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117
“여긴 어디야?”
한설아가 눈을 떴을 때는 푹신한 침대와 분홍색을 기조로 깜찍하게 꾸며진 방 안이었다.
“어…… 분명히…….”
한설아는 이 상황이 일어나기 전 상황을 떠올랐다.
분명 일주일 전 발생했던 사람들의 원인 불명의 행방불명.
그것이 미국에 발생한 절망의 탑이 사람들을 대이동시킨 것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이 발생한 후 일주일 뒤 자신도 그 현상을 겪게 되는데.
‘분명…… 이 문에 들어가면 시련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나?’
지면에서 솟아오른 두 개의 거대한 문.
그 문 중 하나는 출구이며 또 하나는 시련을 참가할 수 있는 문이었다.
한설아는 망설임 없이 시련을 참가했다.
천운이 또한 이 시련에 참여했다고 민아 언니에게 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상황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여기 대체 어디야?”
눈으로 보이는 방을 그대로 직설적으로 설명하면 마치 어린 애기들이 쓰는 공주님 방 같은 느낌이었다.
한설아가 상황을 살피기 위해 당황하며 일어나는 순간.
똑- 똑-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이다.
“어…… 저, 저기 누구세요?”
뭔가 상황에 맞지 않는 괴이한 현상에 한설아는 언뜻 두려움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살짝 긴장한 말투로밖에 누군가에게 물었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가씨.
방 밖에선 차분한 노년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들어오세요.”
한설아는 당황하여 말을 버벅거리니 문이 천천히 열리고 훤칠한 복장의 흰머리가 가득한 노년의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한데,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군요.”
“아…… 아 네.”
“……?”
남자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기 시작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본 듯이 말이다.
“아, 아가씨……?”
“네?”
“허……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군요. 혹시 어디 아프신 데라도…….”
“어, 그게…… 저기.”
한설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어봤다.
“누구세요?”
그리고 남자의 눈은 경악스럽게 떠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아가씨…….
공작가의 유일한 오점이 자신에게 정중하게 대해 주니 말이다.
* * *
한편 검술 명가 크루드 가문의 수련장.
훙! 훙!
무거운 강철검에서 터져 나오는 파공음.
한 소년이 그것을 몇 시간씩 쉬지 않고 반복해서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두 소년이 있었고 그들은 얼굴을 구기며 불만을 토해 냈다.
“길러트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마력도 각성 못 한 찌질이가 노력한다고 아버지의 눈에 들 줄 알고 있나?”
“뭐 내버려 둬라. 저것도 하다가 질리겠지.”
“뭐, 그런가?”
하하하하!
소년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두 소년은 크루드 가문의 장남과 차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검을 쥔 손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휘두르는 소년의 이름.
소년은 가문의 막내이자 유일하게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문제아.
길러트 크루드였다.
그러나 소년의 내용물은 이미 다른 사람으로 변했으니.
[흠…… 기이한 던전이구나.]
크루드의 옆에 두둥실 떠다니는 검성 길은 주위에 펼쳐진 현실적인 공간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길러트의 머릿결을 흔드는 바람이나 주위에 자신을 보며 기웃거리며 떠도는 사람들이 모두 실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현상이 그 탑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할 따름이었다.
막상 길과 함께 탑에 들어온 당사자, 김의철은 신경 쓰지 않고 수련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것보다 자이럼 왕국이라…….]
‘아는 곳이에요?’
[내가 살았던 세계를 구현한 곳이니 말이다. 물론 자이럼 왕국은 소국에 불과하지만, 그놈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단다.]
‘그놈이요?’
[흠…….]
길은 과거의 생각에 잠겼다.
과거 검성이 되기 전.
자신의 몸에 상흔을 남긴 자신이 인정한 강자인 그 녀석은 분명…….
바로 이곳 자이럼 왕국의 출신이었다.
[놈의 망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군. 크흐흐, 생각해 보니 그놈도 정상이 아니었어. 그놈은 자신을 소개할 때 대장장이라 소개하는 미친놈이었지.]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망치를 들고 전장을 누비던 경이로운 완력의 소유자.
조용하며 덤덤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녀석이 전장의 적들에게 서슴지 않고 내리치는 피의 철퇴는 과연 길 또한 인정하게 만든 강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언뜻 녀석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담담함은 감정이 없는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적들을 망치로 내리치는 녀석이 자신을 소개할 때 대장장이라 칭했으니 생각보다 웃픈 과거의 추억일 수밖에 없었다.
길이 괜히 그놈을 미친놈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여기 이곳 출신이라면 만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흠…… 만약 그렇다면 그렇겠지만……. 지금의 녀석은 아마 어린애일 거다. 아마 너 정도의 소년?]
녀석이 활동했던 시기는 분명 자이럼 왕국에 전쟁이 일어난 이후였다.
“아저씨가 인정한 사람이죠?”
[뭐, 그렇지? 한때 나와 같이 재앙을 막기 위해 녀석과 협력했으나 끝내 그것에 집어삼켜지고 말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네요……. 혹시 이름이 뭐예요? 그 사람.”
[이름이라…….]
과거.
재앙을 막기 위해 녀석과 힘을 합쳐 그 거대한 어둠에 맞섰지만.
[처음에는 그 할망구와 내가 녀석을 이렇게 불렀지. 론이라고.]
그 말로는 결국 죽음뿐이었다.
녀석이 죽기 전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오른 길이었다.
오직 유일하게 녀석이 임종 직전 감정 없는 괴물이라고 생각한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유언.
인상 깊은 기억이었다.
녀석의 마지막 말에는 마음이 담겨 있었으니.
-헤일리…… 론 헤일리다…… 길이여. 소중하여 간직하려고 한 내 이름을 만약 네가 살아남는다면 영원히 기억해 다오.
애처롭게 흘러나온 자신의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둔 그.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전설의 대장장이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결국 나도 죽고 말았구나, 론…….]
그러나 자신은 그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자신 또한 결말은 죽음이었으니.
* * *
-쿨럭.
헤일리의 집.
헤일리의 어머니인 그녀는 침낭에 드러누워 코 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딸이 생긴 거 같아 기분이 좋구나.”
일전에 론이 데리고 온 세 명의 아이들.
천사 같은 외모의 귀여운 3명의 소녀.
딸이 생긴 기분으로 그녀들을 보살피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유일한 아들 론이 걱정인 그녀였다.
“요즘 론이 늦게 들어오네…….”
헤일리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났다.
분명 대장간에서 청소만 하던 론이 대장간 주인에게 인정받아 제자로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그렇기에 헤일리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적어졌지만 섭섭할 뿐이지 기분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가난한 집안 때문에 미래가 안 보이던 론이 그래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았으니 말이다.
“어머님.”
“어머, 일어났니?”
“네…… 금방 저녁을 차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후훗, 부탁할게.”
세 명의 아이 중 장녀인 리카.
어린아이답지 않은 의젓한 그녀는 가끔 자신을 대신해 저녁을 차려 주기도 했다.
“일은 할 만하니?”
“네. 대장장이 아저씨들도 친절하셔서 괜찮아요. 청소도 세 명이서 나눠서 하니까 빨리 끝나고요.”
“후훗, 다행이구나.”
“그럼 잠시 물 좀 떠올게요.”
리카가 잠시 집을 나간 뒤.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입을 틀어막으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입에서 손을 뗀 그녀는 돌연 자신의 입에서 나온 토혈을 보며 쓴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구나…… 론.”
* * *
땅! 땅! 땅!
평소와 같이 망치를 내리치던 천운은 잠시 손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 근데 대체 뭘 만들어야 하지?”
퀘스트,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무기를 만드십시오.
연신 망치를 작은 단검을 시작해 장검을 만든 천운을 고민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퀘스트였다.
방금 말했듯이 단검과 장검을 몇 개 만들어 본 천운이지만 막상 지금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니 4번째 퀘스트를 성공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슬슬 고민할 차례였다.
D 아저씨로 인해 기술이 다져졌으니 이제 어느 정도 원하는 방향으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좀 실용적으로 만들까?’
1층 퀘스트의 마지막 ‘전쟁’.
그 전쟁의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적장의 목을 따는 것이겠지만 역시…….
막상 전쟁이 시작하고 천운처럼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원하는 방향의 무기라…… 잠깐?’
그것이 굳이 칼이나 방패 같은 병장기일 필요가 있을까?
천운이 처음 생각한 자신이 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이 사용하여 공헌도를 올린다.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은 없었다.
그러나 굳이…… 굳이 자신이 무기를 들고 싸울 필요가 있을까?
과연 자신의 무기로 공헌도를 올리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병기(兵器)를 만들면 되잖아!’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이 도출됐을 때 하나의 큰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 병기를 만들 비용과 더불어 애초에 천운은 병기를 만들 기술이 부족했다.
‘음…… 무슨 방법이 없나?’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수그리며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비용 부족, 기술 부족.
그것을 케어 할 만큼 아주 간단한 방법이…….
“어이, 론.”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닉 와일이 눈썹을 찡그리며 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3번을 불렀다 이놈아.”
“아…… 죄송합니다.”
“그래. 뭐 진전은 있느냐?”
“에, 뭐 좀 만들고 싶은 무기가 생기긴 했어요.”
“그러냐? 그럼 내 퀘스트도 완료가 되겠구나.”
천운의 성장이 D의 퀘스트 성공에 뒤따르니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래도 좀 쉬면서 하거라. 집에 좀 가 보고.”
그러고 보니 집을 안 간 지가 좀 오래되기는 했다.
밥 관련 음식들은 리카와 니카, 미카에게 넘겨주고 대장간에 짱 박혀 있었으니 슬슬 집에 가 볼 때가 되긴 한 거 같다.
식량도 슬슬 없어졌을 테니.
“천천히 하거라. 그렇게 하고 건강만 해치면 나도 곤란하니 말이다. 나는 다시 올라가 보마.”
“네, 알겠습니다.”
천운이 고개를 꾸벅 숙이니 그가 다시 계단을 올라 집무실을 향했다.
그러다가 문득 천운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아! D 아저씨!”
“왜 그러느냐?”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그 도면 좀 봐도 될까요?”
“도면? 그 도면을 말하는 거냐?”
“네.”
흠…….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을 하던 D.
“뭐 상관없겠지…… 보기만 하는 거라면. 딱히 봐도 이해할 수도 없을 거 같다만.”
“괜찮습니다. 그냥 딱 한 번만 볼게요.”
“그래, 알겠다. 올라오거라.”
천운은 D의 뒤를 따라 집무실로 올라갔다.