말이냐?]
[그래. 난 거기서 녀석의 흔적을 발견했다.]
[……?!]
미르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길은 그저 덤덤하게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곧 이 세계에서도 재앙이 도래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가……. 그때는 나 또한 피할 수 없겠군.]
[그래. 하지만 동시에 난 저 아이를 찾아냈지.]
[김의철 말이냐?]
[녀석의 재능은 그저 검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다. 난 녀석에게 희망을 보았다.]
처음 순간.
마치 모든 재능의 총체를 받은 듯한 아이를 발견했다.
자신을 뛰어넘는 검의 재능을 보이던 그 아이.
[녀석은 자신의 고유 스킬을 잘 알지 못해.]
[고유 스킬이라니…….]
[의철은 사람의 힘을 확인하고 파악하는 것이 자신의 고유 스킬이라고 알고 있다.]
[녀석의 고유 스킬은 뭐지?]
길은 잠시 말을 멈췄다.
과거 딱 한 번.
소년의 고유 스킬을 본 뒤 길은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그 녀석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자신의 고유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루면.
녀석을 없애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
미르마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반개한 눈은 눈앞의 교황에게 향했으며 미르마는 말했다.
[네놈은 성녀에게 손대지 마라.]
“뭐, 뭐라고? 미르마. 그게 네 결론이냐?”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방법이 있는 것이냐?”
[……확신 할 수 없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
“…….”
[성녀에게 가겠어.]
교황은 그저 말없이 미르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교황은 말했다.
“이번에도 너는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칠 줄 알았다. 네가 항상 말했었지. 속세를 버리고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미르마가 돌아섰다.
미르마는 그런 교황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번이면 족해.]
* * *
한편 질 로벤은 힐리아 신성국 성 외곽에 서 있었다.
“음…….”
찢어질 듯한 고통이 천천히 사그라지며 없어진다.
이상할 정도로 신기한 기운.
그 기운이 저 성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로벤은 플라스크를 꼭 감아쥐며 성의 대문으로 향했다.
그녀의 지식이 호기심의 답이 저곳에 있을 것이라고 미르마가 말했기에.
“저기 있잖아.”
로벤은 그 플라스크의 모래에게 말했다.
“너. 내 말 알아듣지?”
움찔-
그때 검은빛의 모래가 살짝 움찔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아하, 역시 알아듣는구나.”
로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뭔가 모래는 화난 듯 플라스크 유리를 툭 치고는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 미안.”
로벤은 다시 걸었다.
그리고 성 대문에 도착했을 때 로벤은 지그시 그 거대한 성문을 바라봤다.
“여기 있다는 거지?”
저곳에 자신이 원하는 백색의 모래가 있다는 것이.
로벤은 곧바로 은신 마법을 발동해 몸을 숨겼다.
그리고 누구도 눈치 못 채게 조용히 그 신전 형태의 성안으로 들어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와…….”
그녀는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신실한 종교인은 다른가 보다.
이런 저주의 고통을 인내하고 저리 자유롭게 산보하니.
툭- 툭-
“응?”
들고 있던 플라스크 안의 모래가 툭툭 건드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로벤은 그런 모래에게 의문스럽게 물었다.
“왜? 뭔데?”
툭- 툭-
“저기로 가자고?”
부들부들.
이쯤 되니 모래의 행동에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로벤이었다.
로벤은 모래가 알려 준 방향을 따라 걸었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은색의 대문이었다.
“음…… 여기는 좀…….”
딱 봐도 굉장히 높은 사람이 있을 거 같은 대문.
로벤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려는 찰나.
끼이익-
거대한 대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흡!”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잠시 숨죽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은신 마법으로 몸을 숨겼으나 숨소리나 미세한 발걸음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니니.
‘응?’
한데 그 옆에 소년이 지그시 자신이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벤은 뒤에 누가 있나? 하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지만, 뒤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어…….’
그리고 소년이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로벤은 그냥 지나가라고 숨죽여 기다렸고.
탁-
소년의 발걸음이 자신의 코앞에 멈췄다.
삐질삐질 식은땀이 나왔다.
소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로벤 씨.”
“헉!”
깜짝 놀란 로벤은 참던 숨을 토해 내고 급기야 은신 마법까지 풀리고 말았다.
“어? 어, 어?”
“여기서 뭐 하세요?”
“저기…… 누구세요?”
“아, 맞다.”
천운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지금은 론의 모습이었으니 모를 만했다.
“천운이에요. 김천운.”
“아!”
“무슨 일이지?”
그리고 소년의 옆에 금발의 사내가 다가왔다.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향했고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기…… 이 사람은 누구……?”
“얘는 윤시혁이요.”
천운의 말과 동시에 윤시혁의 동공이 휘둥그레지며 휙 천운을 노려봤다.
놀란 표정으로 천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악귀 같은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알았지……?”
“중간부터.”
“어, 저기 그런 거보다 여기서 뭐 해……?”
로벤이 물었다.
반대로 천운이 의문스러웠다.
로벤이 이곳 힐리아 신성국에 있을 리가 없었을 터.
카릴 마도 제국의 마탑으로 향해 우연히 금서에 손을 댄 그녀는 우연히 기아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곧바로 4층으로 올라가 의철을 만났어야 할 로벤이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툭-
툭-
그때.
어디선가 병을 두드리는 소리에 천운과 윤시혁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이건…….”
“아, 얘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유물인데요…… 어 잠깐. 그러고 보니…….”
로벤이 지그시 천운의 손목을 바라본 순간.
파직- 깨창!
모래가 플라스크를 부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모래는 그 순간 천운의 손목으로 달라붙어 샌디와 섞이기 시작했다.
[ㅇㅇㅇ!!]
천운의 손목에서 툭 떨어진 샌디는 산만하게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샌디야!”
마치 감전당한 듯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샌디.
천운은 그런 샌디를 조심히 손바닥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샌디의 내면에서는
화아아악-
무수한 기억들이 샌디를 훑고 지나간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범람하는 기록들.
[으으으!!]
존재할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던 대해 같은 기억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샌디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조차 총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샌디는 알 수 있었다.
부르르르-
부…….
“어, 어! 샌디야!”
샌디는 힘이 빠진 듯 축 처지기 시작했다.
천운의 부름에도 샌디는 대답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 * *
페르도 공작가의 대저택.
“미안하구나…….”
한설아는 눈앞의 쇠약해진 남자.
페르도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기아의 저주로 인해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네가 이렇게 어엿한 아가씨로 성장할 줄이야…….”
뚝- 뚝-
한설아의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
그러나 한설아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슬퍼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마지막을 곁에 지켜 주며 바라봤을 뿐.
“아버지…….”
“그만 말하세요. 흑, 오래 사셔야죠.”
페르도 가문의 장남과 차남이 그의 옆에서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공작은 그런 아들들에게 자상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바이르, 찰스. 네 여동생처럼 정제하게 받아들여라. 나는 이미 글렀다.”
“크흑!”
“오히려 죽음이 구원일 때가 있다…….”
“왜…… 왜 금술을…….”
“바이르…….”
공작은 가문의 장남 바이르를 바라봤다.
“가문을 부탁하마.”
“예. 제 신념을 걸겠습니다. 아버지.”
“찰스.”
“예.”
“기사단을 부탁하마.”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편안한 미소의 공작.
그는 마지막으로 한설아를 불렀다.
“샤를…….”
“네.”
“후훗.”
그는 의젓한 막내딸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흘렸다.
“칠칠치 못한 내 오빠들을 부탁하마.”
“…….”
한설아는 잠시 입을 닫고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한설아는 얼음처럼 굳은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네…… 아버지.”
자신을 진짜 딸처럼 대해 준 아버지.
한설아는 자신에게 유일하다고 생각되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그래…… 고맙구나.”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설아는 그런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그의 숨결이 끝날 때까지 천천히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숨결이 끝난 순간.
뚝-
뚝-
볼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
한설아는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따뜻했던 손을 잡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그것이 한설아가 겪은 탑의 절망이었다.
그 이후 한설아는 방에서 나왔다.
눈앞에 예의의 게이트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후우웅-
4층으로 통하는 문.
이미 저주가 해주 된 것은 하루 전이었다.
그저 그의 마지막을 지켜 줬을 뿐.
한설아는 그 게이트를 향해 들어갔고.
사아아악-
게이트의 건너편.
그곳은 현세였다.
“여긴…….”
한설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곧…… 익숙한 소년을 찾을 수 있었다.
“김의철?”
그러나 의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한설아는 그런 의철의 뒤를 몰래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