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121
일주일 전.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기술을 배우고 있던 천운의 앞에 드디어 1층의 메인 퀘스트가 나타났다.
{1 층 메인 퀘스트 ‘왕국의 전쟁’}
[전쟁의 서막]
-시련자들은 들어라. 나 던전의 이지가 시련을 내리니.
그대들의 전쟁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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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눈앞의 그것은 천운이 기다리고 있던 퀘스트였다.
‘샌디야 할 수 있겠어?’
[ㅇㅇ.]
텔레파시로 대답하며 부르르 떠는 샌디였다.
천운은 샌디를 쓰다듬으며 곧바로 흑장미의 아지트인 술집을 향했다.
“오셨습니까. 마법사님.”
로벨리아가 천운을 맞이했다.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와 함께 곧바로 지하를 향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용건으로.”
“의뢰 하나만 맡아 줘요.”
“의뢰라면…… 무슨 의뢰인지.”
천운은 곧바로 주머니에서 금화 3개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로벨리아의 미간이 좁혀졌고 천운에게 눈을 좁히며 물었다.
“……마법사님께서 돈까지 주실 정도의 의뢰라면 위험하겠군요.”
“그렇게 위험한 임무는 아닙니다.”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완고한 로벨리아였다.
자신의 단원들이 헛되게 죽을 정도의 무의미한 의뢰라면 아무리 눈앞의 소년이 마법사라도 단칼의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 천운은 의뢰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다루인의 행군 경로는 알고 있죠?”
“저희가 조사하게 제일 먼저 마법사님께 알리지 않았습니까?”
“예상되는 경로 앞에 미리 가서 이걸 땅에 묻어 주실래요?”
천운이 건넨 것은 사람 손바닥 정도 크기의 박스였다.
“이건…… 폭탄인가요?”
“비슷한 거지만 폭탄은 아닙니다.”
“이걸 예상되는 경로에 묻어 두면 된다는 건가요?”
“네.”
로벨리아는 곧바로 안전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뒤 곧바로 천운이 말한 조금 위험한 상황의 말을 깨달았다.
“그렇네요…… 확실히 그렇게 위험한 임무는 아니군요.”
싱긋 웃은 로벨리아가 천운을 바라봤다.
“혹시 이건 마도구인가요?”
“마도구는 아니지만, 마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네요……. 다루인 측에 마법사들이 감지 마법을 사용해 이 상자가 들킬 가능성이 있어요.”
“방책을 마련해 뒀으니 괜찮을 겁니다.”
“방책이라니…… 다루인의 마법사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건가요?”
“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벨리아는 천운을 향해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소년이 뛰어난 마법사라 하여도 다루인의 감지 마법사들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뭐 어차피. 이 작전이 실패해도 자신 쪽으로 해가 될 일은 없었다.
“그럼 언제까지…….”
“모레까지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 * *
다루인의 군사가 멈추고 막사를 설치하여 야영을 준비했다.
그것은 야심한 밤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스르륵-
상자를 뚫고 흙을 파서 기어 나온 샌디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작해.’
[ㅇㅇ]
샌디의 몸에서 무수한 칼날들이 솟아 나왔다.
스르륵-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샌디.
“응? 뭐야 저건?”
“음…… 마수?”
경계를 서던 병사의 눈에 샌디가 보였고 동시에 그 무수한 칼날들이 경계를 서던 병사를 포함해 막사까지 쇄도하기 시작했다.
“끄아악!”
“뭐, 뭐야!”
“이런! 적습이다!!”
병사들의 단말마가 사방팔방에 울리기 시작했다.
샌디의 몸에 무수한 칼날들이 병사들의 목, 심장, 또는 다리와 팔에 쇄도했으며 야밤의 급습은 병사들에게 혼란을 일으켰다.
저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몸에서 촉수처럼 꾸물거리는 칼날.
“아, 아…… 괴물…….”
한 병사의 흐느끼는 듯한 말투가 샌디를 향했다.
샌디는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놈들의 사기를 꺾고 혼란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됐을 거라 판단한 샌디는.
사아악-
몸을 납작하게 펴서 바닥에 착 달라붙은 샌디였다.
그대로 지면을 휩쓸고 기어가는 샌디.
야심한 밤, 병사들의 눈에는 그저 샌디가 바닥으로 사라진 거처럼 보일 것이다.
“대체…… 저건 대체 뭐냔 말이야…….”
지옥 같은 광경과 알 수 없는 괴생물.
자신이 무엇에 당한지도 모르고 쓰러진 병사들.
후에 다루인의 병사들은 그 괴물을 다루인의 악몽이라 불렀다.
* * *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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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의 공헌도가 올랐다.
예상대로의 실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1층의 마지막 시련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조금 경로를 벗어나도 괜찮을 거야.’
그 대군이 자이럼을 향해 진군하는 경로는 한정적이었다.
그렇기에 천운은 샌디를 나누어 상자에 담았고 동시에 예상한 경로에 조금 벗어나도 샌디가 알아서 자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앞으로 그놈들이 오기 5일 정도 남았지?’
다루인의 군대가 자이럼에 도착하려면 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5일.
천운은 공헌도를 올림과 동시에 녀석들의 사기를 꺾을 생각이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준비도 뭐도 없이 곧바로 전장으로 이동되니 말이다.
‘자, 그럼.’
천운은 샌디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부탁할게.’
* * *
[론…… 그 녀석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군.]
길은 과거의 추억에 잠겼다.
론…… 죽기 전까지 그의 전부를 몰랐던 사내.
사내를 볼 때마다 느껴진 감정은 공허였다.
그 남자는 공허했다.
마치 모든 걸 잃고 갈리고 닳아진 사내의 감정은 그저 공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용하며 무덤덤하고 말이 없는 사내.
그 녀석의 과거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길이었다.
[의철아.]
‘네?’
[아니…… 아니다.]
의철에게 잠시 부탁해 보려던 길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탁이었다.
이 넓은 왕국에 그 사내를 찾고 싶다니 불가능에 가까운 부탁이다.
더구나 지금의 론은 과거 그때의 모습과 달리 어릴 테니 얼굴 또한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것보다 설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줄이야…….]
과거 자신의 세계.
지금은 그 거대한 재앙에 사라지고 잊힌 세계.
길이 둘러본 탑이 만들어 낸 과거의 세계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마치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이 세계로 왔다는 건…… 그놈 또한 어딘가에 존재하겠군.’
과거 세계를 집어삼킨 재앙.
론과 자신이 맞섰으나 결국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함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길은 과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녀석은…….’
검은 모래의 폭풍을 이끌고 나타난 멸망의 재앙.
녀석은 거대한 소녀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소녀는 울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원망스럽다는 듯 울부짖었고 그저 재앙이 지나간 자리는 황폐하게 변할 뿐이었다.
녀석은…… 끝을 모를 흡수력을 가지고 있었다.
[의철아.]
‘네?’
[조심하거라…….]
‘갑자기요?’
길은 두려웠다.
이 탑이, 이 미지의 힘을 구현화한 던전이 그 재앙을 실체화시킬 수 있을 거 같다는 가능성이 말이다.
[이 탑은 과거를 구현화한 탑이다. 그리고 내 예상이지만…….]
탑의 마지막 층.
만약 탑이 과거 멸망한 세계와 관련되고 구현화한 것이라면 탑의 가장 마지막 층은 그것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 * *
투명한 유리 돔으로 된 넓은 정원이었다.
정원 내부에 꾸며진 숲.
울창한 나무와 유리 돔 너머로 비추는 햇빛과 흐뭇하게 대화를 나누듯 지저귀는 새들은 마치 인공적인 공간으로는 보기 힘든 자연의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원을 거느리며 산책하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후후훗, 오늘도 날씨가 좋네.”
머리를 시작해 몸 전체가 새하얀 눈 같은 소녀였다.
푸른 눈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백색의 머릿결이 고아한 소녀는 자유롭게 정원을 거닐었다.
짹- 짹- 짹-
요란스러운 참새 소리에 그녀의 눈이 자그마한 참새를 향했고 그녀가 손을 펼치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참새가 그녀의 손가락으로 날아왔다.
“오구오구 착하다.”
소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참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던 그녀는 이내 참새를 저 멀리 보내고 다시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따라오는 정원의 동물들.
무수한 동물들을 이끌고 정원을 거느린 그녀는 이내 한 나무에 도착했다.
거대한 나무였다.
그 두툼한 나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소녀는 나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내 친구들을 소개할게.”
소녀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뒤를 따라온 동물 친구들을 소개했다.
곰부터 시작해 토끼, 여우, 사슴과 참새.
“얘는 베어고 얘는 흰둥이 그리고 얘는 주니라는 참새야. 어때?”
소녀가 말했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요지부동인 나무였다.
“음…… 아직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 그럼 다음에 또 올게! 다음에는 맛있는 거 들고 올 테니까 기대해!”
소녀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동시에.
사르륵-
요지부동의 나무가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가지부터 천천히 내려와 형태가 잡힌 그것은 더 이상 나무의 모습이 아닌 둥근 슬라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사라라락-
모래가 땅을 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색의 모래는 그녀가 저 멀리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또다시 의태하여 소녀의 눈앞에 띄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녕!”
“오늘은 돌이네?”
“응? 너는 배 안 고파? 밥 안 먹어도 돼?”
그 어린 소녀는 당최 어떻게 자신을 찾아내는지 이곳저곳 눈치 못 채게 의태해도 곧바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어떻게?!
모래는 그 방법이 너무도 궁금하여 물었다.
“응? 너 말할 수도 있었어?”
“너를 어떻게 찾아내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다고? 음…… 그거야 뭐…….”
소녀는 모래가 의태한 나무를 바라봤다.
온통 초록빛을 띠는 나무들과 달리 유난히 눈에 띄는 흰색이었다.
“후훗, 내가 좀 대단한 능력이 있긴 하지. 굉장하지?”
“뭐? 무슨 능력인지 궁금하다고? 음…… 알려 줄까 말까…….”
소녀는 흘깃 백색의 모래를 바라봤다.
“그럼, 그럼 있잖아……. 이름을 알려 줄래?”
모래는 없다고 대답했다.
애초에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흐르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 그럼 내가 이름 지어 줄까?”
모래는 딱히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아! 맞아 맞아! 그럼 이름을 지어 주기 전에 한 가지. 이걸 들어줘야 해.”
뭐지?
“내 친구가 돼 줄래?”
친구…… 전에도 들어 본 말이지만 뜻은 전혀 모르겠다.
“음…… 친구란 건 있잖아……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옆에 있어 주는 게 친구야.”
모래는 고민하더니 생각보다 귀찮은 존재라 답했다.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을걸?”
…….
“어때? 돼 줄래?”
몸을 끄덕인 모래.
“히힛, 그럼…… 뭐로 할까? 혹시 가지고 싶은 이름은 있니?”
아무거나 괜찮아.
“그래? 좋아 정했어! 네 이름은…….”
……과거의 기억.
그 기억의 마지막 문장이 까마득해질 때쯤.
그 존재는 다시 지면에서 올라와 멸망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이곳은 탑의 바깥인 현세.
그 거대한 존재는 또다시 결말의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