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127
한편 흑암 마법의 공간에서 벗어나 저 멀리 유유히 전장을 빠져나온 천운이었다.
아직까지 잔병이 남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천운은 나서지 않았다.
1. 김천운 (5,000포인트)
2. 마산도 (3,650포인트)
3. 칼리브 (3,405포인트)
천운이 왕을 향해 거대한 망치를 내리친 순간 공헌도가 한계치까지 펄쩍 뛰어오른 것이다.
5,000 이상의 포인트는 오르지 않았기에 천운은 왕을 버려두고 흑암에서 빠져나왔다.
‘그 망치질 하나로 이미 전쟁이 끝난 거였네.’
그 있는 힘껏 내리친 거대한 일격이 결국 결과로 이어졌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다루인의 왕은 그 이후로 흑암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포기하고 주위를 경계했으니.
결국 전장에 출전도 못 한 왕으로 인해 다루인의 패배로 이어졌다.
천운은 저 멀리 우거진 수풀을 향해 걸어갔다.
숲 근처 나무에 기대어 앉은 천운은 저 멀리 보이는 전장을 바라봤다.
몸은 이미 마력을 전부 써 한계에 달해 있었다.
[천운아.]
그런 천운을 향해 미르마가 물었다.
[어째서 망치였던 거야?]
‘뭐가요?’
[그 많은 무기 중에 어째서 형태를 망치로 잡은 건지 궁금해서.]
“음…….”
솔직히 말해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익숙해서요.”
[익숙하다고?]
“몇 주 동안 망치질만 하니 손에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렇구나.]
그 이상으로 미르마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얼굴로 천운과 함께 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 망치를 보니 생각나는 녀석이 있구나.]
“음…… 이세계 사람이죠?”
[그래…….]
천운은 미르마의 씁쓸한 표정을 보았다.
이제 이 멸망한 세계를 기억하는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없으니.
“혹시 모르잖아요.”
천운은 그런 미르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던전이 만든 세계라도 아마 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후훗, 그렇겠구나.]
띵-
“응?”
가만히 전장의 형세를 바라보니 천운의 눈앞에 일전에 보았던 창이 떠올랐다.
[인물 설정이 추가됐습니다.]
[기억의 일부를 읽으시겠습니까?]
(Yes/No)
“이건…….”
[일전에 보았던 그거네?]
“그러게요.”
천운은 잠시 멍하니 그 창을 바라보다 이내 Yes로 답했다.
어차피 1층의 전쟁은 끝났으니.
천운은 눈을 감았다.
동시에 재생되는 론의 기억.
시작은…… 다루인과 자이럼의 전쟁.
론 헤일리는 그곳에 일개의 병사로 출전했다.
“허억…… 허억…….”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는 상처와 왼쪽 아랫배를 부여잡은 론이 보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린놈이 미친개처럼 달려드는군.”
“마치 짐승을 상대하는 기분이야.”
동시에 천운은 그 장소가 펼쳐진 주위를 살폈다.
익숙한 장소였다…… 아니 익숙할 정도가 아니라 방금까지 천운이 쉬고 있던 우거진 수풀이었다.
다루인 측 병사들은 론을 노려보며 욕을 뇌까리며 말했다.
“곱게 죽어 버리지. 미친개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을 상대하는 기분이야.”
실제로 기억 속에 보이는 론의 눈은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론은 전장에 나선 것이다.
한 병사가 론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을 창을 거머쥐며 론에게 말했다.
“아가야,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너도 이럴 각오로 이곳에 온 거 아니겠냐?”
서서히 론을 둘러싼 병사들이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론은 생각했다.
‘헛된 죽음이네…….’
병사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는 론은 그것이 미칠 듯이 억울했다.
론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째 저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졌다.
맑고 푸른 하늘…… 그 아래에 전쟁 따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 론이 다시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각오한 일 아니었는가.
무언가를 하고도…… 살고도 싶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을…… 그래도 의미 있는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아! 윽! 하아!”
그 순간 가슴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쿵! 쿵! 뛰는 심장과 함께 주위의 이질적인 기운.
처음 느껴 보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몸의 모든 근육 살아 움직이는 듯 요동치기 시작했으며 녀석들이 다가오는 속도가 점차 느리게…… 시간이 멈추려는 듯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저건…….]
“각성…… 이네요.”
미르마와 천운은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론 헤일리.
소년의 마지막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은 분명 아베타의 각성이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마소가 론 헤일리의 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의 한 단계 진화.
그것이 운명처럼 이런 위급한 상황에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뭐, 뭔가 이상하다. 서둘러!”
병사들 또한 묘한 소년의 변화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검이나 창 따위가 론 헤일리의 몸에 닿는 순간.
쾅!!
폭발 같은 것이 소년이 서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아아악!”
“커헉!”
둘러싼 병사들이 순식간에 날아가 주위에 나무에 부딪쳤고 소년은 맹렬하게 그들을 한 번 둘러본 뒤 저 멀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을 바라봤다.
론은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이 검 따위가 지금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론의 발걸음이 그 전장을 향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론의 기억이 끊겼다.
“……어떻게.”
천운의 벙찐 표정으로 아까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보통의 각성이 아니었다.
애초에 각성이 되자마자 그 정도의 파워를 낼 수 있는 인물은 한정적이었으니.
녀석은 각성이 된 순간 초월자가 된 것이다.
[론…….]
미르마 또한 천운과 비슷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게 천운을 보고 있었다.
[론 헤일리…… 그게 네 이름이었구나…… 론.]
* * *
“시작되나 보네.”
저 멀리 전장을 바라보던 중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이동되는 무수한 사람들이 보였다.
1층의 시련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1층의 시련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받을 시간이었다.
후에 모든 플레이어가 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모인 그 공간.
지면에 반짝이는 빛을 뿜어내는 예의 그 공간으로 이동됐다.
‘어디 보자 보상이…….’
천운의 눈앞에 떠오른 창.
공헌도 1위를 차지한 보상 목록이었다.
[1층의 시련 ‘전쟁’ 클리어.]
[1~3 순위권 시련자 ‘김천운’의 보상 목록이 열립니다.]
1. 출구 티켓 10장
2. 탑의 초대권 2장
3. 만능 체력 회복 포션 10개
[공헌도 1등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1. 올 스탯 +10
2. 지역 이동 포털
3. 마지막 용 다루단의 눈물
4. 다루인의 메이스
스탯 상승과 마지막 용 신수의 눈물.
그리고 예상외지만 설마 다루인의 메이스가 보상으로 들어왔다.
‘1등에 메인 보상이 원래 두 개던가?’
생각한 보상은 신수의 눈물뿐이었지만 설마 그 왕이 쓰던 무기를 보상으로 받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뭐 무기 자체는 자주 안 쓰겠지만 그 속에 담긴 특성에 천운은 관심이 갔다.
휘두른 메이스에서 마력파를 날려 보내는 특성.
어차피 메이스 자체의 형태는 샌디로 바꿀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대검의 형태로 저 메이스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보다 다른 건 다 알고 있다 쳐도…… 초대권?’
초대권 또한 생소한 보상이었다.
보아하니 탑의 초대권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으니 아마 탑의 초대를 받지 못한 아베타 두 명을 초대할 수 있는 티켓인 모양이다.
‘뭐, 나쁘지 않네.’
천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모든 보상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동시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저 하늘 위에 떠 오른 창을 경악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1층의 시련 전쟁에서 보여 준 공헌도의 순위였다.
“대체 김천운이 누구야?”
“가명 아니야?”
“허…… 뭐 하는 놈이길래 마산도를 제치고 1등을 한 거지?”
“그러고 보니…… 시작 전부터 포인트가 있었잖아. 편법을 쓴 거 아니야?”
‘뭐…… 편법이라면 편법이긴 한데…….’
그들의 말대로 어떻게 보면 편법을 쓴 게 맞긴 하다만…… 시작 전에 적군을 쓰러트려 포인트가 올랐다는 말은 던전 또한 그 공로를 인정했다는 말이었다.
“허…….”
마산도는 자신을 제치고 1등한 김천운이라는 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천운…… 설마 그 소년인가?’
벌써 몇 달은 지난 오래된 이야기였다.
한 소년이 가장 낮은 스탯으로 길영트에 수석으로 합격한 경악스러운 사건.
이름 또한 흔한 이름이 아니니 마산도는 그 소년이 생각이 났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아직 17살에 불과한 소년이 몇 달 만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는 가능성이 머릿속에 상상이 가지 않았으니.
우우웅-
땅이 올리기 시작한 것은.
쿠우우웅!
지면에서는 일전에 보았던 두 개의 문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그것이 시련의 문과 출구로 통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천운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2층의 시련에 참가하기로 했다.
‘좋아. 가자.’
2층의 시련 ‘역병’.
그것에 대비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니.
* * *
시련의 문을 통해 시련에 참가하니 전에도 보았던 비슷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당신은 시련의 참가를 선택했습니다.]
[‘역할’의 고정과 변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변경하시겠습니까?]
[Yes/No]
천운은 대답하기 전에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김천운
나이 : 17세
론 헤일리
<상태창>
힘 : (55.2/50)
체력 : (49.7/40)
지능 : (24/100)
마력 : (65.1/48)
행운 : (110/?)
“음…….”
110 정도나 오른 행운 스탯.
그러나 천운은 이 행운이라는 스탯을 믿지 않았다.
배신한 경우가 한두 번이어야지.
또다시 이해가 안 되는 역할이 걸릴 바에는 론 헤일리로 이어 나가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No.”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또한 천운의 예상이 맞다면 다음에 떠오를 창은 아마…….
[시작할 나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자이럼 왕국
2. 힐리아 신성국
3. 카릴 마도 제국
다루인 왕국과 북쪽의 폴리오라는 왕국은 전쟁으로 인해 없어졌으니 선택지가 당연히 3개로 좁혀졌다.
전쟁에 승리한 자이럼 왕국.
성녀가 있는 신성국 힐리아.
모든 왕국의 왕이 있는 카릴 마도 제국.
뭐, 천운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힐리아 신성국으로.”
후아앙-
천운의 눈을 가리는 거대한 빛이 전방에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곧 천운의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천운이 눈을 떴을 때.
“4페럿이요! 4페럿! 사과가 싸요 싸!”
“거기 젊은이! 닭 꼬치 하나 사겠나? 1페럿밖에 안 하는데?”
넓은 광장.
우글거리는 사람들과 가게의 노상들의 활기찬 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그 광장의 중심.
한 여인이 차분히 서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 신성국 힐리아의 상징.
성녀 ‘힐리아 호르멜’의 동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