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122
“회의를 시작하겠다.”
장내에 울리는 근엄한 목소리에 자이럼 왕국의 군사 지휘관들이 한 차례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그중 왕국을 지키는 검 크루드 백작가의 가주 세론이 말했다.
“전하. 다루인의 진군이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예상과 다르게 좀 늦어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흠…… 그것은 나 또한 느꼈다.”
다루인의 대군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늦어지고 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고개를 돌린 자이럼이 페르도 공작에게 향했다.
크루드 백작가와 더불어 왕국을 지키는 방패 중 하나인 페르도 공작가.
그 특유의 붉은 눈은 사람의 몸을 결박시키는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행군 중 무슨 문제가 생겼거나…….”
그가 높낮이 없는 말이 이어진다.
“또는 그들의 전략이지 않겠습니까?”
“흠…… 같잖구나…….”
자이럼의 화가 돋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또한 대군의 수가 2만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우릴 얼마나 깔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북쪽과 전쟁을 벌인 그들이 며칠도 안 돼 남쪽으로 진군하다니…….”
“군사 국가 다루인의 장점이 인구의 수로 활용한 노동력이니 북쪽과 저희 남쪽을 나눠서 진군하더라도 왕국을 지킬 병사들의 수가 남아 있는 것이겠죠.”
“그것이 우리를 깔보는 것이겠지.”
드르륵-
자이럼이 의자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꼴이 고깝구나…….”
자이럼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근엄하고 고고한 위엄을 뽐내는 마력.
지휘관들은 왕의 마력에 두려움에 떨었으며 오직 왕의 마력에도 태연한 것은 왕국의 검과 방패의 가주인 페르도 공작과 크루드 백작뿐이었다.
쾅!
쩌저적-
내리친 주먹이 책상을 갈랐다.
“감히 2만의 수로 우리 자이럼을 무너트린다고 생각하는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
“회의 시간 또한 아깝구나.”
자이럼의 발걸음이 회의장의 바깥으로 향했다.
“괜찮겠나? 자이럼.”
그때였다.
한 여성의 목소리가 자이럼의 발걸음을 멈췄다.
자이럼은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미르마…….”
허공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회의장의 그들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자이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미르마…… 네X은 상관하지 마라. 내 부탁에도 간곡히 거절하더니만.”
“같은 스승을 둔 제자라지만…… 그렇다 하여도 내가 전쟁에 나갈 이유는 없지 않나? 자이럼.”
“매정한 X.”
“대신 충고를 해 주마.”
“충고?”
“스승님은 말씀하셨지. 넌 머리는 좋으나 멍청하다고. 내가 그 불같은 성격을 좀 고치라고 하지 않았나? 자이럼.”
지휘관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무리 왕의 오랜 친구라 할지라도 그들의 왕에게 편하게 말하는 그녀가 고깝게 보았다.
오래전 전하의 지인인 것은 알고 있으나.
그게 자신들의 주인을 욕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왕이 그녀에게 무시당한 것이다.
가신들은 당연한 반응을 내보였다.
“미르마 님.”
크루드 백작이 미르마에게 말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전하의 어전입니다.”
“어쩌라고.”
“…….”
“네 이름이 뭐냐?”
“크루드 백작가의 세론입니다.”
“아! 네가 그놈이구나. 자이럼이 네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 왕국의 검인 주제에 너무나도 굳건하고 충심이 깊어 방패 같다고 말이야.”
흐뭇하게 웃는 표정이 세론을 향했다.
“한데.”
그러나 곧 돌변하듯 변하는 표정.
굳은 표정이 세론을 향했다.
“충성은 좋으나 분수를 모르는구나.”
텁!
미르마의 가느다란 손이 세론의 목을 향했다.
“끼어들 때는 알아서 가려야지? 안 그런가?”
세론의 눈이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이 무슨 힘이란 말인가…….’
과거 자신이 따르는 주인의 지인.
그녀는 마법사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들어 올릴 정도의 완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크헉!”
“내가 자이럼보다 아래로 보이나?”
“쳇. 그만해라 미르마.”
보다 못한 자이럼이 말렸다.
못마땅한 미르마가 그에게 말했다.
“자이럼.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도와주러 온 친구를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니냐?”
“충심이 깊은 신하를 어찌하겠나?”
“행복한 녀석이군.”
미르마는 세론을 들어 올린 손을 놔주었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세론이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하……. 그래서 미르마. 무슨 좋은 정보라도 있나?”
자이럼이 물었고 미르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2만의 군사. 자이럼을 무너트리기에는 작은 병력이지.”
“그래. 그렇기에 우리를 무시하는 거 아니겠나?”
“다루인에 마법사가 있다.”
미르마의 말에 다루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놈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마법사가 존재할 테지.”
“그냥 마법사가 아니야. 공간 계열 마법사다.”
“공간 계열?”
“그래. 순간 이동 계열이지. 그럼 무슨 전략인지 감이 잡히지?”
잠시 곰곰이 생각한 자이론.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뒤를 칠 생각이군.”
“후훗.”
“내 감사를 표하지. 오랜 친구여.”
“그건 됐고…… 아! 며칠은 마탑에 더 있을 생각이란다.”
“그런가…… 편하게 있다 가거라. 한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
미르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재밌는 아이를 찾았거든. 그것도 두 명이나.”
* * *
[음…… 아무래도 뭔가 기시감이 든단 말이지.]
미르마는 천운의 옆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도 오래된 과거.
자신의 안식처에서 몇 년이 지난 지도 모른 채 박혀 있었으니 과거의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익숙한 기시감은 들었다.
자신은 저 집을 알고 있다.
근데 뭐더라?
[날씨 한번 좋네. 던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푸른 하늘 위의 구름들.
당시 과거의 세계를 재현한 듯한 세계.
[나쁘지 않아…….]
지금은 없어진 세계.
미르마는 오랜만에 그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론과 길…… 그리고 자신 또한 그들의 옆에 서서 도왔다면 이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미 끝나고 없어진 세계고 과거지만 문득 후회가 막연히 드는 미르마였다.
“미르마.”
[어, 왔어?]
잠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더니 천운이 찾아왔다.
“드디어 내일이네요.”
[전쟁 말이지?]
“네. 뭐 하루정도는 여유롭게 쉬어도 되겠죠.”
퀘스트를 성공하며 보상을 얻었고 대장장이 기술을 키워 무기를 만들었다.
그 전부를 흡수한 샌디.
준비는 이미 끝났다.
그러니 하루정도는 쉬는 날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전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플레이어들은 전장으로 이동되거든요.”
[탑으로 순간 이동시킨 것처럼 말이야?]
“네.”
갑작스러운 이동은 플레이어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이동된 뒤 당황하면 이미 늦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으니.
그렇기에 천운은 미리 준비했다.
녀석들의 사기를 꺾고 병력을 줄이고 공헌도를 올리기 위해.
남들보다 앞서서 공헌도를 올려 둔 것이다.
‘3번 정도 했으면 슬슬 괜찮겠지.’
현재 천운의 공헌도는 500 가까이 되는 숫자였다.
공헌도의 수치 계산은 병사의 강함에 나타난다.
그들 각각 개인의 수치는 달랐으며 아마 평균적으로 20에서 30 사이의 병사들이 많을 거다.
그 위에서는 나름 무위를 떨치는 실력자들일 테고.
“여기도 오랜만이네…….”
천운은 론 헤일리의 집에 도착했다.
천운은 인벤토리에 먹을 것을 꺼내고 문을 열었다.
그대로 문을 여니 두 아이가 천운을 반겼다.
“와!! 오빠다!”
“오빠! 오늘은 집에서 자는 거예요?”
항상 대장간에서 보는 얼굴들이지만 막상 집에서 보니 새삼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리카는?”
“아주머니랑 같이 물 뜨러 가셨어요.”
“몸도 안 좋으신 분이 참…….”
천운은 가지고 온 먹을 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기다렸다.
“우와! 과자다 과자!”
“맛있겠다.”
“먹고 있어. 잠시 나갔다 올게.”
천운은 리카와 어머니가 계신 강가로 향했다.
빈민가의 안쪽 숲을 조금 걸어가면 물을 뜰 수 있는 강가가 있었다.
다행히 집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서 곧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왔어요. 어머……?”
천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론 님! 아주머니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그녀.
그런 아주머니를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는 리카가 보였다.
천운은 곧바로 달려가 그녀를 안고 집을 향했다.
“언제부터 이랬어?”
“그, 그게 강가에 도착하시자마자…… 흑.”
곧 집에 도착한 천운은 곧바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천운은 곧바로 회복 마력을 그녀에게 둘렀다.
그러나 눈에 보인 것은 마력이 계속해서 그녀를 밀어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상태가 호전될 일이 없는 것이다.
‘이건…….’
몸이 마력을 밀어내다니.
말 그대로 마력이 거부하는 것이다.
천운은 이런 체질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었다.
친목회의 포스맨 또한 이런 체질이었고 지금 그녀 또한 포스맨과 비슷한 체질을 소유한 것이다.
‘미르마…….’
[……시스템이 만든 허상이야. 거기에 휩쓸리지 말거라 천운아.]
‘…….’
자신도 알고 있다.
이곳에 사람들은 던전이 구현화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죽음이 다가오니 가슴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실제로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인 것처럼.
‘방법이 없을까요?’
[마력으로 인한 저주가 아닌 이상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어.]
천운은 고개를 돌려 리카에게 물었다.
“근처에 약국은?”
“있긴 하지만…….”
리카는 말을 흐리며 천운에게 말했다.
사실 리카 또한 눈앞의 은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딸처럼 대해 준 아주머니를 위해 몰래 약국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아…… 그쪽 아주머니? 그건 답이 없어.”
“네?”
“불치병이라 이 말이지. 무슨 약을 쓰든 낫지 못할 거다. 뭐, 대마법사 정도는 와야 어떻게 고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러나 그녀는 마력을 거부하는 체질이었다.
아무리 고명한 대마법사라도 그녀의 몸이 마력을 거부하는 이상 대마법사라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
천운은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바라볼 뿐.
[방법이 없어…….]
현자인 미르마가 일렀다.
그녀를 살릴 방법은 없었다.
“으아앙! 아주머니!”
“흐어엉!”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리카는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천운은 그대로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천운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눈앞에 있을 수 없는…… 아니 본 적도 없는 알림창이 뜬 것은.
[인물 설정이 추가됐습니다.]
[론 헤일리의 기억의 파편.]
[기억의 일부를 읽으시겠습니까?]
(Yes/No)
“기억?”
론 헤일리의 기억…….
과거, 실제 론 헤일리의 기억을 볼 수 있는 창이 떠올랐다.
천운은 Yes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