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138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달리는 와중에도 나는 윤시혁을 힐끔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자기 입으로 참아 내고 있다고 말해도 그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참는다고 버틸 수 있는 고통도 아니었고.
녀석이 지금 과거의 길이나 김의철처럼 팔테인을 들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아마 인내하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윤시혁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사실 나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와 길은 그게 근성으로 버텼다고 생각했다만…….”
길은 처음부터 괜찮았지만…… 그와 수련을 하는 도중 고통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익숙해져서라고 생각했다만…….
“나도 잘 모르겠군.”
익숙해진 것이 아닌 무언가에 영향을 받은 느낌이 컸기 때문이다.
[저기야.]
미르가 한 은색으로 도칠 된 거대한 대문을 가리켰다.
거기에 두 명의 성기사가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저곳이 교황의 처소라고 미르마는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굳이 방법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천운은 고개를 돌려 윤시혁을 바라봤다.
현 성기사단의 부단장이 이곳에 있는데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합! 부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처소를 지키고 있던 두 기사가 윤시혁에게 예의를 갖췄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교황님을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한데 그 소년은?”
“손님이다.”
“예! 알겠습니다.”
윤시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루벨론입니다.”
-들어와라.
방의 주인, 교황은 의외로 흔쾌히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끼이이익-
거대한 대문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고 천운과 윤시혁은 그 문 안으로 들어왔다.
“루벨론 경. 의외군. 무슨 일로 찾아왔나…… 그 옆에 소년은 누구고?”
콧수염에 배에 살이 뒤룩뒤룩 찐 남자.
그가 이 힐리아 신성국의 교황.
‘바르부스 그릴론’이었다.
“손님입니다.”
“손님?”
“교황님을 뵙고 싶다는 손님입니다.”
“허…… 성기사단 부기사단장 루벨론. 아무리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않겠나?”
그는 의자에 일어서 거만하게 윤시혁을 바라봤고 윤시혁 또한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윤시혁의 성격상 반말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그는 이상하게 교황의 앞에서 존대를 붙이고 있었다.
“네 말이 맞군.”
“뭐어라고?”
“네 말대로 격식에 맞게 예의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환경부터가 우선이겠지.”
아, 아니네.
아무래도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운은 그 이상으로 윤시혁이 손을 대기 전에 나서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교황님.”
“어딜 미천한 천민 따위가 이 자리를 끼어들고 있나!”
“…….”
천운은 어이없는 묘한 표정으로 교황을 응시했다.
‘정말 교황이 맞아요?’
[……그래.]
‘…….’
끼이익-
그사이에 윤시혁은 이미 그 거대한 대문을 손으로 밀어 닫고 있었다.
“응? 이게 무슨 짓거리지? 루벨론 경?”
동시에 천운은 이 공간에 소리 차단 마법을 발동했다.
녀석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문을 닫고 다가온 윤시혁이 천운에게 물었다.
“교황을 만나고 싶은 이유가 뭐지?”
“알아내고 싶은 게 있어서?”
“강압적인 방법도 괜찮나?”
천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윤시혁이 그런 교황에게 다가갔다.
“허…… 다시 묻겠다. 로벨론.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지?”
그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역시 신성국의 교황이니 그도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예상은 해놨으니.
천운은 반마의 특성을 발동해 녀석의 몸을 옭아매었다.
“음……? 이건…… 네놈이 한 짓이냐?”
교황이 천운에게 물었다.
천운은 그대로 교황에게 다가갔다.
탁-
그대로 교황의 어깨를 누르며 다시 의자에 앉힌 천운이었다.
이번에는 천운이 교황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소란을 일으키기도 싫고요. 어차피 당신의 목소리는 밖의 기사들에게 들리지 않을 겁니다.”
“허허, 재밌구나. 지금 나 교황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이냐? 뒷감당은 가능하고?”
“예.”
“…….”
천운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그제야 교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는…… 아니 네놈은 누구냐?”
교황이 물었다.
천운은 그저 그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질문할 입장입니까?”
“…….”
또한 그의 옆에 서 있던 윤시혁이 교황을 향해 말했다.
“자. 환경은 만들었다. 이제 예의를 차려야지?”
“……그 입장이 나였나?”
“돼지 같은 것이 어딜 입을 여나? 이제부터 질문에만 대답해라.”
스르릉-
그 말과 동시에 검을 꺼내 드는 윤시혁.
드디어 교황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곳이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길은 오지 않을 거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미르마.
그런 미르마를 본 교황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 미르마……. 하하하! 그렇군. 너였구나. 네놈이 꾸민 짓이구나.”
[질문하겠다. 바르부스 그릴론. 성녀의 몸에서 빠져나온 기운을 어디에 쓰는 거냐.]
“……신성력을 말하는 거구나.”
[그래.]
“그런가…… 그렇군. 미르마. 너는 한 가지 착각하고 있구나.”
[착각?]
미르마의 물음에 교황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물론 우리가 그 기운을 이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 착각이 아니지. 바르부스.]
“아니, 우리는 그 성녀의 기운에 아주 작은 일부만 이용했을 뿐이다. 아주 작은 정말 미세한 양의 신성력을 사용했을 뿐이지. 그럼에도 이곳 성에 위치한 사람들 전부를 구제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기운을 난 백성들에게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럼 왜 곧바로 사용하지 않았지?]
“혹시 모를 부작용 때문이다. 그것에 대비하여 우리가 먼저 사용했을 뿐이지.”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도 네놈이 그 기운을 사용한 것은 변함이 없어. 그것 때문에 성녀 또한 기력을 잃는 거잖아!]
“……그래, 하지만 틀렸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미간을 좁히고 미르마를 노려봤다.
“너는 한 가지 오해하고 착각하는 것이 있다.”
[뭐가 착각이라는 거지?]
미르마는 성녀의 마지막을…… 결말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였으니.
그녀의 존재를 아는 것은 자신과 교황뿐.
만약 그녀의 마지막을 알고 있다면 교황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 또한 교황이겠지.
그러나…… 과거.
안타깝게도 그 교황 또한 성녀와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었어! 뭐가 착각이란 말이야!]
“그래. 내가 그 기운을 채취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 미안하지만 시가 좀 펴도 되겠나? 허튼수작은 안 하마.”
천운은 그의 말대로 책상 서랍 안에 시가를 꺼내 건넸다.
그는 그것을 입에 물고 불을 지피며 말했다.
“후우…… 미안하군……. 진정되지가 않아서.”
[이제 말해라.]
“가이어스의 예언을 알고 있나?”
[그 종말을 예언한 녀석을 말하는 거냐?]
“그래. 녀석이 말했다. 종말을 예언한 미친놈이라고 사람들이 뇌까릴 때,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녀석은 성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뭐라고?]
후들후들 떨리는 교황의 손.
교황은 말을 이었다.
“가, 가이어스는 예언했다. 종말의 시작은 우리 힐리아라고.”
[대체 뭘 들은 거지?]
“녀석이 말하더군. 그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성녀라고.”
[그 아이가 종말을?]
“그래…… 나는 그것이 성녀의 몸에 흐르는 신성력이라고 생각했다.”
[…….]
“알겠나? 나는…… 내 욕심으로 그 신성력을 모은 게 아니란 말이다! 난…… 아니라고…….”
미르마는 다음 순간…….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이 세계의 종말의 미래를 아는 미르마였기에 가이어스의 예언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미르마는 교황의 말을 믿는 것이다.
“가이어스…… 그놈은 예언을 개같이 설명하는 재주가 있었지. 의미를 모호하게 말이다. 제 딴 눈에는 그 예언이 눈으로 보이는 광경이 아닌 글자라고 하여 어쩔 수 없다고 한다만. 나는 그놈의 예언을 해석해서 알아낸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두 가지?]
“그래. 하나는 내가 처음 말했던 성녀에 관한 예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미르마 네놈도 봤을 거다.”
[뭐를 말이지?]
“……백색의 모래를 말이다.”
[……그래. 알고 있다.]
교황은 잠시 말을 멈췄다.
초조함에 식은땀이 흐르는 그의 얼굴.
미르마는 그런 교황에게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교황 바르부스…… 난 네놈을 믿고 있었어. 그녀를 위해 안정을 취할 숲과 나무를 심어 주고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지 못할 그녀를 위해 동물을 데려다 놨지…….]
“그러니까다 미르마…….”
[무슨 소리지?]
“너는…… 너는 한 가지 착각하고 있다.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다.”
덜덜 떨리는 손.
그는 초조해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녀석이다…….”
[뭐가 말이냐?]
“녀석이 한 짓이라고!”
노성이 가득 담긴 목소리.
그는 흥분한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가이어스의 두 번째 예언은 재앙의 정체였다!”
탕!
거세게 책상을 내리치는 교황.
그는 언성을 높이며 미르마에게 소리쳤다.
“그 녀석! 녀석이 세계를 멸망시킬 재앙이라고!”
……한편 성의 지하 성녀의 정원에서.
“샌디야.”
[뭐지?]
“요즘 좀 피곤하다. 많이 졸리고…… 너랑 놀아 주고 싶은데.”
[걱정 말고 자라. 난 조용한 게 좋다.]
“힝! 난 매일 놀고 싶은데.”
[그러고 있지 않나.]
“너랑 말이야.”
[…….]
성녀는 누운 채 백색의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도리도리 흔들었다.
“히힛, 부드럽다.”
[…….]
“졸리다.”
[자라고.]
“아아! 싫어!”
[떼쓰지 마라. 징그럽다.]
“너무해! 그치만…… 왠지 자면 무서운데.”
[뭐가?]
“왠지 말이야…… 자면 못 일어날 거 같단 말이야!”
[…….]
모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그러니 말이다.
그녀가 늦잠 자는 습관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히잉! 나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부지런한? 그게 무슨 뜻이지?]
“어…… 그게 뭐냐면…… 음냐, 쩝…… 그러게? 뭘까…… Zzz.”
[…….]
성녀는 말을 하다가도 스르륵 감기는 눈에 결국 버티지 못해 잠들었다.
성녀가 잠든 사이.
수풀 사이로 다가오는 동물들이 있었다.
곰과 토끼, 여우, 사슴부터 참새까지.
그녀에게 이름이 붙여진 동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동물들은 그녀가 잠에 깰까 봐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모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스르륵-
동물들의 몸이 흐느적 녹아내리며 백색의 모래로 변했다.
동물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던 나무와 지면의 풀, 그 모든 것이 흐느적 녹아내리며 모래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래는 혹여 그녀가 잠에서 깰까 봐 더욱 안정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푹신한 침대로 변해 그녀를 눕혔다.
그녀가 자신의 몸에 부드러운 감촉을 오래 느낄 수 있도록…….
[너는…….]
모래가 말했다.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