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134
“수녀……? 어디 말이냐?”
D가 의문스럽게 물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묻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보이는 게냐? 소름 돋는 소리하지 말고 잠이나 자거라.”
“어…… 저기 그게.”
그때, 눈앞의 수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천천히 열다가도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헉! 맞다! 맞다! 미르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예?”
“죄송해요~!”
후다닥!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한 그녀가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천운은 궁금했다.
천운이 알기로는 이 대성당의 유일한 출구는 하나뿐이었으니.
“저기 잠깐만요!”
천운은 급하게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반대로 그녀는 기겁하며 소리쳤지만.
“아, 아! 따라오지 마요!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나갈 테니까! 죄송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얘기라도.”
[쫓지 마라 천운아.]
미르마가 말했다.
[더 이상 대화도 나누지 말고.]
의외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미르마였다.
그녀는 눈앞의 수녀를 본 순간부터 표정에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일단 천운은 미르마의 말대로 그녀를 쫓는 것을 포기했다.
“뭐? 뭐야?”
그 순간, 천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멀리 도망치던 수녀가 벽을 통과하여 도망친 것이다.
“저게…… 뭐예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미르마를 바라보는 천운.
미르마는 성녀가 벽 너머로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녀다…… 전에 말했던 그 성녀.]
“벽을 통과한 건 고유 스킬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존재는 하되,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 그것이 이 세계의 성녀다.]
“무슨 말이에요?”
[그녀는…… 차원을 넘나드는 존재야. 원래라면 눈으로 확인하고 보는 거조차 불가능하지만…….]
미르마는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아마 나 때문이겠구나.]
“네?”
[그녀의 존재를 확인한 자, 또는 그녀가 허락한 자. 다시 말해 성녀의 존재를 믿는 자들만이 그녀를 볼 수 있지.]
“그럼 제가 볼 수 있었던 건…….”
[너와 네가 링크되어 있으니 그런 걸 거야.]
“리카하고 미카는…….”
[성녀의 존재를 믿는 신실한 마음만 가졌다면 누구라도 볼 수 있어.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게 문제지.]
애초에 힐리아 신성국 자체가 신을 성녀를 믿는 신실한 종교 국가이다.
그럼에도 이 신성국에 백성들이 성녀의 존재를 확인하지도 보지도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힐리아 신성국의 교황이 그녀의 존재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녀가 여기 있을 수 있지…… 그리고…….]
미르마는 또다시 그녀의 존재를 떠올랐다.
그 이질적인 감각과 초월적인 마력.
던전이 만들어 낸 허상치고는 너무나도 뚜렷한 그녀의 기운.
[뭔가 이상해 천운아…….]
미르마는 천천히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끄아아악!!
-도, 도와줘…….
-배고파…… 제발…….
고통에 소리치는 사람들.
어느새 천운 또한 미르마 옆으로 다가가 창문 너머의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운아.]
미르마가 말했다.
[나는 이 재앙의 결말을 알고 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네…….”
탑의 시련에 참가한 아베타.
그들의 구원은 그 5명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탑이 만들어 낸 과거의 존재들.
그 전부를 구원해 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 금술에 가까운 마법은 금술로 대응해야 막을 수 있으니. 당시의 나는 그들을 구원할 방법이 없었어.]
“북쪽의 왕자가 목숨을 바쳐 내린 저주니까요.”
[그래.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야.]
미르마는 혹시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왜…….]
던전의 현상.
그 기이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은 멸망한 세계에서도, 그리고 현대에서도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모든 것을 만들고 창조하고 부수는 신의 권능과도 같은 영역.
그렇기에 미르마는 의심했다.
과연 천운과 지금까지 탑 안에서 보았던 그 모든 존재가 던전 따위가 구현화한 허상에 불과한지.
[왜…… 나는 지금까지 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거지?]
미르마는 고개를 돌려 천운을 바라봤다.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가 천운을 향했고.
그녀는 말했다.
[침착하게 들어라 천운아.]
“네?”
[만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는…….]
미르마는 저 멀리 천운을 향해 다가오는 세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등줄기가 소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이…… 아직도 허상으로 보이니?]
미르마는 심각하게 물었다.
확신이 아닌 의견을 물어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서 천운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미르마가 말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이 세계가 구현화 된 게 아니라면…….]
천운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고통에 소리치는 사람들을 향했다.
그것은 하나의 짐작 때문에…….
천운은 탑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해서는 크게 설명하고 쓰지 않았으니.
또한 이 탑의 마지막 층, 죽음의 층과 관련된 것이 시간과 과거에 관해서였으니.
[만약 우리가 이 탑을 통해 멸망한 세계의 과거로 온 거라면…….]
미르마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천운의 등줄기에서 소름이 쫙 퍼지기 시작했다.
천운은 떨리는 입을 열며 말했다.
“서, 설마…….”
[그래. 내 예상이지만…… 아마 이 세계는 진짜일 수도 있어.]
* * *
[참아 내라. 의철아.]
한편 의철은 정좌한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참아 내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허기의 고통은 예상을 뛰어넘었으니.
“으흑!”
[그건 저주에 불과하다. 고통을 공유하는 저주. 아마 네가 조금만 집중하고 참아 내면 쉽게 떨쳐 낼 수 있을 거다.]
길은 의철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의철의 정신력은 비정상적이었으니.
솔직히 말해 떨쳐 내라고 말했지만 반대로 의철은 그 고통에 적응할 것이다.
그것이 1,000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의철의 재능이었으며 의철은 타고난 검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신력뿐만 아니라 신체의 능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의철이 후에 검성이 될 것이라는 걸 믿고 의심치 않았다.
지금의 의철은 모르겠지만 그의 재능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으니.
그 증거로 의철은 지금, 이 순간에도 허기의 고통을 천천히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후…….”
[역시…… 내 예상보다 빠르구나.]
“그것보다 이게 저주라고요?”
[그래. 공유의 저주. 어떤 미친놈이 목숨을 불사르며 발동한 저주다.]
“죽을 뻔했네.”
띵-
그때였다.
의철의 눈앞에 뜻밖의 창이 올라온 것은.
[3층의 시련 ‘끝없는 굶주림’ 클리어.]
[4층의 문이 열립니다.]
{4 층 메인 퀘스트 ‘끝의 죽음’}
[최후의 죽음]
-시련자들은 들어라. 나 던전의 이지가 마지막 시련을 내리겠다.
그것은 시련자들의 최후와도 같으니…….
“최후?”
설명은 그걸로 끝이었다.
대신 눈앞에 들어오라는 듯이 열린 게이트가 보였다.
“아마 이게 4층으로 가는 게이트겠죠?”
[그럴 거다. 아마…….]
의철은 몸을 푼 뒤 곧바로 게이트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어차피 탑을 바로 나올 수 있는 티켓 또한 가지고 있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의철은 손에 팔테인을 쥔 채 게이트로 들어갔다.
“윽!”
눈앞이 깜깜한 어두운 공간.
잠시 머리가 핑 도는 듯한 감각과 함께 몸이 어딘가로 이동되기 시작했다.
또한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창.
{4 층 메인 퀘스트 ‘끝의 죽음’}
[최후의 죽음]
-시련자들은 들어라. 나 던전의 이지가 마지막 시련을 내리겠다.
그것은 시련자들의 최후와도 같으니…….
과거,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적을 찾아 최후를 맞이해라.
“……어?”
새로 동공에 떠오른 창은 퀘스트의 추가 설명이었다.
한데, 거슬리는 문장이 있었다.
최후?
하필 퀘스트 제목도 끝의 죽음인데…… 뭐 죽으라는 말인가?
“뭐, 어차피 나갈 수 있는 티켓도 있고.”
곧이어 몸이 사뿐히 어딘가로 정착되는 느낌을 받았다.
탑의 4층 끝의 죽음에 도착한 것이다.
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 공간의 어둠이 서서히 개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장소.
“이건…….”
예상 밖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과거, 중세 시대 모습을 보여 준 탑이었다.
한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도 이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대였다.
“그 게이트가 설마 출구였다든가…….”
[그런 멍청한 짓거리를 하기 전에 분명 내가 말렸을 게다.]
“그렇겠죠?”
의철은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빵빵거리는 차들의 경적과 높은 빌딩들.
거리를 행단하고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분명 현대가 맞긴 하다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 저기요?”
“네?”
의철은 혹시 몰라 근처 아무 사람을 잡아 질문해 보았다.
“혹시 여기가 어디죠?”
“예? 뭐, 길을 잃으신 거예요?”
“아, 아니 그건 아닌데요.”
“그럼 무슨 일로……?”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대번에 인상을 찡그리며 휙-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바쁜 출근길에 이상한 질문을 하며 시간을 잡아먹었으니.
그러나 의철은 그 대화로 몇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저희 세계가 맞나 보네요.”
[그렇군…….]
묘한 이질감의 정체는 몰랐으나 의철은 이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었다.
과거 한국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마수 테러 사건이었다.
쿠쿠쿠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뭐, 뭐야!
-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의철은 긴장한 채 검을 들었고.
쩌적-
지면의 갈라짐과 동시에 무수한 마수들이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캬아아악!
위이이이이잉!!
곧바로 울리는 비상경보.
의철은 눈앞의 광경에 휘둥그레졌다.
이것은 과거의 광경.
고작 1년 전의 끔찍한 사건.
그것이 의철의 눈앞에 다시 재현되고 있던 것이다.
“헉!”
그렇다면…….
의철은 곧바로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던전이 재현한 세계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여동생.
김의지 또한 이 테러의 피해자였으니.
“의지야!!”
의철은 의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최악의 실수였던 것은 의지를 미아로 만든 것이었다.
“오빠! 여기 있어! 의지야!”
[의철아. 이건 허상에 불과하다.]
“알아요. 그래도…….”
그렇다 하여도 의철은 찾을 수밖에 없었다.
허상이라고 해도 의지가 또다시 겁에 질리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었으니.
의철은 팔테인을 쥔 채 다가오는 마수를 베어 내며 의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익숙한 얼굴이 보인 것은.
“김…… 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