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131
“이게 대체 무슨…….”
“아니 이게 말이 돼?!”
눈앞에 떠오른 믿을 수 없는 상황.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시련.
“이게 대체 무슨……!”
동시에 휙 돌아가는 마산도의 고개.
마산도뿐만이 아니었다.
이 성당 안에 있는 모든 아베타가 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한 점이 많으시죠?”
천운이 말했다.
느긋하면서도 태연한 말투.
싱긋 올라간 입꼬리에서 그 여유가 느껴지고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할 이야기가 많아서요.”
* * *
팔스 길드의 부길드장 제니퍼.
마산 길드의 길드장 마산도.
검객 길드의 길드장 하라노 하루나.
미국의 영웅 크로아이.
그들의 시선이 천운을 향했다.
“너는…….”
동시에 마지막 한 명.
지금껏 그저 말없이 자리에만 참석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는 영웅 랭킹 3위의 하아람.
자신의 고유 스킬 때문인지 그녀의 입은 쉽게 열릴 일은 없었다.
“어떻게 시작 전에 공략을 성공한 거지?”
하아람.
그녀의 고유 스킬 ‘진언’ 자체가 사기적인 성능을 발휘한다.
“혹시 나를 알고 있나?”
“한국의 하아람 영웅님 아니세요?”
“알고 있군…… 일단 이 공간에서는 고유 스킬도 쓸모없더군. 그러니 내 말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군.”
‘진언’이란 말 자체에 힘이 깃든다.
그녀의 말은 상대의 통제 또한 가능하며 힘이 깃든 언어는 물리적인 파괴력도 깃들어 있다.
그녀 또한 자신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 말을 남긴 것이다.
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음…… 뭐 일단 우연이라고 해 두죠.”
“우연?”
“네.”
하아람이 흥미롭게 천운을 보기 시작했다.
소년은 알고 있는 것은 많으나 그것을 말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 나타나서 얼굴을 드러냈다는 말은…….
“흠…… 3층의 시련은 협력이 필요한가?”
“네. 아주 작은 협력이요.”
“작은 협력?”
하아람의 표정은 여전히 흥미로웠으나 다른 영웅들의 표정은 달랐다.
제니퍼는 아예 인상을 구기며 반문했으니.
“이봐. 네가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멋대로 행동할 만큼 실력을 갖췄다면 너 혼자서 해결해. 우리는 개인이 아닌 단체를 맡은 수장이야. 네가 멋대로 공략하는 건 상관없지만 우리가 작은 협력을 도와줄 정도로 만만해 보이나?”
길드가 탑과 던전을 공략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이윤을 얻기 위한 사업이다.
또한 각각 나라를 대표하는 길드의 수장들.
그런 그들한테 정체도 모를 녀석이 나타나 작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니 어떻게 보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든 것과 같았다.
“말조심해라.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네놈이 없으면 우리가 3층 공략을 못 할 거 같나?”
크로아이가 천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확실히.
일단 스토리상 그들은 천운의 도움 없이도 3층의 공략은 성공할 것이다.
그렇기에 천운은 말을 정정했다.
“그렇네요…… 확실히 말을 잘못했네요.”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말을 이었다.
“협력이 아닌 거래라고 말했어야 했나요?”
“거래?”
마산도가 물었다.
천운의 말에 귀가 솔깃했으니.
“네. 메리트는 충분히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크로아이가 말한 걸 못 들었나? 우리가 굳이 그 거래를 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분명 그들은 천운의 도움 없이도 3층의 공략에 성공할 것이다.
그것이 눈앞의 천운보다 빠르든 느리든.
그러나 제니퍼는 확신하고 있었다.
눈앞의 김천운이라는 녀석이 우리에게 협력을 요구했다는 말은 곧 3층의 공략은 결국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 못 할 것이라는 의미이니.
“굳이 우리가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안 그래?”
제니퍼가 천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결국 굳이 녀석과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천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할까요?”
“소개? 뭔 갑자기 소개야?”
“궁금하시죠? 제가 어떻게 2층의 시련이 시작도 되기 전에 클리어 한 건지.”
확실히 그들은 김천운이 뭐 하는 녀석인지 정체가 궁금하다고 생각했다만 그것이 결정이 바꿀 이유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하! 그래. 네가 뭐 하는 놈인데?”
제니퍼가 조소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뜬금없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으니.
“미국의 성녀…… 아시죠? 제니퍼.”
“성녀님?”
일순간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
아니, 제니퍼뿐만이 아니었다.
크로아이는 아예 눈에 살기가 깃들었으니.
“네가 입에서 함부로 튀어나올 이름이 아니다. 김천운…… 지금부터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이것이 미국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페트리샤의 위상이었다.
그녀의 이름 하나의 영향력은 미국의 1위 길드의 수장도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도 존경을 표하니.
“제가 아까 말했죠? 제가 어떻게 시련이 시작하기도 전에 공략할 수 있었는지.”
“…….”
“…….”
그저 이 말뿐이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머리가 있는 이상 알아서 생각이 이어질 테니.
“서, 설마…… 하지만 성녀님은 미국인 이외에는 예언을 내리지 않는데…….”
“그건 아니다. 그 조건이 깨진 건 최근이지 않나?”
“이 탑이 발생했을 때 말하는 거군.”
“그게 최초이자 마지막이라고 들었는데…….”
“아니면 한 가지…… 또 다른 가능성이 있잖나.”
마지막 마산도의 말에 그들에 시선이 천운을 향했다.
제니퍼는 아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들에 모든 면면이 서서히 굳어 가기 시작했다.
제니퍼의 떨리는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서, 설마…… 성녀님?”
* * *
그녀가 천운에게 말했다.
분명…… 성녀라고 했나?
그 정도까지 오해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요.”
천운은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녀 행세를 자초하면서까지 그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으니.
“그, 그럼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그녀의 말투에서는 일전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녀와 연관됐다고 생각된 후부터 말투에 조심성이 묻어 나왔다.
“뭐, 미국에서 성녀나 수호신이라고 불리기는 하다만 그녀 또한 아베타로 각성한 각성자죠. 그 고유 스킬이 아마 예지일 테고.”
그들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실.
그녀가 이루어 낸 위업으로 인해 붙어진 위명일 뿐.
그녀 또한 다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의 예지는 고유 스킬 따위가 아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하아람.
그녀는 한결같이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아니, 모습을 보아하니 이 상황 자체가 재밌는 모양이다.
“뭐…… 예지라는 게 성녀만의 권리는 아니라는 말이죠.”
“그 말은…….”
“네. 제 고유 스킬도 예지거든요.”
그 순간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지는 제니퍼.
“그럼 그렇다고 말하지! 왜 성녀님을 들먹이고 난리야!”
“일단 제 능력도 능력인지라 실제로 만나 본 적도 있고 협력 관계거든요.”
“어헉!”
크게 뜨여진 눈과 벌어진 입.
크로아이 또한 갑작스러운 말에 놀랐는지 입은 다물고 있지만 놀란 눈으로 천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성녀를 봤다고? 실제로? 꿈이 아니라?”
“예. 카페에서요.”
“아니, 허…… 쉽게 못 믿겠군.”
곧이어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크로아이.
뭐, 내가 생각해도 당연한 의심이었다.
그렇기에 아주 간단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준비해 왔으니.
“그럼…… 3층의 시련이 뭔지 아세요?”
“3층의 시련?”
“3층은 기아와 관련된 시련이에요.”
“……그렇군. 그게 확실한 증거겠군.”
고개를 끄덕인 크로아이.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잔잔한 제니퍼가 뭐 하고 있는지 천운은 궁금하여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우워…….”
뭔가……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마치 그녀의 머리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처럼.
“일단 증거는 제시했습니다만……. 더 궁금한 점은 없나요?”
“그래…… 뭐 3층으로 올라간 뒤 퀘스트를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네 협력은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마산도가 물었다.
천운은 그에게 친절히 대답해 줬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1층하고 2층과 다르게 3층의 시련은 곧바로 시작되니까.”
“흠……. 네가 말한 협력을 할 시간은 되나?”
“퀘스트 시작은 빠르지만, 그 퀘스트 자체를 공략하는 데 오래 걸리니 협력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마산도.
그러나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어보는 크로아이였다.
“그럼…… 모든 게 사실이라고 치자. 네가 성녀님의 협력 관계라고 치고.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다. 네 예상이지만 너는 이 절망의 탑 공략을 서두르는 거 같은데 이유라도 있나?”
“예. 그게 성녀와 협력한 이유이기도 하죠.”
김천운의 말에 제니퍼가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성녀와 저는 한 가지 예언을 했었거든요.”
“예언?”
“네. 재앙에 관한 예언이죠. 그게 이 절망의 탑과 크게 관련 있어요.”
“대체 무슨…….”
서서히 무거워지는 이야기에 그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럼…… 성녀님이 최초로 다른 국가의 수뇌부에 예언을 알린 이유도…….”
“그 재앙과 크게 관련 있습니다.”
“대체 무슨 재앙이길래.”
“마경에 서식하는 지왕이 탑의 영향으로 마경에 벗어날 겁니다.”
“뭐라고?!”
제니퍼가 경악스럽게 소리쳤다.
천운은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아마 지왕의 영향으로 수왕과 천왕도 움직이겠죠. 그게 성녀와 제가 예언한 재앙이에요.”
“……막을 방법은 있습니까?”
하라노가 물었다.
지왕뿐이면 몰라도 수왕과 천왕까지 움직이니 그것을 막을 방도는 과연 있을지…….
“네. 간단하잖아요. 원인을 빨리 없애면 되는 거죠.”
“확실히 탑을 빨리 공략하면 지왕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겠다만…….”
“그런가…… 알았다.”
하아람이 말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수긍하며 대답했다.
“그럼 3층의 퀘스트를 확인한 순간 우리 모두가 전적으로 네게 협력하겠다. 다들 이 건에 관해서는 상관없겠지?”
그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인된 순간 이곳에 모이는 거로 하죠.”
“알겠다.”
“그럼 그리하지.”
천운은 그리 대답했고 그들 모두가 천운의 의견에 수긍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다음에 만날 때는 3층에서 봅시다.”
천운이 그리 말하며 일어섰고 하아람이 천운을 보며 말했다.
“뭐…… 3층에서도 대성당이 지금과 같을지는 모르겠군.”
“뭐, 아니라 해도 모여서 다른 곳으로 가면 되니까요.”
“그건 예언 못 했나?”
“애초에 만능은 아니라서요.”
“그렇군…….”
“저, 저기…….”
그때 제니퍼가 천운을 보며 물었다.
제니퍼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성녀님은 어떤 분이야?”
“……음.”
솔직히 대답하기 좀 힘든 질문이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성녀를 전적으로 믿고 존경하는 신봉자 같은 느낌이었다.
천운은 그녀에 대해 대답하기 껄끄러워 대충 말했다.
“걔도 사람이에요. 저희처럼 먹고 자고 싸는.”
“뭐, 뭐?! 무례하잖아!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