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136
통곡하는 천운을 보았다.
“미안해…….”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하는 천운을 의철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철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여긴…….”
처음 4층으로 들어왔을 때의 광경.
그 최악의 사건이 일어나가 몇 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또다시 지면을 흔드는 지진이 일어났으며 재앙을 알리는 경보가 울려 퍼졌다.
그렇기에 의철은 알 수 있었다.
그 절망적인 상황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가야 돼…….”
의철은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그 장소를 향해 이끌리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 * *
힐리아 성왕국에 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신전에 가까웠다.
거대한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들고 그 중심에 천사의 현상을 띈 분수대가 있었으며 그 정면에는 이 세계의 유일한 신.
힐리아 석상이 빛을 받으며 세워져 있었다.
천운은 은신 마법으로 몸을 숨긴 뒤 성에 침입했다.
그러나 의외인 점은 왕국 전체에 저주가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 이 왕국에 성은 고요한 것을 넘어 평화로운 수준이었다.
가볍게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저주가 뭔지도 모르는 듯 보였다.
미르마 또한 그 점을 의아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놈들은 무사한 거지?]
아무리 힐리아 성왕국이라도 북쪽 폴리오 왕국의 금술을 막을 힘은 없을 터인데.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성직자들과 기도를 올리는 대사제.
그들의 면면의 표정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
미르마는 잠시 이 평화로운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본 미르마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저쪽이야.]
‘네.’
미르마가 가리키는 곳은 힐리아 석상이었다.
더 정확히는 석상의 뒤편.
천운은 그 석상을 향해 걸었고 다가가는 석상이 미세한 마력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건…….’
[그래. 유물이다.]
석상 자체가 특성이 부여된 유물이었다.
[석상에 손을 대고 말하렴. ‘시히라’라고.]
‘무슨 뜻이죠?’
[고대어로 ‘이동’이라는 뜻이야.]
천운은 미르마의 말대로 석상에 손을 댄 뒤 ‘시히라’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석상이 품고 있던 마력의 일부가 몸으로 넘어오는 동시에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천운의 몸은 어딘가로 이동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울창한 숲이었다.
묘한 상쾌함과 동시에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숲.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거 같네요.”
[네 말이 맞아.]
미르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부터 풀까지 모든 것이 만들어진 곳이지…….]
사아아아-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사라락- 흔들리는 나뭇잎과 풀들.
미르마는 분명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천운은 알 수 있었다.
이 시원한 바람조차 만들어진 것이란걸.
“어?!”
툭-
한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크게 놀라고 있었다.
들고 있던 사과가 지면에 툭- 떨어졌으며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어……. 그게……. 또 보네요?”
* * *
“우와…… 여기에 사람이 온 건 교황님하고 미르마 말고는 처음이에요!”
“그건 처음이 아니지 않나?”
“아! 그런가?”
천운과 성녀는 숲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천운의 상상과는 달리 생기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우와!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음…… 미르마가 알려 줬어.”
“아! 진짜요! 미르마는 지금 어디 있어요?”
[여기 있다.]
미르마가 모습을 보였다.
성녀는 어버버거리며 크게 놀란 것과 동시에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미르마!”
[오랜만이구나.]
“와! 와! 근데 어…… 몸이 좀 신기하게 됐네요? 무슨 마법인가요?”
[맞아. 마법이지…… 마법으로 이렇게 됐단다. 걷기 귀찮아서.]
“우와! 신기해요! 역시 미르마예요.”
[후훗.]
다정한 표정의 미르마.
쉽게 보기 힘든 그녀의 표정이었다.
“와아! 근데 어디 계셨었나요?”
[조금…… 먼 데 있었구나.]
“그렇구나……. 아! 맞다! 미르마 덕분에 가끔 교황님 몰래 산책도 하고 그 저기…… 일단 고마워요!”
[그래…….]
그녀의 말에서 천운은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혹시…… 교황이 그녀를 가둬 놓은 건가요?’
[어쩔 수가 없었을 거야. 이 공간에서 말고는 그녀는 상당히 위험한 존재니.]
눈앞에 아삭- 사과를 베어 물며 배시시 웃는 성녀.
그런 그녀와 대화 몇 번 나눈다고 차원 자체가 뒤틀린다니…….
‘여기는 뭐죠?’
그렇기에 천운은 궁금했다.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도 안전한 이 장소가 말이다.
[간접적으로 그녀의 차원에 간섭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장소야.]
“그래서 괜찮은 거였군요…….”
“응? 왜요? 왜요? 저 빼고 무슨 얘기 하세요?”
그녀는 의외로 궁금한 것이 많았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마치 지금까지 배우지 못한 지식에 굶주린 것처럼.
[그녀는 말 그대로…… 순수 그 자체란다.]
미르마가 전언을 보내며 말했다.
미르마의 말대로 그녀의 자태를 비롯한 자아는 순수 그 자체였다.
미국에 사는 그 누군가와 다르게.
사아아아아악~
그녀의 새하얀 머릿결이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그녀는 자리에 서서 천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도착했어요! 아, 그게 혹시…….”
“김천운이에요. 천운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 천운! 네, 네! 그럼 천운에게 제 친구를 소개할게요.”
그녀는 짠! 하면서 자신의 머릿결과 비슷한 색의 새하얀 나무를 소개했다.
“제 친구예요!”
부르르-
그때 천운의 손목에 있던 샌디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천운은 그 새하얀 나무를 가만히 응시했고…….
변화는 게 없었다.
음…… 역시 성녀라서 나무하고도 교감 능력 같은 게 있나?
“어…… 예쁘네요.”
“그쵸! 그쵸! 어! 샌디가 만나서 반갑다고 하네요!”
“샌디요? 쟤 이름이 샌디에요?”
“네! 맞아요! 아, 그러고 보니…….”
성녀는 눈을 좁히며 지그시 천운을 바라봤다.
세상 참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역시…… 신가하네요!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응?”
천운은 의아하게 바라봤고 미르마가 설명했다.
[아마 내 안에 에고를 보고 있는 거 같구나.]
‘에고라면…… 자아?’
[뭐……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녀는 아마 그게 눈으로 보이나 보구나.]
‘그렇군요.’
“역시……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잠시 미르마와 대화를 나누던 그때.
성녀가 말했다.
“신기해요! 에고가 두 개인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순간 천운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 * *
“두, 두 개요?”
“네! 확실해요! 천운은 에고가 두 개예요!”
성녀는 확신한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후훗거리며 말했다.
“참고로 에고라는 건…… 음…… 그러니까…….”
“자아요?”
“아! 자아…… 자아가 무슨 뜻이더라? 하여튼 그런 어려운 말보다 저는 영혼에 가깝다고 보고 있어요. 왜냐면…… 음…….”
그녀의 음……. 이라는 생각하는 소리가 입으로 나왔다.
그 모습이 퍽 귀엽고 재밌기는 했으나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방금 성녀는 천운의 속을 들여다본 것이니.
“아! 생각났어요! 예전에 제 친구 중 한 명인 꽃순이가 죽었을 때 얘기예요. 아! 꽃순이가 누구냐면 노란색에 예쁜 꽃인데요…….”
그녀는 흐뭇하게 웃다가도 죽은 꽃순이가 생각났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예쁜 꽃이었는데…… 아! 아무튼 그때 꽃순이가 죽으면서 꽃순이의 에고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영혼이라고 봐요.”
“영혼…….”
“네! 그래서 신기하네요. 에고가 두 개인 건 처음이에요.”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천운의 가슴 쪽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게 조금 부담스러운 천운이었다.
그때 그녀가 천운에게 당돌이 물었다.
“혹시…… 잠시 말 걸어 봐도 되나요?”
“네?”
[이게 그녀의 고유 스킬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 에고라는 것에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구나.]
“그래서 아까 나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나 보네요?”
“응? 샌디요? 샌디는 나무가 아니에요.”
“아…… 네. 아무튼 혹시 가능할까요?”
“네! 가능해요!”
그녀는 천운의 가슴에 똑- 똑- 노크 시늉을 하며 조심히 물었다.
“저기요. 혹시 계시나요?”
“어…… 저기 뭐 하는 건지.”
“쉬잇! 잠깐! 목소리가 들려요!”
그녀는 아예 천운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 에고라는 것에 목소리를 기다렸다.
천운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 모습을 바라봤고 미르마 또한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헉! 들렸어요! 들렸어!”
성녀가 요란스럽게 소리쳤다.
그녀는 와! 와! 거리며 천운의 가슴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뭐라고 했나요?”
“어, 그게……. 일단 조금 화가 나 보였어요.”
“그래요?”
“그러니까 뭐라고 했더라?”
성녀는 미간에 손을 얹으며 곰곰이 방금 전 에고로부터 들린 단어를 생각했다.
“아! 생각났다!”
“뭔데요?”
“분명 꺼져라고 했어요! 근데 꺼져가 뭐예요?”
“…….”
* * *
탑의 바깥 현세에서는.
“정말 여기가 확실한가?”
팔스 길드의 길드장 카스퍼 크리멀.
그는 눈앞에 거대한 탑을 바라보며 옆에 서 있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확실해. 곧 녀석이 나타나겠지.”
연초를 입에 물고 그저 마력을 풍기며 거대한 탑을 바라보는 남자.
한우성은 탑을 너머의 마경.
그 마경의 거대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저게 지왕인가? 성녀님의 예언이 맞았어…….”
“그래. 아직 움직임은 없지만 잠에서 일어난 모양이네.”
고개를 끄덕인 카스퍼는 그의 뒤.
자신의 길드원에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절망의 탑에 마기를 봉쇄한다!”
“예!”
“A급 마력 소유자는 앞으로!”
그의 말에 방패를 든 여러 명의 아베타들이 탑을 둘러싸았다.
그 수는 무려 500에 가까웠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마력을 끌어내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오! 역시 인재가 많군.”
“이 모드를 합쳐도 자네 정도는 아니다만.”
“그럼 우리도 시작하지.”
“그래.”
한우성과 카스퍼의 몸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것은 탑 일대를 둘러쌀 크기였고 길드원들이 발산하는 마력과 한데 어우러져 연결되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은 버틸 수 있겠군.”
“그렇겠지.”
여기서 더해 한우성은 술식을 생각해 마법을 발동했다.
발동한 마법은 대마법 ‘마력의 고정화’.
섬세함 세밀하게 짜인 이 술식은 한우성이 서 있는 바닥을 타고 서서히 번지는 듯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크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커져 갔으며 어느새…….
“대단하군…….”
거대한 면적의 탑을 둘러싼 것이다.
“발동하지.”
“그, 그래.”
한우성은 술식을 발동했고 그 거대한 술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의 고정화’
말 그대로의 뜻을 내포한 마력이었다.
그저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마력으로 막을 생각이었기에.
파지직-
거대한 스파크가 튀었다.
마기와 마력이 부딪쳐 생긴 당연한 공명 현상이지만 서로 간의 크기는 너무도 거대했다.
그리고 그 스파크가 잦아들 때쯤.
“후…… 이 정도 마력을 쓴 건 오랜만이군.”
한우성은 힘이 빠진 듯 그래도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래…… 고생했다.”
“당신도.”
“어느 정도 풀릴 거 같나?”
“아마 한 달?”
“그런가. 기간이 한 달이라…… 성녀님 또한 그렇게 말하더군.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우리 단원 중 한 명이 탑에 들어갔거든. 녀석이 장담하더군. 늦어도 한 달 안에 클리어하겠다고.”
“그것참 믿음직스럽군.”
옅은 웃음을 짓는 카스퍼.
그때였다.
쿠오오오!!
지왕의 포효가 들린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