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119
천운이 탑에 들어온 지 2주가 지났다.
막상 아직 진전은 없으며 4번째 퀘스트도 성공하지 못한 시점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미 4번째 퀘스트를 통과하고도 남았을 건데…….’
나아가질 못하니 기술이라도 쌓으려 망치를 내리쳤고 내리친 결과물들은 천운의 뒤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기술이 잡혀 작은 단검부터 시작해 장검을 만들 경지까지는 됐으나 막상 자신이 원하는 무기의 형태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었다.
“놀랍구나…….”
다시 망치를 내리치려던 천운이 고개를 돌렸다.
대장장이 D가 천운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여기에 온 지 2주 정도 됐나?”
“아, 네.”
“2주만에 그 정도 속도에 이 정도 양이라니……. 혹시 잠은 안 자느냐?”
“요즘 잠을 좀 줄여 가며 일하고 있어서요.”
“그런가…….”
땅! 땅!
천운은 다시 망치를 내리쳤다.
화로에 넣어 불로 지진 다음 내리치기를 반복했고 D는 그 자리에서 굳건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뒤에 있는 검들은 어디에 쓸 것이냐?”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플레이어들에게 나눠 주려고요.”
“전쟁? 그게 무슨 말이냐?”
아차! 내리치며 생각 없이 내뱉으니 실수로 알고 있는 미래를 말해 버렸다.
근데…… 뭐 지금은 딱히 상관없으려나?
“일주일 뒤에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들었어요. 그게 마지막 시련이라고 퀘스트가 말해 줬고요.”
“그런가…… 그게 1층의 마지막 퀘스트겠구나.”
“네. 아마 그럴 거예요.”
“그럼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마침 잘됐군. 잠시 올라와 보겠느냐?”
“예?”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단다.”
싱긋 웃은 그의 미소에 천운은 호기심이 생겼다.
천운은 대장장이 D를 따라 집무실로 올라갔으며 마네킹 형태의 천에 가려진 무언가가 집무실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일단 고맙구나.”
D가 천운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았더구나. 신기하더군, 중세 시대처럼 보이는 이 세계에서 우리 현대보다 더욱 발전한 마법의 지식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단다.”
“설마! 성공하셨군요!”
“그래.”
D가 천은 잡아당겨 들쳤고 D가 만든 그것은 형태를 드러냈다.
겉으로만 봤을 때 사람의 형태를 한 여자 아이였다.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머릿결과 감고 있는 눈이 신비함을 자아냈다.
“마석으로 속을 구성한 다음 투영석으로 겉을 덮었지. 이 녀석의 이름은 HD-0라고 지었다. 어떠냐?”
“이건…….”
천운은 가까이 다가가 눈앞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팔을 잡아 봤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지금 움직일 수 있나요?”
“마력을 공급하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단다. 그리고…… 마지막 퀘스트가 전쟁이라고 했지?”
“아, 네.”
“이걸 써보면 되겠구나.”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형태를 띤 병기 HD-0.
만약 녀석이 전장에서 활약하면 천운 또한 어느 정도 공헌도를 가져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녀석의 제작에 자신도 작게나마 도움을 줬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네 차례구나.”
“네?”
“너 또한 내게 도움을 줬으니 나도 너를 조금 도와주마.”
그가 집무실 의자에 앉으며 천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쥐고 내 손바닥에 맞닿아 보거라.”
“저기…… 이게 무슨.”
“뭐…… 닿아 보면 알 터이니 일단 길게 묻지 말고 한번 믿어 보거라.”
천운은 잠시 고민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주먹을 쥐고 그의 손바닥에 주먹을 맞대었다.
그 순간.
팔을 통해서 천운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어떠한 마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평범한 마력이었다.
그러나 그 마력에 자신의 신체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항상 궁금했지. 왜 마력이 소모되면 아베타들은 기절과도 같은 잠이 쏟아지는 거지?”
지금까지 망치질을 하며 하루 3시간을 잔 천운의 몸에 피로가 사라지고 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연구한 끝에 만들어 낸 기술이지…….”
D가 맞닿은 손을 뗀 순간 천운은 손을 쥐어 보고 팔을 돌려보며 몸을 살폈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개운한 몸이었다.
몸에 더러운 이물감이 마치 싹 사라진 느낌이었다.
반대로 D의 표정은 심상치 않게 피곤해 보였다.
“그 정도면 아마 2, 3주는 멀쩡히 잠을 안 자도 활동할 수 있을 거다. 네 피로를 내가 전부 흡수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만 자보마. 열심히 하거라.”
“아, 감사합니다.”
그는 곧바로 근처 소파에 털썩- 누워 눈을 감았다.
천운은 그것을 확인하고 뒤돌아 집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
“김천운.”
D가 다시 천운을 불러 세웠다.
“처음 네가 너를 흥미롭게 본 이유는 네가 그 검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크리티컬 단검이요?”
“그래.”
그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가 쓸모없다고 판단한 그 유물을 너는 애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재밌으면서도 신기했지. 하지만…….”
천운은 가만히 서서 그의 말에 경청했다.
마지막 D의 말은 조금 씁쓸하게 들려왔다.
“지금의 너는 완벽을 추구하는 거 같구나…….”
“…….”
“굳이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란다. 더구나 지금의 네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네 말은……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걸 활용해 보거라.”
조용히 듣고 있던 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새겨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번에는 진짜 나가 보거라.”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집무실을 나와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으로 내려가며 천운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D의 눈으로 봤을 때 자신은 어느 정도 기술이 성장하기는 했으나 그 이상을 바라보는 철부지로 보였을 거 같았다.
기술에 비해 큰 결과를 바라는 소년.
‘가지고 있는 걸 활용하라니…….’
가지고 있는 것…….
지금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라…….
어느새 대장간에 도착한 천운은 다시 망치를 쥐었다.
D 덕분에 몸에 활력이 도니 깊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머리가 돌아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
전장에서 누구보다 많이 가장 큰 공헌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샌디와 인벤트리 마법과 스킬.
‘응? 샌디?’
샌디를 힐끔 바라본 천운이 다시 눈을 비비며 샌디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샌디의 스탯 중 지능에 시선이 갔다.
[지능 : 56.8/100]
“56.8?”
천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는 언제 지능이 이렇게 올랐지?
어디 도서관에 간 것도 아니면서…….
[ㅇㅇ…….]
동시에 샌디의 눈매도 살짝 변한 느낌이었다.
뭔가 마치……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느낌?
[바보.]
“바보라니…….”
과거와 다르게 또박또박 말 할 수 있는 샌디였다.
샌디는 갑자기 천운의 손목에서 벗어나 뒤에 수북이 쌓인 장검과 단검을 향했다.
샌디는 무기를 코앞에 두고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수북하게 쌓인 무기들을 샌디가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
천운이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니.
띵!
{퀘스트 성공!}
퀘스트 성공창이 떠올랐다.
* * *
샌디의 갑작스러운 성장은 천운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어떻게?!”
56.8.
그것이 2주만에 샌디가 이루어 낸 성장이었다.
그것도 49의 경계를 넘은 50이라니…….
‘설마!’
갑작스러운 성장은 천운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의기양양하게 무기들을 흡수한 샌디를 보며 천운은 깨닫고 말았다.
56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샌디라면 아마 천운이 지금까지 만든 무기들은 모조리 꺼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자그마치 76개의 장검과 단검이 지금 샌디의 몸에 깃든 것이다.
“네가…….”
샌디가 무기를 흡수하자 떠오르는 퀘스트 완료창.
그것의 의미는 샌디에게 있었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형태를 적합하게 만들어 줄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응?’
천운은 당황스럽게 샌디를 바라보니 곧바로 눈앞을 가리는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4번째 퀘스트를 완료하여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퀘스트 성공 보상.}
[각 보상 중 하나를 고르십시오.]
1. 은화 10닢
2. 피로 회복 포션 1개
3. 힘 스탯 0.01
‘뭐, 별로 좋아 보이는 건 없네.’
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첫 번째 보상 퀘스트에서부터 큰 기대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야 이왕 받을 수 있을 때 받아 두는 것이 좋겠지.
천운 굳이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로선 돈의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D의 그 알 수 없는 능력 덕분에 피로 또한 며칠 동안은 괜찮을 테니 미력하지만, 힘 스탯을 고르기로 결심했다.
“삼.”
스르륵.
3번을 고르자 곧바로 눈앞에 퀘스트 창이 흩어지고 반짝이는 빛으로 변하여 천운에게 흡수됐다.
0.01정도의 힘 스탯.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스탯이니 이틈에 잔뜩 스탯을 성장시켜 놔야겠다.
띵!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곧바로 다음 퀘스트가 올라와 천운은 퀘스트 내용을 읽은 뒤 씨익- 미소가 흘러나왔다.
{퀘스트}
[자신이 바라는 무기를 제작했으니 지금까지 배운 대장장이의 기술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십시오.]
또다시 제한을 주지 않는 애매모호한 퀘스트.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이 천운에게 달갑게 다가왔다.
무기를 만들며 스탯을 올리고 만들어진 무기를 샌디가 흡수하여 샌디를 강화시킨다.
이 시점에서 퀘스트 클리어는 여차저차였다.
‘자, 그럼.’
천운은 다시 망치를 쥐었다.
앞으로 며칠밖에 안 남은 짧은 시간.
천운이 성장할 시간이었다.
* * *
망치를 내리치고.
땅!
형태가 덜 잡힌 철을 다시 화로에 넣는다.
화르륵-
마석이 아닌 철로 이루어진 평범한 검.
특성도 없는 검이지만 천운은 그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심혈을 기울이는 행동을 인지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화로에 철을 지지고 망치를 내리치는 일정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몸에 묻어 나오고 있었다.
뚝-
뚝-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도 천운의 눈을 그저 망치를 내리치는 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력이 고갈될 만한데도 천운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만족스럽게 완성된 작품은 뒤로 넘겨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고 움직일 뿐.
멈추지 않는 천운의 행동에 질린 표정을 짓는 미르마였다.
[여전히…… 적당히를 모르는구나?]
천운의 귀에는 이미 미르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운은 눈앞의 검과 창, 도끼를 만드는 행동에 신기하게도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스탯이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있어.’
몸에 기운이 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스탯의 성장은 멈출 줄 모르고 천천히 그러나 현저히 상승 중이었다.
그것에 재미를 느낀 천운은 망치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작 대장간에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 스탯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줄은 천운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아지경처럼 망치를 휘두른 천운인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아! 하아!”
힘 : (45.6/55)
체력 : (46.1/50)
힘과 체력 스탯이 현저히 상승해 있었다.
밤낮을 쉬지 않고 망치를 내리친 결과물이었다.
* * *
탑이 절망이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시련을 통과했든 못했든 사람들에게 안겨지는 불행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든 하나씩 안겨 주는 절망.
그들은 과거 가장 절망적인 결말을 가진 사람들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다.
천운 또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덜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것이다.
천운이 예상하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은 1층 시련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땅! 땅!
그렇기에 쉬지 않고 망치를 내리치는 거지만.
그러나 천운에게 절망은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