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126
“이놈들은 왜 피할 생각을 안 해?”
놈들이 긍지 높은 기사여서인지 아니면 천운이 아이라서 만만하게 본 것인지.
어쨌든 천운한테는 이득이었다.
천운은 다시 망치로 변한 샌디를 분리하여 아까와 똑같이 그저 전장을 유유히 걸어 나갔다.
‘마력은?’
마력 : (6/50)
6밖에 안 남은 마력.
하지만 만다라를 발동하면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다.
천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순위표를 확인했다.
1. 김천운 (1,987포인트)
2. 마산도 (1,768포인트)
3. 칼리브 (1,529포인트)
마산도.
오래전에 한 번 만나 본 마산 길드의 길드장.
‘역시 저 사람인가?’
어느 정도 포인트의 선제점을 얻은 천운이지만 이대로라면 곧바로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마산도.
그의 고유 스킬을 포함한 스탯은 천운보다 압도적이었으니, 애초에 그의 고유 스킬 자체가 이 전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크하하하! 이런 전투는 오랜만이군.”
쾅!! 파쾅!!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병사들을 휩쓸어 버리는 마산도가 보였다.
그의 고유 스킬은 ‘공간 장악’.
마산도가 펼친 일정 범위의 공간 안에 들어온 적들은 거리를 무시하고 그의 공격이 적중한다.
‘움직이는 요새.’
이것이 움직이는 요새라는 이명을 가진 마산도의 고유 스킬이다.
‘이대로라면…… 따라 잡힌다.’
그렇다고 그처럼 똑같이 병사들을 잡아 공헌도를 울리려고 하면 언젠가는 따라 잡힐 거다.
‘하지만 아예 방도가 없는 건 아니야.’
애초에 공헌도란 무엇인가?
병사들은 잡아서 올라가는 포인트?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전장의 승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플레이어.
그것이 던전이 제시한 공헌도이다.
‘섣부른 감이 있지만.’
더 이상 그가 공헌도를 못 올리게 막는 유일한 방법.
동시에 압도적인 공헌도 포인트를 얻는 방법.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좋아. 가자.’
천운은 행운의 만다라를 발동했다.
올라간 스탯은 마력.
다시 줄어든 마력이 상승했고 곧바로 은신 마법을 발동한 천운이었다.
천운은 다루인의 진형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은신 마법을 오래 쓸 수는 없었다.
마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다루인의 왕을 찾아야 했으니.
‘찾았다.’
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검은 흑마를 타고 거대한 메이스를 손에 쥔 채 전장을 나아가는 무장.
“저, 전하! 안 되옵니다! 정황상 후퇴를…….”
“대장군 칼투스여, 다루인에겐 후퇴란 없다.”
그가 거대한 메이스를 하늘을 올려 들자 웅웅- 메이스가 빛을 뿜어내며 울기 시작했다.
[놈은 과거에 전세를 뒤집어 버리는 역발산의 왕이라 불리는 놈이야. 혼자서는 위험해.]
‘정면으로 맞설 생각은 없어요.’
놈의 역발산이라 불리는 거대한 힘이 저 메이스에 담겨져 있다.
당연히 혼자서 상대하는 것도 쓰러트리는 것도 불가능한 상대.
하지만 공헌도란 굳이 그를 쓰러트려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까보다 더 범위를 넓혀서.’
천운은 흑암 마법을 전개했다.
후방의 다루인 군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넓은 범위의 흑암 마법을.
“이, 이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어!”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질적인 현상에 그들이 안절부절못하니.
“다루인의 병사들이여!!”
흑마를 타고 고고하게 메이스를 든 다루인의 왕.
그가 병사들에게 알렸다.
그는 먼저 마력을 담은 거대한 메이스를 들고 허공을 한 번 휘둘렀다.
후우웅!!
그러자 메이스에서 검격 비스름한 것이 나와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갔다.
‘역시…… 사라지지 않는군.’
공간 계열의 시야 차단 마법.
하지만 이 공간에 결계가 작용하지 않은 것을 알아챘다.
자신이 날린 마력파가 무언가에 막히지 않았으니.
“대장군 칼투스여.”
“전하! 저는 여기 있습니다!”
“병사들의 지휘를 맡기겠다.”
“예, 예?! 하오나 전하!”
“놈은 나를 노리는 것일 테니 병사들을 이끌고 진격하라.”
“하, 하오나…….”
왕은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내가 죽을 성싶으냐?”
칼투스는 분하다는 듯 으득 이를 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왕의 말대로 이 암공간은 왕을 노리고 만들어진 게 분명할 터.
후퇴 또한 최선의 방책은 아니었다.
이 암공간이 펼쳐진 순간 후방의 상황 또한 알 수 없으니 도리어 요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칼투스는 결정이 섰다.
“전군!! 진격하라!!”
그는 자신의 왕을 믿기로 했다.
병사들은 일제히 칼투스의 말대로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은 고고히 이 공간을 만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트 장군이 당한 결계가 이것이로군.’
다루인은 눈을 감았다.
이 암공간에 보이지 않는 눈을 굳이 뜰 필요는 없을 테니.
또한 느껴지는 마력은 한 명뿐.
‘무모하구나.’
누군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혼자서 자신의 앞길을 막을 속셈이었다.
“나오거라. 마법사여.”
그는 그저 근엄하게 말하며 공간을 만든 마법사를 기다렸다.
그리고 앞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
다루인이 말했다.
“혼자서 나의 발을 묶을 셈인가?”
“…….”
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거대한 메이스를 위로 들고 있었으니.
입을 연 순간 저 거대한 메이스를 휘두를 속셈이 눈에 선했으니.
‘발소리는 지울 수 없겠지.’
천운은 의안을 발동한 채 숨죽여 기다렸다.
꽤 먼 거리에 있었음에도 왕은 자신이 있는 방향을 정확히 바라봤으니.
오감을 포함한 마력 감지 능력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너 정도나 되는 마법사가 자이럼에 있을 줄이야.”
천운은 생각했다.
녀석의 오감은 괴물 같으니 숨을 죽이거나 발소리를 안 내는 행동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시간을 끌려면…….’
천운은 대화를 선택했다.
“왜 전쟁을 한 거지?”
애초에 의미도 궁금하지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저 시간을 끌기 위한 질문.
“흥!”
후웅!
녀석의 메이스가 질문을 한 천운에게 향했다.
천운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녀석의 마력파를 피해 냈다.
“흠…… 그걸 피할 줄이야……. 그냥 마법사가 아니군.”
예상했던 행동.
그것에 대비한 천운은 당연히 왕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천운이 시간을 끌려 질문한 말에 예상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왕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전쟁을 하느냐고 했나?”
“그래.”
“뭐, 명분 없는 전쟁은 없긴 하다만……. 대예언자 가이어스의 5년 전 예언을 알고 있나?”
‘가이어스?’
[한때 세계의 종말을 예언한 대예언자야. 물론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마는…….]
가이어스…… 들어 본 적도 만든 적도 없는 인물.
애초에 천운의 지식은 생각보다 한정적이었다.
본래 절망의 탑은 1, 2, 3층이 클리어 된 상태에서 4층을 의철과 아이들이 공략했으니.
3층까지의 아이들의 활약은 없으니 소설에 크게 묘사한 부분도 없었다.
“가이어스가 말하더군. 그 거대한 재앙을 막을 방법은 한 가지. 5개의 별이 전력을 모아야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그게 전쟁이랑 무슨 상관이지?”
“내 생각으로는 그 5개의 별은 나라를 뜻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자네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재앙이 첫 번째로 침범하는 것은 동쪽의 힐리아다. 위기의식을 느낀 자이럼이나 북쪽의 왕국, 제국이 움직인다 해도 전력을 보내지는 않겠지. 왕국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더욱 중요히 생각하니.”
그는 가이어스의 예언을 맹신적으로 믿고 있었다.
5개의 대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 말은 반대로 한 왕국이라도 전력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내가 억지로라도 이 5개의 대국을 하나로 합치겠다.”
“그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전자보다는 현실적이지……. 자, 그럼…….”
왕은 다시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 * *
후웅!! 팡!!
보이지 않은 눈일 것인데 정확히 천운의 위치를 찾아내서 날아오는 마력파.
현재로선 천운은 피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흠…… 피하기만 하는군.’
왕은 슬슬 심기가 불편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공격이 안 오고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니 슬슬 그 행동에 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왕은 말의 고삐를 잡고 몸을 돌렸다.
그대로 암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달리는 말.
동시에 천운 또한 움직였다.
녀석을 이곳에 벗어나게 둬서는 안 된다.
“흥!”
그가 갑자기 몸을 틀었다.
동시에 날아오는 마력파.
파앙!!
천운은 의안으로 그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몸을 크게 돌며 피해 냈다.
“호오……. 이것도 피해 낼 줄이야. 하지만.”
그는 다시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왕은 천운이 피한 것으로 알아차린 것이 있었다.
녀석은 자신에게 가까이 근접하지 않고 피하기만을 계속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자신이 굳이 녀석을 상대할 필요는 없겠지.
발을 묶어 둘 생각이라면 녀석이 따라올 테니.
쿵! 쿵!
그때였다.
지면을 흔드는 굉음이 들린 것은.
‘뭐지?’
선명하게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쿵! 쿵!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느낌이었다.
쿵! 쿵!
녀석의 발소리가 코앞에서 멈췄다.
후아아아앙!!
그리고 거대한 파공음을 내는 무언가.
그것이 자신을 향해 쇄도했다.
* * *
그는 곧바로 말에서 벗어나 옆으로 크게 뛰었다.
히이잉!!!
콰쾅!!!
지면을 울리는 거대한 굉음.
휘몰아치는 충격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으며.
후와아앙!
충격의 흔적이 고스란히 자신의 몸을 흔들었고 왕은 지그시 보이지 않는 그곳을 바라봤다.
‘대체 무엇을…….’
던진 것인지 날린 것인지 아니면 휘두른 것인지.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그것을 알 리는 없었지만.
한 가지,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을 피하지 않았으면 자신은 죽었을 거라는 사실을.
“네놈…… 정말 마법사가 맞나?”
왕이 경악스럽게 물었다.
원소 마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저 무거운 무언가를 던졌거나 휘두른 것이다.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이런 고밀도의 마법을 사용하다니.
왕의 눈이 진지하게 변했다.
상대는 자신의 상상 이상의 실력을 갖춘 자다.
‘마법만 쓸 줄 아는 놈이 아니었군.’
메이스를 치켜든 왕이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이제 자신의 발을 묶어 두는 희생병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수도 있는 전사로 의식되기 시작했다.
왕은 메이스를 길게 늘어서 잡아 위로 크게 붕붕 돌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아주 작은 움직임을 찾는 순간, 이 메이스가 그곳에 휘둘러질 테니.
하지만…….
1분이 지난 뒤…… 2분이 지난 뒤에도 녀석의 움직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왕은 이빨을 으득- 물며 성을 냈다.
“나 다루인의 왕을 상대로 어디까지나 내 발을 묶어 둘 속셈이냐!! 너 또한 한 명의 전사라면 맞서라!”
그런 우렁찬 외침에도 대답은 고요한 정적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다루인은 그것이 화가 났다.
자신을 상대로 이따위 헛짓거리를 해대다니.
‘그렇다면…….’
왕이 휘두른 메이스를 지면에 내리쳤다.
쿵! 파팡!!
지면이 갈라지고 땅이 잠시나마 흔들렸다.
동시에 녀석의 움직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냐!’
왕은 그곳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파앙!!
그러나 느껴지는 감각은 무언가…….
닿은 것이 있지만 통과한 느낌.
마치 물이나 모래 같은 것을 후려친 기분이었다.
“크으으으! 같잖은 짓거리를! 크아아아!!”
성이 난 왕은 이곳저곳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쾅!! 콰쾅!!!
팡!!
파직!! 쾅!!
휘둘러진 메이스의 마력파가 사방으로 날렸다.
이곳저곳에 파열의 굉음이 흘렸고.
“허억! 허억!”
왕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주위를 살폈다.
커다란 폭격 같은 공격을 사방에 휘둘렀으니 그 또한 마력이나 체력이 어느 정도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나와라!!”
왕의 마지막 외침.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고요한 정적.
그때였다.
그 어두컴컴한 암공간이 스르륵- 사라지기 시작했다.
“크흐흑, 네놈 또한 마력을 다 쓴 모양이군.”
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 보인 순간, 이 메이스가 녀석을 향한 것이다.
그러나 그 어둠이 걷히고 보인 것은.
“…….”
무수한 병사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론 롤트 다루인.”
그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고고히 나오는 남자.
자이럼의 왕이 다루인을 불렀다.
“항복하거라.”
전쟁이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