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135
“헥! 헥! 끄아아악!”
김천운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천운의 모습이었다.
다급하며 두려워하는 표정.
천운은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야 김천운!”
“어, 어?! 뭐야?”
천운은 잠시 발을 멈추고 고개를 휙휙 돌렸다.
한데 천운의 반응이 이상했다.
“……잘못…… 들었나?”
“야!”
천운은 다시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의철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설마…… 안 보이는 건가?”
[그래 보이는구나.]
“어떻게 할까요?”
[……쫓아가는 게 좋을 듯하구나.]
의철은 길에 말대로 천운을 쫓았다.
천운은 지금과는 다르게 체력도 힘도 심지어 성격과 하는 행동까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의철은 지금의 모습과 비슷한 천운을 알고 있었다.
힘도 없고 근성도 그저 운만 매우 좋았던 천운.
과거 기억 속 그 모습과 비슷한 천운이었다.
“으아아아아!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천운의 뒤를 쫓는 무수한 마수들.
마수들은 아가리를 벌리며 천운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신기하게도 무너지는 건물, 신호등 같은 것들이 마수의 앞길을 막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러게요. 운 스탯은 타고났으니까요.”
[한데, 지금의 녀석은 별로…… 운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네, 뭐. 그러게요.”
확실히 눈앞의 천운과 비교하면 그리 운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눈앞의 천운은 죽음의 운명까지 피해 버리는 행운이었으니.
“그것보다 의지는…….”
의철은 의지가 누군가에게 구조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의지를 찾고 있었다.
“천운은 나중에…… 의지부터 먼저 찾아야겠어요.”
[그래…… 그러렴.]
길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철은 곧바로 천운을 쫓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털썩-
“아…….”
맥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는 천운.
그 소리에 뒤돌아선 의철은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의철은 천천히 천운에게 다가갔다.
천운의 표정이 허무하고 허망했기에.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대체 뭘…….”
가까이 다가간 의철은 천운을 보았다.
그 절망적인 표정에서 흐르는 눈물.
의철은 천운이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입에서 나온 허망한 탄성…….
“의지야…….”
의철의 정신을 뒤흔드는 듯한 충격이 찾아왔다.
의지가 있었고 그가 있었으며 그녀가 있었다.
자신의 여동생을 구해 준 뒤 돌아가신 그와 의지를 지키려고 꼭 안은 채 주저앉은 그녀가.
“아버지…… 어머니…….”
천운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듯한 그 말…….
의철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아…… 아…….”
[의철아!]
의철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리에 맥이 풀린 듯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결국 천운과 똑같이 주저앉아 버렸다.
“왜 저 사람들이…….”
마수들 따위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은인의 눈앞에 두 인물.
연시훈과 가일이 서 있었으니.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 테러 또한 그들이 일으킨 것이란걸.
“어머니…….”
천운의 입에서 흐르는 작은 목소리.
지금의 천운은…… 그들을 막을 힘이 없었다.
의철은 앞으로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뚝-
뚝-
“너였어…….”
감사했어야 할 두 분께 그 인사 하나조차 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찾고 또 찾은 그 유일한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크윽!”
의철은 으득- 이를 물며 일어섰다.
그 손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팔테인이 있었으니.
더 이상 눈앞에 저 광경을 계속 두고 볼 수 없었으니.
과거를 재현한 것이라고는 하나, 던전 따위가 은인의 과거를 희롱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탁! 탁! 탁!
의철은 그들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형태의 팔테인이 빛을 뿜어냈다.
그러나…….
후우웅!!
허공을 가르는 칼날.
그 칼날이 녀석들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으아아아악!!”
의철은 연신 그들을 향해 팔테인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치…… 베이는 감각조차 없었으며 그들은 허상에 불과했다.
의철은 그들에게 닿을 수도 말을 걸 수도 도와줄 수도 없었다.
“하아! 하아! 흑…….”
분한 마음에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눈앞에 그들이 있는데…… 의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철은 다시 천운을 향해 다가갔다.
“……미안해.”
그저 할 수 있던 건, 전해지지 않는 사과일 뿐.
* * *
대성당 바깥에서 일어나는 기아의 저주.
전쟁의 난민들과 똑같은 고통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포기한 자들은 그저 출구를 통해 나갈 뿐이었으며…… 오직 이 고통을 견딘 자들만이 4층으로 오를 수 있었다.
[천운아…….]
미르마가 천운을 불렀고 천운은 대답했다.
“네.”
[부탁이 있어…….]
미르마는 천운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를 구해 주렴…….]
낮게 가라앉은 듯한 서글픈 말투의 미르마였다.
[이것이 과거에 던전이 재현화한 것들인지 아니면 그 과거로 이동된 건지 모르겠지만…….]
미르마는 방금 전 성녀를 떠올랐다.
그녀의 몸에 품은 이질적인 기운은 진짜였으며 던전 따위가 그것 자체까지 구현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력이 아닌 다른 기운이었으니.
그렇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던전이 시련자들을 과거로 보낸 것인지.
[난…… 성녀의 마지막을 몰라.]
“그러고 보니 성녀는 미르마를 알고 있던 거 같은데요?”
[그래. 그럴 수밖에…….]
잠시 말을 멈추며 입을 닫은 미르마.
그러나 곧이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녀는 내 첫 제자니까…….]
“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단다. 그 이질적인 기운이 마력과 같은 작용을 할 수 있는지.]
성녀의 몸에서는 마력과 다른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르마는 궁금했었다.
과연 그 기운이 마력을 대신할 수 있을지.
그렇기에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쳤고 역시나…… 생각대로 그것은 마력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법을 가르쳤다만…….]
어느 순간 그녀는 돌연히 사라졌다.
그렇기에 미르마는 그녀의 흔적을 쫓았다.
그녀의 마지막은 어디였는지.
[사라지기 일주일 전. 제국과 왕국을 뒤덮은 저주가 있었지. 그게 지금, 이 허기의 저주고.]
그것은 의심 단계였으니 흔적은 거기서 끝났다.
그녀과 관련된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결국 성녀의 마지막은 찾을 수 없었다.
[위험하겠지만 부탁할게.]
천운은 창문을 통해 저주가 일어나고 있는 바깥을 바라봤다.
끔찍한 사람의 단말마가 연이어 울리는 지옥과도 같은 광경.
그럼에도 천운은 대답했다.
“알겠어요.”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천운은 곧바로 나갈 채비를 갖춘 뒤 대성당의 유일한 대문을 향했다.
“정말 괜찮겠느냐?”
D가 물었고 천운이 말했다.
“네. 애들을 부탁할게요.”
천운은 무해의 성물을 몸에 뿌린 뒤 흠뻑 젖은 채 밖으로 나왔다.
이 정도 양이면 어느 정도 저주에 버틸 수 있을 것이다.
“5일 뒤에 대성당 주위에 한 번 더 뿌려 주세요.”
“그래…… 조심하거라.”
남은 무해의 성물을 D에게 건넨 뒤 천운은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예상대로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천운은 그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유유히 지나갔다.
그들 모두를 구원해 줄 힘은 천운에게 없었으니.
“이 저주를 왕국들은 어떻게 막아 냈죠?”
[금술은 금술로만 막을 수 있었지. 자이럼과 카릴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막아 냈으나 힐리아에서는 그런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어.]
과거 자이럼과 카릴에서는 이 저주를 막기 위해 그들 또한 금술을 사용한 술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힐리아만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미르마는 그 점을 의심하고 있었다.
자신의 첫 제자의 마지막 흔적 중 하나가 그것이었으니.
[일단 말해 두마. 혹여 성녀를 만난다면 말을 길게 섞지 말거라.]
“네? 왜요?”
[내가 성녀를 뒤쫓지 말라는 이유도 그거 때문이었어. 차원 자체를 다른 곳에서 살고 있으니 잘못하면 차원이 뒤틀려 너도 그녀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요.”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저 멀리 왕국에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운은 계속해서 걸어갔고 조금 뒤…… 뜻밖의 인물이 천운을 막아섰다.
“윤현…….”
그 또한 기아의 저주로 고통받고 있을 게 분명할 터.
그러나 그의 안면은 고통을 못 느낀다는 듯이 담담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윤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과거와 달리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메트론의 눈물로는…… 정말로 내 가족을 살릴 수 없는 거냐.”
그는 그렇게 천운에게 물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서 언뜻 흔들림이 느껴졌다.
“그래.”
천운은 대답했다.
“살릴 수 없는 걸 넘어 최악의 수로 돌아올 거야.”
또한 그것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차피 녀석은 믿지 못할 테니.
그렇기에 천운은 솔직하게 말했다.
“남은 메트론의 눈물은 저 성에 있어.”
천운은 이 힐리아 성왕국에서 가장 드높은 건물.
왕국의 성을 가리켰다.
그곳에 윤현이 원하는 메트론의 눈물이 있을 테니.
“왜 그 사실을 알려 주지. 네가 이득이 되는 점이 뭐냐?”
“…….”
천운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저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천운은 녀석을 설득하는 게 아니니.
지금에 힘으로는 녀석 정도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말했다.
“네가 알아봐.”
“…….”
선택은 녀석의 몫이었으니.
천운은 돌연 그 말만 남긴 뒤 녀석의 곁을 떠났다.
더 이상 그에게 해 줄 말은 없었으니.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건.
윤현에게는 이제 적의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 * *
“끄응! 꺄아악! 배고파!”
제니퍼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말했다.
그녀의 주위에 남은 4명 또한 제니퍼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산도는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조금만 참아 봐라. 혹시 모르지 않나? 3층의 시련이 인내라면 그저 기다리기만 해도 4층의 입구가 열릴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그게 언제라고!”
“그건…… 모르겠다만 정녕 힘들면 포기하든가.”
어차피 나가는 것 또한 자유니.
“끄으윽! 하라노! 그 녀석은 뭐 하고 있어!”
그 녀석.
수석이를 말하는 제니퍼였다.
하라노의 고유 스킬은 천운의 기록 또한 읽을 수 있으니 하라노의 고유 스킬로 녀석의 위치 또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찾아보지.”
하라노는 곧바로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그녀의 몸에서 잔여의 미풍이 불었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10분…….
“응?”
이상을 눈치챈 하라노였다.
“왜…….”
“무슨 일이야.”
“거부하고 있다.”
“뭔 거부?”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마력에게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상하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
설마…….
마력이 거부하는 정보.
그 정보를 정리도 안 하고 제한시켰다는 말은…….
그 정보의 양이 무수히 많은 것을 포함해.
자신에게 해가 될 만한 정보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