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132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3층으로 올라가는 게이트가 열린 것은 대성당에서 회의가 끝난 이후 하루 정도가 지났을 때쯤이었다.
3층은 1, 2층과 달리 그 기이한 공터로 이동되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의 눈앞 허공에 두 개의 게이트가 열렸으며 왼쪽은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입구였고 오른쪽은 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였다.
기이한 점은 그 3층으로 올라가는 게이트를 타고 3층으로 올랐으나 나머지 출구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게이트는 자신의 마음대로 on/off 기능이 존재하여 눈앞에서 없앨 수 있었다.
“편리한 기능이야……. 그것보다 기아라…….”
{3 층 메인 퀘스트 ‘끝없는 굶주림’}
[기아의 허덕임]
-시련자들은 들어라. 나 던전의 이지가 시련을 내리니.
그것은 ‘저주’와도 같으니 탐식, 탐욕과도 같은 기아의 저주를 해주하라.
1, 2층과는 다르게 공헌도가 존재하지 않는 3층의 퀘스트.
던전의 이지는 이것을 저주라고 말했다.
아니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마산도가 대성당에 모였던 그들에게 말했다.
“뭐……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사실이지 않겠나?”
하아람이 말했다.
뭐, 그 말 그대로 이미 증거는 확연하게 나왔으니.
“아니, 하나 빠진 게 있잖아.”
그런 하아람의 말을 듣고 제니퍼가 반박하듯 말했다.
“녀석이 2층의 보상으로 3층에 관련된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잖아.”
“뭐…… 그럴 수도 있겠다만…… 던전의 이지가 이 정도로 확실한 정보를 보통 알려 주나?”
“그, 그건 모르지. 지금까지 나타난 던전 중 이런 기이한 던전은 없었으니까.”
“뭐, 그렇군.”
하아람 또한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녀들을 향해 마산도가 말했다.
“뭐…… 일단 방침에 앞서서 놈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방향으로 가지.”
“그래. 아직 수상쩍은 부분이 많으니.”
* * *
한편 천운은.
“나와.”
또다시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골목길.
천운의 눈은 허공을 향했으나 천운은 그곳에 녀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랍군…….”
곧이어 그 허공에 사람의 형태의 투명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들켰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알았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윤현이었다.
그는 실제로 몸을 숨긴 자신을 알아차린 것을 신기해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행하고 있었잖아.”
“……처음부터 들켰다는 말이군.”
헛웃음을 흘리는 윤현.
나는 그런 윤현에게 인벤토리에서 미리 꺼내둔 유물을 건넸다.
흑색의 십자가 형태의 목걸이.
죽은 자와의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유물인 흑마법사 ‘자바르의 목걸이’이다.
“이건…….”
“2층의 공략 보상.”
2층의 공략 보상은 선택식이었다.
힐리아 신성국의 보배 중 자신이 원하는 유물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 천운은 계약대로 녀석이 원하는 유물을 건넨 것이다.
“정말로 구해 왔군…….”
“안 구해 오면 계약 때문에 내가 죽잖아.”
“사용 방법은?”
“유품을 손에 들고 원하는 사람을 떠올려. 그 이후로는 목걸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윤현.
윤현은 그대로 돌아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김천운…….”
잠시 멈춘 윤현이 천운을 불렀다.
“고맙다…….”
그 말만을 남긴 채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 * *
3층의 ‘기아’
그것은 퀘스트의 설명처럼 저주라고 표현하는 게 알맞았다.
우습게도 4층 ‘죽음’의 층보다 3층의 ‘기아’에서 죽음에 이르는 아베타들의 수가 더 많았다.
물론 천운은 그것을 대비하고자 그들에게 협력을 요청한 것이다.
일단 예상대로 대성당 회의장은 사라졌다.
그렇기에 그들은 근처 작은 여관에 모여 있었다.
천운은 보기 좋은 미소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일단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협력을 요청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고 따라줄 줄은 몰랐으니.
아직 그들은 천운에게 의심 가는 점이 많을 것이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성녀님의 이름을 들먹인 거라면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마.”
제니퍼가 천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천운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제로 성녀와 아는 사이이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이 말도 실례가 된다면 실례겠지만 여러분에게 큰 도움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하! 정말 실례되는 말이군.”
하아람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눈앞의 소년이 뭘 하든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실력을 의심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큰 도움이 필요 없이 공략이 가능할 거 같아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대충 빨리 말해.”
“제가 부탁드릴 건 통제입니다.”
“통제? 누구를?”
“전부요. 아 탑의 시련에 참가한 아베타들 전부요.”
그 말의 끝으로 그들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제니퍼는 아예 대놓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그 후드 자식을 빼면 6명. 여기서 너를 빼면 5명. 이 5명에서 그 많은 아베타를 통제하라고? 왜? 어떻게? 응?”
“뭐,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조금? 네 생각에는 그게 조금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말하는 겁니다.”
실제로 스토리대로라면 그들 다섯 명이서 3층 공략에 성공했을 테니.
천운은 충분히 그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어렵긴 하겠지만 하아람 영웅님의 고유 스킬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것보다 어떤 이유로 통제하라는 건지 설명부터 들어야 되겠는데?”
“3층의 시련 ‘기아’는 저주 같은 겁니다. 이지의 말대로 모든 아베타들이 저주에 허덕일 겁니다.”
“기아에 허덕인다라…… 그게 어느 정도지?”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 피아 식별도 못 할 정도요.”
“뭐, 대충 어느 정도인지는 알겠군…… 잠깐? 그거 우리도 포함인가?”
“네.”
고개를 끄덕인 천운.
그 말은 곧…… 자신들도 그 굶주림에 허덕이며 사람들을 통제하라는 말이었으니.
“피아식별도 못 할 만큼의 굶주림이 찾아오는데…… 그 와중에 사람을 통제하라고?”
“여기서 하아람 영웅님의 ‘진언’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군……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어.”
‘진언’
말에 힘을 담는 그녀의 고유 스킬이다.
또한 힘이 담긴 말에 강제성이 존재한다.
그녀의 진언을 들은 그 누구도 행동에 제약을 받고 그 강제성이 발동된다.
“저주의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해 두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흠…… 그럼 자네를 포함해서 말해 두지.”
그 말과 함께 입을 연 그녀.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리기 시작했다.
[굶주림을 참아 내라.]
[사람들은 통제하라.]
짧지만 단순한 문장.
그녀가 진언을 이리 단순하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니 말이다.
말 그대로 그녀의 말이 상쇄하지 않으니 저 범위 안에 들어가는 행동의 제약은 자유로운 동시에 넓을 것이다.
특히 적이면 몰라도 아군한테 말하는 진언이니 당연한 거지만.
“뭐, 괜찮군.”
“진언은 단순할수록 편하니까.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뭐지?”
“여러분께 이걸 드리죠.”
천운은 인벤토리에서 5개의 지역 이동권을 꺼냈다.
각각 하나씩 그들에게 나눠 준 뒤 말했다.
“3층 ‘기아’를 공략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 저주를 해주하는 거죠. 공헌도가 없는 걸 보면 알겠죠? 개인 퀘스트입니다.”
“좀 더 상쇄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마산도가 물었다.
그의 말대로 천운이 설명을 이어 말했다.
“2층은 한 명만 공략에 성공하면 플레이어 모두가 3층에 올라갈 수 있었잖아요? 반대로 3층은 개인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개인이 기아의 저주를 해주해야만 4층으로 오를 기회가 주어지죠.”
“그렇군…….”
“그래서 너는 따로 방법이 있나? 그 저주를 해주할 방법이.”
“네. 있습니다.”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신의 저주를 해주할 방법은 이미 준비해 놨다.
신성국의 보배 중 하나인 ‘무해의 성물’.
2층의 보상.
신성국의 보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천운은 이 무해의 성물로 이 저주를 해주할 생각이었다.
“그럼 우리는?”
“물론 이 해주가 가능한 유물을 나누어 드릴 생각입니다. 해주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 진언을 부탁드린 거고요.”
“그런가……. 그래서 우리가 각자 다른 왕국으로 가서 뭘 하면 되겠나?”
“플레이어들을 최대한 모아 주세요. 그리고…….”
천운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이거뿐이었으니.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탑 밖으로 내보내세요.”
“……뭐?”
제니퍼가 인상을 구기며 물었고 곧이어 하아람 또한 의문스럽게 묻기 시작했다.
“내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겠다만…… 이유가 뭐지?”
천운이 말했다.
천운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말투로 그들에게 말했다.
“예언했습니다.”
“예언?”
“네. 이 탑에 들어온 아베타의 일부가 죽을 겁니다.”
* * *
윤현은 자신이 현재 거주하는 여관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잠갔다.
동시에 꺼내 든 아내의 목걸이와 딸의 머리핀.
그것을 거머쥐고 한 손으로는 천운에게 받은 십자가를 쥔 채 가족을 생각했다.
너무도 아픈 기억.
아른거리는 추억.
그 추억 속 딸은 해맑았으며 아내는 항상 미소를 보이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시현 씨…… 윤아야…….”
윤현은 소중했던 가족을 떠올랐다.
가슴이 아파오는 마지막 기억.
결국 소중하고 소중했던 가족을 지키지 못한 그 마지막 순간.
-윤현 씨…….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명하게 울리는 목소리.
가장 듣고 싶었던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
윤현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의 그녀.
이제는 다시 못 볼 거라 생각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현 씨…….”
-후훗, 우리…… 오랜만이죠?
그녀는 자신을 보며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기억 속 그대로의 미소.
그녀는 죽은 후에도 달라진 것 없이 자신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
“윤아야……!”
그녀의 등 뒤에서 쏘옥 하고 얼굴을 내미는 자신의 딸.
발그레 웃고 있는 딸의 미소.
윤현의 길게 뻗은 손이 딸에게 향했지만, 그 손이 그녀들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크윽…… 하아! 흑!”
고개를 푹 숙인 윤현.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반드시 살려 줄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윤현 씨…….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윤현의 귓가에 울렸다.
윤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편안하게 웃고 있는 그녀는 윤현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안아 왔다.
-괜찮아요…….
“하지만…….”
-아빠.
아주 작은 자신의 딸.
행복하게 자랐어야 할 딸이 자신에게 다가와 그녀처럼 안아왔다.
-항상 곁에 있을게요.
“유, 윤아야…….”
-윤현 씨.
윤현은 자신을 마주 보는 그녀를 보았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아까웠던 그녀가 편안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저희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 편히 놓으세요.
“아, 안 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살려 줄 테니까. 제발 조금만 기다려 줘…… 제발…….”
윤현의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디에도 안 가요. 간 적도 없고요.
“시현 씨…….”
-항상 곁에 있을게요. 그러니 괜찮아요.
“크흑…….”
뚝- 뚝-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그런 윤현을 보며 안타까운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가니…….
-편안하게…… 살아 주세요…….
그녀가 마지막 말을 전하자 그녀의 몸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아, 아! 안 돼! 제발…….”
마지막 간절했던 한마디.
그 한마디가 윤현의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