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123
론 헤일리…….
소년의 일상은 나쁘지 않았다.
“저 왔어요.”
“론 왔구나.”
다정한 미소를 보내는 어머니.
론 또한 어머니를 보니 몸에 피로가 싹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했니?”
“뭐, 이런저런 일이요.”
어머니의 행복 중 하나는 아들의 일과를 듣는 것이었다.
그 아들의 행복 중 하나는 어머니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를 말하는 것이고.
론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장간의 1층 청소가 어쨌느니 지하로 내려가니 생각보다 넓어서 놀랐다느니 카운터의 대장간 주인 아들은 좀 까칠하다느니.
그녀는 말없이 아들의 하소연 같은 일상을 미소 지으며 들어주었다.
“피곤했겠구나…….”
“아니요. 할 만하죠.”
“오늘은 일찍 자렴.”
“어머니도요.”
론의 일상은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일자리라도 얻은 게 어디인가?
하루 일하고 연명하는 하루살이 같은 일상이지만 어머니의 앞에서는 무덤덤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일상이었다.
소소한 행복.
론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쿨럭…….”
불행한 인생에서 어머니와의 대화는 힘든 일의 큰 위안이었다.
그 작은 대화 몇 마디가 론에게는 일상에서 느끼는 하나의 큰 행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행복마저 앗아 가려는 하늘이었다.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창백해지는 피부와 입에서 뿜는 토혈.
서서히 몸에 힘이 옅어지고 말할 힘도 없어 보이는 어머니.
어머니의 증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약을 사며 치료도 해 봤고 사제를 불렀으나 어머니의 증상이 완화되는 일은 없었다.
사제의 말이 론의 희망을 앗아 갔다.
“그 누구든 대마법사가 오든 어머님의 병을 치료할 수 없을 겁니다…… 제힘으로는 부족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름 더는 다른 사제를 불러 돈을 쓰지 말라는 배려가 깃든 말이었지만 론에게는 끝없는 절망을 안겨 주는 말이었다.
희귀한 체질이라고 한다.
세계의 전체가 마소로 구성된 이 세계에서.
어느 귀한 약초도 마력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체질은 그 마력조차 거부하는 체질이었다.
“왜…….”
나만…….
론의 이체가 사라진 눈빛이 침대에 누운 어머니를 향했다.
자신은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앞으로의 인생 또한 가난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는다면 후에 보상을 받을 테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충분히 행복을 느껴야 했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래야 할 어머니는 원인 불명의 불치병으로 편안한 생활도 못 느낀 채 눈을 감게 생겼다.
“론아…….”
어머니의 쇠약해진 말소리가 들렸다.
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여전히 쇠약해진 얼굴로 다정한 미소를 보이었다.
“오늘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슴이 시끄럽게 뛰기 시작했고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눈물이 새어 나올 거 같았다.
그러나 론은 참았다.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재밌게 웃고 있었으니.
론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오랜만에 닉 와일 아저씨를 만났어요.”
아저씨는 생각보다 거대한 술고래였다.
자신에게 무심한 척하면서 어떻게 보면 다정한 분인 거 같기도 하다.
한데 자기 아들과 많이 사이가 안 좋은 거 같다.
론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펼쳤다.
어머니와 조금 더 오래 대화를 나누기 위해 조금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일이 끝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하루 동안 있었던…… 그리고 어머니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을 이야기…… 여기서 과장을 좀 보태서 행복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말했다.
“닉 와일 아저씨한테 인정받아서 정식으로 대장장이가 될 거 같아요. 월급도 올랐고요.”
“후후훗, 누구 아들인지 무슨 일이든 잘하는구나.”
론은 어머니의 앞에서 허황하고 과장된 이야기를 펼쳤다.
닉 와일 아저씨는 본 적도 없었고 대장장이가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수록 어머니의 표정은 상당히 차분하고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에 고통으로 피를 토하던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무슨 얘기부터 할까요?”
오늘도 퇴근한 후 어머니의 옆에 앉은 론이었다.
어머니 또한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론…….”
어머니가 말했다.
“기쁘구나. 내 아들이 대장장이가 될 줄은 몰랐단다…….”
“앞날은 모르는 법이잖아요.”
“후훗, 그렇구나…… 앞날은 모르지.”
어머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론…….”
“네?”
“네가 정말 대장장이가 돼서 다행이구나……. 정말…… 정말 다행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론은 어머니를 바라봤다.
평온한 미소와 낮게 사그라드는 말투.
론은 계속해서 어머니를 바라보며 천천히 기다렸다.
“론…….”
그녀가 자상하게 론을 불렀다.
평온하지만 힘이 없는 말투.
론은 힘겹게 대답했다.
“네…….”
“꼭 대장장이가 되서 행복하게 살렴.”
론은 어머니를 보며 다정히 미소 지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게요. 남들 부럽지 않게……. 돈도 많이 벌고 기술도 많이 익혀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요.”
론은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론은 천천히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미소를 보며 론은 지금까지 그녀의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하…… 흡.”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어머니를 보았다.
잠시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 서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이다…….
부족하다.
어머니와의 대화와 시간이…….
그것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소년의 소소하지만 유일했던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
그 작지만 큰 시간.
소소하지만 유일했던 위안이 사라졌다…….
그리고…….
천운의 눈이 다시 떠졌다.
기억이 아닌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 * *
“론…….”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미소.
기억에서 보았던 마지막 장면.
“꼭 대장장이가 돼서 행복하게 살렴.”
감고 있는 눈과 점점 사그라드는 듯한 말투.
서서히 창백해지는 그녀를 보며 천운은 말했다.
지금…… 천운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꼭.”
천운이 그녀의 손을 쥐며 말했다.
“행복하게 살게요. 남들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요.”
천운의 목소리에서 신념이 담긴 듯한 확고한 말투였다.
기억 속의 흐느끼는 듯 흔들리는 말투와 달리 그녀의 걱정을 만들지 않기 위해 단호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서서히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았다.
자신의 아들.
론 헤일리의 올곧은 눈동자를.
“그렇구나…….”
그녀는 무언가 안심을 하듯 눈을 감았고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지금의 너라면…… 정말 안심할 수 있겠구나…….”
“…….”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렴. 내 자랑스러운 아들.”
기억과는 전혀 다른 말…….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
이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천운은 잠시 기억 속의 론과 같이 그녀를 바라봤다.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영원히 잠든 그녀.
“하…….”
절망의 탑.
시련의 참가한 그 누구든 절망을 안겨 준다.
그것이 큰 절망이든 작은 절망이든 참가한 시련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이겨 내는 자와 못 이겨 내고 절망하는 자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천운은 아무래도…….
으득-
천운은 이를 악물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
론이 그 이후로 느꼈을 감정.
왜 자신만이 불행해야 하는가.
론이 그러했듯 천운 또한 그런 분노의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얘들아…….”
천운은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미카와 니카는 서럽게 울음을 토하고 리카는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천운은 아이들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를 부탁할게.”
그리고 그 말을 남긴 채.
슈슉-
천운의 몸이 이동됐다.
1층의 마지막 퀘스트 전장으로의 이동이었다.
* * *
{인물 설정}
론 헤일리.
론 헤일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도 대신하지 못할 소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방황하는 걸음은 자신의 마지막이 될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은 곳이 자이럼과 다루인의 전쟁.
론 헤일리는 자신의 마지막 장소를 정했습니다.
적어도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고향을 지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말이죠.
그리고…….
……늘어난 설정집.
론 헤일리의 후에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를 잃은 론 헤일리가 마지막으로 찾은 장소는 이곳의 전장이었다.
천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 이곳의 대부분이 플레이어겠지.
띵!
{1 층 메인 퀘스트 ‘왕국의 전쟁’}
[전쟁의 서막]
-시련자들은 들어라. 나 던전의 이지가 시련을 내리니. 그대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전장에서의 공적을 울려 공헌도를 올려라.
내 가장 많은 공헌도를 모은 자에게 나 던전의 이지가 보상을 내리겠다.
공헌도 : (498포인트)
플레이어들에게만 보이는 퀘스트 창.
동시에 저 하늘 위에서 오직 플레이어들에게만 보이는 공헌도의 순위표가 떠올랐다.
1. 김천운 (498포인트)
2. 카룬델 (0포인트)
3. 이도하 (0포인트)
플레이어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떠오른 순위표.
그러나 천운은 그들보다 앞서 높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뭐? 1위가 498점?”
“잘못된 거 아니야? 전쟁은 방금 시작됐잖아.”
“아니, 이게 무슨 어떻게 된 거야? 김천운은 누구고?”
주위의 병사들, 정확히 플레이어들의 수군거림이 천운에게 들려왔다.
그러나 천운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화풀이를…… 자신의 화를 대신 받아 줄 놈들이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샌디.’
[ㅇㅇ?]
‘가지고 있는 칼날 전부 꺼내 줘.’
손목에 찬 샌디가 둘로 나뉘어 반대편 손목에 붙었다.
동시에 샌디의 몸에서 수십 개의 가느다란 선이 나왔고.
그 끝은 부풀려지기 시작해 단검, 장검을 시작해 창과 도끼.
여러 개의 무기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쿵! 쿵!
저 멀리서 다가오는 2만 대군.
그리고 우리 자이럼 군단의 앞에선 자이럼 왕국의 왕.
그는 흰 백마를 타며 한 손의 거대한 지팡이를 쥔 채 굳은 얼굴로 저 건너편의 대군을 응시했다.
플레이어들이 이곳에 이동되는 순간 이미 전장은 시작된 것이다.
‘샌디야…… 가자.’
그러나 천운은 그 전장과 다른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1층 첫 번째 시련 ‘전쟁’.
그곳의 적군 다루인의 전략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보이는 게이트의 조짐.
허공에 균열처럼 보이는 저것이 다루인 측 100명의 마법사가 마력을 불어넣어 만든 공간 이동의 마법일 것이다.
술식은 그리면 되지만 그 술식 발동에 필요한 마력이 100을 넘은 대마법의 조짐이었다.
아주 작은 균열은 아직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균열이었다.
천운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손목에서 솟아오르는 무수한 칼날이 그 균열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