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130
“그래서…… 여기가 어디라고?”
의철은 천운의 뒤를 따라 외진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힐리아 신성국의 근처 산이야.”
천운이 말했다.
그렇다.
분명 의철은 카릴 마도 제국의 광장을 구경하고 있었으나 어느새 눈을 뜨니 자신이 김천운이라고 주장하는 소년과 우거진 숲속에 서 있던 것이다.
“그래. 뭐, 알겠다만……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음…… 조금 위험한데?”
“뭐?”
이쯤 되니 좀 어이가 없어진 의철이였다.
“……어느 정도?”
“음…… 뭐 좀 위험하긴 한데. 그렇게 걱정하지 마.”
“던전이라도 찾은 거야?”
“아니…… 뭐,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너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까. 마수들 상대로.”
“…….”
의철은 알 수 있었다.
김천운은 자신을 버티기 용으로 데려왔다는 것을.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애초에 탑 안에 김천운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만…… 찾을 방도가 없었으니.
그러고 보니 얘는 어떻게 나를 찾았지?
“어떻게 나를 찾았냐?”
“응? 1위 보상으로.”
“그런 게 있어?”
실제로 ‘지역 이동 포털’은 세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하는 동시에 상세한 설정까지 가능했다.
천운이 의철의 앞까지 게이트를 열어 달라고 설정하니 실제로 게이트가 열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녀석 생김새는?”
“글쎄다…… 워낙 단순하게 생겼는데 자유분방해서.”
“뭔 소리야?”
실제로 녀석의 형태는 자유롭다.
샌디처럼 형태 변환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녀석과 샌디의 차이가 있다면 다행히 녀석의 몸은 핵을 품고 있었다.
“핵이 있으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핵을 부수면 안 돼.”
천운의 말에 의철이 ‘그럼 어쩌라는 거지?’라는 듯 눈을 좁혀 왔다.
“그럼 어쩌라고?”
“애초에 그 녀석은 생포해야 할 놈이야.”
“마물을…… 생포한다고?”
2층의 시련.
신성국과 카릴 제국, 자이럼 왕국에 역병을 퍼트린 주범.
녀석의 몸 그 자체가 역병이니.
그 역병은 핵으로 인해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핵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면?
놈의 몸에 내재된 역병들이 대륙 전역에 퍼질 것이다.
* * *
[그것은 아주 단순한 형태지만 그 수는 무한하고 생물처럼 보이나 무생물에 가까운 존재이다.]
[그것의 존재는 힐리아 신성국의 산기슭.]
[캇산의 골짜기에서 존재를 발견하는데.]
소설 속 문장 중 역병의 최초 발견지에 대한 문장이다.
캇산의 골짜기.
곰 형태의 마수 ‘캇산’이 서식하는 캇산의 골짜기.
그곳이 녀석이 최초로 발견된 장소였다.
여기서 우려되는 상황은 바로 그 곰 마수 캇산 때문이었다.
그 수를 포함한 포악성으로 인해 아마 혼자서는 그것을 포획하는 것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니까 부탁할게.”
천운은 의철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의철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쟁이 끝나고 몇 시간이 됐다고 벌써 고생시키냐…….”
“뭐, 빨리 끝내면 그 뒤가 편하잖냐.”
이내 조용한 골짜기를 발견한 천운이었다.
이곳이 그 캇산이라는 마수의 서식지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하긴…… 애초에 녀석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순간에만 그 포악성을 드러내니.
“여기서부터는 조용히 가야 해.”
캇산의 특징 중 하나인 예민한 귀는 이 골짜기의 물결 소리에서도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구별하여 찾아낼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일단은…….”
천운은 주위를 둘러봤고 골짜기와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 두 명 정도는 누워 있을 수 있는 넓적한 바위를 발견했다.
어차피 아직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나타나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되니.
“오늘 하루 정도는 계속 여기에 있을 거야.”
“뭐? 그놈은 언제 나타나길래…….”
“내일.”
“그럼 내일 왔으면 됐잖아.”
“아니, 뭐 혹시 모르니까.”
항상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른 변수를 보아 온 천운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의 주인공인 천운이 관여한 상황이니 녀석이 오늘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녀석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것 자체는 일단 운을 믿어야 할 상황이었다.
“어? 저게 뭐냐?”
의철의 시선이 골짜기를 향했다.
‘뭐? 설마?’
천운은 순간 당황하며 의철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짜기 옆 캇산이 소변을 보고 있었다.
“와…… 곰이 오줌 싸는 건 처음 봐서. 마치 동물원 같네.”
“…….”
천운은 시선을 돌려 다시 주위를 살폈다.
그런 이것도 저곳도 캇산의 수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좀…… 위험한데?’
골짜기와 조금 떨어진 바위라서 다행이지만 녀석을 포획하기 위해 저 골짜기에 조금만 다가가도 녀석들은 포악하게 울부짖으며 천운과 의철에게 달려들 것이다.
지금은 저 태연한 모습을 보이나 그 실체는 마수이니.
“아무래도 네가 좀 고생할 거 같네.”
“응?”
* * *
서서히 해가 지고 어둠이 가득한 숲으로 변하고 있었다.
천운은 스킬 ‘도래까마귀 신의 눈’을 발동해 주위를 살폈다.
‘나타났다.’
연녹색의 빛을 뿜어내는 둥근 수정구.
그 중심에 무수한 파리 같은 것들이 수정구를 감싼 채 골짜기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의철아.”
“어, 알겠어.”
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과 의철은 곧바로 녀석에게 향했고 녀석의 몸이 흠칫- 허공에서 떠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르르르…….
주위에 눈을 붙이던 캇산들이 서서히 우리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언뜻 바로 옆 녀석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그 이유는 당연했다.
마수에게는 녀석의 병이 통하지 않으니.
“몇 분 정도 걸릴 거 같아?”
“30분? 아니면 조금 오래?”
“최대한 빨리해 봐. 나도 그렇게까지는 못 버텨.”
“알겠어.”
천운은 고개를 끄덕인 동시에 병 하나를 꺼냈다.
‘미르마.’
[알겠어.]
미르마가 그 병에 술식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천운은 동시에 미르마가 가르쳐 준 마법을 발동해 의철과 자신의 몸에 막을 형성했다.
“이건…….”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닿으면 죽으니까. 혹시 몰라 예방한 거야.”
“그래. 조심해라.”
의철이 팔테인을 위로 들어 세웠다.
동시에 달려드는 캇산들.
그 거대한 덩치와 발톱들이 의철을 향했다.
천운은 그런 의철을 전적으로 믿고 눈앞의 녀석에게 집중했다.
몸 자체가 역병 덩어리인 녀석을 상대로 정상적이라면 닿아서 공격하는 게 아닌 거리를 둔 뒤 마법을 써서 무력화시키는 것이 정상이지만 녀석의 그 단단하지도 않은 핵으로 인해 애초에 마법을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천운은 녀석을 향해 달렸다.
동시에 손을 뻗어 녀석의 수정구를 그대로 잡았다.
위이이이이잉!
수정구 근처를 맴돌던 파리 같은 것들이 천운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막을 물어뜯기 시작했으나 그런 미미한 공격으로는 막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파리들 또한 몇 번 뜯어보고 그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하나로 모여 형태를 변형하기 시작했다.
드릴 형태로 변한 녀석들이 천운을 향했고 천운은 저 공격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저 정도는 뚫리겠지.’
신체의 자유로움을 위해 결계가 아닌 막으로 형성한 마법이다.
몸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나 몸 주위를 둘러싼 막은 고무 같았으며 어느 정도 큰 충격에는 간단히 찢겨 나갈 것이다.
녀석들의 공격은 천운의 몸에 상처를 입힐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몸에 닿는 순간부터 아웃이다.
‘미르마!’
[아직 멀었어!]
그 순간 천운의 손에 쥐어진 수정구가 인력 작용을 시작했다.
수정구는 파리들을 파리는 수정구를.
서로가 서로를 끌어들이는 상황에 오히려 수정구를 꽉 쥐고 버티면 부서질 수준이었으니 천운은 어쩔 수 없이 수정구를 놔줄 수밖에 없었다.
위이이이이잉-
들끓는 파리들이 진한 흙색이 보랏빛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역한 공기가 녀석들의 몸에서 흘러나왔고 저것 자체가 역병이라는 것을 천운은 알 수 있었다.
수정구가 있는 이상 녀석의 몸에 모든 역병은 통제가 될 것이다.
당연히 몸에서 나온 저 이상한 가스 또한 자유자재로 움직일 테니.
후웅!
마치 둥근 구름 형태로 변한 그것이 천운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나 천운은 가만히 서 있었다.
“……?!”
안개에 가려진 녀석의 얼굴.
그러나 녀석의 몸은 태연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전염을 멍하니 당할 뿐이다.
이때쯤 되니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녀석도 이상을 눈치챈 것이다.
자신의 독이 안 통한다는 것을.
‘이제 20분인가?’
천운의 눈빛이 서늘하게 좁혀지며 녀석을 향했다.
흠칫-
분명 생각 따위는 할 수 없는 무생물이 분명할 터.
그러나 아까부터 보았던 녀석의 행동은 마치 생각할 수 있는 이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얌전히 있어라.”
그것을 알아차린 천운이 녀석에게 말했다.
녀석은 발광하듯 몸에 파리를 흔들어 보았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20분밖에 안 남았거든.”
녀석의 전염이 통하지 않는 이상.
20분 정도 잡아 두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 * *
“하아! 하아!”
“고생했다.”
천운은 만능 체력 회복 포션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의철은 포션을 받자마자 벌컥- 들이마시며 물었다.
“그래서…… 일단 성공한 거지?”
“그래.”
의철은 천운에게 병 하나를 흔들어 보았다.
작은 병의 아주 작은 술식이 여러 개 부여돼 있었으며 그 병 안에는 연녹색의 수정구와 파리들이 꼬여 있었다.
수정구의 술식은 간단했다.
그저 ‘고정’, ‘강화’, ‘차단’.
그 세 가지만 써도 녀석을 쉽게 잡아 둘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리 강한 녀석이 아니니 녀석의 위험성은 그 병의 전염성에 있었다.
수정구로 잡아 뒀다 하여도 그 수정구가 파괴되는 순간 통제를 잃은 역병이 마구 날뛸 것이나.
물론 천운은 그것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돌아가자.”
“그래.”
시련은 이미 끝난 것이다.
* * *
그것은 일주일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주일째…… 뭐라도 벌어져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군.”
대성당 회의실에 적적한 침묵이 흘렀다.
마산도를 포함한 각국의 길드장들은 이미 성이 난 상태였다.
“아니, 뭐라도 말해 줘야 뭘 할 거 아니야? 작은 퀘스트라도 주면 몰라. 일주일째 뭐 하는 짓거리야?”
“던전의 이지 놈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마는…….”
“으아아악! 미치겠네.”
쾅!
제니퍼가 책상을 내리쳤다.
동시에 빈자리들을 보며 말했다.
“저놈은 그렇다 쳐도 우리 상석이는 어디 있어?”
“볼 때마다 한국어 번역이 이상해지는군.”
“시끄러!”
상석이는 상석의 주인 김천운을 말하고 있었다.
녀석 또한 일주일째 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정보를 가지고 있던 게 틀림없어.”
“뭐…… 당연하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녀석도 한 번쯤은 이곳에 들렀을 테니.”
주어지는 정보가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 장소를 가르쳐 준 던전의 이지니 이 대성당에 무언가 의미가 있다는 말이었다.
“샅샅이 뒤져 봤다만.”
“그래. 있는 건 이것뿐이더군.”
나무판자 안에 들어간 푸른 포션 10개.
마치 회복 포션처럼 보이는 그것뿐이었다.
“X발!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제니퍼 갈수록 한국어가 늘잖아?”
“닥쳐!”
그때였다.
끼이익-
대성당의 문이 열린 것은.
대성당 안에 있던 아베타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상석 자리의 주인 김천운이었다.
“야! 이! 치사하게 너만 그러기야! 어!”
제니퍼가 곧장 천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당연히 몸이 닿을 리는 없었다.
천운은 순간 인상을 구기며 제니퍼를 보았다.
마치 떼를 쓰는 애 같은 모습이었다.
“너! 뭐 알고 있는 거 있지?! 당장 말해!”
천운은 녀석을 무시하고 상석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뭐? 뭐야?”
“정체를 가리는 게 아니었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요?”
론 헤일리.
성당 안에 있는 아베타들이 목소리를 듣고 예상했듯이 1위의 모습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아베타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
마산도가 의문스럽게 천운에게 물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네.”
“이제 와서 얼굴을 보인 이유는 뭔가?”
“제가 빌런도 아니고 뭐…… 딱히 상관없잖아요.”
“크흠, 그렇긴 하다만.”
애초에 저 소년의 얼굴도 본인 얼굴이 아니니 처음부터 후드를 가린 것이 이해가 안 된 마산도였다.
아니, 사실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얼굴을 가리고 이곳에 나타난 이유.
녀석은 은밀하게 이번 일주일 동안 무언가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간섭을 피하고자 얼굴을 가리고 나타났던 것이고.
‘설마!’
그것까지 추리했을 때 마산도의 얼굴이 경악스럽게 일그러졌다.
녀석이 다시 나타났을 때 자신의 얼굴을 보이며 나타났다.
그 말은 곧…….
띵-
눈앞에 떠오른 2층의 시련 ‘역병’의 시작.
{2 층 메인 퀘스트 ‘역병의 시작’}
[역병의 전조]
-시련자들은 들어라. 나 던전의 이지가 시련을 내리니.
대륙 전역을 뒤덮을 거대한 재앙 중 하나였던 역병이 도래할 것이다.
시련자들은 더욱 많은 생명을 그리고 역병의 전염을 막아라.
공헌도 : (0포인트)
띵-
1. 김천운 (5,000포인트)
2. 김의철 (2,650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